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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후지시로(사토 다케루)는 미지근한 자기 삶이 나쁘지 않다. 직장인 대학병원은 안정적이고 함께 사는 약혼자 야요이(나가사와 마사미)와는 관계는 원만하다. 그러나 야요이가 사라지고 그를 찾아다니면서 후지시로는 크게 흔들린다. 10년 전 여자 친구 하루(모리 나나)가 편지를 보내오는 일까지 생기면서 처음으로 인생의 방향성을 잃는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4월이 되면 그녀는>은 사랑에 겁먹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멜로드라마다. 후지시로는 야요이에게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그가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영화는 후회하고 반성하며 달라지려는 남자를 차분히 따라가며 그에게 다시금 기회를 준다. 자신의 마음을 몰랐던 야요이와 하루에게도 자각의 서사를 부여해 주변 인물까지도 새 삶을 살게 한다. 계속 날아드는 첫사랑의 편지는 아련한 감성을 가져다주면서 영화의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
[리뷰] 우왕좌왕하며 목적지에 도착하다, <4월이 되면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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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아즈마는 아이돌 데뷔를 꿈꾸며 손수 그룹 멤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끝내 각기 다른 고등학교에서 3명의 멤버를 영입하게 된다. 우아함과 세련미를 지닌 란코, 로봇 천재 소녀로 유명한 쿠루미, 그리고 아즈마의 어릴 적 친구이자 선한 매력이 풍기는 미카가 그 멤버다. 그룹 ‘동서남북’으로 활동을 시작한 아즈마와 친구들은 멤버들의 개성에 힘입어 금세 세간의 인기를 얻고 데뷔 무대를 치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 멤버의 특정 사생활이 드러나며 그룹은 위기를 맞는다. 일본의 인기 걸 그룹 노기자카46 출신의 다카야마 가즈미가 직접 쓴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출간 3개월 만에 20만부가 판매되는 등 반향을 이끈 바 있다. 실제 아이돌 출신 작가의 이야기인 만큼 단순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청춘의 성장물이라기보단 아이돌 산업에 엮인 SNS 마케팅의 허와 실, 미성년자 멤버들의 사생활 노출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적절히 강조되기도 한다.
[리뷰] 현실에 아파하고 맞서는 반(反)열혈 아이돌 서사, <트라페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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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아침 코드명 레드 원(J. K. 시먼스)이 납치된다. 그의 본명은 산타클로스. 그가 사라지는 순간 크리스마스도 사라진다. 그의 조수이자 E.L.F의 대장 칼럼 드리프트(드웨인 존슨)는 산타 납치에 연루된 해커 잭 오말리(크리스 에반스)와 콤비를 이루어 진범을 추적한다. 그는 나쁜 아이 리스트에 오른 잭을 불신한다. 2억5천만달러로 제작된 〈레드 원〉은 블록버스터와 크리스마스 가족영화의 만남이 만드는 신선한 재미로 가득하다. 우선 비주얼부터 범상치 않다. 영화는 유럽 각국의 크리스마스 신화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구축한 다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2004)를 보는 듯한 미장센과 크리처 디자인으로 그려낸다.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B급 유머 코드도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설정만 보았을 때는 프랜차이즈로 확장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지만 영화 자체는 전형적인 가족 서사를 답습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리뷰] 델 토로에 헬스하는 산타라니, 그야말로 마라탕후루 시대의 크리스마스 영화, <레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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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2세인 박수남 감독은 일본 내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가 배제한 존재를 영상과 글로 기록해온 작가, 다큐멘터리스트다. 조선인 사형수 이진우와의 옥중서신을 엮은 책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 1세대 재일조선인 피폭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8), 오키나와에 연행된 조선인 군속과 종군위안부의 한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1991)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박수남 감독에겐 아직 작품화되지 못해 열화 중인 10만피트 분량의 16mm 필름이 남아 있다. 그의 딸이자 오랫동안 박수남 감독의 프로듀서로 활약한 박마의 감독이 어머니의 새로운 눈이 되어 필름 푸티지를 디지털로 복원한다. 이 과정에서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또 다른 증언의 음성을 소환한다. 바로 박수남 감독이 직접 구술해 펼치는 개인의 미시사다. 박수남 감독은 성장 과정에서 조선학교 폐교
[리뷰] 세대와 시대를 결연하게 넘나드는 두 증언의 압도적 이중창, <되살아나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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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선생인 정 선생(노진업)에게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계기가 생긴다. 담당 반 쓰레기통에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 형태의 유서가 발견된 것이다. 교감은 대입을 앞둔 시기에 일을 키우지 말라고 제안하지만 정 선생은 상황을 좌시하지 않는다. 다소 사무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유서의 주인은 좀처럼 특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정 선생의 시야 밖에 있던 아이들, 이를테면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등생의 마음에도 슬픔이 잔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서와 학생들의 글씨체를 일일이 대조해보던 중 정 선생은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 과거엔 학업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선생님, 친구들,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외면받았던 10살 소년 요우제(황재락)가 자리한다. 요우제는 본인이 바라는 모습의 어른이 되길 꿈꾸며 꾸준히 일기를 쓰는데, 주변인들의 멸시가 지속되면서
