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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터지는 멜로였으면 좋겠다”
2001-11-14

세 번째 영화 <오아시스> 촬영 앞둔 이창동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한 사내가 있다. 폭력과 강간미수의 전력이 있는 전과자다. 이번엔 무면허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낸 뒤 2년6개월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사회로 나왔다. 어느날 사고 피해자의 집에 찾아간 사내는 보기에도 흉한 중증 뇌성마비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피해자의 딸이며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지푸라기 인형처럼 살아가고 있다. 기적처럼 아주 서서히 둘의 로맨스가 싹트지만, 이런 기적을 좋아하지 않는 주변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창동 감독의 신작 <오아시스>는 대강 이런 이야기다. 이창동 감독은 일찌감치 “다음 작품은 멜로를 하겠다”고 말해왔다. <박하사탕>의 무거움을 벗고 휴식 같은 소품을 하려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이렇게 누구도 손대고 싶어하지 않을 추한 인간들의 로맨스를 시나리오로 만들었다. 이창동 감독은 결국 쉽게 가지 않거나 가지 못한다. 주연은 <박하사탕>에서 사람들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첫사랑의 연인 설경구와 문소리가 다시 맡았고, 11월12일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아름답지 않은 걸 아름답지 않게 찍지만, 관객은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자기가 낸 심각하게 어려운 숙제를 짊어진 채, 촬영 준비에 바쁜 이창동 감독을 만났다.

<박하사탕> 만든 지 2년이 지나 멜로로 돌아왔다.

관객에겐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박하사탕>이 효과가 있었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 새 출발하는 스무살의 느낌이 들었다. 그건 다시 사랑하고 싶다, 그럴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 같은 것이었다. 이 나이에 연애하겠다는 말은 아니고, 세상이나 주변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되찾았다는 거다.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멜로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실제 생활에선 못하더라도 (웃음), 영화로라도 멜로를 하면 살아 있다는 느낌, 사랑의 느낌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었다.

어떤 멜로인가.

설정은 대강 알 테고, 한마디로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인간의 로맨스다. 사랑을 하면 두 사람이 서로의 판타지를 실현시켜주려 할 텐데, 이렇게 한심한 인간들도 그럴 수 있을까, 뭐 그런 얘기를 풀어보자는 거다. 이건 내 의문이기도 하다. 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다는 생각을 벗어나기가 힘든데, 이 영화는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보려는 이야기도 된다.

판타지도 직접 나온다는데,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 궁금하다.

판타지는 내게 곤혹스런 문제다. 영화는 판타지다. 현실은 현실이고. 그런데 사랑은 판타지를 동반한다. 난 보통의 영화들이 지닌 판타지를 모조품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싫다. 하지만 누구나 판타지를 안고 살며, 어떤 사람에겐 그것만이 유일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판타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 고민 역시 이 영화에 담을 생각이다.

<박하사탕>의 감독이 멜로를 만든다는 건 뜻밖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주변에서 멜로를 해보라고 권한 사람도 있었지만, 좀더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어떤 후배 시인이 해준 말이었다. 그 친구가 <박하사탕>을 보고 난 뒤에 내가 사랑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 <초록물고기>에서도 멜로적인 걸 피해가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도 했다. 나는 몰라서 피해간 게 아니며 의도된 연출이라고 말하긴 했지만, 좀 찔리는 게 있었다. 난 소설 쓸 때 연애를 잘 쓰지 못하면 소설가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설이란 사적 욕망의 세계인데 그걸 잘 못한다면 소설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거다. 그렇지만 사실 난 공적 욕망에 사로잡혀서 한번도 연애를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사적 욕망의 세계를 이제라도 제대로 그려보고 싶은 거다.

방향은 일찌감치 잡혔는데, 준비하는 시간이 꽤 길었다.

힘들더라. 좋은 작품 만드는 데 공력을 들이느라 그런 건 아니다. 멜로라는 것 자체가 대단히 명료하지만 또 매우 주관적인 것이라서. 사회적인 것, 객관적인 것을 붙이면 이질적인 것이 되더라. 공부 참 많이 했다. 또 하나 어려운 점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얘기라서 내가 그 속에 들어가는 게 힘들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된 것 같다.

싫어하는 사람들의 얘기라는 표현은 좀 뜻밖이다.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건 우리에게 가장 결여된 자질이다. 이건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발전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사회화는 이루지 못한 것이다. <오아시스>의 두 인물은 사회회가 안 된 인물, 우리가 배척하는 인물이다. 나 역시 우리 사회에 속해 있고 우리 사회의 나쁜 점을 공유하고 있다. 이런 인물을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관객뿐만 아니라 내게도 해보고 싶다. 그렇다고 나와 전혀 별개의 인물이 내 영화에 나오게 되지는 않을 거다. 극중 인물이 가진 유치함, 추함은 내게 속한 것일 테니까.

