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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인 더스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위스키 탱고 폭스트롯>의 킴(티나 페이)은 뉴스룸에서 의례적인 멘트를 쓰는 한직에 있다가 싱글이라는 이유로 아프가니스탄에 특파된 종군기자다. 위험지역을 취재하기 위해 청색 부르카로 전신을 감싼 그녀는 거울을 향해 내뱉는다. “아이구, 예뻐라. 투표권 같은 건 안 줘도 좋겠네.” 보다 풍자적인 연출은, 파랗게 ‘포장’된 킴이 밖으로 나오자 몸이 보이지 않는데도, 나이 불문하고 그녀에게 욕망의 시선을 던지는 남자들의 반응. 흥청대는 보사노바 음악을 배경으로 찍힌 이 장면은, 아무런 개성도 표현도 드러내지 않고 ‘여성’이라는 표식만 드러낸 여자에게 각자의 환상을 투사하며 편안히 탐하는 문화를 짓궂게 드러낸다. 물론, 그러는 동안 부르카 안의 킴은 가운뎃손가락을 쳐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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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국제영화제 상영관 앞에 늘어선 기자들의 긴 줄은, 미처 못 본 비경쟁부문 영화에 대한 정보 수집의 장이기도 하다. 올해 ‘주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이번 생은 글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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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과 지킬 것이 많은 기혼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들의 시작은 특별한 만남이나 사건 대신 쭉 반복해온 일상으로 그 야심을 보여줄 때가 많다. KBS <공항 가는 길>은 어린 딸의 유학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박진석(신성록)과 그를 기장님이라 부르는 승무원 최수아(김하늘)의 전화 통화로 시작한다. 짧은 대화 속에는 이들이 일터에서 만났고 어긋나는 스케줄로 생활을 공유하는 시간이 적은 부부라는 설정이 압축되어 있다. 지난 시간과 관계를 보여주는 첫 5분이 예민하고 밀도가 높으면 기대도 높아진다. 곧 무너질 것들이라 그렇고, 오래된 벽에 이리저리 뻗어 있는 실금의 무늬가 낯익어서 더 그렇다.
규모와 형태가 달라도 짐작 가능한 삶이 공감의 한축이라면 굉장한 판타지도 있다. 건축 일을 하는 서도우(이상윤)는 수아에게 휴식이 되는 남자다. 수아가 사무실에 찾아온 날, 도우는 수아의 두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눈에 지극한 신뢰를 담아 말한다. “언제든 답답하면 와요. 지금 와이
[유선주의 TVIEW] <공항 가는 길> 현실 받아들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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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자백> 내가 이럴려고 만화를 올리나 자괴감이 든다
[정훈이 만화] <자백> 내가 이럴려고 만화를 올리나 자괴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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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휴가를 나온 선배는 뭔가 숨기는 눈치였다. 뭐지, 선임한테 구타라도 당하는 건가. 아, 지금은 20세기, 군대 가면 당연하게 맞고 살던 암흑의 시대지. 온종일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하던 선배가 소주를 한 사발쯤 마시고야 털어놓은 전말은 이랬다.