[리뷰] 독백이 대화로 이어진다면, 죽음이 아닌 생을 꿈꿔볼 수 있기에, <연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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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의 세계를 구축한 영화의 시선은 바닥과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SF영화나 액션영화에서 비행하는 자, 낙하하는 자, 그리고 무중력상태로 우주공간에 떠 있는 자의 시선이 그러하다. 이외에도 CCTV, 인공위성, 드론과 같은 기계장치에 장착된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불안정하고 모호한 시각성을 다룬 경우가 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시선들은 그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상작가이자 비평가인 히토 슈타이얼에 따르면, 군사, 감시, 엔터테인먼트 영역 등에서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감시의 일상화로 인해 서구의 재현 양식을 지배해온 선형 원근법의 체제는 수직 원근법의 체제로 대체되었다. 그는 시각문화의 재현 양식이 변화한 결과 방향감각의 상실, 새로운 시각성, 수직성의 지배가 나타났다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방향감각 상실은 안정적인 지평선의 상실에 일정 부분 기인한다. 지평선이 상실됨에 따라 근대성을 통틀어 주체와 객체, 시간과 공간
[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불안정, 모호함, 방향감각의 상실, 바닥을 잃어버린 시선이 비추는 공허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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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진부한 답변일지는 모르겠지만 꼭 넣어야겠다. 요즘 정말 <정년이> 보는 낙으로 산다. 한주의 가장 큰 행복이다. 배우로서 나의 모습이 조금씩 대중에게 각인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점차 나라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유화 색칠하기
벌써 6년째 즐기고 있는 취미다. 밑그림 위로 정해진 색과 순서에 따라 물감을 칠하면 된다. 정신을 차려보면 밤을 새워가며 일곱, 여덟 시간씩 색칠하고 있더라. 인생에는 계획대로 안 풀리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 이건 남이 정해준 순서에 따라만 가도 너무 멋진 그림이 나온다. 정성껏 완성한 그림을 팬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가족
최근 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동거인과의 생활은 온전한 자취와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밤마다 언니와 맥주 한잔하는 소소한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요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푹 빠져 있다. “큰 힘에는
[LIST] 승희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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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극장가에 드리운 잿빛 구름이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극장가의 전통적인 극성수기는 여름방학 시즌과 10월 국경절 연휴이지만, 2024년 이 두 시기의 관객수는 전년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와 비교해도 크게 감소했다. 올해 2월에 개봉한 <백엔의 사랑>의 리메이크작 <맵고 뜨겁게>가 34억6천만위안, 7월에 개봉한 <인형 뽑기>가 33억3천만위안의 매출을 낸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흥행 영화가 없다는 점 또한 중국 극장가 부진을 나타내는 단적인 지표다. 다수의 중국 언론은 내수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률 증가 등으로 인해 젊은 관객들이 이전보다 극장 나들이에 인색해졌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아무리 소비가 둔화되어도 좋은 영화가 있다면 극장으로 걸음을 옮길 준비가 된 관객들까지 볼 영화가 없다며 불평하는 것을 볼 때, 침체의 내막은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팬데믹 이후 중국 정부는 자국 문화산업에 대
[베이징] 중국 극장가에 드리운 잿빛 구름, 중국영화 120주년을 앞둔 지금, 중국영화계의 침체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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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조승우의 <햄릿>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햄릿>은 <그을린 사랑>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담당한 연출가 신유청이 참여하고 배우 조승우의 연기 경력 24년 만의 연극 데뷔작이란 점에서 일찍이 주목받았다. 조승우 외 박성근, 정재은, 김영민, 전국환, 김종구, 이남희 등 화려한 원캐스트 출연진을 꾸려 23번의 공연을 올린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선왕이 서거한 뒤 어머니 거트루드가 숙부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한다. 선왕 유령의 전언으로 그의 죽음이 클로디어스의 계략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후 복수를 계획한다.
