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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무지 복잡한 심리 상태의 인물과 마주 앉아 긴 고백을 듣는 것 같았다. 자연스레 <위험한 정사>(1987)의 알렉스(글렌 클로스)처럼 이해하기 힘든 인물의 리스트에 <여교사>의 효주(김하늘)를 올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김태용의 영화다. 계급적이고 사회적인 무언가가 한 인물에 입힌 상흔이 분명 읽히는데 그걸 개인의 심리로만 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편 계급적인 것으로 읽기엔 그녀의 욕망이 차지하는 부분이 너무 크다. 그래서 난감한 심정으로 그녀를 며칠 동안 생각했다. 개봉 이후 그저 그런 치정극이란 평가가 내려지고 있었고, 김태용이 그런 의도로 <여교사>를 찍지는 않았다는 말이 생생하게 맴돌았다. 의도가 곧 영화는 아니지만 적어도 억울한 마음은 풀어줘야 한다는 게 내 판단이었다. 주인공 효주에 대해 무언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곧바로 떠오른 건 그녀의 표정이다. 무표정에 가까워 모든 걸 체념한 듯 보이는 그 표정.
효주의 무표
[이용철의 영화비평] 근대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낸 파열음 <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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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마지막 5분이 다 했다. 영화가 끝난 뒤 진하게 잔상을 남기는 건 시간을 뛰어넘어 끝내 만나고야 마는 소년, 소녀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니라 사진보다 아름다운 몇몇 장면들이다. 전체를 다 보지 않고 마지막 5분만 봤더라도 나는 이 작품에 충분히 만족했을 것 같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너의 이름은.>의 후반 5분은 그것만 따로 잘라서 단편으로 구성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독립되고 완결된 구성을 선보인다. 후일담으로서 앞서 펼쳐둔 상황을 정리한다기보다 차라리 마지막 5분의 이야기를 위해 90분간의 전사(前史)를 깔아둔 쪽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혜성 재해로부터 미츠하와 이토모리 마을을 구한 후 8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후반 5분의 이야기는 내레이션, 독백, 심상이 투영된 풍경, 빠른 편집과 세밀한 배경까지 <별의 목소리>(2002)나 <초속5센티미터>(2007)의 정서와 호흡을 연상시킨다. 미츠
[송경원의 영화비평] 신카이 마코토의 극한의 세밀한 묘사가 불러일으키는 마법적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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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솔러지(외전) 이전에 익스펜디드 유니버스(이하 EU)가 있었다. <스타워즈>의 드넓은 세계 속에서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이하 <로그 원>)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배경 설명이 좀 필요하다. 2014년 이전까지, 이 세계엔 조지 루카스가 창조해낸 6편의 <스타워즈> 영화 외에 이들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수많은 콘텐츠들이 존재했다. 소설과 코믹스, 애니메이션과 게임. 단순한 팬픽이 아니라 조지 루카스의 공식적인 승인과 전문 작가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이 작품들은 루카스의 <스타워즈> 시리즈와 단일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35년간 <스타워즈>의 우주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루카스필름을 인수한 디즈니는 <스타워즈> EU의 리부트를 선언하며 여섯편의 본편 영화와 애니메이션 <스타워즈: 클론전쟁>(2008)을 제외하고는 2014년 이후 루카스필름
[장영엽의 영화비평]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에 담긴 변화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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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여교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쉬리>(1998) 이후, ‘한국형 블록버스터’ 시대의 도래와 함께 주류 한국영화는 남성 중심의 장르로 이동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모두 14편인 천만 관객 영화를 돌아보면, 여성이 주연인 영화는 <암살> 한편뿐이다. 이것은 멜로드라마의 하위 장르인 로맨스가 주류영화에서 거의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서브플롯에서도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쉬리>의 경우, 주인공 유중원의 약혼녀이자 적대자로서 간첩 이방희가 등장하지만, <의형제>(2010)의 경우에는 이방희의 자리를 남성 간첩 송지원이 차지하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서도 ‘로맨스’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다. 예를 들어 <미션 임파서블>이나 ‘본’ 시리즈의 경우, 초기에는 로맨스가 서브플롯으로 들어가 있었으나 최근 시리즈에서는 볼 수가 없다. 로맨스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중이다.
