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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살구>
장만민/한국/2023년/122분/한국경쟁
회사 생활과 뱀파이어 웹툰 작업을 병행하는 정서(나애진)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다. 계약금 납부까지 3일. 정서는 어머니에게 손을 벌려 보지만, 어머니는 되려 아버지 김영주(안석환)가 떼먹은 돈을 받아오라는 임무를 맡긴다. 하는 수 없이 정서는 바람을 피고 새 가정을 꾸린 영주가 있는 묵호항의 벌교횟집으로 차용증이 붙은 색소폰을 들고 향한다. 오랜만에 고향을 마주한 반가움도 잠시, 어머니의 돈을 갚을 의사가 없어 보이는 영주는 그녀를 지치게 만든다. 하루빨리 돈만 받고 불편하고 낯선 묵호항을 뜨려 하지만, 시종일관 살갑게 다가오는 이복동생 정해(김진영)를 보며 정서는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은행(銀杏)의 한자는 은빛 살구를 의미한다. 고소한 과육을 둘러싼 속껍질이 반짝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은행은 열매를 탐하는 포식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외종피에 악취와 독성을 품는다. 악취는 쉽게 퍼진다. 이는 욕망
JEONJU IFF #4호 [프리뷰] 장만민 감독, '은빛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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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일 CGV 전주고사 1관에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4K 리마스터링> 류승완 감독의 전주대담이 진행되었다. 전주국제영화제의 25주년과 한국영상자료원의 설립 50주년을 기념하는 ‘다시 보다: 25+50’ 특별전의 일환이다. 네 편의 단편영화로 구성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2000년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던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으로, 전주의 초창기를 빛낸 네 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의 초기작 특유의 거칠고 매력적인 필체를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다는 소식에 예매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이날 진행을 맡은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디지털 리마스터 버전이 공개되었던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당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류승완 감독과도 막역한 사이인 그는 영화에 대한 심도 있는 감상과 감독과의 에피소드를 적절히 배합해 대화를 노련하게 이끌어갔다.
상영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상영이 끝난 후
JEONJU IFF #3호 [스코프] 다시 보다: 25+50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4K 리마스터링’ 류승완 감독, 영화를 통해 만나는 다음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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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4일 저녁 7시 CGV 전주고사점 앞에서 행자 퍼포먼스 콘테스트 ‘영화의 거리에서 행자되기’가 열렸다. 본 행사는 세계 최초로 차이밍량 감독의 ‘행자 연작’ 10편 전편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기념해 열렸다. 극 중 세계 여러 도시를 맨발로 천천히 걷던 붉은 승복 차림의 행자(이강생)처럼 참가자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느리게 걸으면 차이밍량 감독과 이강생 배우가 그중 가장 아름다운 퍼포먼스를 선보인 사람을 우승자로 뽑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는 사전 신청을 통해 받았으며 최종 22명으로 추려졌다. 콘테스트 직전 사전모임을 통해 한차례 몸을 풀고 온 참가자들이 현장에 도착하자 차이밍량 감독은 “연작 전편을 한 번에 선보이는 것도 이런 이벤트도 처음이라 신난다. 경쟁이라고 생각지 마시고, 어떻게 해야 행자처럼 보일까 고민도 하지 마시고 임해 주셨으면 좋겠다. 천천히 걸으면 모두가 행자다”라는 인사말로 용기를 내준 이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보냈다. 그리고 이어서 44개의 발이 동시에 움직
JEONJU IFF #3호 [스코프] 행자 퍼포먼스 콘테스트 '영화의 거리에서 행자되기‘ “우리 모두 자기만의 방법으로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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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천을 두른 맨발의 승려가 아주 천천히 프레임을 가로지른다. 카메라는 아무런 미동 없이 수행하는 육체를 담아낸다. 차이밍량 감독이 오로지 느린 걸음만으로 이뤄진 영화, 행자 연작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영겁의 시간을 체화한 그의 페르소나 이강생 덕분이었다. 단호하고 확신에 찬 걸음으로 인터뷰장에 들어온 차이밍량 감독 뒤로 느긋하게 이강생 배우가 들어왔다. 30년을 함께 해온 두 사람은 서로의 속도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행자 연작의 모든 작품을 상영하게 됐다.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차이밍량 꿈이 실현된 기분이다. 행자 프로젝트를 작업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열 편을 완성하면 꼭 모든 작품을 한 곳에서 상영하기를 원했다. 행자는 느린 걸음으로 이어진 단순한 작품이다. 똑같은 내용처럼 보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한다면 저마다 다른 깨달음을 얻는 수행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강생 지금까지 행자 연작은 주로 미술관에서 상영됐다. 물론 새
