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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 하던가. 배우 김이경이 자신의 배역인 희진을 “~한 친구”로 거듭 지칭할 때마다 인물을 대하는 배우의 태도가 명확하게 전해져왔다. 그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던 대답과 인물에 대한 적극적인 해석도 분명 촬영장 안팎에서 자신과 함께했던 그 친구의 모습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강단 넘치지만 사건의 당사자인 기정(이하은)만큼이나 외로웠을 고등학생. 유정(박예영) 자매에게는 온전히 기댈 수 없는 타인이자 동시에 누구보다 애틋한 동료였을 수수께끼의 인물. 이제 용기를 내보려는 희진의 손을 꼭 잡은 채, 김이경은 오랫동안 동경해온 스크린 속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 <언니 유정>으로 처음 장편영화의 주연을 맡았다.
처음 배우를 꿈꿨을 때부터 이 큰 스크린에 내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다. 제대로 나를 알릴 수 있는 영화가 드디어 나왔다는 생각에 감사한 마음이다. 지난봄 <언니 유정>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인터뷰] 힘과 용기, <언니 유정> 김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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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삼키는 수많은 마음과 힘겹게 내뱉는 짧은 말. 기정(이하은)에게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은 마음과 마음 사이의 투명한 다리를 신중히 두들겨보는 시간이다. 영아 유기 사건의 용의자로 자수한 후 심적으로 고립된 기정에게 그 과정은 슬픈 거짓말로 귀결되곤 했다. 하지만 배우 이하은이 기하는 신중함에는 불안 대신 미소가 서려 있었다. 답변에 앞서 말을 고르는 눈빛은 가장 깊은 진심을 전달하기 위해 필요한 뜸이었다. 춘추복을 입고 도로를 내달리던 어느 새벽을 기억하는 표정과 촬영 순서를 기다리며 박예영 배우와 나누던 소담. 이하은이 전하는 온기는 기정이 그토록 건네고 싶었던 마음이 결국 주변인을 향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 지난 5월 <언니 유정>으로 전주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예전부터 대학 동기들과 전주국제영화제를 자주 놀러 가곤 했다. 첫 장편영화 주연작으로 전주를 찾을 수 있어 정말 감사했다. <언니 유정>의 완성본을 처음 관람한 것도
[인터뷰] 소중함을 다루는 방법, <언니 유정> 이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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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막 연기 활동을 시작했던 박예영 배우가 <씨네21>과 만났을 때 그는 “한편의 극을 온전히 이끌어나가는 여성 캐릭터”를 맡고 싶다는 포부를 던진 적 있다. 이 포부가 몇년 뒤 커다란 궤적을 그리며 <언니 유정>에 도달했다. <언니 유정>에서 박예영 배우는 동생 기정(이하은)의 영아 유기 사건을 좇으며 동생과의 관계, 자신의 존재론을 꿋꿋이 찾아나가는 간호사 유정 역을 맡아 한편의 극을 온전히 이끌었다. 사건의 진실을 모르는 유정의 눈동자와 시선은 대개 흔들린다. 그러나 그 안엔 분명히, 어떤 생각의 변화가 또렷하게 담겨 있다. 이 복잡다단한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레 체화해낸 박예영 배우는 <언니 유정>의 굳건하고 섬세한 방향타가 되어 극의 서사를 유려하게 운행했고, 윤색 크레딧에 이름을 올릴 만큼 작품에 깊숙하게 관여하기도 했다.
