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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은 웃는 얼굴과 웃지 않는 얼굴이 너무 다른 사람이다. 웃음기를 거둔 채 스튜디오로 들어서는 그는 예상보다 훨씬 큰 키에 마른 몸, 피곤한 낯빛 때문인지 쉽게 근접하기 어려운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얼굴을 익히고 몇마디 이야기가 오가다보면, 어느새 옆사람을 ‘북’ 대용으로 두들기면서 ‘어우 야∼’ 하며 웃는, 아주 익숙한 얼굴의 그가 앉아 있다. 간단한 헤어커트만으로도 열일곱 고등학생이 어색하지 않은 천진함과 삶의 격랑을 한두번쯤 넘어야 했던 스물일곱 여배우의 고단함이 공존하는 김희선의 얼굴은 시점에 따라 꽃병도 되었다가 마주보는 사람의 형상도 되는 그림처럼 극과 극의 표정을 품고 있었다. “줄곧 내가 오버하는 모습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게 김희선다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죠. 나 역시 그런 게 재미있었어요. 싫었다면 못했겠죠. 그렇지만 사람이 어디 한 부분만 있겠어요? 사실 지금도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그저 내 속에 있는 다른 부분이 보여지는 것뿐
빛과 그림자를 모두 가진 얼굴로, <와니와 준하>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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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진모는 늘 크고 검은 배낭을 짊어지고 다닌다. 마치 금방 산이라도 갈 사람처럼 둘러멘 그의 배낭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는 배낭의 용량 이상으로 담고 싶고 채우고 싶은 게 많은 배우다. <댄스댄스> <해피엔드> <무사> <와니와 준하> 그리고 출연을 결정한 <발해>까지, 99년 데뷔 이후 꾸준히 필모그래피의 한줄 한줄을 채워나간 주진모는 결코, 본인이 출연했던 영화에 대한 애정과 욕심을 겸손함이라는 미덕으로 숨기지 않는다. <와니와 준하>는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좋은 느낌 그대로 영화가 나온 것 같다”고, 혹독한 모래바람을 견뎌가며 찍은 <무사>의 냉담했던 반응에 대해서는 “관객이 야속하기도 했고 실망도 많이 했지만 내 몫의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는 없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무사>는 저한테 너무 소중한 작품이에요. 준하의 편한 표정도 <무사>를 거치지
“어서 늙어야겠어요,생생한 연기 하려면” <와니와 준하>의 주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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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모 오빠는 <무사> 개봉 뒤에 부쩍 <와니와 준하> 촬영 열심히 하는 것 같더라.” 주진모의 얼굴엔 당황한 빛이 역력한데 스튜디오에는 일제히 폭소가 터진다. 김희선의 솔직하면서도 거침없는 말에 꼼짝없이 당한 주진모는 그러나 별로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다.그렇게 한참 귀여운 눈흘김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이번엔 사진기자가 필름을 교환하는 시간을 틈타 서로 옆구리에 살이 있네, 없네 하며 티격태격한다. 잘 들리지도 않게 몇마디가 더 오가더니 김희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주진모가 ‘우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76년생, 75년생. 한살 터울의 이들 사이에는 으레 커플로 출연했던 배우들이 보여주게 마련인 ‘닭살스런 챙겨줌’은 오가지 않았다. 그저 영화 속 ‘와니와 준하’처럼 무덤덤하게 재미있는 사람들. 살가운 대화없이도 ‘쿨’하게 정겨운 그 남자와 그 여자.