JEONJU IFF #3호 [인터뷰] 차이밍량 감독 X 이강생 배우 대담 “천천히 흘러가는 느린 걸음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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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그림 배우러 다니는 남자(하성국)는 여름 한낮의 종로 한복판에서 아는 여자(이명하)와 우연히 만나 잠시 길을 걷는다. 2막. 몇 년 뒤 여자는 폐관을 앞둔 서울극장을 찾고 극장 관계자인 남자(박봉준)와 함께 그림 배우던 남자와 거닐었던 그 길을 다시 걷는다. 3막. 어느새 화가가 된 남자(하성국)는 지인의 장례식에서 아는 여자와 재회하고 둘은 서울의 밤거리를 배회하다 익히 아는 카페를 찾는다. 두 남녀가 몇 년에 걸쳐 같은 공간을 거닐다 헤어지는 조각들을 담은 <미망>은 심심하게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엔 많은 차이들이 숨겨져 있다. 날씨, 건물, 의상, 대화 등의 미세한 차이는 일상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닌 매일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생동의 시간임을 증명한다. 그리고 그 차이들은 개개인의 기억에 침투해 “나의 연인과 친구, 내 삶을 떠올리게 하는(김태양 감독)” 촉매제가 된다. 첫 장편 데뷔작 <미망>이 한국경쟁에 올
JEONJU IFF #3호 [인터뷰] '미망' 김태양 감독, “우리는 매일 같은 것 같아도 조금씩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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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러브>의 세계 속에서 사랑은 힘이 세다. 수정(류현경)이 여행하는 생경한 장소들에는 미미한 권력에 취한 채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가득하지만, 수정과 수자(한양희)가 공유하는 단순한 사랑에의 믿음은 그들을 감화하기에 충분하다. 김오키 감독의 삶 속에서도 사랑의 영향력은 마찬가지다. 영화에 품은 오랜 연심은 결국 그를 영화제작의 길로 이끌었고, 그가 차린 촬영 현장은 동료들을 향한 깊은 애정을 발산하는 즐거움의 공간이 되었다. 코리안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알록달록한 장편 데뷔작 <하나, 둘, 셋 러브>의 감독이자 ‘전주씨네투어x음악’의 무대를 수놓을 뮤지션으로 전주를 찾은 멀티 아티스트 김오키에게 그의 창작을 이끄는 긍정적인 가치들에 관해 물었다.
- 처음 영화 제작에 도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는 어릴 적부터 있었다. 댄서로 활동하던 시절에는 16mm 캠코더로 다양한 촬영에 도전하기도 했고. 하지만
JEONJU IFF #3호 [인터뷰] '하나, 둘, 셋 러브' 감독 김오키, “모두가 즐겁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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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눈을 뜨고 잘 때> Sleep with Your Eyes Open
넬레 볼라츠/브라질, 아르헨티나, 대만, 독일/2024년/97분/월드시네마
공항에서 갑작스레 이별 통보를 받은 대만인 카이(랴오 카이 로)는 홧김에 브라질로 여행을 떠난다. 말도 통하지 않는 외지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일은 고역인데다, 호텔 객실 에어컨이 내뿜는 소음에 잠까지 설치게 된다. 다행히 그녀는 같은 언어권의 중국인 우산 장수 푸앙(왕신홍)를 만나게 된다. 다음날 카이는 푸앙의 가게를 찾아가지만, 푸앙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낡은 여행엽서 더미만이 남겨졌다. 엽서에는 샤오신(첸 샤오신)이란 이름의 여자가 쓴 일기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푸앙을 안다는 샤오신의 언급에 흥미가 생긴 카이는 그녀의 일기를 읽어나간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잘 때>는 브라질에 머물다 간 세 명의 중화권 인물을 느슨하게 엮는다. 관광객, 노동자, 부유층의 자제. 브라질에 온 이상 서로 다른
JEONJU IFF #3호 [프리뷰] 넬레 볼라츠 감독, '우리가 눈을 뜨고 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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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아파트> Lucky, Apartment
강유가람/한국/2024/96분/전주시네마프로젝트
작은 아파트를 장만한 9년차 레즈비언 커플 선우(손수현)와 희서(박가영). 다리를 다쳐 집에서 재활 중인 선우는 어느 날부터 배관을 타고 풍겨오는 악취에 힘겨워한다.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공인중개사와 동 대표의 경고에도 선우는 냄새의 근원을 찾아 단지 안팎을 들쑤시고, 회사 내의 성차별을 견디며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희서는 그런 선우가 못마땅하다.
