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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을 맡은 앨리슨 오웬은 ‘헨리 8세, 크롬웰 등 여러 역사적 인물을 검토해 보았지만 엘리자베스 1세만큼 현대적 감각에 맞는 인물이 없었다’고 한다. <엘리자베스>는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요, 상상력으로 역사의 틈을 메운 문학작품이 아니다. 단지 역사를 불러세워 회고하는 것은 어떤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 엘리자베스에 대해 문외한이었다고 고백하는 인도출신 감독 세카르 카푸르의 관점은 어떤 것이며, 그는 엘리자베스라는 한 권력자를 어떻게 서술하려는 것일까?
<엘리자베스>에서 무엇보다도 도전적인 관점은, 확인된 바 없이 소문으로만 남았다는 엘리자베스의 사랑이며 그녀의 상징과도 같이 알려진 처녀성일 것이다. 어두운 분위기로 일관하며 음모스릴러의 진면목을 보여주던 영화가 가장 밝게 스포트라이트를 두는 부분은 자연의 대지에 맘껏 취해 있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다. 이 생기발랄한 처녀에게 사랑이 그냥 지나쳐 갔다는 사실을 감독은 아마 믿을 수 없었던 모
영웅적인 삶을 꿈꾸며 살다간 여성, <엘리자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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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28)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소녀들은 환호했다. 호리호리한 몸매, 커다란 눈망울, 조각 같은 옆 모습까지, 마치 순정만화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듯하다고. 가슴속에 뭔가 내밀한 상처를 품고 있는 듯해, 그냥 애처롭고 가슴 저리다고. 장동건은 그렇게 9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가 됐다. 그에겐 어질고 순한 사람일 거라는 믿음도 따라붙는다. 그래서 그가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 “전 외모에 콤플렉스 있어요”라고 말해도, 그 거짓말 같은 참말을 그냥 믿게 된다. 진정한 ‘배우’가 되고 싶은 장동건에게 잘생긴 외모는 거추장스러워진 지 오래다. “외모로 인기 얻은 배우 중에 나중에라도 연기력을 인정받은 경우는 드물어요. 그렇다고 정말 연기를 못한 건 아닐 텐데요.” 그러나 얄궂게도 그의 이미지에 환호하는 이들은 늘어만 간다. 십년 전 한국에서 주윤발이 그랬듯, 지금 저 멀리 베트남에선 장동건이 최고의 ‘해외 스타’다. 베트남까지 전파를 탄 드라마 <의가형제> 덕이다. 조만간
“저 외모에 콤플렉스 있어요”, <연풍연가>의 장동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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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사랑이란 없다. 적당한 우연과 강철 같은 의지와 끈질긴 노력으로 사랑은 만들어진다. 사랑의 완성이란 곧 거듭되는 노력의 결과다. 그 짜릿한 사랑의 느낌이 그렇게 공들여 만들어낸 것이라면 얼마나 재미없을까. 운명처럼 온 것이라고 그냥 속고 마는 것이 훨씬 마음 편하다. 그렇게들 산다.
영서는 운명 같은 사랑을 점지해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동전을 떨어뜨리지만 웬걸, 사랑은 고사하고 헛웃음만 흘린다. 하지만 그에게도 ‘예정대로’ 우연은 찾아온다. 관광 안내를 맡았던 손님이 지갑을 도둑맞고, 그 소매치기는 ‘하필이면’ 태희쪽으로 도망친다. 태희는 소매치기의 칼에 손가락을 다쳐 영서의 치료를 받게 되고, 영서는 컵라면을 먹고 있는 태희를, 태희는 교통경찰과 승강이하는 영서를 우연히 보게 된다. 제주도라는 관광지에서 이곳저곳을 다니다보면 실제로 몇번씩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비를 맞으며 걷고 있는 태희를 영서가 버스에 태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태희는 휴대폰을
캐릭터로 끌고 가는 멜로영화, <연풍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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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드라마 속에서 남자들은 고소영을 ‘여신처럼’ 숭배한다. 꼬리 아홉 달린 여우라 할지라도 기꺼이 순정을 바치고(<구미호>), 어두운 청춘을 밝히는 유일한 빛으로 삼기도(<비트>)한다. 그러나 고소영은 평범하고 순진한 남자들의 맘을 송두리째 채가고 그렇게 그들의 인생을 뒤흔들면서도, 정작 자신은 사랑에 목매지 않는다는 듯 아주 무심하고 냉정한 모습일 때가 많다. 그가 평범한 남자와 맺어지는 설정은 그래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이라는 토를 달고서야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벽화 속에서 걸어나와, 살아 숨쉬며 현실의 사랑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 TV드라마 <추억>과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으로 ‘배우’임을 입증한 뒤, 고소영은 <연풍연가>에서 다시 제주도 토박이 관광가이드로 거듭났다. 사랑에 설레고 망설이는, 소탈하고 순수한 보통 사람으로의 변신은 배우 고소영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준 셈이다.
