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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유통 그리고 금융이라는 세 가지 틀은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설명할 뿐 아니라 문화, 특히 영화산업에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도 파는 것에 관련된 마케팅 활동을 전혀 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극장은 만드는 사람인가, 단순하게 파는 사람인가? 영화를 본다는 점에서는 판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극장에서의 관람 행위라는 매우 독특한 서비스의 특징을 본다면 생산 행위로 볼 수도 있다. OTT와 비교하면 극장은 자본재와 기술이 더욱 많이 투입되는, 생산의 특징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단순하게 분류하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좋다. 고전적으로는 영화에서 작가, 감독 그리고 배우들이 생산 영역에 속한다. 음향, 미술, 조명 등 스탭들과 후반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생산이다. 그리고 영화가 만들어진 다음에 극장과 마케팅 등 다양한 활동들이 판매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감싸고 있는 또 다른 행
[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영화 크레딧, 힘과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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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소식이 연이어 들이닥친 한주였다. 먼저 9월12일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과 배우 이정재가 TV 드라마 부문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기쁜 소식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날아들었다. 앞서 열린 크리에이티브 아츠 에미상에서 여우게스트, 특수시각효과, 스턴트 퍼포먼스, 프로덕션 디자인상까지 수상해 총 6관왕을 차지한 <오징어 게임>은 비영어권 콘텐츠로서 최초의 역사를 써내려가며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더한 ‘로컬’ 파티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상식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이정재의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이다. 올해 초 미국배우조합상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때만 해도 이정재는 조금도 수상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본인의 이름이 불리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반면 에미상에선 한층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무대에 올라 영어와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석세션>에서 경영권
[이주현 편집장] 에미상을 축하하며, 고다르를 애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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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전에서 열린 작은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여름이 한창이라 햇살이 뜨거웠고, 전날에는 비까지 왔다고 하던데. 그늘도 없는 잔디밭에는 어제 내린 비에 물기가 촉촉했고, 쨍한 햇살 때문에 뭐랄까 찜통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리허설하는 내내 해가 길게 늘어져서 눈을 뜰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자 티셔츠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었다. 야외 공연도 꽤나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좀 쉽지 않겠군’ 했는데 막상 저녁이 되자 거짓말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날 밤은 참 좋았었다. 잔디밭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음식도 먹고 음악도 들으며 여름밤을 누리고 있었다. 분위기 때문인지 연주를 하면서도 즐거웠다. 한겨울에 온천욕을 하면서 코끝으로 전해져 오는 찬바람을 즐기는 것이 각별하다던데, 이날의 분위기는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머리 위로 가을의 바람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가을은 그때 이미 한발 다가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햇살이 따뜻해도 속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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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나는 외계인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곤 한다. 어릴 적부터 귀신의 존재는 죽어도 안 믿었지만(제사를 없애자!), 외계인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굳게 믿어왔다. UFO 한번만 볼 수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하늘에 작은 점 하나만 보여도 혹시 UFO가 아닐까 뚫어져라 노려보곤 했다.
그러다보니 외계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감상할 때면 몰입감이 남다르다. <컨저링>을 볼 땐 무덤덤한 표정으로 극장을 빠져나왔는데 <클로버필드 10번지>는 상영시간 내내 오들오들 떨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여보님이 “왁!” 하는 소리에 자지러져 놀림을 받기까지 했다. KBS 토요명화로 <에이리언>을 처음 봤을 땐 정말 숨 쉬기가 힘들 정도로 무서웠다. 외계인이 등장하는 <엑스파일> 에피소드는 부모님과 함께 시청하거나, 혹은 비디오로 녹화해서 낮에 봤다. 어휴, 살짝 과장을 섞긴 했지만 무서운 건 정말이다. 엄살이 아니다.
