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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사드는 어떤 방법으로든 형상화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틀렸다. 사드의 작품과 생애는 200년 동안 다양한 예술작품 속에서 조명돼왔고, 최근 그 목록에 필립 카우프만의 <퀼스>가 추가됐다. 카우프만은 사드에게서 자기 모습을 봤는지도 모른다. 그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영화화한 <프라하의 봄>에서, MPAA가 NC-17등급 판정으로 응징한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에서, ‘위험수위’를 넘나들며 쾌락을 좇는 남녀들을 탐미적인 영상에 담았다. 성적 일탈 욕구는 반역의 에너지, 자유와 이상의 메타포로, 카우프만의 작품 속에 중요한 테마로 자리잡고 있다. 왕정을 반대하고 절대 자유를 추구하던 반체제 예술가 사드의 생애에, 카우프만의 에로틱한 필모그래피를 겹쳐 떠올리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깃촉’(펜)을 뜻하는 제목 ‘퀼스’(quills)는, 카우프만이 사드의 생애, 사드의 신념 어디에 포커스를 맞출지에 대한 어렴풋한 힌트가 된다. 젊
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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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리버>는 <쎄븐>을 연상시킨다. 암호 같은 단서를 흘리는 지능적인 연쇄살인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하는 형사들의 게임 구도, 음산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그렇다. 시각적 이미지는 <쎄븐>보다 강렬하다. 첫 번째 시체를 클로즈업하는 오프닝부터 심상치 않더니, 갈수록 범행이 잔인해지며 신체 일부가 손상된 시체의 노출도 잦아지고 길어진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마주 보기 어려울 정도다. 사건의 배경도 광활한 알프스 산악 지대로 ‘버전 업’됐는데, 이는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의미다. 열린 듯 닫혀 있는 눈덮인 산악지대는 기이하게도 밀실 공포를 유발하고, 창조주의 권능을 얻으려던 인간의 어리석음은, 대자연 앞에서 발가벗겨진다.<증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래, 마티유 카소비츠는 줄곧 평단과 관객의 예상을 뒤엎는 행보를 보여왔다. 새로운 작가 탄생에 대한 기대에, 카소비츠는 자신의 우상은 스필버그이고 영화의 뿌리는 할
크림슨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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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영화의 아찔함은 단지 절벽의 높이에 달려 있는 것만은 아니다. 깎아지른 암벽에 매달린 사람들, 눈사태 속에 조난당한 사람들이 살아남으려는 본능의 이빨을 드러낼 때, 그러면서 서서히 ‘평지’에선 확고했던 사회적 인간성이 흔들림을 시작할 때, 그때부터 산악영화의 ‘한계상황’은 아찔해진다. ‘버티칼 리미트’는 더이상은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한계고도를 일컫는 말. 영화 <버티칼 리미트>는 그 생물학적 한계지점에 등장인물들을 던져놓고 그들의 휴머니즘을 시험한다. 그리고 그것을 옹호한다. 인육을 먹고 살아나는 <얼라이브>의 비행기 탑승객들과는 달리, <버티칼 리미트>의 베이스캠프 사람들은 조난당한 세명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여섯명의 구조대를 꾸리고, 이중 네명의 목숨을 희생해가며 한명의 조난자를 구해낸다.죽게되는 조난자 둘 중 한명을 죽이는 것은 ‘이기적’인 본능을 드러내는 유일한 인물인 본이다. 정해진 시간 정상에 올라 첫 취항하는 자신의 항공사 비행기에
버티칼 리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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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사랑합니다.” 사랑에 들뜬 이들의 고백은 대부분 거짓말이다. 인간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선사한 신은, 그 눈을 통해 좀더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간사한 마음까지 함께 선사했기 때문이다. <어글리 우먼>은 이런 마음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그러나 유전공학의 도움을 받아 추녀 시절 버림받았던 남자를 다시 만난다고 해서, 전신성형을 마친 여자가 ‘뚱녀’ 시절의 행태로 고생하는 만화 <미녀는 괴로워>식의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리진 않는다. 그보다 하드웨어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버리지 못한 여자가 미인대회 수상자들만 골라 “생일을 자축하는” 살인을 저지른다는 다소 끔찍한 전개가 기다릴 뿐이다.2000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어글리 우먼>은 36살의 스페인 감독 미겔 바르뎀이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가 태어난다면’이란 신선한 발상에서 시작한 영화다. 거울에 자신의 얼굴 대신 미녀의 사