<럭키, 아파트>는 한국 사회에서 절대적인 안정성을 상징하는 아파트 속에서도 여전히 안전한 보금자리를 꾸릴 수 없는 사람들을 눈여겨본다. 제도의 부재 속 편견과 차별을 견디는 동성 커플, 이웃과 단절된 독거인 등은 아파트가 형상화하는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고립되는 존재들이다. 단지를 배회하는 악취는 생존의 사각지대에 몰린 이들의 몸부림을 대변하는 또 한 명의 인물처럼 기능한다. 하지만 오히려 선우나
JEONJU IFF #3호 [프리뷰] 강유가람 감독, '럭키,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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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킹 타이거스> Smoking Tigers
셸리 요(여소영)/미국/2023년/91분/월드시네마
하영(유지영)의 열여섯 번째 여름은 익숙하지 않은 것투성이다.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아버지(정준호)는 집을 떠나 자재창고에서 숙식하고,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아빈 앤드루스)는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한인 식당에서 일을 시작한다. 어머니의 등쌀에 밀려 등록한 입시 여름 캠프에는 유복한 학생들뿐이다. 집안 사정을 애써 숨긴 채 우정과 사랑을 꿈꾸지만 어딘지 어긋나는 일상의 궤적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한다.
한국계 미국인 셸리 요 감독의 장편 데뷔작 <스모킹 타이거스>는 코리아타운의 불편한 공기를 읽기 시작한 사춘기 소녀의 시선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표류하는 1세대 이민가정의 애환을 담는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아버지와 영어가 더 익숙한 딸들 사이에서 오가는 소통은 언제나 미묘하게 어긋난다.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과의 소통도 반쯤의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사람들이기
JEONJU IFF #3호 [프리뷰] 셸리 요 감독, '스모킹 타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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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기다림의 날들> My Endless Numbered Days
숀 네오/일본, 싱가포르/2023년/78분/국제경쟁
만약 도시인들의 고독에 궤적을 그릴 수 있다면, 이는 양극단을 정처 없이 배회하는 진자운동일 것이다. 영화를 찍기 위해 고향 아사히카와를 떠나 싱가포르로 향했던 미츠에(반자이 미츠에)도 별 소득 없이 일본으로 다시 돌아오고 만다. 아무런 계획 없이 복귀한 일본에서 그녀에게 두 사람이 다가온다. 1년 전 미츠에와 헤어지고 다른 이와 결혼한 전 애인은 미련이 남은 문자로 그녀에게 안부를 묻는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새롭게 만난 동료 안나(야나기 에리사)는 갑작스레 미츠에의 집에 얹혀살고자 한다. 과거의 사랑과 새로운 우정 사이에서 마츠에는 소소한 일상을 보내며 찰나의 유대감을 느낀다. 하지만 미츠에는 여전히 어느 관계에도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한다.
배회와 진동에서 멈춤과 안온함으로 향하는 여정을 자신만의 리듬으로 담아낸 <끝없는
JEONJU IFF #3호 [프리뷰] 숀 네오 감독, '끝없는 기다림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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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관객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전주톡톡은 영화인들의 현장 경험,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 작품과 현시 사이를 잇는 메시지 등을 가볍고 유쾌하게 들어볼 수 있는 토크 프로그램이다. 5월 3일 금요일, 청명한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문화광장 부근의 소담한 카페에서 <목화솜 피는 날>의 감독과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작품을 지휘한 신경수 감독을 필두로 박원상, 우미화, 조희봉, 최덕문 배우가 관객들을 만났고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마쳤다는 듯 적극적으로 질문을 꺼내는 공승연 배우가 진행을 맡았다.
'코리안시네마: 세월호 참사 10주기 특별전'에 소개된 <목화솜 피는 날>은 10년 전 참혹한 사고로 둘째 딸을 잃은 부부 병호(박원상)와 수현(우미화)의 이야기를 다룬다. 10년 동안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외쳐온 병호는 다른 유가족들과 갈등에 충격을 받아 기억을 잃고 만다. 서서히 희미해지는 과거에도 그에게는 마음 한 편에 영원히 잊지 않는
JEONJU IFF #2호 [스코프] ‘목화솜 피는 날’ 전주톡톡 “슬픔과 애도를 전유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