지난 연재에서 곽재식 작가님이 <V
[이경희의 오늘은 SF] 결국 우리는 닮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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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출장이었다. 집에서 역까지 한 시간을 가야 하고 역에서 다시 세 시간 동안 고속열차를 타야 하는, 왕복으로 여덟 시간이 드는 강연 일정이 잡혀 있었다. 이렇게 긴 이동 시간 동안 하염없이 한 가지 일만 할 수는 없고, 책을 한참 읽다가, 굳어가는 목을 느끼며 몸을 요상한 모양으로 비틀어 기지개를 폈다가, 태블릿 컴퓨터와 키보드를 꺼내 도각도각 일을 보다가, 시끄럽게 떠드는 옆자리 사람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고 말도 했다가, 집에서 챙겨온 커피도 쭉쭉 마셨다가, 최후에는 유튜브를 봤다. 유튜브 알고리즘님, 오늘 저에게 무엇을 점지해줄 것인가요.
이번에 선택된 건 머리를 쓰는 온갖 예능 프로그램의 짧은 클립들이었는데, 이건 아마도 <놀라운 토요일>을 즐겨 보는 나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물인 것 같다. 엄청난 추리로 가사를 잡아내는 출연진의 활약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 방탈출 같은 퍼즐을 푸는 영상들을 거쳐 남자 연예인들이 각종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쇼에 이르러 문득 깨달
[김겨울의 디스토피아로부터] 머리 쓰는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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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에 나온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V>는 외계인의 대규모 지구 방문을 다룬 이야기다. 나는 <V>에서 가장 긴장감 넘치고 아슬아슬한 장면이 초반의 외계인 등장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장면을 보여주기 위한 도입부터가 아주 멋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전세계 각 지역에 외계인의 우주선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부터 무엇을 할 것인지 다들 궁금해하는 가운데, 우주선은 그냥 가만히 멈춘 채로 기다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TV 앞에 모여들어 세계 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켜본다. 말하자면 뜸을 들인 것이다.
이 뜸들이는 대목의 연출은 대단히 근사했다. 일단 외계인 우주선의 모습부터가 훌륭하다. 우주선이라고 하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비행접시 형태의 모양이기에 구구한 설명 없이도 쉽게 외계인 우주선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면서도, 그냥 옛날 장난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만 예를
[곽재식의 오늘은 SF] 정치적인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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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합본 특대호를 만들 때면 휘몰아치는 과량의 업무에 기진맥진 넋이 나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험난한 마감의 고개를 넘으면 금세 마음이 보름달처럼 부풀어 오른다. 한주의 고생을 평소보다 통통해진 잡지의 무게로 고스란히 느낄 땐 연휴 기간 한껏 게을러지겠다고 결심 아닌 결심을 하기도 한다. 고정 지면 ‘리스트’의 특별판쯤 되는 ‘<씨네21> 기자들이 요즘 꽂혀 있는 것들의 목록’에도 썼듯 이번 추석 연휴에는 올해의 마지막 그랜드슬램인 US오픈 테니스대회나 실컷 챙겨 볼 생각이다. 라스트 댄스를 예고한 세리나 윌리엄스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지만, 기본적으로 테니스는 본선에 오른 모든 선수가 우승 가능한, 방심할 수 없는 멘탈 경기라는 점에서 흥미롭지 않은 대진이 없다. 물론 최근 20년간은 ‘어차피 우승은 페더러/나달/조코비치’로 귀결되는 역사였지만 페더러와 조코비치가 없는 올해 US오픈 왕좌는 누구의 차지가 될지 톱시드의 활약과 언더도그의 서프라이즈를 기대하며 뉴욕과의
[이주현 편집장]추석엔 OO할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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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것도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남긴 글을 보고 그들의 생각을 읽어내는 ‘마인드 마이닝’을 직업으로 가진 나는, 강연자로서 ‘말하고’ 작가로서 ‘쓰는’ 것보다 ‘읽는’ 직업을 더 먼저 갖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워낙 활자 중독인데다 직업상 관점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어야 하기에 자연스레 읽을거리가 서재와 노트북에 쌓이게 된다. 공부하다 발견한 좋은 책들을 하나둘씩 주변에 알리다보니 방송이나 유튜브에 출연하면 책 추천을 해달라는 부탁을 종종 받는다. 그렇게 알린 책 중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은 것들이 나오자 판이 커지게 되었다. 출간 전 추천사를 써달라고 출판사들이 보내오는 책들부터, 한번 읽어보라며 보내주는 책들까지 차곡차곡 쌓여 벽면을 가득 채운 책꽂이로 어림도 없게 되었다.
