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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고 싶었어?” 이별을 선언하고 떠나버린 여자가 어느날 불쑥 찾아와 어제 본 것처럼 태연히 남자에게 묻는다. 자존심을 세워 도리질을 칠 수도 있었으련만, 남자는 복받친 울음을 떠트리듯 고개를 끄덕인다. 몇번이고 끄덕인다.
너무 아픈 이별 뒤 다시 만난 연인이 이럴까? 정선으로 묵호로 강릉으로 태백으로 이어지는 6개월의 여정을 함께한 사람들이, 그것도 사랑한 연인을 연기했다는 게 믿기지 않게, 5분 간격으로 도착한 이영애와 유지태는 그저 서먹하게 눈인사만 건네고 있었다. ‘보고 싶었냐?’는 흔한 물음도 ‘보고 싶었다’는 흔한 대답도 오가지 않았다. 살가운 악수도 가벼운 포옹도 없었다.
스튜디오가 보리밭이라면, 눈오는 산사라면, 바람부는 소리, 풍경소리 하나까지도 크게들릴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두사람은 순서대로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해나갔다. 갑자기 <봄날은 간다>의 촬영현장에 다녀온 한 기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 컷 찍고나면 NG인지 OK인지 싸인도 없어, 그
우리가 정말, 사랑이란 걸 했을까, <봄날은 간다> 유지태, 이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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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감독 김형구 인터뷰<비트>에서 <무사>까지 ‘정(靜)과 동(動)의 극을 경공하는 카메라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촬영감독 김형구. “몇 학년이지?” “1학년이요” 전화기 너머, 교수로 재직중인 영상원의 개강분위기가 배경으로 깔리는 가운데 <봄날은 간다>의 촬영감독 김형구와의 짧은 질문과 답이 오고갔다.허진호 감독의 전작이자 고 유영길 감독이 촬영한 가 신경 쓰였겠다.처음에는 아무래도 비교하는 사람들도 많아 맘이 많이 쓰였다. 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었고 나중에는 나 나름대로 해보자고 하니 오히려 맘이 편했다. <봄날…>도 처럼 거의 고정된 컷으로 찍었다. 이동차 한번 타본 기억이 없다. 움직인 거라면 대나무숲에서 크레인 한번 탄 정도? 초반에는 허 감독과 지난 작품과는 다르게 많이 움직이고 컷도 많이 나누자면서 클로즈업도 많이 찍었는데 막상 편집을 하다보니 컷이 붙지를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런 숏들이 이 영화에 맞지 않는다는 거다.
“근래 가장 행복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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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성 부산국제영화제 PPP 수석운영위원의 첫인상은 ‘영화인’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계의 엘리트쪽에 가깝다. 백두대간에서 이광모 대표의 파트너로 7년 동안 예술영화를 선별, 구매해왔으며 1998년 PPP가 시작된 이후 줄곧 책임을 지고 있는 이 충무로 경력 9년차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예술보다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영화에 접근해온 그의 영화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합리적 사고와 꼼꼼함이 밴 듯한 태도도 그의 인상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다. 이처럼 댄디한 분위기와 달리 그는 일에 관한 한 엄청난 욕심을 갖고 있다. 제네시스 픽처스라는 자신의 영화제작사를 운영하면서도 그는 PPP를 이끌고 있으며, 디지털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의 공동 프로듀서로 활동중이고, 영상원에서 강의를 하며, 프루트 챈 감독의 <공중 화장실>에선 프로듀서로 참여할 예정이다. 그저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재미를 좇아서 움직였을 뿐이라는 그를 역삼동 제네시스 사무실에서 만났다.PP
“신인의 발판과 거장의 의자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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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시사회. 부부지만 앙숙이 돼버린 남녀 주연배우들. 남자배우는 산에서 도닦고 있고 여자배우는 스페인 남자에게 홀려 예전에 찍은 영화쯤은 안중에도 없다. 겨우 시사회장에다 ‘모셔’ 놨지만, 영화홍보자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근데 이 상황을 쏠쏠히 재미있는 퀴즈쯤으로 생각하는 이가 있다. 바로 빌리 크리스털이 연기한 영화 속 영화 <아메리칸 스윗하트>의 홍보담당자 리. 악재를 호재로 바꾸는 놀라운 솜씨로 배우와 언론을 요리하는 그에게서 빌리 크리스털 자신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지난해까지 아카데미 시상식 사회를 여섯번이나 보며 쟁쟁한 배우들의 마음자락을 쥐락펴락하는 데 이력이 났을 법한 그는, 스탠드업 코미디로 내공을 쌓은 뒤 TV로, 그리고 영화로 성공적으로 입지를 넓혀온 흥미로운 배우다. “내 우스갯짓이 먹힐까 안 먹힐까 하는 생각에 1948년부터 발뻗고 자본 적이 없다”며 엄살 아닌 엄살을 부리는 그에겐 삶이 곧 재미난 거리를 찾는
“유명배우? 아직도 발뻗고 못 자!” 빌리 크리스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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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긴 손가락, 함초롬한 눈매. 어디 길가에서 마주친다면 “어머, 쟤 예쁘다” 하고 돌아볼 것만 같은, 깨끗한 여자아이. 그 아이의 목소리는 의외로 크고 걸걸했다. “안녕하세요!” 시원시원한 인사를 ‘외치며’ 스튜디오에 들어서는 옥지영은 이후로도 눈에 띄는 행실을 계속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휴대폰으로 전화가 오면 낼름 받아서는 무슨 얘긴가 하다가 대뜸 “너, 죽어!” 그러질 않나,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우당탕탕 뒤엎는 소리가 나질 않나…. 다소 엉뚱할 만큼 상큼발랄한 그와의 만남은 초가을의 어느 일요일, 여러 개의 샌드위치를 먹어치우며 계속됐다.