주류
[김경욱의 영화비평] <여교사>, 자극적인 설정에 봉인된 주제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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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에 본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이미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별로 없다고 답할 것이다. 영화에서 숨 막히는 이미지를 만나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설령 그런 이미지를 보더라도 ‘CG로 작업했겠지, 뭐’라고 짐작하고 넘어가는 게 고작이다. 반면 인상 깊었던 몇몇 뮤직비디오는 있다. 솔란지의 <하늘의 학>(솔란지와 앨런 퍼거슨이 공동 연출), 라디오헤드의 <데이드리밍>(폴 토머스 앤더슨 연출), 데이비드 보위의 <라자루스>(조한 렝크 연출), 비욘세가 앨범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중편영화 <레모네이드> 등이 보여준 창의력과 신선함, 용기, 사려 깊음은 잊을 수 없다. 특히 나를 놀라게 했던 뮤직비디오는 제이미 엑스엑스의 <가쉬>다. 로맹 가브라스가 연출한 이 뮤직비디오는 음악사이트 ‘피치포크’의 평대로 ‘대체 어떻게 만들었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가브라스는 경이로움이 평범한 사람들의 몸에서 발산되는 것임을 안다. 누구의
[이용철의 영화비평]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팡파르 <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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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이유 때문에 김수현의 <우리 손자 베스트>에 흥미를 느꼈다. 첫째는, 지극히 개인적인 종로의 기억 때문이다. 영화의 무대인 낙원상가 근처의 주변 공간과 탑골공원, 그곳을 배회하는 어른들은 내가 10년 넘게 보았던 것들이다. 서울의 중심이라지만 영화의 무대가 되기엔 촌스런 곳이긴 하다. 그곳의 노인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느낀 적은 없지만, 영화 속 교환(구교환)이 무모하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본 적은 없다. 이 영화는 용기 있게 그 안으로 성큼 들어간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 둘째로, 이 영화가 도발적이라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영화는 표현의 예술이지만, 동시에 세계의 반응을 불러온다. 모든 장면을 구성하는 데 전략이 있기 마련이지만, 어떤 작가는 구성 대신 이미지에의 반응에 주목하기도 한다. 스캔들과 관객의 추문을 두려워하지 않은 도발적인 영화가 그렇게 나온다. 한국영화에서 이런 경향은 어쩐 일인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김기덕이나 임상수의 영화가
[김성욱의 영화비평] <우리 손자 베스트>의 도발적인 유희의 규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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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고백으로 시작한 영화는, 주인공의 아버지가 자신의 재혼 상대를 소개하는 장면으로 차근차근 흘러간다. 주인공 토마 세르(로맹 뒤리스)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하지만 피아노 연주와 관련된 우울증이 원인이 되어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토마에겐 어머니가 없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하이든의 소나타를 연주하던 어린 시절의 소년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피아노 연주를 관둔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아 현재 그는 부동산 관련 일을 하고 있다. 제임스 토백 감독의 <핑거스>(1978)를 리메이크한 자크 오디아르의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2005)은 바로 이 시작점에서 원작과의 거리 두기를 시도한다. 레스토랑이나 수영장 등 세부 장면 하나하나를 원작과 동일하게 배치하지만 설정에 차이를 두면서 영화는 스스로의 목표치를 다잡는다. 어머니의 부재와 토마에 대한 현실적 설명이 더해지면서, 원작과 이번 영화의 공통점은 ‘아버지’에 대한 설
[이지현의 영화비평] 무의식의 속박을 극복하는 성장 드라마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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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가 끝나는 순간 마법도 풀린다. 그랬어야 했다. 한데 그토록 열망하던 재즈바 ‘샙스’에서 피아노 건반에 손을 올리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애잔한 실루엣은 꽤 오래 지워지지 않았다. <라라랜드>는 좌절된 사랑을 낭만으로 포장한다. 여름밤 폭죽 냄새의 설렘이 묻어나는 말캉한 화면들은 제법 근사해 세바스찬의 씁쓸한 우울감마저 멋들어져 보인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가정법은 완성된 행복보다 오랜 잔영을 남기는 법이다. 과거라는 사막의 신기루가 유독 아름다운 건 우리가 이미 그것이 신기루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 회복할 수 없는 시간과 거리가 확인된 다음에야 상실의 계곡 사이로 멜랑콜리한 감정을 때려 부을 수 있다. 현재진행형의 관계에서는 불가능한, 낭만적인 되새김질은 공감과 체험이라기보다는 관람에 가까운 행위다.