사적 욕망의 세계를 다룬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공적 가치가 바탕에 깔린 작품이 될 것 같다. 인물들의 설정부터가 그럴 느낌이 든다.

공적 가치의 기준으로 읽혀지는 건 정말 경계하고 싶다. 예컨대, 장애인문제나 전과자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성 영화로 받아들여지는 건 피하고 싶다. 근본적인 건 러브스토리이며, 사적 욕망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슴이 터지는 멜로였으면 좋겠다.

여하튼 예쁜 멜로는 아닌 것 같다.

영화 만들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예상을 하게 하면 안 되는데. (웃음) 솔직히 말하면 나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아름답지 않은 걸 아름답지 않게 찍을 생각인 건 맞다. 그러나 난 거기서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하고 싶다. 만일 그게 실패한다면 이 영화는 꽝이다. 안 해본 짓이라 확신할 순 없지만, 그럴 수 있을 거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 라고 물어보면 나도 할말이 없지만. 그런 막연한 믿음이 있다.

설경구씨는 사람들이 불편해할 영화라고 하던데.

아, 지금 그렇게 말하고 다니면 곤란하지. (웃음) 나는 사람들에게 처음부터 편한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다. 흔적을 남기는 영화, 그걸 통해 삶을 체험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불편하게 할 생각은 없다. 내가 전하고 싶은 아름다움이나 공감을 기대하는 감동은 추하고 쓰라린 것과 함께 가는 것이다. <오아시스>도 그런 영화가 되기를 기대한다. 아참, <오아시스> 초고를 읽어본 배우 오지혜는 <박하사탕>은 독이었는데, 이건 소화제네요, 하더라. 속으로 기분이 아주 좋았다.

그래도 배우들한테는 고통스럽겠다. <박하사탕> 못지않게 배우들을 괴롭히는 영화일 것 같다.

설경구가 내가 자기한테 엄청난 체중 감량을 요구했다고 소문내고 다니는 모양인데, (웃음) 나는 딱 한마디 했다. 웃통을 벗는 장면이 있는데, 상체가 아주 보기 싫을 만큼 앙상해야 한다고. 그 말이 그 말인가? (웃음) 설경구가 <공공의 적> 찍기 위해서 몸을 불렸다가 지금 10kg 정도 뺐는데 10kg 더 빼겠다고 그래서, 너 그러면 죽는다, 5kg만 빼라고 그랬다. 뇌성마비 장애인을 연기해야 되는 문소리가 더 힘들 거다. 정상인이 뇌성마비를 연기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이번에 알게 됐다. 지난주에 연습하다 목을 다쳐서 치료를 받았다.

제목이 특이하다.

주변사람들이 반대를 많이 했다. 너무 낡았다, 너무 진부하다, 너무 유치하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싫어할 건데요”라고 그래길래 나는 “바로 그 이유로 그 제목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우리 언어에서 ‘오아시스’는 너무 진부해져서, 본래 이미지를 거의 상실한 단어가 됐다. 난 그 점이 좋다.

<박하사탕>이 사람들에게 남긴 무거운 의미 때문에 부담을 느끼진 않았나.

아, 그런 건 전혀 없다. 소설 쓸 때부터 확실한 것 하나는 있었다. 세상도, 나도 X도 아니라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많지 않은 것 중의 하나가 영화고,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뿐이다. 나도 영화도 많은 걸 할 거라곤 믿지 않는다.

영상원 교수가 된 것도 그런 것과 관련있나.

먹고살려고 그런 거다. 박광수 감독이 내게 교수 공모에 응해보라고 권유하면서, 그래야 하는 다섯 가지 이유를 말해줬다. 그중의 하나가 너 나이가 몇이냐, 언제까지 네가 충무로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냐, 많이 남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교단에 서본 경험도 있고 젊은 친구들하고 얘기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실은 내가 뭘 가르칠 게 있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잘 지낸다. 젊은 친구들 눈빛 보고 사는 게 재미있다.

관객과의 소통을 여전히 확신하나.

<박하사탕>을 만들고 나서 관객에게 고마웠고 관객을 신뢰하게 됐다. 내가 소설 쓰다가 영화로 온 건 좀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원해서였다. 난 소통에 무관심하기는커녕, 그걸 추구한다고까지 말하고 싶다. 나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고, 그게 많은 사람들과 소통이 되도록 애쓰는 편이다. <오아시스>에서도 그럴 거다. 가능하면, 무지 감동적일 거라고 소개해주면 좋겠다. (웃음)

글 허문영 [email protected] 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