어글리우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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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단골 게스트인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첫 번째 국내 개봉작. 지난해에 <바운스>를 들고 왔지만, 10대들의 원조교제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수입추천불가 판정을 받았다. <쥬바쿠>는 97년 금융스캔들을 소재로 <산케이신문>에 연재한 소설 <금융부식열도>를 각색한 작품.<쥬바쿠>는 금기의 영역에 카메라를 들이민다는 점에서 감독의 전작들과 연장선에 있다. 일본인 이민 노동자(<가미가제 택시>), 소외된 청소년들(<바운스)>에 이어 <쥬바쿠>는 ‘금융부식열도 재팬’을 해부한다. 금기의 소재를 택하되 파격적이고 선정적인 르포의 자세를 취하진 않는다. 금융제국의 흥망사에 관한 성실한 보고서에 가깝다. 단 <쥬바쿠>는 아웃사이더 대신 엘리트를 등장시킨다. 시스템에 대한 내부의 선전포고다. 부패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은 이전처럼 버려진 자식들의 침묵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사히 은
쥬바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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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낮에는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생동감으로 들뜬, 그러나 밤이 되면 모든 곳이 정적에 파묻히는 곳. 갑자기 쇳소리 섞인 웃음소리라도 들릴 것 같은 곳. ‘왠지 학교는 밤이 되면 무서워’, 당직을 돌던 선생의 말처럼 <하나코>는 학교라는 공간의 태생적 공포감을 자극한다. 귀신 하나코도 원혼이 아니라 그냥 ‘학교’에 깃든 악령이고.한국이나 일본이나 학교마다 귀신 이야기는 하나씩 있다. 20여년간 학생들 사이에 전해오던 하나코 이야기는 책으로 엮어져 베스트셀러가 됐고, 다음엔 영화로 만들어졌다. 학교 화장실에 하나코라는 귀신이 있고, 그녀를 보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자 아이들은 공포에 떤다. 왜 하필 화장실일까? 화장실은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1인의 공간이자 밀실이다. <하나코>에서는 현실과 영계의 경계선이자 통로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학생, 사춘기의 입구에 선 해맑은 소년소녀들은 작은 일에도 금세 깔깔거리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다. 그렇기에 다
하나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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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쿨리지가 부인과 함께 시골 농가를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암탉과 수탉이 교미하는 장면을 보던 쿨리지 부인은 남편이 들으라는 듯 “저 수탉은 하루에 몇번이나 하죠?”라고 농장주에게 물었다. 그는 “셀 수 없이 많이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이번엔 쿨리지가 물었다. “항상 똑같은 암탉은 아니겠죠?” 쿨리지 효과(Coolidge effect), 즉 심리적 피로에 의해 대상에 흥미를 잃었을 경우 성행위의 대상을 달리함으로써 새로운 성욕이 생성된다는 이 이론은 이미 사랑의 불씨가 사그라든 권태로운 부부들에게는 다소 솔깃할 이야기다. <클럽버터플라이>가 말하는 스와핑도 처음에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하는 듯 보인다. 혁의 대사처럼 “간통이 범죄”인 우리나라에서 “죄도 아니고. 딱히 집어넣을 법도 없는 스와핑”을 통해 무너져가는 관계와 가정을 다시 추스르자는 것이다. 그러나 초반에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들이밀며 부부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척하던 영화는 갈수록 섹스와 스와핑, 그