`99 여배우 트로이카 [4] - 고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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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에게 대단히 실례되는 말이지만, 전도연(26)은 미모가 대단히 뛰어난 배우는 아니다. 이마는 적당히 나와 짱구로 불리고, 모델 같은 늘씬한 몸매를 가진 것도 아니다. 관객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도 강하지 않고, 10대 청소년들이 숭배할 만한 메리트도 약하다. 그런데 왜 충무로의 제작자들은 캐스팅 0순위 그룹에 그의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걸까.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접속>에 전도연을 캐스팅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명필름의 심재명 이사는 “발군의 미모가 아닌 것은 전도연의 강점”이라고 말한다. 배우로서 배역의 선택 폭이 넓고, 다양한 캐릭터 개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외모의 영화적 이미지도 좋고 감수성이 뛰어나다. 시나리오를 논리적·지적으로 분석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해석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배우로서의 자질은 높이 살 만하다는 말이다.
‘전도연은 이제 시집만 잘가면 되겠네’하며 TV
`99 여배우 트로이카 [3] - 전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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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4일 <8월의 크리스마스>로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안았을 때 심은하(27)는 “고 유영길 감독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고인의 유작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의 당연한 예의기도 하지만, 그냥 예의는 아니었다. “그분은 훌륭한 촬영감독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인간이라는 걸 <8월의 크리스마스>를 찍으면서 비로소 알게 됐다. 영화에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가도 그분을 통해 배웠다”고 심은하는 말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배운 건 태도뿐이 아니다.
심은하는 <8월의…> 촬영 초반에 마음고생을 했다. 첫 촬영의 오케이 사인은 14번만에 떨어졌다. 게다가 허진호 감독은 뭐가 못마땅한지 설명하지 않았고 뭘 어떻게 바꾸라는 구체적인 지시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느낌이 아닌데…”라고만 할 뿐이었다. 심은하는 “솔직히 말해 짜증이 좀 났었다”고 말한다. 그전까지는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5번 이상 간 기억이 별로 없었다.
`99 여배우 트로이카 [2] - 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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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의 딸들, 충무로를 흔들다
충무로에 여배우시대가 오는 걸까. 남자배우가 정해져야 여배우뿐만 아니라 투자와 배급까지 결정되던 90년대 충무로 풍경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지 빅3으로 통하던 한석규·박중훈·최민수의 삼각체제에서 최민수가 이탈하고 박중훈이 주춤하면서 97년 후반부터는 한석규가 독주해온 형국이었다. 한때 충무로 제작자들의 집중공략 대상이던 배용준·송승헌은 무성한 소문만 남긴 채 아직 스크린과 만나지 못했고, 박신양·정우성·이정재가 선전했지만 신빅3를 형성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 틈새를 뚫고 여배우들이 뻗어올랐다. 심혜진·최진실·김혜수 등 베테랑들의 뒤를 이어, 심은하·고소영·전도연·신은경·김희선·최지우 등 브라운관의 스타들이 어느새 충무로 중심부에 진입했다. 아직 역전은 아니라도 이 가운데 몇몇은 남자스타 못지 않은 각광을 받으며 흥행의 일정 수준까지 담보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2, 3년간의 성적만
`99 여배우 트로이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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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써먹는’ 만만한 송년기획이 있다. 올해의 10대 뉴스 따위를 뽑아서 우려먹는 것이다. 심심풀이로 영화계의 10대 사건이나 뽑아보자.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 새 정부의 영화진흥정책이 어쩌고, 몇가지 뉴스를 떠올리는데 ‘춘희’가 슬그머니 얼굴을 디민다. 저 여자 누구야? 고개를 갸우뚱할라치면 뒷머리를 한가닥으로 단정하게 묶은 주차단속원 다림이도 배경처럼 서 있다. 저 여잔 또 누구야?