- 정해일 감독과는 단편 <인사3팀의 캡슐커피> <더더더>에 이어서 세 번
[인터뷰] 마음이 하는 일, <언니 유정> 박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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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생각이 안 났어.” 영아 유기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고등학생 기정(이하은)은 왜 자신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냐는 언니 유정(박예영)에게 초연히 대답한다. 이들의 사이는 언제부터 멀어졌을까. 유정과 기정은 어릴 적부터 부모를 여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왔지만, 이 상황은 서로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보단 부담감으로 번지고 말았다. 기정의 영아 유기 사건으로 인해 자매의 멀고 먼 거리감이 표면에 드러난 것이다. 유정은 기정의 사건을 제대로 파헤치려 하고, 이때 기정의 친구 희진(김이경)이 유정 앞에 나타난다. 기정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한 희진은 모호한 태도로 일관하며 유정의 주위를 맴돈다. 이 세 인물 사이에 흐르는 짙은 밀도의 관계성이 <언니 유정>을 이끈다. 그리고 박예영, 이하은, 김이경 배우의 진정 어린 감정 연기가 <언니 유정>을 완성했다. 가장의 무게를 오롯이 짊어진 유정의 황폐함이 박예영 배우의 눈빛에, 삶의 혼란을 홀로 내려놓은 듯한 미묘
[커버] 관계의 문법, <언니 유정>, 박예영, 이하은, 김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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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대만이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을 법제화한 데 이어 올해 네팔과 태국에서도 혼인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적 근거와 절차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홍콩과 한국은 이 물결에 합류할 수 있을까. 11월7일 막을 올린 제14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 <모두 다 잘될 거야>는 그 빛나는 가능성에 마음을 모은 이들의 영화다. 30년을 함께한 팻(이임림)을 먼저 떠나보낸 안지(구가문)는 동성 배우자라는 이유로 장례와 상속 과정에서 소외된다. 부부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한 채 이별한 레즈비언 커플은 평생 일궈온 재산뿐만 아니라 연인을 오롯이 애도할 권리마저 위협당한다. 영국에서 활동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레이 영 감독은 자신의 미래가 될 동성애자의 노년을 상상하고 그려보다 감지했다. 홍콩의 새벽을 비추는 동성혼 법제화라는 여명을. 그 상서로운 징조를.
- 동성 커플인 두 주인공의 계급성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경비원이 상주하는 고급 맨션, 온 가족이 모여도 넉넉한 식사 공간,
[인터뷰] ‘좁은 도시 속 넓은 사랑’,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 <모두 다 잘될 거야> 레이 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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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의 오빠를 유혹해 그의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앙숙의 가족이 사는 집에 들어간다. 일일연속극의 로그라인 같은 이 문장은 휴먼 코미디 영화 <자기만의 방> 속 경빈의 궤적이다. 김리예는 “다른 배우가 경빈을 연기하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열심히 오디션에 임했고, 오세호 감독은 경빈 역의 물망에 오른 몇 배우 중 “한 시퀀스를 디렉션에 맞춰 대여섯개의 감정으로 변주해내”는 김리예의 간절함을 읽어 영화 경험이 없는 신인배우를 작품에 전격 발탁했다. “경빈처럼 안 해도 될 말은 하지 않는 편이지만 팩트를 짚어줘야 하는 상황에선 필요한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리예는 알게 모르게 캐릭터에 스스로를 많이 투사했다. “나와 경빈이 닮았다는 생각하며 연기하진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경빈의 대사 톤이 내 현실 말투와 똑같더라. 함께 영화를 본 동생마저 ‘언니 평소 말하듯 연기했네’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첫 영화의 첫 배역이 내 안으로 성큼 다가왔다.”
16살에 모델로 데
[WHO ARE YOU] 김리예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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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망>은 로맨스영화일까, 도시의 전경을 좇는 영화일까. 혹은 기억 한편을 끄집어낸 자전적 영화일까. 모두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어느 날 길거리에서 이명하 배우를 우연히 만난 김태양 감독은 영화 속 남자와 여자처럼 한참 길을 거닐며 안부를 나누었다. 작별하기 아쉬운 목소리로 “영화 같이 찍어야지~” 라며 헤어진 뒤, 이 순간을 단편영화 <달팽이>로 완성했다. 헤어진 연인과의 우연한 재회, 현재 연인이 주는 안정감, 새로운 인연의 고백 등 다양한 연인의 모습을 통해 로맨스적 서사를 품고 있지만 그것만이 <미망>의 전부라 하긴 부족하다. 실제 영화 안팎으로 흐른 4년의 시간은 서사의 깊이를 밀도 있게 더해주고 인간관계의 변화,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의 변화 등 시간이 다르게 만드는 것을 고백한다. 사랑과 도시, 기억과 산책. 네 가지 키워드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사이 우리는 시나브로 김태양 감독과 가까워졌다.
