“난 유령이 보여요.” <식스 센스>의 꼬마 콜은 무섭고 외롭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저주받은’ 재능(gift) 때문에. 카드점을 치는 애니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겐 타인의 미래와 운명을 알 수 있는 예지력이 있고, 그 재능 때문에 존경도 미움도 받는다. <기프트>는 그녀와 얽힌, 그녀가 점을 쳐주는 세 사람을 둘러싸고 진행된다. 도니를 미워하면서도 얽매여 있는 발레리와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불안에 시달리며 애니를 유일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정비공 버디, 자상하고 친절한 학교선생 웨인과 그의 요염한 약혼녀 제시카.
<기프트>는 충실하게 스릴러의 기단을 쌓아간다. 애니는 제시카에게서 죽음의 환영을 보고, 발레리에게는 이혼하라며 조언을 하고, 버디에겐 그의 상처를 기억하라고 권한다. <기프트>는 각각의 사람들이 얽힌 에피소드를 죽 나열하면서 하나하나 고리를 엮어간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은 그들이, 한데 만나는 지점에서 사건이 시작되고 또 맺어진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샘 레이미는 <기프트>를 아주 능숙한 솜씨로 끌어간다. 제시카의 죽음에서 도니의 수감까지는. 그러나 애니가 도니의 살인을 의심하면서, <기프트>는 급속하게 허물어져 내린다. 도니는 살인범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 샘 레이미는 예지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뻔한 반전을 택했고, 사람들의 심리까지 읽어나가던 심령퍼즐은 빤히 내비치는 트릭으로 바뀐다.
공포와 코미디를 마음대로 주무르던 <이블 데드> 시절의 재기와 발랄함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심플 플랜>의 정교함과 신랄함이 증발해버린 샘 레이미의 할리우드작은, 공장에서 찍어낸 대량생산품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다. 전작 <케빈 코스트너의 사랑을 위하여>가 그랬듯이. 물론 할리우드의 주류에 투항했기에 <매트릭스>의 키아누 리브스, <엘리자베스>의 케이트 블란쳇,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힐러리 스왱크, <너스 베티>의 그렉 키니어 등의 ‘스타’를 기용하고, 빌리 밥 손튼이 각본에 참가했겠지만 그들의 ‘재능’을 살려주기에 샘 레이미는 많이 타락한 것 같다. 아니면 지쳤거나.
위정훈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