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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은 진즉에 망했고 딸마저 가출을 택했다. 후배에게 빚 독촉까지 당하는 재학(지대한)에게 남은 것은 30년지기 친구들뿐이다. 해사고등학교의 독수리 오형제를 이끌던 전성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구차하게 동창에게 손을 내미는 신세다. 염치를 무릅쓰고 건설사 대표가 된 친구에 빌붙어 재개발 용역 일을 돕던 재학에게 의문의 전화가 온다. 수화기 너머로 잊고 있던 첫사랑 경화(손지나)의 이름이 들리자 재학은 깊은 추억에 잠긴다. <하우치>는 실패한 중년 남성이 첫사랑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부산 사나이를 외치며 마초이즘의 체면을 중시하는 영화를 요약하자면 ‘중년 판타지’다. 문제는 일말의 판타지조차 작동하기 어렵게 하는 영화의 만듦새다. 화교 출신 첫사랑을 만두와 기초적인 중국어 단어 몇개로 갈음하려는 등 성의 없는 설정이 난무한다. 지대한, 손지나, 김병옥 등 베테랑 배우들의 분전에도 영화를 살리기엔 역부족이다.
[리뷰] 바래고 찢어진 누런 장판엔 클리셰조차 안 붙는다, <하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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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드림을 품고 평생 일만 하며 성실하게 살아온 40년차 직장인 제리(제리 슈). 은퇴 후 검소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중국 본토에서 뜻밖의 전화 한통을 받는다. 바로 그가 대규모 국제 돈세탁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억울하게 체포당할 위기에 놓인 제리는 누명을 벗기 위해 적극적으로 경찰 조사에 협조한다. 비밀경찰이 된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하나씩 완수한다.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범죄 규모에 기묘한 희열을 느낀 그는 노년의 삶이 지루하지만은 않다. <본인 출연, 제리>는 범죄 사건에 연루된 당사자가 직접 각본을 쓰고 연기한 범죄스릴러물이다. 홈비디오 형식을 빌린 영화는 캠코더를 통해 걸러진 거친 이미지로 가득하다. 자칫 뻔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열화된 이미지가 현실과 극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진가를 발휘한다. 주인공이 몸소 체득한 교훈을 담담하게 토로할 때 스크린은 뜨거운 울림으로 가득해진다.
[리뷰] 의연하게 스스로를 바라보는 구원의 시네마, <본인 출연, 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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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 후지시로(사토 다케루)는 미지근한 자기 삶이 나쁘지 않다. 직장인 대학병원은 안정적이고 함께 사는 약혼자 야요이(나가사와 마사미)와는 관계는 원만하다. 그러나 야요이가 사라지고 그를 찾아다니면서 후지시로는 크게 흔들린다. 10년 전 여자 친구 하루(모리 나나)가 편지를 보내오는 일까지 생기면서 처음으로 인생의 방향성을 잃는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4월이 되면 그녀는>은 사랑에 겁먹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기까지의 여정을 담은 멜로드라마다. 후지시로는 야요이에게 진심을 다하지 않았다는 걸 그가 떠나고 나서야 깨닫는다. 영화는 후회하고 반성하며 달라지려는 남자를 차분히 따라가며 그에게 다시금 기회를 준다. 자신의 마음을 몰랐던 야요이와 하루에게도 자각의 서사를 부여해 주변 인물까지도 새 삶을 살게 한다. 계속 날아드는 첫사랑의 편지는 아련한 감성을 가져다주면서 영화의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다.