아련함에 흠뻑 취해 피아노 선율을 곱씹고 있을 때 흥미로운 해석을 들었다. 함께 영화를 본 친구는 투덜거리며 불만을 이어
[송경원의 영화비평] <라라랜드>, 마법의 이름은 시네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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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씽: 사라진 여자>(이하 <미씽>)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지지자는 서사가 촘촘히 짜여 있다고 평하는 반면, 반대자는 서사적 허점들을 끝없이 짚어낸다. 스릴러라는 장르적 틀에서 영화의 논리를 따질 때, <미씽>은 종종 이야기 전개를 위해 상황이나 단서를 작위적으로 배치한 허술한 스릴러, 혹은 전반적으로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평평한 스릴러라는 인상을 남긴다. 반대자들에게는 이런 단점이 배우의 연기나 감정만으로는 메우기 힘든 것이고, 지지자들은 이 영화가 스릴러라는 장르의 틀을 서서히 벗어던지는 순간에 그대로 몸을 맡긴다.
나는 반대쪽 입장에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이 영화를 장르적 리얼리즘이 아닌 다른 방식의 리얼리즘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일단 환각의 리얼리즘이라 칭해두자. 영화는 실종 당일인 목요일부터 사건이 마무리되는 월요일까지 5일간 하루하루를 손꼽아 세면서 전개된다. 그런데 자막으로 친절하게 제시
[김소희의 영화비평] <미씽: 사라진 여자>와 환각의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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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많은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의 전통은 ‘저항의 영화’, 강력한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담아내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에 이어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두 번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의 수상 소감은 흡사 정치연설에 가까웠다. 심사위원장인 조지 밀러의 발표와 함께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무대에 오른 켄 로치는 “이 상을 받는 게 이상합니다. 우리에게 이 영화의 영감을 준 이들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는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경제정책이 세상을 위험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잔혹한 빈곤과 내핍에 시달리게 되었음을 피력하며 영화예술의 책무가 무엇인지 상기시킨 것이다.
올해로 81살이 된 켄 로치 감독은 지난 2014년에 연출한 <지미스 홀>이 자신의 마지막 극영화라
[정지연의 영화비평] 저항의 멜로드라마 <나, 다니엘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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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감독의 <우리 손자 베스트>는 개봉 첫주에 극장을 거의 잡지 못했다. 대기업 멀티플렉스 체인에선 이 영화를 거의 거부했다. 예술독립영화 체인인 CGV아트하우스에선 한개의 스크린도 배정받지 못했다. 듣기로는 그 회사 직원들이 이 영화를 혐오하는 정도가 심해서 얘기도 꺼내보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이 상황이 몹시 가슴 아픈데, <우리 손자 베스트>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장편제작 프로젝트인 JCP 세편의 영화 중 한편이고 영화제에서 첫 공개했을 때 반응이 가장 좋았던 작품이며, 이 영화를 본 몇몇 평론가들도 단연 올해의 문제작이라고 칭찬했던 수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가 만들어지도록 열심히 부추긴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우리 손자 베스트>의 초고 시나리오만 보고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JCP 작품으로 선정할 때만 해도 이 영화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후의 후유증을 염려한 사람들이 영화제 내부에서도 다수였다. 영화제에서 대는 1
[김영진의 영화비평] 궁극의 인간긍정 영화 <우리 손자 베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