소대원 전원의 휴가가 걸린 대회가 열렸다. (자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시절 군대에서는 포상휴가를 내건 각종 대회가 열렸다고 한다. 논에서 썰매 타고 휴가 나온 선배도 있었다.) 이번 대회는 한국사 퀴즈 대회, 선배는 명문대 국사학과를 3년이나 다닌 데다 휴학한 지 몇달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신병, 승부는 정해졌다. 소대원들은 기뻐 날뛰었다. 이 병사로 말할 것 같으면 한국사 퀴즈 대회의 국가대표급이 아니던가! 엄마, 나 휴가 나가요! 그리고 선배는… 꼴찌를 했다. 엄청나게 두들겨 맞고도 모자라 왕따를 당하는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침묵했다. 선배는 억울해했다. “우리는 지엽적인 사실에 주목하고 지식을 암기하기보다는 역사
[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국가대표의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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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기간 중 내게 신념을 불어넣어준 모든 여성, 특히 젊은 여성들이여. 여러분을 위한 투사가 되는 것보다 더 자랑스러운 일은 없었다는 걸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깨지 못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누군가는 해낼 겁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운 미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연설을 보고 있을 모든 어린 여성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귀하고 영향력이 있다는 걸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꿈을 좇고 이룰 세상에서 모든 기회와 가능성을 오롯이 누려야 한다는 것 또한 의심하지 마십시오.”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바다 건너 트럼프까지 이어지는 이 세계사적 혼돈의 순간에 힐러리 클린턴의 대선 패배 인정 연설은 그야말로 감동적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믿기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괜히 떠오르는 영화들만 많았다. 돌이켜보면,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마셰티>(2010)에서 극우보수파 상원의원 맥라플린(로버트 드니로)
[에디토리얼_주성철 편집장] 빈 라덴, 이디 아민, 맥라플린, 트럼프 4지선다의 아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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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무실의 칸막이 공간 안에 두 남자가 탁자에 앉아 얼굴을 마주 보고 있다. 나이가 많은 남자가 젊은 남자에게 묻는다. “재즈… 좀 알아?” 젊은 남자가 눈빛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알죠, 맹렬히!” 나이 많은 쪽은 만화 담당 편집기자고 젊은 남자는 만화가다. 두 사람은 잡지에 새로 연재할 만화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 만났다. 젊은 만화가는 재즈에 대한 만화를 연재하기 원하는 모양이다. 다시 묻는 담당 편집기자. “종이에서는 소리가 안 난다는 거 알아?” 땀을 삐질 흘리는 만화가. “네. 책을 두드리면 소리가 나긴 하지만.” 만화가의 대답을 듣고는 땀을 삐질 흘리는 담당 편집기자. 다시 묻는 담당 편집기자. “재즈에 승패라든가 그런 게 있나?” “어… 없죠” 침묵. 두 사람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젖히며 큰 소리로 웃어젖힌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독자를 겨냥한 소학관의 만화잡지 <주간 영 코믹> 회의실 풍경이다. 어찌되었든 담당 편집기자와 만화가는 재즈
[오승욱의 뒷골목 만화방] 신이치 이시즈카의 <블루 자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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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게임 불감증을 고쳐준 건 스웨덴 게임개발자 마르쿠스 페르손의 <마인크래프트>였다. 이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 게임으로 날밤을 새운다는 경험을 몇년 만에 한 기억이 있다. 직업으로 삼은 뒤 시들해져 가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새삼 상기시킨 건 픽사 애니메이션 <업>과 <월·Ⓔ>였다. 실사영화가 아니라 애니메이션에서 영화의 즐거움을 다시 느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분명 재미있고 매끈한 영화다. 하지만 슈퍼히어로영화에 대한 내 피로감을 씻어주기엔 조금 역부족이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세 번째 페이즈의 문을 열기에 손색이 없는 완성도였음에도 극장을 나선 순간 무감각하게 휘발되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닥터 스트레인지>의 아쉬움을 달래려 오랜만에 <마인크래프트>를 꺼내 플레이해본다.