[리뷰] 우왕좌왕하며 목적지에 도착하다, <4월이 되면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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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1학년 아즈마는 아이돌 데뷔를 꿈꾸며 손수 그룹 멤버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끝내 각기 다른 고등학교에서 3명의 멤버를 영입하게 된다. 우아함과 세련미를 지닌 란코, 로봇 천재 소녀로 유명한 쿠루미, 그리고 아즈마의 어릴 적 친구이자 선한 매력이 풍기는 미카가 그 멤버다. 그룹 ‘동서남북’으로 활동을 시작한 아즈마와 친구들은 멤버들의 개성에 힘입어 금세 세간의 인기를 얻고 데뷔 무대를 치르기까지 한다. 그러나 한 멤버의 특정 사생활이 드러나며 그룹은 위기를 맞는다. 일본의 인기 걸 그룹 노기자카46 출신의 다카야마 가즈미가 직접 쓴 원작 소설은 일본에서 출간 3개월 만에 20만부가 판매되는 등 반향을 이끈 바 있다. 실제 아이돌 출신 작가의 이야기인 만큼 단순히 아름답고 서정적인 청춘의 성장물이라기보단 아이돌 산업에 엮인 SNS 마케팅의 허와 실, 미성년자 멤버들의 사생활 노출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적절히 강조되기도 한다.
[리뷰] 현실에 아파하고 맞서는 반(反)열혈 아이돌 서사, <트라페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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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아침 코드명 레드 원(J. K. 시먼스)이 납치된다. 그의 본명은 산타클로스. 그가 사라지는 순간 크리스마스도 사라진다. 그의 조수이자 E.L.F의 대장 칼럼 드리프트(드웨인 존슨)는 산타 납치에 연루된 해커 잭 오말리(크리스 에반스)와 콤비를 이루어 진범을 추적한다. 그는 나쁜 아이 리스트에 오른 잭을 불신한다. 2억5천만달러로 제작된 〈레드 원〉은 블록버스터와 크리스마스 가족영화의 만남이 만드는 신선한 재미로 가득하다. 우선 비주얼부터 범상치 않다. 영화는 유럽 각국의 크리스마스 신화를 하나의 세계관으로 구축한 다음 기예르모 델 토로의 <헬보이>(2004)를 보는 듯한 미장센과 크리처 디자인으로 그려낸다. 영화 곳곳에 드러나는 B급 유머 코드도 인상적이다. 흥미로운 설정만 보았을 때는 프랜차이즈로 확장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지만 영화 자체는 전형적인 가족 서사를 답습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리뷰] 델 토로에 헬스하는 산타라니, 그야말로 마라탕후루 시대의 크리스마스 영화, <레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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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조선인 2세인 박수남 감독은 일본 내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 등 역사가 배제한 존재를 영상과 글로 기록해온 작가, 다큐멘터리스트다. 조선인 사형수 이진우와의 옥중서신을 엮은 책 <죄와 죽음과 사랑과>(1963), 1세대 재일조선인 피폭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8), 오키나와에 연행된 조선인 군속과 종군위안부의 한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아리랑의 노래-오키나와의 증언>(1991)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박수남 감독에겐 아직 작품화되지 못해 열화 중인 10만피트 분량의 16mm 필름이 남아 있다. 그의 딸이자 오랫동안 박수남 감독의 프로듀서로 활약한 박마의 감독이 어머니의 새로운 눈이 되어 필름 푸티지를 디지털로 복원한다. 이 과정에서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또 다른 증언의 음성을 소환한다. 바로 박수남 감독이 직접 구술해 펼치는 개인의 미시사다. 박수남 감독은 성장 과정에서 조선학교 폐교
[리뷰] 세대와 시대를 결연하게 넘나드는 두 증언의 압도적 이중창, <되살아나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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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선생인 정 선생(노진업)에게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계기가 생긴다. 담당 반 쓰레기통에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편지 형태의 유서가 발견된 것이다. 교감은 대입을 앞둔 시기에 일을 키우지 말라고 제안하지만 정 선생은 상황을 좌시하지 않는다. 다소 사무적으로 아이들을 대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유서의 주인은 좀처럼 특정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주인을 찾는 과정에서 정 선생의 시야 밖에 있던 아이들, 이를테면 학교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우등생의 마음에도 슬픔이 잔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서와 학생들의 글씨체를 일일이 대조해보던 중 정 선생은 잊고 있던 과거를 떠올린다. 그 과거엔 학업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선생님, 친구들,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외면받았던 10살 소년 요우제(황재락)가 자리한다. 요우제는 본인이 바라는 모습의 어른이 되길 꿈꾸며 꾸준히 일기를 쓰는데, 주변인들의 멸시가 지속되면서
