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성 부산국제영화제 PPP 수석운영위원의 첫인상은 ‘영화인’이라기보다는 비즈니스계의 엘리트쪽에 가깝다. 백두대간에서 이광모 대표의 파트너로 7년 동안 예술영화를 선별, 구매해왔으며 1998년 PPP가 시작된 이후 줄곧 책임을 지고 있는 이 충무로 경력 9년차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예술보다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영화에 접근해온 그의 영화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합리적 사고와 꼼꼼함이 밴 듯한 태도도 그의 인상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다. 이처럼 댄디한 분위기와 달리 그는 일에 관한 한 엄청난 욕심을 갖고 있다. 제네시스 픽처스라는 자신의 영화제작사를 운영하면서도 그는 PPP를 이끌고 있으며, 디지털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의 공동 프로듀서로 활동중이고, 영상원에서 강의를 하며, 프루트 챈 감독의 <공중 화장실>에선 프로듀서로 참여할 예정이다. 그저 호기심과 모험심, 그리고 재미를 좇아서 움직였을 뿐이라는 그를 역삼동 제네시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PPP 라인업이 확정됐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 같은 거장까지 모시느라 힘이 꽤 들었을 것 같다.
힘은 뭘…. 갈수록 출품작이 많아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좋은 작품이 많아 실질적으로 일은 쉬워지고 있다. 사실 올해는 첸카이거 감독쪽으로부터도 연락이 왔었다. <몽유도원도>의 PPP 참가를 논의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다. 그런데 또 얼마 뒤에 촬영차 한국에 온 이마무라 감독이 PPP를 통해 차기작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이마무라 감독 정도의 명성이면 굳이 PPP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더니 아니라면서 일본에서도 투자유치가 쉽지 않을 일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도 PPP의 정체성을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동안 신인감독에게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을 임무로 삼아오지 않았나. 하지만 깊은 논의 끝에 거장이라 해도 파이낸싱이 필요한 좋은 프로젝트가 PPP를 이용하려 한다면 막을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PPP도 4회를 맞는데 그동안 지위가 많이 격상된 것 같다.
피부로 느낀다. 투자사와 제작자가 많이 와야 행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데 1, 2회 때만 해도 워낙 알려지지 않아 “항공권도 주고 호텔도 줄 테니 와주세요”라는 전화를 엄청나게 많이 해야 했다. 그런데 그게 지난해부터 바뀌더라. 이제 마감시간이 지났네요, 예산이 없네요, 라는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입장이 됐다. 규모도 커져서 올해는 게스트가 1천명 가까이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첫 회부터 계속 PPP를 책임져왔다.
1회 때는 박광수 감독에게 끌려 일을 했다. 그 행사를 끝내고 백두대간으로 돌아와 일을 하고 있었는데, 다음해 행사를 3개월 앞둔 상태에서 내게 연락이 왔다. 첫 행사에서 일했던 다른 두분이 그만뒀기 때문에 내가 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절박한 마음에 낮에는 백두대간에서 일하고 오후 6시30분쯤 PPP 사무실로 가 밤새워가며 정신없이 일을 했다. 어쨌거나 이제 내 일도 점점 바빠지므로 정말로 후임자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PPP 일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가장 큰 재산이라면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전세계를 돌면서 프로듀서, 투자자, 배급사, 영화제 관계자들을 만나 많은 것을 보고 듣고 한 것이 남는 거다. 백두대간에서 배운 산업적 지식을 바탕으로 일을 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만큼 기쁜 게 또 어딨겠나.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생각나는데,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들었다. 언어를 배우는 것도 좋아하나.
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정도다. 그런데 뭐 하나 딱히 잘하는 건 없다. (웃음) 스무살에 미국 대학으로 유학가서 졸업하고, 다시 중국 베이징대학으로 유학가서 1년 반 정도 있었다. 중국어는 그렇게 익힌 거고 거기서 만난 아내가 일본인이었으니 일본어도 늘 수밖에. 스페인어는 대학 시절 제2외국어로 공부했다. 대학 4년 내내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히스패닉 직원들과 의사소통하려면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언어를 배우는 것, 모르는 것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 호기심도 많다. 그러다보니 몸이 바빠진다.
영화계에 들어온 것이 이광모 감독과의 인연 덕택이라고 들었다.
스무살 때부터 UCLA에서 중국에 관해 공부했다. 중국에서 비즈니스도 하고 그러려다 보니…. 그런데 대학 2학년 땐가 당시 대학원생이던 이광모 감독을 룸메이트로 만나게 됐다. 이 감독은 졸업작품을 찍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거기서 프로듀서를 맡았다. 학교다니던 여섯명의 후배들을 모아서 스탭을 꾸렸다. 그게 영화의 첫 경험이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재미있기 때문에 계속 영화 일을 하는 것이고.
