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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있느냐 없느냐로 단순히 가르자면 재미있다고 느낀 쪽이다. 다만 목표는 물론 이를 달성하는 방식이 너무도 선명해서 비평적으로 뜯어볼 여지는 그다지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장면에 도달하기 전까진 말이다. 적당히 익숙하고 간간이 기발한 좀비 활극을 심드렁하게 관람하던 내 몸을 곧추세운 건 15호 칸에 있던 생존자들이 학살당하는 순간부터였다. 서사적으로 15호 칸 승객들의 전멸이라는 선택은 연상호가 세계를 해독하는 방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이 영화의 결정적 장면이라 할만하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15호 칸 승객들의 행동이 그렇게 단죄되었어야 할 만큼 이기적이었나. 생존에의 욕망과 이기심은 불가분의 관계인가. 이기심과 악은 동일 선상에서 논할 수 있는가. 연상호 감독이 그간 애니메이션을 통해 지속적으로 던진 화두가 이 한 장면에 녹아 있다.
15호 칸의 학살(이 상징적인 전멸 장면을 어떻게 칭할까 고민했다. 학살이라고 부른 이유에 대해
[송경원의 영화비평] <부산행> 속 15호 칸의 학살을 둘러싼 불투명한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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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리부트’란 말이 실감난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터져나온 ‘여혐’ 논의는 우리 사회의 성차별 문화를 폭발적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역풍도 만만치 않다. 남성들은 여혐 문화를 반성하기보다는 ‘일반화하지 마라’, ‘역차별하지 마라’라는 말로 발뺌하기 바쁘다. ‘나는 일베를 하지 않는다’는 선긋기는 ‘메갈리아’를 ‘여자 일베’로 규정하고 마녀사냥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티셔츠 인증사진의 후폭풍은 ‘일베’와 ‘오유’가 어깨동무하는 진풍경을 연출하며, 이 사회의 강고한 남성 연대를 드러낸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있어서 페미니즘 열풍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2016년 상반기 동안, 외국영화 <캐롤> <서프러제트> <로렐>, 한국영화 <아가씨> <우리들> <비밀은 없다> <굿바이 싱글>,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가 잇따라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굿바이 싱글&g
[황진미의 영화비평] 2016년 상반기 한국영화에서 그려진 여성 서사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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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개봉 기회를 얻지 못한 제프 니콜스 감독의 <미드나잇 스페셜>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간신히 조우했다. 전작 <샷건 스토리> <테이크 쉘터> <머드>에 이어 이 SF 판타지에서도 니콜스는 여전히 가족을 통해 말한다.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여덟살 소년과, 정부와 종교단체를 피해 아들과 탈주하는 아빠는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아빠, 무서워?” “그래. 무섭구나.” “아빠, 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난 너를 걱정하는 일을 좋아해.” “이제부턴 안 그래도 돼.” “난 널 영원히 걱정한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 거야.”(That’s the deal.) 마리아와 요셉이 그들의 맏아들로 인해 품은 감정이 저렇지 않았을까 상상하며 영화를 보던 나는 영화가 중반을 넘었을 때 퍼뜩 깨달았다. <미드나잇 스페셜>은, 특별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아이를 세상에 데려오고 다시 떠나보내야 하는 모든 부모에 대한 우화다.
06/29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미트 페어런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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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지지하는 쪽이든, 비판하는 쪽이든 김태곤 감독의 <굿바이 싱글>에 대해 공통으로 지적하는 아쉬움은 영화가 지닌 작위성과 상투성에 관한 것이다. 특히 영화의 뼈대가 되는 설정인 고주연(김혜수)과 김단지(김현수)의 관계 형성과 변화 과정이 억지스럽다는 평이 종종 눈에 띈다. 나 역시 주연과 단지의 만남이 작위적이고 이후 관계의 변화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라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지닌 작위성과 상투성을, 단지 이야기의 전개를 위한 게으른 선택으로 치부하는 것에 반대한다. 내게 <굿바이 싱글>의 작위성과 상투성은 영화의 메시지와 긴밀히 소통하는 의도적 장치라고 여겨진다. 이것이 곧 작위성과 상투성에 대한 긍정을 담보한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일단 작위성과 상투성이 영화의 메시지와 만나는 방식을 따져보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두 인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영화의 주요 설정들을 다시 통과해야만 한다.