고양이라면 옥지영은 지붕 위로 마당으로 마구 뛰어다니는 고양이. 그녀에게 요즘 제일 신나는 일은 단연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었던 거다. 원래 연기자를 꿈꾸던 그녀는 단편 <열일곱>에 출연하긴 했지만 장편영화에 출연하기는 <고양이를 부탁해>가 처음이었다. <여고괴담 두번째
스물둘 어디로 튈지 몰라요, <고양이를 부탁해>의 옥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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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언덕이라고 했던가, 잊기 힘든 그 이름의 뜻이. <푸른 안개>로 이제는 너무나 잘 알려졌지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지쳐 앉아 있는 이요원은 어딘가 낯설었다. 컨디션이 좋아 ‘공식적인’ 모습만 보였다면 오히려 드러나지 않았을 것들, 그녀에게서 ‘낯선 배우’의 얼굴을 보게 한 건, 막 많은 일을 하기 시작한 스타의 희로애락, 그중에서도 ‘피로’였다. 여러 남자아이들에게서 동시에 문자메시지를 받는 ‘요원’과 아직도 남아 있는 <푸른 안개>의 ‘신우’, 그 이미지들 뒤에서 이요원은 조금씩 속도가 빨라지는 러닝머신 위에 서 있는 듯했다. 멈추면 넘어지고 마는.
“<푸른 안개>를 안 했으면 <고양이를 부탁해>로 첫 주연데뷔를 했을 거예요. 그랬다면 절 보고 그냥 얼굴 좀 익숙한 신인이라고 했겠죠.” <고양이를 부탁해>는 이요원이 처음으로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다. <남자의 향기>가 첫 영화지만 ‘어린 은혜’, 즉 주연인 명
안개를 걷고 청춘의 햇살 아래, <고양이를 부탁해>의 이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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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뇌성마비 시인이 불러주는 시를 타자기로 또박또박 받아 치는 참을성 있는 아이. 요일 칫솔부터 이마에 묶는 손전등까지 행상들이 내미는 잡동사니들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는 심성 고운 아이. 그러면서도 외항 선원이 되겠다고 장정들이 우글대는 사무실을 기웃거리는 엉뚱한 아이. <고양이를 부탁해>의 태희는 작고 깊은 우물 같은 여자애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다가와 비밀과 투정을 퐁당퐁당 던져 넣고, 차고 맑은 물 한 모금을 얻어 간다. 하지만 그녀의 바닥을 본 이는 아무도 없다.
별만 총총하고 인적이 드문 밤이면 우물은 몰래 마음을 졸이기도 한다. 아이들이 더이상 날 찾지 않는다면 어떡하지? 난 어떻게 하면 큰 바다로 갈 수 있지? 조밀하고 담담한 문체의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갈대가 우거진 강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는 태희의 몽상은 거의 유일한 판타지신이다.
배두나는 그러나 순진한 몽상가에서 한참 더 자란, 꽉 찬 일인분의 배우다. 야무지고 정확하며 매사에
영혼의 우물에 꿈이 찰랑, <고양이를 부탁해> 배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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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왜 내 메시지 무시해!”
아침나절부터 TV드라마를 찍다 틈을 내 스튜디오로 달려온 이요원에게 옥지영이 골목대장 같은 쩌렁한 목소리로 스파이크를 날린다. 흠, 요원은 지영의 메시지를 받지 못한 걸까. <아프리카>의 지방 촬영과 TV시리즈를 왕복하는 최근의 과로 탓인지 엷은 병색마저 감도는 이요원은 이렇다 저렇다 말없이, 마른 몸을 하늘거리며 희미하게 웃는다. 그리고 두 동갑내기는 설익은 주먹을 교환하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처럼 터프한 대화를 툭툭 주고받는다.