- 길에서 이명하 배우를 우연히 만난
[인터뷰] 어쩐지 길을 잃은 것만 같은 날에는, <미망> 김태양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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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으로 이뤄진 <미망>은 두 남녀를 중심으로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관계성을 비춘다. 우연히 길을 잃은 종로에서 옛 연인을 만난 1막 ‘달팽이’ , 폐관을 앞둔 서울극장에 모더레이터로 간 여자가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2막 ‘서울극장’, 누군가의 장례식장에서 오랜 친구들을 재회하는 3막 ‘소우’까지 <미망>은 현대사회에 귀해진 인연과 만남을 근간으로 이야기를 펼쳐간다. 작품 속에 정확한 이름은 없지만 주변 가까운 얼굴을 떠올리게 하는 다섯명의 등장인물은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배우를 만나 각자의 색깔로 아름답게 채색되었다. <미망>의 도시가 어쩐지 서글프고 애처롭고 그러나 다정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모두 배우들의 힘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길 위에서 긴 이야기를 나눈다. 대낮부터 평일 밤, 새벽녘까지 온종일 걸어온 이들은 어떤 속마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4년의 제작 기간에 걸친 비하인드 스토리를 진솔하게 고백해보기
[인터뷰] 길 위에서 나눴던 우리의 대화를 기억하나요?, 배우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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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남자는 우연히 이전 연인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눈다. 별것 없어 보이면서도 많은 의미를 지닌 대화가 공기 중으로 흩어질 즈음 그는 현재 연인에게 발걸음을 돌린다. 단편영화 <달팽이>에 2막 ‘서울극장’, 3막 ‘소우’를 붙여 장편영화 <미망>을 완성한 김태양 감독은 이름 없는 다섯 인물 사이에 보편적인 기억과 감정을 그대로 저장시켰다. 4년. <미망>이 완성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코로나19로 길어진 제작 기간은 김태양 감독의 낙관적인 시선을 만나 하나의 영화적 재료로 거듭났다. 물리적 시간이 흐른 만큼 영화는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내외적 변화를 유려하게 포착할 수 있었다. 1막의 들뜬 남자와 여자가 3막의 예기치 못한 공간에서 차분하게 재회하고, 2막에서 여자는 직선처럼 곧은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갈지자로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는 자유로운 구성은 옴니버스의 재미를 구가하다가도 3부작으로 완전성을 갖춘 트릴로지의 미적 감
[커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미망> 김태양 감독과 배우 이명하, 하성국, 박봉준, 백승진, 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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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소식을 듣자마자 만화방으로 달려가 앉은자리에서 <정년이> 단행본을 전부 읽었다.” 매란국극단 연구생 홍주란이 <자명고> 오디션에 합격한 뒤 자신만의 구슬아기를 찾아 헤맸듯 우다비는 주란의 새로운 면면을 살피려 했다. 원작과 다른 궤적으로 그려진 주란을 체화하려면 “일관된 정서”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웹툰의 주란이 “미묘한 분위기 아래 조용히 빛을 숨긴 원석”이었다면 우다비의 주란은 “선하고 선명한 사람이지만 차갑고도 치열한 내면의 싸움”을 지니고 있다. 냉담한 영서(신예은)와 즉흥적인 정년(김태리)도 주란 앞에선 편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화합을 원하고 스스로 융화되려는 주란은 구슬아기를 연기할 때도 고미걸을 받쳐줄 방법부터 고민한다.” 그 때문에 정년에게 함께 연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8화의 고백은 우다비에게 가장 어려운 장면이었다. “너무 아픈 말들이다. 정년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면서도 주란의 일관된 정서를 위반하지 않아야 했다.”
촛대
[who are you] 우다비 <정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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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이고 적요한 세계 안에 역사의 여파가 밀려온다. 내전으로 깊은 내적 상흔을 입은 어른들은 대체로 과묵하고 간혹 말을 하더라도 자신의 슬픔에 대해선 입을 다문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깊은 골을 알지 못한다. 다만 어느새 감지한다. 그들이 속한 세상의 메마른 공기와 잔혹함을 접한다. 그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외로움을 느끼고 심하게 앓는다. 그리고 때로는 유령 같은 존재를 만난다. 빅토르 에리세에게 유령 같은 존재는 곁에 실존하는 존재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같은 비중으로 혹은 더한 비중으로 인물들의 육신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에리세의 인물들에게 과거란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시간이며, 회한이 아니라 격정의 시간으로 다가온다. 격정은 감정의 파고가 극렬하게 드러나는 표정과 과격한 몸짓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외려 미니멀한 구도, 차분한 톤과 무드, 인물이 느릿한 행동을 취해 변화시키는 사물의 상태, 절제된 화면 속에서 일어나는 빛의 변화. 무엇보다 오래된 아픔, 시간이 흘러도
영화와 역사의 불가분한 관계, 빅토르 에리세 감독론과 전작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