복제로서의 이미지가 삶을 끌어가는 모
[김소희의 영화비평] 극단적인 두축을 나란히 붙여보는 <굿바이 싱글>의 방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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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에서 ‘살인’에 대해 가장 전복적 상상을 꽃피운 사람은 사샤 기트리다.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도덕과 규칙에서 멀리 떨어져 손가락질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정작 영화와 코미디를 조롱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꿈을 꿉시다>(1936)에서 “관객은 결혼 장면만 나오면 행복해져서 ‘좋은 코미디’로 평가하지. 그건 비극의 시작인데 말이야”라고 말했던 그다. 기트리 영화의 진경은 ‘역설’에 있다. ‘살인을 정당화했다’는 오명을 듣는 대표작 <독>(1951)에서 증인으로 나온 아주머니는 “여기서 자기 남편이나 아내가 죽기를 한번쯤 바라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그건 결혼 생활의 일부와 같아요”라고 말한 뒤 마을 신부를 끌어내 “그런 고백을 많이 듣지 않았어요?”라고 따진다.
웃으며 보다가도 죄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게 기트리 영화다. <독>은 끔찍한 결혼 생활에 환멸을 느낀 중년 남자 폴의 이야기다. 그는, 잘 씻지도 않고 낮부터 폭음을 즐기고 퉁명
[이용철의 영화비평] 살인과 죄의식을 다루는 우디 앨런의 불가해한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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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 교육부 고위 공무원의 ‘개, 돼지’ 발언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다. 대체로 국민들은 이 사건의 두 지점에서 격노했는데, 우선은 그가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발언자가 ‘교육’부 소속이라는 점이었다. ‘고직’이라는 요소가 놀람과 분노를 유발하는 데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역으로 현재 한국 국민들의 ‘고위층’의 윤리감각에 대한 기대감이 거의 최저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그의 발언은 흔히 ‘대중’이라고 칭해지는 수많은 국민에 대한 도덕적, 지적 우월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단어가 과연 이론적으로 성립 가능한 것일까? 타인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존재론적 우월감을 느끼는 순간 ‘윤리적’ 우위란 자동박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나는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인간이야”라는 말이 그 자체로 어불성설인 것처럼 말이다. 우디 앨런의 <이레셔널 맨>은 이
[김지미의 영화비평] 식자들이 결코 도달하지 못할 ‘개, 돼지’들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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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나 체중감량 업체의 거리 광고에서 우리는 ‘before & after’의 대조 이미지를 본다. 광고 속 모델의 면과 선이 매끄럽게 바뀌면 인생도 반질반질해질 것처럼 유혹한다.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는 촬영 단계에서부터 얼굴을 인식해 피부를 밝고 곱게 보정해준다. 사진은 SNS에 올라 ‘좋아요’를 부른다. 사진관에서 증명사진을 찍으면 요구하지 않아도 기미, 주근깨, 뾰루지를 없애주는 것은 물론 턱선을 갸름하게 매만진 뒤 인화해준다. 전자제품의 버튼은 미끈한 터치패드로 대체되고 있다. 기업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의 공통된 고민은, 어떻게 하면 두드러지는 선을 없애고 매끄러운 제품 표면을 만들어낼 것인가로 모인다. 솔기 하나 없는 천의무봉의 선녀 옷을 원하는 욕망은 선과 면을 최소화한 디자인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거칠고 복잡한 내부는 매끈한 표면 아래 숨는다. 원래 있던 것(before)은 욕망하는 것(after)에 가려진다.
매끈한 것들 사이에서 발견한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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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형국의 영화비평] 상실로 드러나는 진실 <데몰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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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지만, 영화 감상에 방해되기보다는 오히려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주인공이 자신의 차에 바이닐(LP)을 ‘한가득’ 싣고 어디엔가 도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다. ‘한가득’이다. 마치 주인공의 컬렉션처럼 리처드 링클레이터가 감독한 영화 <에브리바디 원츠 썸!!>에는 음악이 한가득 담겨 있다. 1960년 7월30일생. 영화 속 시간적 배경은 1980년. 과연, <스쿨 오브 락>(2003)의 감독답게 그는 음악이라는 프리즘을 경유해 자신의 20대를 향한 헌사를 바친다. 따라서 절대 방심하지 말 것. 이 영화에서 짧든 길든 흘러나오는 음악만 30곡이 훌쩍 넘는다. 그것도 모조리 역사에 흔적을 남긴 히트곡이니 음악광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선택은 없을 것이다.