애초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중국에서 사업도 했다고 들었는데.
중국에서 유학하고 합자회사도 차렸는데, 사정이 생겨 그만두게 됐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뒤 LA 재해대책위원회 일을 했다. 처음에는 일도 많고 재미있었는데, LA폭동이 끝나자 하는 일도 없고 굉장히 따분했다. 그러던 차에 이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제대로 된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일을 해보자고 하더라. 어차피 심심해 죽겠는데 얼씨구나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에 있는 아내를 만나기 쉬워진다는 점도 결정을 내리는데 영향을 끼쳤다.
왠지 비즈니스쪽에 재능이 있는 본인의 캐릭터와 예술영화는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
예술영화도 비즈니스적으로 괜찮다는 이광모 감독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다. 유명한 아트하우스가 학교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대학교 때 <국두>니 <흑우>니 그리너웨이 영화니, 그런 영화를 많이 보기도 했다.
하긴 당시 백두대간은 예술영화가 시장성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첫 작품인 <천국보다 낯선>을 시작으로 매월 개봉하는 열댓편의 영화가 모두 첫 회부터 매진을 기록했다. 그렇게 2년 가까이 매진 안 되는 것을 못 봤고 그뒤로 2년 동안은 매진되는 것을 못 봤다. (웃음) 어쨌건 당시 동숭아트극장은 230석밖에 안 됐지만 1년 동안 20만명을 동원했으니까.
어쨌든 아직 한국의 예술영화 시장은 너무 작은 것 아닌가.
그거야 어쩌겠나. 현실이 그런데.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술영화를 보는 사람은 보는 거고 대박 영화를 보는 사람은 또 그렇게 보는 거다. 그야말로 ‘타인의 취향’이다. 다만 문화적 밸런스를 맞춰갈 수 있는 영화계의 인프라, 산업 외적인 정부 등의 지원 프로그램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은 절실하다.
지난해 백두대간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백두대간에 있으면서 가장 큰 딜레마는 거기에 있으면 영화를 사고, 국내에서 풀고, 마케팅을 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6년째 하다보니 안 해본 일을 하고 싶어졌다. 나이를 더 먹기 전에 이런저런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회사를 나와서 프리랜서로 살면서 PPP에 전념할 수 있었고, <아리랑TV>에서 ‘씨네플라자’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했으며, 영상원에서 강의도 했고,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에 공동 프로듀서로도 참여하고 있다. 또 내 사업도 꾸릴 수 있게 됐다.
어째 백두대간 그만두고 나서 더 바쁘게 일한 것 같다.
그렇게 됐다. 월요일엔 어디, 화요일엔 어디 하는 식으로 빡빡하게 살았다. 백두대간 초기 1년 반 동안 하루도 못 쉬고 일하던 이후로 가장 바빴던 시기였던 것 같다.
제네시스 픽처스의 노선은 뭔가. 크게 보자면 잘 만든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길이 있을 것 같은데.
예술영화냐 상업영화냐 하는 구분은 백두대간에 있을 때부터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예술가도 아니고 돈만을 위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도 아니다. 얼마만큼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냐에 따라, 소수의 영화라면 거기에 맞게 기획하고 파이낸싱을 해야 하고 다수를 겨냥한 영화라면 또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가 뭐냐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여러 가지. 장르로 봐도 코미디도 있고 진지한 작품성을 가진 영화도 있고, 호러, 스릴러도 있다. 다 해보고 싶은데, 나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미지수다. 어쨌건 아트영화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대신 작가주의를 띤 영화일 수도 있고, 대중적이지만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도 있을 거다. 뭐가 됐건 제작자 입장에서 만들고 싶은 영화라면 만들 거다. 그것 이외에 뭐가 중요하겠나. 코미디를 만들건, 에로영화를 만들건 잘 만든 영화라면 괜찮은 거다.
그래도 왠지 블록버스터영화를 지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블록버스터라면 뭘 지칭하는지 모르겠지만, 같은 블록버스터라 해도 스필버그가 만드는 영화는 다른 할리우드영화와 다르다. 뭔가 그만의 색깔이 묻어 있지 않나. 제작비가 100억원이든 50억원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5억원짜리 영화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 프로젝트에 맞는 예산과 계획을 짜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본격적인 제작은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나.
현재 개발중인 시나리오들이 있다. 올 연말 정도가 되면 프로젝트가 3개 정도 나올 것이고 그중에서 하나를 내년 4∼5월 정도 시작해 여름에 촬영하고 하반기에 개봉할 계획이다.
글 문석 [email protected]·사진 오계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