“우리 별로 안 친해요!” 합창하듯 말하다가 서로를 보고 ‘푸하하하’ 꺾어질 듯 웃음을 참지 못하는 이들. 단독
그 남자 그 여자의 사랑법, <와니와 준하> 김희선, 주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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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한 사내가 있다. 폭력과 강간미수의 전력이 있는 전과자다. 이번엔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뒤 2년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사회로 나왔다. 어느날 사고 피해자의 집에 찾아간 사내는 보기에도 흉한 중증 뇌성마비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피해자의 딸이며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지푸라기 인형처럼 살아가고 있다. 기적처럼 아주 서서히 둘의 로맨스가 싹트지만, 이런 기적을 좋아하지 않는 주변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이창동 감독의 신작 <오아시스>는 대강 이런 이야기다. 이창동 감독은 일찌감치 “다음 작품은 멜로를 하겠다”고 말해왔다. <박하사탕>의 무거움을 벗고 휴식 같은 소품을 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이렇게 누구도 손대고 싶어하지 않을 추한 인간들의 로맨스를 시나리오로 만들었다. 이창동 감독은 결국 쉽게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한다. 주연은 <박하사탕>에서 사람들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첫사랑의 연
“가슴 터지는 멜로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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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이런 눈빛이 있었던가. 에든버러 뒷골목길을 한없이 질주하던 <트레인스포팅>의 냉소적이고 쿨한 마크 랜튼이, 돈가방을 위해 친구를 살해하는 <쉘로우 그레이브>의 여피 알렉스가, 마스카라 흘러내린 검은눈과 타이트한 가죽바지의 ‘치명적 유혹’으로 글렘록 스타를 사랑의 절망 속에 좌초시킨 <벨벳 골드마인>의 커트 와일드가, “무엇이 온다 해도, 나 죽는 날까지 당신만을 사랑하겠소”() 같은 닭살스런 연가(戀歌)를 능청스럽게 부르게 될 거라고, 질투와 갈망에 휩싸여 연인의 가슴에 화대를 던지며 그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난 맹목적 사랑의 노예가 될 거라고 어디 한번 상상하기나 했던가.
언제나 비주류 아웃사이더였던 이완 맥그리거는 갈망의 대상이었지 주체가 아니었다. 사랑을 조롱했지 사랑에 허우적대지 않았으며 격정의 순간에서도 가장 냉담해질수 있는, 오히려 그가 ‘창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물랑루즈>가 전하는 그의 매력은 다르
쿨가이, 사랑의 노예가 되다, <물랑루즈>의 이완 맥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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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하면, 스포츠 신문 1면을 장식하는 그녀. 사연은 이렇다. ‘이미연 과로 입원’ 혹은 ‘이미연 열애-결혼설’. 아마도 연예인 동정을 빠짐없이 실어나르는 일간지들이 이미연을 주시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연은 “기자들이 날 너무 좋아해서 그런다”고 건들건들 대답하다 말고, ‘하하하’ 호탕하게 웃어보인다. “<흑수선> 연기 일품이다, 뭐 이런 거 써주면 얼마나 좋아요.” 그리고 다시 함박꽃처럼 터지는 웃음. 진상이야 어떻든, 이런 추론은 가능하다. 그동안 영화도, 친교 활동도 어지간히 열심히 해온 모양이라고.
이미연을 만날 때마다 깨닫게 된다. 모름지기 스타란 우리가 먼 발치에서 가슴 떨려가며 훔쳐보는 존재이거늘, 이미연은 멋쩍은 눈길을 보내며 서성대는 이들에게 먼저 손짓을 보내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아주 드물게 ‘친화적인’ 배우라는 사실. ‘스타’는 하늘에 떠 있는 존재만이 아니라, 우리 곁에 발딛고 서서 기꺼이 ‘대변자’의 역할을 자
“나는 떳떳해요!” <흑수선>의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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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목표는 배급사 3강 진입과 매출 1위 달성이다.” 올해 초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자신감을 보였던 김승범 튜브엔터테인먼트 대표는 불과 1년이 지나지 않아 자신의 계획을 철회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최근 CJ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대신 튜브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 제작 및 제작관리하던 작품들의 배급권을 넘기기로 결정한 그의 표정은, 그런 사정 때문인지 그리 밝지 않아 보였다. 물론 더이상 자금을 구하기 위해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스치긴 했지만, ‘메이저배급사 진입’이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심경이 복잡한 듯했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충무로 생활 7년째를 맞는 그의 경험과 다양한 노하우가 살아 있는 한, 김승범 대표가 차지할 지분이 여전히 작지 않다고 판단한다. 를 비롯,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튜브> <내츄럴시티> 같은 초특급 대작들을 매만지는 일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일신창투
“배급시장은 내 게임이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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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팰트로 맞아? 처음 얼마간은 당신의 눈을 의심할지도 모른다. 아무렇게나 빗어올린 부스스한 갈색머리(금발이 아니다), 유행에 한참 뒤처진 촌스런 아줌마 패션을 한 여자가, 이제까지 알아온 기네스 팰트로일 리 없다고. 게다가 남편을 잃고 남겨진 두 아이와 어렵사리 살아가는, 씩씩한 싱글 마더를 연기한다니. 관객에게 각인된 기네스 팰트로의 이미지는 적어도 그런 건 아니었다. 화려한 고전의상, 일류 디자이너의 최신 스타일, 자애롭고 사랑스러운 미소, 똑 부러지는 영국식 악센트, 사랑에 웃고 우는 멜로의 여신. 사람들이 사랑하고 기대하는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익숙하고 안전한 방법이 어떤 건지, 기네스 팰트로가 몰랐을 리 없다. <바운스>는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위험한 ‘도박’ 같은 영화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아무것도 잃지 않았다. 이미지의 결박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그토록 원하는 걸 결국 얻었으니까.