놀고 놀고 또 놀고
대략의 줄거리를 먼저 살펴본다. 주인공 제이크는 대학 신입생이자 야구 선수다. 대학 생활의 부푼 꿈을 안고 이제 막 기숙사 건물에 도착한
[배순탁의 영화비평] 잠시 일상의 스위치를 끄고 <에브리바디 원츠 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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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쁘면 이쁘다고 미리 말해줬어야지. 당황스럽잖아.” <아가씨>에서 하녀 숙희(김태리)는 아가씨 히데코(김민희)를 만나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이미 전날 저녁, 처음 저택에 들어온 숙회는 아가씨의 갑작스런 비명에 깨어나 그녀를 다독거리며 자장가까지 들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본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는 깜짝 놀란다.
숙희의 입에서 튀어나온 ‘예쁘다’는 말은 이상한 표현은 아니다. 아가씨는 예쁘다. 우리는 이를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숙희의 독백이 흥미를 끄는 것은 그녀가 예쁘다는 것을 당황스럽다며,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과 연결시키는 대목이다. 그녀는 아가씨가 예뻐서 놀란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놀란 것인가? 이는 하녀로 위장 잠입해 아가씨의 돈을 갈취하려는 백작(하정우)과의 치밀한 공모의 허점을 드러내는 것인가? 아니면 그녀의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는 것인가? 어떻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예쁘다’는 표현
[김성욱의 영화비평] 아가씨는 예쁘다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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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삶, 고통과 치유를 담은 히로카즈의 씨앗들 <환상의 빛>
대학을 갓 졸업한 무렵 한 선배의 부음을 들었다. 나보다 고작 몇 학번 위 선배의 죽음은 당황스러웠다. 누군가의 죽음은 늘 “어떻게?”라는 질문을 이끈다. 그 죽음이 자의에 의한 것이라면 애도 이전에 “왜?”라는 또 다른 질문으로 접어들게 한다. 유서가 있든 없든 그 “왜?”는 늘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막다른 골목이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가 남긴 유서는 그 골목 끝에 끄적인 낙서와 같다. 어쩌면 그 “왜?”는 죽은 이가 아니라 남은 자신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선배는 술을 마셨고, 바다로 나갔다고 했다. 함께 있었던 이들은 그것이 ‘사고’인지 ‘자살’인지 시원하게 답해주지 못했다. 그 뒤로 한동안 술을 마실 때마다 그녀가 그날 들은 파도 소리는 어땠을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다 젊은 여성 둘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남자는 여자를 진심으로
[김지미의 영화비평] 상실 이후에 당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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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풍경과 스펙터클이 공존하는 <도리를 찾아서>
몇달 전 픽사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에 대한 글을 쓸 기회가 있었다. 그중 한 꼭지에서는 ‘언성 히어로’(unsung hero)를 꼽아야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캐릭터가 바로 ‘도리’였다. 한 작품에서 주인공에 필적할 만한 활약을 펼쳤으며, 픽사를 뛰어넘어 애니메이션 전체를 보더라도 낙천적 성격과 실행력을 겸비한 가장 출중한 긍정의 아이콘이며, 화려하지 않은 외모이지만 나름의 매력을 한껏 소유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도리를 꼽은 나 자신의 심미안에 적잖이 뿌듯해하는 것도 잠시, <니모를 찾아서>를 검색하자마자 더이상 도리는 언성 히어로가 아니었다. 한창 개봉 준비를 하고 있는 가장 핫한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럼 그렇지, 일개무명의(더군다나 게으르기까지 한) 평론가가 떠올린 캐릭터의 매력을 픽사에서 놓칠 리가….
<니모를 찾아서>가 개봉한 2003년으로부터 13년이 흘렀다. 그 작품에 참여했던
[나호원의 영화비평] 잊었던 것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