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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사람은 부지런하다고, 신은경이 스튜디오를 찾은 건 아침 9시였다. 맨얼굴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 뒤 그녀는 확연히 ‘헤어스타일리스트’의 손길이 보이는 펑키스타일의 머리에 음영이 강한 화장을 하고서 카메라 앞에 섰다. 그리고는 버튼을 눌러 모니터를 켜듯 블라우스 단추 서너개를 간단하게 풀어버렸다. V자로 드러난, 탄탄한 그녀의 살갗에 어색함 따윈 없었다. 사실 누가 ‘형님’에게 응큼한 생각을 품겠는가. 그렇다 해도 어떻게 티를 내겠는가. 조직의 넘버2 보스인 여자조폭 역을 맡아 <조폭마누라>에 출연한 신은경은, 극중 인물 은진의 ‘권위’를 이양받은 듯 그렇게 시종일관 당당하고 씩씩했다.
“시나리오는 지도예요. 배우가 영화를 찍는다는 건 지도를 가지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거죠. 열심히 하는 거요? 누구나 마찬가지예요. 중요한 건 누가 얼마나 정확한 지도를 손에 넣느냐 하는 거죠. <조폭마누라>는, 제게 100점 만점의 정확한 지도였어요.” 촬영을 막 끝낸 배우
나는 날마다 새로워진다, <조폭마누라>의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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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은 데뷔작 <메멘토>로 로버트 로드리게즈 이래 뜸했던 꿈의 코스를 밟은 인물이 됐다. 저예산 데뷔작 한편으로 영화계를 깜짝 놀라게 한 뒤 곧바로 메이저로 발탁된 것이다. 워너브러더스가 제작하는 범죄스릴러 <불면증>이 그의 차기작. 알 파치노, 힐러리 스왱크, 로빈 윌리엄스 등 쟁쟁한 스타들이 주연을 맡은 5천만달러짜리 영화로 현재 촬영중이며 내년 봄에 개봉한다.1970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놀란은 7살 때 아버지의 슈퍼 8mm 카메라를 만지면서 영화의 감촉을 익힌 전형적인 영화광 출신. 19살 때 슈퍼 8mm로 찍은 단편 <타란텔라>는 영국 <PBS>에서 방영될 정도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놀란은 영국의 칼리지 런던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뒤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영화 만들기의 꿈을 키웠다. 1999년 60분짜리 중편 <미행>을 홍콩영화제에 출품했고, 영화제 현장에서 장편 데뷔작 <메멘토>의 제작비를 모았다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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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쨌든 혼선이 있었고, 그 때문에 정치적 배려니 외압이니 하는 추측이 나돌았다.= 혼선은 인정한다. 시행착오는 의외로 많았다. 하지만 단순히 시행착오로 봐주면 좋겠다. 정치적으로 보려는 시각은 이해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단체사업지원을 두고도 비슷한 추측이 있었다. 생산적이지 않은 특정 단체에 대한 지원에 비해 어렵게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는 독립영화계나 시네마테크쪽엔 지원이 줄거나 없었다는 얘기가 많았다. 한국독립영화협회의 비판적인 성명서도 나왔고.= 역시 심사위원들의 판단을 존중한 거다. 심사위원 선정에서 정치적 배려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배려는 아직 필요하다고 본다.+ 영화정책의 길은 비타협적인 개혁 노선을 추구하든가, 아니면 보수파에 일정한 지분을 인정하든가 두 가지다. 이 교수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다.= 난 이데올로그는 아니다. 어느 한쪽을 제거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가끔 미끄러지고 시행착오를 하더라도, 현실에 존재하는 힘을 인정해야
“아직 우리는 무슨무슨 파가 될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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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관 교수는 한국영화계를 움직이는 실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제작사나 투자배급사 책임자가 아닌데도 문성근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과 그는 빠짐없이 파워리스트의 상위권에 오른다. 영화정책과 행정에 관한 한 이 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워맨은 직책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거나, 앞장서 뛰다가 이런저런 감투를 뒤집어쓰는 두 가지 경우일 텐데, 이용관 교수는(문 이사장도 그렇지만) 후자에 가깝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사람 좋아하고 일 좋아한다. 그리고 술도 좋아한다. 그래서 건강이 좋지 않으며, 종종 질시어린 세간의 험담을 듣게 되고 시행착오로 인한 비난을 뒤집어쓰면서 마음도 다친다. 이용관 교수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그는 요즘 직책이 애매해졌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부위원장이었지만, 법원이 그 직책을 걷어갔다. 1년 전 부위원장으로 있다가 불신임당한 조희문 교수가 낸 불신임 무효소송에서 법원이 조 교수의