영화배우 심은하(26)의 ‘발견’, 올해 한국영화계의 두드러진 수확 중 하나다. 세밑 극장가에 훈풍을 몰고온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춘희를 연기한 그에 대한 관계자들의 평가는 거의 만장일치에 가깝다. ‘가뭄의 단비’라거나 ‘장마 끝의 갠 하늘’ 같다는 상찬이 지나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심은하의 가능성과 그의 연기 패턴에 ‘물이 올랐음’은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심은하가 이 영화에서 흐뭇함을 느끼는 것은 관객들의 환호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
춘희, 장마 끝 갠 하늘, <미술관 옆 동물원>의 심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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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는 ‘묘한’ 제목의 영화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제법 오래된 일이다. 지난해 청룡영화제 시나리오 부문에서 수상하고부터 “시나리오가 좋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으니 일년 정도 유명세를 치른 셈이다. 이정향 감독은 그 사이에 펜대를 놓고 메가폰을 잡았다. 올초 약관 23세의 이서군이 데뷔하긴 했으나, 충무로 현장 출신 여성감독은 이미례 감독 이후 이정향 감독이 처음. 십년 넘도록 충무로와 대학로를 넘나들며 필력과 연출력을 다진 이 감독은 진부해지기 십상인 멜로드라마를 독특한 짜임새로 솜씨있게 요리했다.
영화의 주요무대인 미술관과 동물원은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다. 공간은 제목 그 자체이기도 하며, 사건이 일어나는 주요 무대이기도 하고, 두 주인공의 취향과 성격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활기차고 본능에 솔직한 동물원의 철수와 정적이고 내향적인 미술관의 춘희. 이들의 기이한 동거가 시작되면서 시나리오 속의 인공과 다혜도, 동물원 수의사와 미술관 안내원으
유쾌한 해피엔딩, <미술관 옆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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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 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시작하고 있 다!” 홍보카피의 문구 그대로 <8월의 크리스마스>는 8월에 시작해서 12 월에 끝나는 가슴시린 사랑이야기다. 죽음을 앞둔 30대 남자와 생기 넘치 는 20살 여자의 만남이 전하는 온기는 헤어짐의 슬픔보다 먼저 와서 오래 남는다. <고스트 맘마> <접속> <편지>로 이어지는 멜로영화의 새로운 전 성기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정점을 맞는다. 여기엔 억지로 눈물을 짜 내기 위한 속임수가 없다. 일상의 순간순간이 과거와 현재의 접점으로 다 가올 때 빛바랜 기억은 훈훈한 정서와 여운으로 차곡차곡 쌓이고 문득 옛날사진을 들춰보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전적으로 주인공 정원(한석규)의 주관적시점과 객관적시점으로 이 뤄져있다. 변두리 사진관 사진사인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다. 주차단 속을 하는 여자 다림이 정원의 일상에 등장한 것도 그무렵. 그러나 둘
일상에 관한 섬세한 묘사, <8월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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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하(25)와 약속을 하라. 그러면 그는 매니저먼트사에서 제공한 벤츠를 타고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나와, 생수 아니면 당근쥬스를 시키고는, 예 쁜 눈을 빛내며 “내가 예쁘다구요? 그럴 리가!”라고 진짜 놀란 얼굴을 할 것이다. 아주 가끔은 직접 차를 몰고 오다가 배탈이 나서 길가 병원신 세를 지고, 설상가상으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두어시간을 넘긴 뒤에 탈진 한 얼굴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심은하처럼 예쁜 처녀가 정 말 미안한 얼굴로 “미안해요”를 열번쯤 되풀이하면 오랫동안 꽁한 척하 기가 실로 난감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심은하와 만나기 어려운 것은, 스크린에서도 마찬가지다. <8월의 크리스 마스> 전까지, 심은하는 1백여편의 시나리오를 거절했다. 그렇지 않았더 라면, 그는 진즉 ‘한석규의 여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인샬라 >도 애초엔 한석규, 심은하 짝을 캐스팅할 생각이었고, <접속> 또한 그랬 으니까. 영화
크리스마스의 천사,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심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