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한 포장을 두른 <하루>나 판타지의 힘을 빌린 <번지점프를 하다>와 달리 <선물>은 고전적인 멜로드라마다. 아내의 병을 알아차렸을 때 영화의 운명은 일찌감치 정해진다. 아무리 슬퍼도 남들 웃기는 일을 포기할 수 없는 개그맨, 그는 불치병에 걸린 아내에게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병원 응급실에서 초를 다투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무대에 서 있는 그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며 남편이 웃기는 모습을 보는 여자는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인가? 답이 예고된 질문들이지만 멜로드라마는 눈물을 감추지 않는다. 관객은 <하루> <번지점프를 하다>에 이어 다시 한번 불행한 연인들과 마주한다.
출신의 비밀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선물>은 스스로 내건 목표에 대해 솔직하다. 더불어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를 위해 남자는 그녀의 첫사랑을 찾아주려 한다. 아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바보 같은 이 남자는 알지 못한다. 웃음을 파는 데서 행복을 느끼는 남편을 위해 여자는 자신의 병을 숨긴다. 그녀는 방송사 PD의 집을 찾아가 남편의 출세를 부탁하는 청승맞은 짓을 마다않는다. 그리하여 <선물>의 두 남녀는 진심을 숨기며 상대에게 야박하게 군다. 심중에 있는 살가운 말 한마디를 끝내 못하는 그들은 촌스럽고 답답한 옛날식 사랑을 한다. 슬픔과 동거하는 광대의 사연을 동정하는 한편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법을 찬양하는 이 전형적인 신파극은 때로 절정을 위해 눈물을 아끼는 세련된 화술을 구사한다. 엉엉 울 만도 한데 폭발을 위해 참고 또 참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인물의 내면에 깊이 들어가려는 시도가 아니다. <선물>에서 ‘절제’는 ‘미학’이 아니라 ‘기술’이다. 아내의 옛 연인을 찾아준다는 극장판 에피소드는 <선물>이 보여주는 또다른 기술이다. 구질구질한 삶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대신 영화는 손쉬운 웃음과 가벼운 낭만에 기댄다. 못된 사기꾼들은 부부의 애절한 사연을 전하기 위해 기꺼이 사랑의 전령사가 되고 어설픈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슬픔을 이기는 웃음의 비애를 담을 수도 있었던 <선물>은 이즈음에 멈춰선다. 애써 마음을 숨기며 웃어도 보지만 한바탕 눈물을 쏟고나면 잊을 수 있는 사랑, <선물>은 딱 그만큼 슬픈 영화고 그만큼 애틋한 이야기이다. 돌이켜 생각해도 눈앞이 흐려지는 여운은 어디에도 없다. 영화 속 주인공들과 대조적으로 솔직하되 어른스럽지는 못한 셈이다.
드라마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지만 성숙한 태도가 드러나지 않는 건 무겁지 않은 대중영화를 만들겠다는 연출자의 의도다. 신인 오기환 감독은 데뷔작 <선물>을 만들면서 ‘삶의 아이러니를 담은 예술영화’에서 ‘웃음과 울음이 공존하는 대중영화’로 목표를 바꿨다고 말한다. 그러나 좋게 말해서 소박하고 나쁘게 말해서 값싼 이런 유의 영화에 진심어린 응원과 박수를 보내기란 쉽지 않다. 어딘가 비범한 구석이 있는 영화를 기대하는 이들에겐 <선물>의 영악함이 개탄스러울 것이다. 그래도 <선물>이 대중적인 호소력을 갖는다면 거기엔 이영애의 공이 크다.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이지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이영애는 <선물>에서 아내의 그늘진 표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악착같이 살아가는 평범한 주부의 행동을 보여주는 한편 생의 마지막 순간을 사랑하는 이를 위해 헌신하는 그녀를 보노라면 드라마가 허술해진 틈이 슬며시 메워진다.
먼저 개봉한 멜로드라마들이 관객과 평론가로부터 엇비슷한 평가를 받은 상황에서 <선물>은 올 겨울 멜로바람의 마지막 무대에 서 있는 모양이 됐다. 마음을 휘감는 멜로디도, 가슴을 치는 절창도 없는, 고정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가요무대가 저물어간다.
남동철 기자[email protected]
“관객이 공감한다면, 투박한들 어떠리”...오기환 감독 인터뷰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오기환(35) 감독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김상진 감독과 대학을 같이 다녔고 <아나키스트> 유영식 감독과 영화아카데미에서 함께 연출공부를 했다. 93년부터 2년간 광고회사 프로듀서를 했던 경력이 있으며 <패자부활전>과 <자귀모>의 조감독을 거쳤다.
=<선물>이 최근 멜로영화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획할 때 ‘베이직 멜로’라는 말을 썼는데 정통신파의 틀에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신파라는 게 구식이지만 우리 정서고 22세기가 되도 보편적 정서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삶의 아이러니를 담아보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아이러니라는 주제를 잡아서 풀어본 적도 있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예술영화가 되더라. 내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고 난 그런 감독도 아니기 때문에 주제를 웃음과 울음으로 바꿨다. 때문에 감독의 스타일이 살아나는 영화가 되지 않았지만 투박해도 보편적인 정서를 담는 쪽으로 갔다. 웃음과 울음을 두축으로 삼아 대중적인 노선을 택한 셈이다. 아이러니에 집착했다면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겠지만 내겐 관객이 중요하다. 관객이 공감할 수 있다면 좀 투박해도 상관없다고 판단했다.
=용기와 정연은 서로 병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기도 한데.
-아내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쉽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아내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한다면…. 서로 말하지 않는 상황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 생각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모니터해본 결과 그랬다. 광고회사를 다녀서 그런지 일반인의 판단을 존중하는 편이다. 그들이 납득할 수 있다면 영화적으로도 무리가 없는 것 아닐까 싶다.
=원하는 스타일의 영화를 만든 것인가.
-그렇다. 감독은 대체로 두 가지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작가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영화 감독인데 난 작가가 아니다. 상업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최대한 관객 입장에서 사고한다. 세상 살아가는 것도 답답한데 영화에서 그걸 풀어주는 게 필요하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앞으로 어떤 장르의 영화를 만들더라도 따뜻한 영화, 감동이 있는 영화를 하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