상상한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과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중에 무엇이 더 놀라울까. &
[송경원의 덕통사고] <마인크래프트>가 <닥터 스트레인지>에 하고픈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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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용돌이처럼 격렬하게 기타와 드럼 연주가 몰아친다. 여기에 두두두두두두거리는 베이스가 합세하고, 스네어가 터지면서 곡은 절정을 향해 듣는 이들을 마치 타임 리프처럼 단숨에 이동시킨다. 이후 변박을 통해 곡은 후렴구로 전환되고, 공간감 있는 사운드 연출과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연주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과연 이 밴드의 전성기가 바로 이 곡과 함께 열렸던 것이로구나, 다시금 실감케 하는 곡이 아닐까 싶다. 뮤즈의 <Stockholm Syndrome>은 2003년 공개된 그들의 3집 《Absolution》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순간을 완성하는 노래다. 굳이 13년 전의 이 곡을 지금 추억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 혹은 동조하는 비합리적인 현상을 뜻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은 1973년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서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이 인질범이 자신들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심지어 고마움을 느꼈고, 법정에서 불
[마감인간의 music] 스톡홀름 증후군의 나라 - 뮤즈, <Stockholm Syndr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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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밝혀지는 날들이다. 사과문이 올라오는 날들이다.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끝나지 않은, 끝나서는 안 될 날들이다. #문단_내_성폭력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오는 글들은 양적인 면에서는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힘을 잃지 않고 있다. 지난 열흘 동안 올라오는 거의 모든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그동안 누적된 나의 모든 무지와 묵과가 역시 죄가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완전히 몰랐던 것은 아니었다. 모른다고 믿었다. 불쾌한 상황을 피하기만 하면 된다고 믿었다. 나만 처신을 잘하면 된다고 믿었다. 편리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죄를 가려주는 믿음이었으므로. 그러나 “모를 수 있다는 것도 권력”이라는 말 앞에서 나는 그간의 허술한 믿음 체계가 마침내 완전히 허물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삼 내가 처한 위치와 조건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나는 소설가이며, 문예창작학과 강사이고, 1인출판사 운영자이고, 가해 지목인의 친구이고, 피해자의 친구이며, 무엇보다 여성이고, 이러한 처지와 입
[한유주의 디스토피아] “모를 수 있다는 것도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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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충무로를 기웃거리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내가 아는 감독이라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유일했고 가장 재밌게 본 영화를 꼽으라면 <황비홍>이나 <원초적 본능> 같은 영화가 고작이었을 것이다(물론 그 영화들은 지금도 여전히 훌륭하지만!).
<바톤 핑크>는 그즈음 비디오 가게에서 우연히 발견한 영화였다.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다보니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별하는 기준도 없었다. 그저 내가 재밌게 본 영화가 좋은 영화였다. <바톤 핑크>를 선택한 이유는 분명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쓴 인물이 등장하는, 즉 마피아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멋진 마피아가 아니라 작가가 등장했다. 그는 총 대신 타자기를 사용했다. 그것도 지질하고 코믹한 이미지에 가까운 배우 존 터투로라니!
보통 사람들에 대한 희곡을 써서 유명해진 핑크는 할리우드로
[내 인생의 영화] 천명관의 <바톤 핑크> 빌어먹을, 무지하게 덥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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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생각해봤을 주제다. 많은 프로그램에서 이미 녹여낸 포맷이다. 흔히 ‘예능 늦둥이’라고 불리는 방송인들. 스포츠 스타든 아나운서든 가수든, 그녀 혹은 그가 우연한 기회에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진가를 인정받는 일은 흔했다. 하지만 이 일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능 인재 발굴 프로젝트’라니. 프로그램의 제목은 무려 <예능인력소: 하실 분 쓰실 분>이다.
tvN에서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는 예능 빈익빈 부익부 시대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제 입으로 말하는 김구라다. 늦깎이 예능 스타로 스포츠 스타 서장훈과 ‘프로 불참러’ 조세호, ‘자숙 예능인’ 이수근, ‘들이대’ 김흥국이 보조를 맞춘다. 예능 스타가 되고 싶은 인력(‘빛날이’라고 부른다)을 선배 예능 스타(‘바라지’라고 부른다)가 짝을 맞춰 데리고 나온다. 첫 관문은 김흥국의 ‘멘탈 트레이닝-들이대 방’.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질문이 쏟아지는 5분간의 면접 시간을 통해 빛날이들이 메
[김호상의 TVIEW] <예능인력소: 하실 분 쓰실 분> 예능 스타를 생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