클럽 버터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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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밋빛 환희로 양볼을 물들인 사내아이가 공중으로 솟구친다. 천국에라도 닿을 듯이, 두번 세번, 높게 더 높게. 하지만 황홀한 비상의 순간이 끝나면 우리는 소년의 머리 위에 드리운 지저분한 천장과 발 밑에 깔린 낡은 침대 매트리스를 본다. ‘분홍신’의 포로가 된 광산촌 소년의 동화 <빌리 엘리어트>는 그렇게, 팍팍해서 목이 메는 현실에 대해서는 너그럽고 꿈과 환상에 대해서는 침착함을 잃지 않는 의젓한 영화다.주인공의 이름이 제목인 영화가 흔히 그렇듯 <빌리 엘리어트>를 짊어지는 것은 열한살 빌리의 채 여물지 않은 어깨다. 남루한 현실과 예술의 희열을 깨지지 않게 한 바구니에 담고자 한 스티븐 달드리 감독처럼, 빌리는 뮤즈의 속삭임과 가난에 지친 가족의 요구를 화해시키려고 애쓴다. 불우한 천재 예술가의 출세기라는 별 수 없이 진부한 드라마에 대한 구원 역시 빌리의 입체적 캐릭터에서 나온다. 엄마를 잃고 무력한 아버지, 무뚝뚝한 형,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부축하며 살
빌리 엘리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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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의 리듬은 삶의 리듬을 보여주죠.” 어둠 속에서 골프채를 휘두르는 주너에게 수호천사처럼 다가온 베가 번스는 그렇게 말한다. 골프채를 잡는 법(그립)에서 삶의 태도를, 골프경기에서 삶의 리듬을 볼 수 있다고. 자신과의 싸움, 승부와 반전이 뒤얽힌 스포츠가 인생의 축소판 같다는 것은 익히 들어온 비유. “골프는 경기를 할 순 있지만 이길 수는 없는 게임”이라는 <베가 번스의 전설>은, 그린에서 승부를 펼치는 골퍼의 모습에 인생사의 리듬을 겹쳐놓고자 한 낯익은 비유법의 영화다.빛바랜 흑백 신문기사 속의 주너가 색채와 함께 숨결을 얻어 살아나면서 플래시백한 이야기의 무대는 공황기의 사바나. 주너를 우상시하던 소년 하디의 후일담 내레이션으로 운을 뗀 드라마가 전모를 드러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피상적인 전투 장면, 망가진 주너의 모습을 짧게 훑고 지난 뒤부터는 고지식하게 골프 영웅의 재기담을 들려준다. 전쟁의 트라우마로 골프채와 함께 삶의 의지를 놓아버렸던 주너
베가 번스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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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영화는 죽었는가? <신투차세대>는 아니라고 답한다. <신투첩영> <퍼플 스톰> 등 최근의 홍콩영화들은 할리우드 첩보영화에 흔히 나오는 고도의 테크놀로지에 고유의 수공업적인 액션을 섞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신투차세대>도 그런 흐름의 연장선에 서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러나, 그저 존재한다는 것과 다르다. <신투차세대>는 홍콩영화의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직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했음을 방증한다.<신투차세대>는 단순하다. 초반부는 첨단 테크놀로지의 전시장이다.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들어가는 맥과 동료들의 테크놀로지는 <종횡사해>와 비교하면 대단한 발전이다. 모든 시청각 정보를 전달하는 반딧불 정탐갑충, 해킹으로 만들어내는 가짜 지문과 동공, 위급할 때 스케이트보드로 쓸 수 있는 배낭 등 기기묘묘한 소도구들이 연이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흥미진진한 소도구들은 단지 소도구일 뿐,
신투차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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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여성 학습시간. 최첨단 홀로그램으로 여성의 신체 모형이 뜬다. “성감대는 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 구두와 향수를 칭찬하고, 얘기를 들을 때 적당히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이, 여성을 유혹하는 키포인트. 지구를 정복하려면 먼저 종족을 번식시켜야 한다고 결론지은 외계인들은 열심히 ‘지구 여자 공략법’을 배운다. 물론 실전이 이론 같지는 않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는 이렇게 외계 남자가 좌충우돌 ‘왓 위민 원트’의 허와 실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린 SF코미디다.<너 어느 별에서 왔니?>는 기존 SF의 ‘폼’을 조롱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지구보다 1000년이나 앞선 문명을 자랑하는 행성의 지도자가 비행기 화장실로 출몰하고, 앤더슨에게 “에 나오면 곤란하다”고 이르며 보안 유지를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복제로 번식하느라 퇴화한 성기 대신 강력한 인공 성기를 장착한 앤더슨은 중요한 순간마다 ‘매미 소리’ 같은 기계음을 내는 물건 때문에 곤혹스러워한다. 재미있
너 어느 별에서 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