“나는 언제나 아름다움이나 고귀함 같은 것들로 포장됐던
이미지의 결박을 풀고, 자유롭게, <바운스>의 기네스 팰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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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 앉아도 되죠?” 야구공이 그려진 푸른형광색 점퍼, 넉넉한 쪽빛 청바지 아래 흰 운동화 끈을 풀려던 박신양은 잠시, 행동을 멈추고 물어본다. ‘당연히…’라는 동의가 오가고 그는 이제야 살겠다는 듯 의자 위로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영화를 잘못 본 걸까? 두부 자르듯 정확하게 ‘스님편’과 ‘건달편’이 구분된 <달마야 놀자>에서 그는 분명, 스님이 아니었다. 트레이드 마크였던 지적인 남자의 모습은 ‘시주’하려 해도 찾아볼 수 없는 깡패, 건들건들한 눈빛에 주먹이 앞서는 조직폭력배 보스 재규. 그러나 이 순간 “노력하고 원했던 것만큼 이룬 것 같다”고 말하는 박신양의 눈은 부처의 그것만큼이나 평온하다. “영화보셨어요? 보고 뭘 느끼셨습니까?” “아뇨, 분석하지 마시구요. 가슴으로 느낀 걸 말해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조금 당황스런 경험이지만, 박신양은 질문을 기다리지 않는다. 잠시 그가 삭발을 했었나, 양복을 입었었나를 혼동했던 것만큼
진리는 쉽죠, 표현이 어렵죠, <달마야 놀자>의 박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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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수 감독의 신작 <라이방>을 제작한 신화필름의 사무실은 방배동 카페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한때 번창했으나 한물간 느낌이 역력한 그 동네에서 조금 구석진 곳에 ‘귀족’이라는 고풍스런 이름의 카페가 있는 빌딩 3층, 궁색해보이는 사무실 문은 열려 있고 장현수 감독이 반가운 얼굴로 맞는다. 영화사가 분명한데 변변한 포스터 한장 걸려 있지 않은 사무실 풍경은 <라이방>에 나오는 택시회사 사무실을 연상시킨다. 옆에 서 있는데 누군지 몰랐다가 감독의 소개로 인사를 나눈 <라이방>의 주연배우, 조준형씨와 최학락씨의 외모도 영화배우에게 있음직한 화려함과 거리가 멀다. 두 사람은 <라이방>의 택시기사 준형과 학락, 그대로의 모습으로 쑥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인다. 고급 인테리어를 갖춘 요즘 영화사 풍경과 너무 다른 묘한 장면이 영화 <라이방>이 전해준 푸근함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장현수 감독의 이번 영화는 올해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
“정말 맘대로 찍어보고 싶었다” <라이방> 감독 장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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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좋아. 섹스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 아래 누워 있는 여자의 표정이 왜 저런 거야? 저녁시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볼 때나, 생일선물의 개봉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표정. 누가 옆구리를 찌르면 당장이라도 ‘푸하하핫’ 웃음을 터트릴 것 같은 여자. 세상의 가장 어둡고 은밀한 곳에 놔둔다고 해도 그만의 밝은 빛을 숨기지 못하고 발할, 몽마르트르의 웨이트리스 아가씨 아멜리에의 덜컥거리는 큰 신발은 그러나, 처음부터 오드리 토투의 발에 신겨졌던 건 아니다.
<아멜리에>의 첫 시사가 열리던 날. 장 피에르 주네는 2시간 뒤 자신의 생이 어떻게 바뀔는지 모르는 채, 초초하게 떨고 있는 신인배우 오드리 토투에게 이렇게 말한다. “토투, 영화가 끝나면 다른 여배우들로부터, 네가 그리 못하진 않았지만 나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 하는 둥의 불쾌한 말을 듣게 될지 몰라. 그래도 신경쓰지 마라.” 애초에 <브레이킹 더 웨이브>의 주인공이었던 에밀리 왓슨이 ‘아멜리에’ 역을 맡기로 되
매일이 생일 같은 행복한 갈색 눈동자, <아멜리에> 오드리 토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