그간 밀린 책을 포함해 이번주에만 7권의 추천사를 출판사에 보냈다. 대부분 인간 삶의 이해를 데이터로 풀어낸 책들이었는데, 추천사를 써야 하니 반강제적으로 주제 중심
[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읽는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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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중에 티셔츠를 가장 좋아한다. “평소에 거의 기념 티셔츠만 입고 다닌다”라고 언급한 밴드 멤버들의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기념 티셔츠가 많다. 그것도 사실 최근에는 많이 절제해서 구입하지 않으려 한 결과지만. 예전에는 습관처럼 뭐 어디 재미있는 티셔츠 없나 하고 검색해보던 때도 있었다. 이렇게 입고 다니던 옷들은 어느 정도 입고 나면 명예의 전당으로 들어가서 더이상 손상이 되지 않게 보관하기도 하고(90년대 기업 로고를 얼굴 모양으로 재해석한 티셔츠, 헬카페 헌정 티셔츠 등), 일부는 자연스럽게 운동복이나 작업복으로 그리고 오랜만에 들른 부모님 댁의 상비용 잠옷으로 변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다시 구하기 힘들 것 같은 티셔츠(그리고 마음에 들어서 예쁘게 잘 입었던 티셔츠)는 따로 보관하는 편이지만 왠지 자주 입는 티셔츠가 사실은 내가 가장 오래 입는 옷이라는 사실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내 삶의 본질은 순간에 있기보다는 일상에 있는 게 아닐까, 그러면 목이 늘어지더라도 좋아하
[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티셔츠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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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얼굴 뵙고 인사드리네요.” “저희 구면이에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사드렸었는데… 괜찮습니다. 많이들 절 못 알아보더라고요.” A평론가에게 실례를 했다. 그는 이번주 <놉>의 크리틱에서 “인간의 눈은 기계의 눈보다 신뢰성이 낮다”고 썼는데, 나의 눈도 그리고 기억도 멋대로의 생략에 신뢰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A평론가 옆에 앉은 B평론가와는 연락만 주고받았지 정말로 초면이었다. 타 지역에서 일하다 올해 서울로 근무지를 옮긴 B평론가는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영화관과 OTT를 누비고 있었다. <헤어질 결심>을 5~6번쯤 보았고 각본집까지 반복해 읽었다는 그는 정작 <헤어질 결심>으로는 비평을 쓰지 않았다. B평론가의 노트북에는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미완의 글들이 상당수 저장되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올해 군대를 가게 되면 평론 활동을 잠정 은퇴해야 할 것 같다는 C평론가, 요즘 글이 잘 안 써진다는 D평론가, 20자평 쓰는 게 참
[이주현 편집장] 영화가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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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현재 재학생 수를 보면 저출생, 고령화 추세를 실감할 수 있다는 글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다. 나도 내가 졸업한 중학교를 검색해보았다. 나의 모교는 경상남도 소도시 외곽에 있던 여자중학교로, 90년대 후반 당시 한반에 50여명을 꽉 채워 학년당 13학급이었다. 어림잡아 역산해보면 당시 전교생이 2천명 정도였다. 검색 결과 나오는 지금 전교생은 110명이었다. 학년당 2학급, 30명 내외. 2학년은 30명도 되지 않았다. 2천명이 110명이 되다니! 정말, 인구 감소를 실감하게 하는 숫자였다.
지난해 한국의 전체 합계출생률은 0.81, 서울 지역 출생률은 0.64였다. 저출생, 고령화와 그에 따른 사회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정책이 시도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출생률은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사망률 감소 효과보다 출생률 저하의 효과가 더 커서, 처음으로 인구의 자연감소 현상도 발생했
[정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차별과 배제의 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