<햄릿>은 복수극으로 통칭되지만 보복이라는 결과보다는 칼날을 겨누는 최후의 순간까지 끝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햄릿의 내면을 더 중요하게 그린다. 그의 고뇌는 ‘복수를 하되 마음은 더럽히지 말라’는 선왕 유령의 명에서 비롯됐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며 괴로워하던 햄릿은 죽음으로 현실을 외
[culture stage] 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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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은 어떤 섹스가 하고 싶어요?”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질문을 2024년이 아닌, 성(性)이 금기시되던 1992년에 들었다면 어떨까? 금제시 작은 마을에 사는, 이름 그대로 ‘정숙’한 여성 한정숙(김소연)이라면 곤란한 미소를 짓고 눈을 피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판타지 란제리’라는 이름의 성인용품 방문판매를 시작한다. 정숙 외에 4명의 아이를 출산하고 생계 때문에 나선 서영복(김선영)과 ‘신여성’으로 살길 원했으나 결국 ‘약국 사모님’으로 불리는 오금희(김성령)와 혼자 아이를 키우며 미장원을 운영하는 ‘차밍 미장원’ 사장 이주리(이세희)가 가세하여 ‘방판 시스터즈’가 결성된다. 이들의 활동은 시작하자마자 한동네에서 오래 알고 지낸 ‘가족’ 같은 이웃, 심지어 가족에게도 배척당한다. “민망한 물건”을 판다며 매춘 업소로 신고당하거나 담벼락 낙서 테러를 당하거나 “더럽고 역겹다”는 말을 면전에서 듣기도 한다. 그래도 ‘방판 시스터즈’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수모를 당하고도 생
[오수경의 tview] 정숙한 세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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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례 감독의 여섯 번째 장편다큐멘터리영화 <열 개의 우물>(2023)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인천 지역을 무대로 활동했던 여성 노동자와 빈민 지역에서 살며 아이들을 돌봤던 탁아운동 활동가들을 방문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빈민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여러 유형의 사회운동을 초점으로 하지만 영화의 참된 주제는 일하는 여성들이 협력했던 탁아운동이라는 숨겨진 역사의 발굴에 있다. 주요 인물은 1970년대 말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투쟁에 참여한 농민 안순애와 탁아운동에 헌신한 책방 주인 김현숙·류효순, 탁아운동에 동참했다가 정치인이 된 홍미영 등이다. 누구에게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진실을 믿지 않는 다큐멘터리스트로서 김미례의 면모는 이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주목에서 확인된다.
김미례는 2003년부터 대략 3년에 한편 정도 장편다큐멘터리영화를 연출했다. 주로 현장에 살며 자본의 횡포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조건, 일상에 초점을 둔 영화들이다. 그는 레미콘 운전
무명(無名)의 투지 – 김미례 감독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