“아직 우리는 무슨무슨 파가 될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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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족의 후예답게 새하얀 피부, 부서질 듯 섬약한 눈동자, 내 의지대로 세상을 헤쳐나가겠다는 오만한 턱선을 가진 영국의 장미. <전망좋은 방>(1986)에서 헬레나 본햄 카터는 치렁치렁한 머리와 드레스 자락을 펄럭이며 섬세한 오만함과 사랑스러운 건방짐을 동시에 갖춘 귀족 아가씨의 아이콘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혹성탈출>은 코르셋을 잠재우려는 꽤나 극단적인, 최후의 시도였다. 그러나 난 약간 사도마조히즘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코르셋의 구속에선 벗어났지만, 여전히 머리와 얼굴을 압박당하고 있으니까.” 이 뼈있는 농담 속엔 그녀의 이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1985년, 영화 데뷔작 <레이디 제인>을 본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은 <전망좋은 방>에서 오만하지만 사랑스러운 귀족 아가씨 루시 역에 그녀를 기용했다. <전망좋은 방>이 아카데미 8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등 성공을 거둔 뒤, 그녀는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던 케임브리지대학을
코르셋과 드레스는 더이상 입지 않겠어요, 헬레나 본햄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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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의 계절’은 참으로 길었다. 꼬리를 무는 인터뷰, 해외영화제 순례, 일본 개봉에 따라붙은 홍보에 이르기까지 송강호(34)는 1년을 꼬박 ‘공동경비구역’에서 살았다. 그 사이 송강호의 책상에는 서른편 남짓한- 멜로드라마도 두편 포함된(!)- 시나리오가 쌓였다. 그리고 <복수는 나의 것>이 그를 차지했다. <복수는 나의 것>은 나긋한 회유의 손길이 아니라 막무가내의 손아귀로 송강호를 잡아 끌었다. <…JSA> 밤샘 촬영을 끝낸 지난해 봄 어느 새벽 박찬욱 감독이 들려주는 스토리에 그냥 “어어, 그렇군” 했던 송강호는, 시나리오를 손에 잡던 순간 치밀어오른 생경함과 두려움의 포로가 됐다. 작품 선택의 동기를 묻는 좁은 질문에 송강호는 넓게 답했다. “내가 아는 어떤 한국영화와도 딴판이었다. 누가 더 세련되고 예쁘게 영화를 만드나, 누가 더 세련되고 예쁘게 연기하는가를 지상 과제로 다들 앞을 다툰다. 그러나 중요한 건 영화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 밑에
그 안에 우는 사막의 바람,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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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보다 무서운 건 사람”+ <올가미> 시절부터 품어온 기획이라고 들었다.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 그동안 한 가지 틀에 얽매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톱> <올가미>의 삼각관계라는 구도와 이야기가 고루하게 느껴졌다. 과거의 이야기틀과 심리요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담백하고 깔끔한 얘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세이 예스>는 스릴러가 아니라 공포영화다.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모르는 사람이 이유없이 괴롭힐 때 당하는 사람은 영문을 모르고 또 피할 길이 없으니까 공포스럽다. <죠스>에서 ‘죠스’가 보여주는 식의 무차별적이고 맹목적인 폭력을 사람이 휘두른다. 그게 현대적인 공포다. 그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 표현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길 위의 공포에 관한, 오픈된 드라마다. 심플한 얘기를 넒은 공간에서 조여가기 위해선 스피드가 필요했고, 그래서 자동차 추격신을 넣었다. 차는