“안녕, 안녕.” <고양이를 부탁해>의 맏언니 배두나가 검정 부츠를 신고 장난감 병정의 걸음걸이로 성큼성큼 입장한 것은 30분 뒤. 스튜디오는 순식간에 노랑, 파랑, 딸기 무늬 손가방과 샌드위치 더미, “A-Yo”하며 휴대폰 받는 음성으로 와글와글해졌다. 인천과 서울 곳곳을 수놓듯 누빈 <고양이를 부탁해>를 찍는 동안은 땅콩 강정처럼 고소하게 달라붙어 지낸 세 사람이지만, 일단 촬영이 끝
이제, 우리, 어디로 갈까? <고양이를 부탁해> 배두나, 이요원, 옥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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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그맨 서세원 맞아?”극장에 깔린 <조폭 마누라>의 포스터나 전단에서 ‘제공 (주)서세원 프로덕션’이라는 문구를 발견한 이들이라면 한번쯤 고개를 갸우뚱할 법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여년간 본인이 직접 연출하기도 했던 <납자루떼>를 방송용 개그 소재로 간간이 써가며, “영화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내비쳐왔기 때문. 그래서일까. 서세원 프로덕션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지만, 홍보는커녕 그는 영화제작에 관한 한 발언을 극도로 자제해왔다. 해마다 국회의 국정감사 자료에서 고소득 방송인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그가 눈코 뜰 새 없는 스케줄을 강행해서 벌어들인 돈을 직접 충무로에 싸들고 온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9월3일 늦은 8시. 신은경을 내세워, 폭력조직을 이끄는 한 여장부가 행복한 가정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코믹액션영화 <조폭 마누라>의 9월28일 개봉을 앞두고, 배급사 코리아픽쳐스에서 만난 서세
“야심? 즐기기 위해서 영화 만드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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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난처함’이라는 감정에 이목구비가 있다면 그건 바로 휴 그랜트(41)의 마스크일 것이다. “어쩌면”, “혹시”, “믿을 수 없는” 따위의 단어로 점철된 말투, 그렇게 완곡한 화법으로도 끝내 못 꺼낸 이야기를 모스 부호로 타전이라도 할 듯 분주히 깜박이는 눈꺼풀, 손가락 빗질로 가라앉을 틈이 없는 그의 구제불능 곱슬머리가 스크린을 어수선하게 할 때 우리는 괜스레 덩달아 난처해진다. 심지어 휴 그랜트가 영화 속에서 유난히 자주 입는 밝은 색상 와이셔츠들마저, 뭔가가 쏟아지거나 이상한 곳에서 단추가 풀려 ‘곤란한’ 그의 운명을 악화시키는 데에 일조한다.
시인 바이런을 꼭 닮은 홍안의 미청년으로 머무는 동안, 시대극의 성곽 안을 소요하는 동안 휴 그랜트의 서투름은 곧 사랑스러움 혹은 퇴폐적인 매력이었다. <모리스>(1987), <비터 문>(1992), <베니스행 야간열차>(1993),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1994)에서 그는
코미디, 안온한 나의 정원, <브리짓 존스의 일기> 휴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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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 모르는 아이일 거라고, 그저 예쁜 소녀일 뿐이라고, CF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상에서만 숨쉴 수 있는 인형일 거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아직 이 소녀를 모르는 거다. 1999년, 기묘한 소음과 허밍, TTL이라는 문신을 새기고 우리를 응시하던 소녀에게선 피노키오의 나무냄새가 났다. 그러나 2001년, 8개월 동안 부산의 짠내나는 바람에 단련된 임은경에겐 인간의 땀냄새가 풍겨나왔다.
현재 막바지 작업중인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촬영 틈새, 서울의 스튜디오로 날아온 임은경은 여전히 눈을 떼지 못하게 예쁜 소녀였지만 영화 초반에 비하면 한껏 밝아지고 웃음도 잦아졌다. 현실인 듯 가상이고 가상인 듯 현실인, 오락실에서 동전바꿔주는 날라리 소녀 ‘희미’이자 자신을 외면한 세상에 분노하는 성냥팔이 소녀 ‘성소’인, 모든 경계가 불분명한 데뷔작이 자신을 힘들게 했음이 분명한데, 이 소녀는 그저 이 영화가 고맙다고 한다. “어둡게 자라서 말도 안 하고, 표정도 없고 그랬는데,
오염된 세상을 정화하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의 임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