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관 교수는 한국영화계를 움직이는 실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제작사나 투자배급사 책임자가 아닌데도 문성근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이사장과 그는 빠짐없이 파워리스트의 상위권에 오른다. 영화정책과 행정에 관한 한 이 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워맨은 직책의 힘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거나, 앞장서 뛰다가 이런저런 감투를 뒤집어쓰는 두 가지 경우일 텐데, 이용관 교수는(문 이사장도 그렇지만) 후자에 가깝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사람 좋아하고 일 좋아한다. 그리고 술도 좋아한다. 그래서 건강이 좋지 않으며, 종종 질시어린 세간의 험담을 듣게 되고 시행착오로 인한 비난을 뒤집어쓰면서 마음도 다친다. 이용관 교수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그는 요즘 직책이 애매해졌다. 2주 전까지만 해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부위원장이었지만, 법원이 그 직책을 걷어갔다. 1년 전 부위원장으로 있다가 불신임당한 조희문 교수가 낸 불신임 무효소송에서 법원이 조 교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묘하게도 조희문 교수가 부위원장을 대행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판결을 내렸다. 서로 애매해진 셈이다. 어쨌거나 두 사람은 영진위 위원으로 남아 있고, 부위원장 자리는 공석이 됐다. 이 법정공방은 나쁘게 보면 두 사람의 자리다툼으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개인적 의도와 관계없이 이용관 교수는 이른바 영진위 개혁파의 리더로 추대돼왔고, 조희문 교수는 상대적으로 영화계 보수파의 목소리를 많이 내왔다. 이번 법정공방이 불신임의 절차상 문제만을 다룬 것인데도, 영화계의 관심이 집중된 건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일단 1년으로 끝나긴 했지만 이용관 부위원장 체제의 영진위는, 순항은 아니라도, 한국영화 산업화의 조건마련과 각 부문의 제작활성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는 중평을 얻고 있다. 이용관 교수는 부위원장이었지만, 위원장의 소극적 업무 스타일 때문에 영진위의 모든 정책은 사실상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30살에 전임교수가 됐고(경성대), 부산국제영화제 창립멤버에다 현재 중앙대 영화과 교수라는 직함까지 겸하고 있으니 복만큼 짐도 많았다. 명예로운 방식은 아니지만 잠정적으로 한 가지 짐을 벗은 이용관 교수는 “하루 4시간도 채 못 자다가 판결 이후에야 8시간씩 잔다”며 여유를 보였다.
+ 이번 판결에 대한 개인적 소감이 궁금하다.
= 글쎄…. 4월 말에 판결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몇 가지 결과를 예상했었고, 거기에 따라 준비를 해와서 별다른 충격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불신임이 무효라는 판결은 일단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며, 조 교수의 부위원장 대행 가처분신청은 기각됐으니 영진위 위원들의 최소한의 도덕적 정당성은 확보됐다고 생각한다. 일단 한 사람의 위원으로 일도 계속해야 되고.
+ 개인적으로는 상처를 입은 것 아닌가.
= 걱정하는 분들이 많은데, 딴 데서도 얘기했지만 그냥 한때의 진통이라고 보는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교통사고 나서 찰과상 정도 입었다고 생각한다.
+ 영진위 차원에서 항소할 생각인가.
= 위원들의 현재 의견은 그렇다.
+ 문화관광부에서 항소 포기 및 두 사람의 동시 사퇴안으로 중재하고 있는데.
= 난 좋다고 생각하지만, 위원들은 반대하고 있다. 조 교수가 위원들의 사과와 손해배상 같은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위원장을 공석으로 둬야 한다는 조건도 달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게 더 문제다. 사퇴하는 사람이 부위원장을 두니 마니 하는 건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항소 포기와 함께 둘이서 부위원장을 안 한다고 합의하자는 제안을 조 교수에게 해놨다. 이만큼 싸웠고 서로 충분히 상처입었으니 이쯤에서 서로 물러나는 게 좋지 않으냐는 생각에서였다.
+ 그 제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 글쎄, 솔직히 말하면 별로 없을 것 같다. 불신임도 조 교수가 말하는 것처럼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진 게 아니다. 그 사람의 부위원장 위촉 전에도 그뒤에도 대화노력을 많이 했다. 다른 위원들과 조 교수의 생각이 너무 안 맞아서 영진위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선 그가 물러나는 길 외는 없다는 게 위원들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물러나달라는 설득을 먼저 했고, 그게 안 돼서 그 체제로 가다가 도저히 안 돼서 우리 둘이 함께 물러나자는 제안을 다시 했었다. 그때도 실패했다.
+ 조 교수와는 어쨌든 인연이 깊다.
= 난 그 사람을 오래 알아왔다. 대학원 때부터 시작됐으니까 조 교수와는 20년 인연이다. 아니, 악연이다. (웃음) 번번이 이렇게 부딪친다. 내 편에선 대화 노력을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영화인회의 만들 무렵 감독협회 시사실에서 발기인모임 하는데 내가 발언 신청해서 “조희문 교수는 왜 빼느냐. 같이 가야 한다”고 말한 적 있다. 설득하는 임무도 내가 맡아서 신라호텔에서 1시간 반 동안 얘기했다. “정치적이 되긴 싫다”며 거절하더라. 결국 설득에 실패하고 오니까, 안 될 게 뻔한데 왜 그랬냐며 주변에서 핀잔을 주더라. 그 밖에도 갖가지 사안이 많았는데, 참 대화가 안 이루어졌다.
+ 영진위 운영에 변화는 없나.
= 무슨 큰 변화 있겠나. 내가 해오던 정책분야를 위원 내 역할분담 차원에서 계속 맡는다면 실무는 계속해야 할 테고. 어쨌든 위원들간의 의견 조율이 먼저겠지.
+ 영진위 부위원장 1년을 자평한다면.
= ‘미’쯤 된다. 우수하진 않았고, 일을 이제 알 만하고 성적 올릴 만한 시점이 됐는데 이렇게 된 게 좀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양, 가는 아니라는 자신은 있다.
+ 제작지원문제가 역시 제일 골치 아프고 말도 많았다.
= 앞으론 잘 풀려갈 거다. 저예산 예술영화 중심의 제작지원이라는 방향도 분명하고. 흔히 오해하는 것처럼 정치적 배려는 없었다. 심사위원들이 자율적으로 판단했고 우린 그걸 존중했다. 그렇다면 심사위원 선정 자체를 시비걸 순 있을 거다. 그것마저 정치적 배려라고 하면 할말 없지만, 그게 한국영화계의 현실이다. 장기적으로 투자조합이나 제작지원 방식은 전면 재검토돼야 할 사안이다. 부산영화제의 PPP 같은 자율기구를 따로 둬서 운영할 건지, 아니면 영진위에서 계속 관할할지는 쉽지 않은 문제다.
▶ 이용관 전 영진위 부위원장 (1)
▶ 이용관 전 영진위 부위원장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