김성홍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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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리수의 연기 연출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영화를 하고 난 뒤 깨달은 건데, 트랜스젠더는 보통 여성들보다 몸짓이 더 여성적이다. 흐느적거린다고 느껴질 정도로. 첫 촬영하는데, 하리수 걸음걸이를 보고 식은땀이 났다. 그걸 얼마간 자연스럽게 만들고 나니까, 이번엔 발성이 문제였다. 역시 지나치게 여성적이었다. 성우를 쓸까도 생각했는데, 다행히 영화를 찍는 동안 하리수가 인터뷰를 많이 하면서 말투가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그것만 빼면 이 친구는 성격도 좋고 촬영을 즐기는 편이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 어떤 평에선 하리수 연기가 어색하다고 했는데, 너무 의식하고 보지만 않는다면, 그녀의 연기도 괜찮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편 얘기로 가보자. <노랑머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원작이 통신에 올려진 손정섭씨의 시나리오인데,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그게 나온 지 3년쯤 지난 뒤에 보게 됐는데, 읽고 전율했다. 구성은 그저 그런데 유나
“에로가 아니라 솔직함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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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뜻밖에 <노랑머리2>는 흥행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하리수의 에로틱 연기라는 든든한 간판과 50만의 관객을 모은 전편의 후광에도 불구하고 개봉 열흘 동안 서울관객 3만명에 못 미쳤다. 그러나 역시 뜻밖에 이 영화는 언론과 평단의 고른 호의을 얻고 있다. 찬사 일변도는 아니라도 성적 소수자의 비애를 거칠고 싱싱한 연기와 영리한 구성으로 뚝심있게 그려냈다는 게 중평.1964년생인 김유민 감독은 1986년 당시 영진공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됐고 2년 뒤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채널 69> <까> <맥주가 애인보다 좋은 일곱가지 이유> 등의 각본이 그의 작품이고, 이종원 주연의 <푸른 옷소매>(1991), 진희경 주연의 <커피 카피 코피>(1994) 등은 연출도 겸했다. 필모그래피만으로 보면 영화 이력 10여년 동안 작가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영광의 순간을 맞진
“에로가 아니라 솔직함에 관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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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월버그가 팀 버튼의 <혹성탈출>을 찍으며 일으킨 단 한번의 반란.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행성에서 노예로 살아가는 다른 인간들처럼 원시인 행색을 하기로 돼 있던 그가 원시인 복장을 끝내 거부했다. 오리지널판의 찰턴 헤스턴과 달리, 리메이크판의 마크 월버그가 온몸을 빈틈없이 동여맨 우주비행사 복장으로 뛰어다니게 된 것은 순전히 그 고집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힙합밴드 시절 무대 위에서 바지를 내린 해프닝이며, 캘빈 클라인 속옷 모델로 활동하던 경력이며, 출세작 <부기 나이트>의 물건 큰 포르노 배우의 이미지가 아직도 생생한데, 그런 그가 새삼 노출에 민감해진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로서는 무엇보다 그 모든 꼬리표들이 지긋지긋했을 터. “나부터도 상대역인 에스텔라 워런의 아슬아슬한 원시인 복장 때문에 가슴을 훔쳐보는 일이 잦았다. 이건 안 된다, 그녀에게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배우의 몸을 보고 싶어한
나는 나, 당신의 시선을 거부한다, <혹성탈출>의 마크 월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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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야 박중훈이 언제는 좋은 남자였던가. 마누라를 죽이려 드는가 하면 주인없는 돈뭉치를 들고 튀질 않나, 용의자를 인정사정 없이 두들겨패질 않나. 스크린 속의 박중훈들을 일제히 집합시키면 우리는 아마 못되거나 혹은 비열한 사내들의 제법 다채로운 컬렉션을 손에 넣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 악역 전문인가?”라며 싱글거리는 박중훈에게도 김성홍 감독의 스릴러 <세이 예스>에서 그가 연기한 M은 심한 축. 때묻은 회색 운동화에 그보다 더 칙칙한 회색 눈동자를 번들거리는 정체불명의 남자 M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주친 한쌍의 젊은 부부가 단지 “너무 행복해 보인다”라는 이유만으로 따라붙어 최후의 관절 한 마디까지 바스러뜨려 버리는 불순물 제로의 순수한 악 덩어리다. 작품은 대중적 붙임성을 발휘하는 장르영화일지언정 M은 그래서 박중훈에게 모험이었다. 그건 동시에 박중훈이라는 배우가 할 수 있는 연기, 할 수 없는 연기를 자꾸 금긋는 사람들 앞에서 그가 다시 감행하는 반발이기도 하
M, 순수악의 표상, <세이 예스>의 박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