[리뷰] 독백이 대화로 이어진다면, 죽음이 아닌 생을 꿈꿔볼 수 있기에, <연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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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의 세계를 구축한 영화의 시선은 바닥과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SF영화나 액션영화에서 비행하는 자, 낙하하는 자, 그리고 무중력상태로 우주공간에 떠 있는 자의 시선이 그러하다. 이외에도 CCTV, 인공위성, 드론과 같은 기계장치에 장착된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서 불안정하고 모호한 시각성을 다룬 경우가 있다. 이러한 근거 없는 시선들은 그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으며 그 누구에게도 귀속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상작가이자 비평가인 히토 슈타이얼에 따르면, 군사, 감시, 엔터테인먼트 영역 등에서 이루어진 기술의 발전과 그에 따른 감시의 일상화로 인해 서구의 재현 양식을 지배해온 선형 원근법의 체제는 수직 원근법의 체제로 대체되었다. 그는 시각문화의 재현 양식이 변화한 결과 방향감각의 상실, 새로운 시각성, 수직성의 지배가 나타났다면서 다음과 같이 쓴다. “방향감각 상실은 안정적인 지평선의 상실에 일정 부분 기인한다. 지평선이 상실됨에 따라 근대성을 통틀어 주체와 객체, 시간과 공간
[이도훈의 영화의 검은 구멍] 불안정, 모호함, 방향감각의 상실, 바닥을 잃어버린 시선이 비추는 공허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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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진부한 답변일지는 모르겠지만 꼭 넣어야겠다. 요즘 정말 <정년이> 보는 낙으로 산다. 한주의 가장 큰 행복이다. 배우로서 나의 모습이 조금씩 대중에게 각인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점차 나라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지고 있는 것만 같다.
유화 색칠하기
벌써 6년째 즐기고 있는 취미다. 밑그림 위로 정해진 색과 순서에 따라 물감을 칠하면 된다. 정신을 차려보면 밤을 새워가며 일곱, 여덟 시간씩 색칠하고 있더라. 인생에는 계획대로 안 풀리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 이건 남이 정해준 순서에 따라만 가도 너무 멋진 그림이 나온다. 정성껏 완성한 그림을 팬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너무 행복하고!
가족
최근 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동거인과의 생활은 온전한 자취와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밤마다 언니와 맥주 한잔하는 소소한 시간이 정말 행복하다.
<스파이더맨> 시리즈
요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푹 빠져 있다. “큰 힘에는
[LIST] 승희가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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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극장가에 드리운 잿빛 구름이 사그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중국 극장가의 전통적인 극성수기는 여름방학 시즌과 10월 국경절 연휴이지만, 2024년 이 두 시기의 관객수는 전년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와 비교해도 크게 감소했다. 올해 2월에 개봉한 <백엔의 사랑>의 리메이크작 <맵고 뜨겁게>가 34억6천만위안, 7월에 개봉한 <인형 뽑기>가 33억3천만위안의 매출을 낸 것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흥행 영화가 없다는 점 또한 중국 극장가 부진을 나타내는 단적인 지표다. 다수의 중국 언론은 내수경기 침체와 청년 실업률 증가 등으로 인해 젊은 관객들이 이전보다 극장 나들이에 인색해졌다고 진단한다.
하지만 아무리 소비가 둔화되어도 좋은 영화가 있다면 극장으로 걸음을 옮길 준비가 된 관객들까지 볼 영화가 없다며 불평하는 것을 볼 때, 침체의 내막은 다양한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팬데믹 이후 중국 정부는 자국 문화산업에 대
[베이징] 중국 극장가에 드리운 잿빛 구름, 중국영화 120주년을 앞둔 지금, 중국영화계의 침체 원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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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조승우의 <햄릿>이 무대에 오른다. 연극 <햄릿>은 <그을린 사랑> <엔젤스 인 아메리카>를 담당한 연출가 신유청이 참여하고 배우 조승우의 연기 경력 24년 만의 연극 데뷔작이란 점에서 일찍이 주목받았다. 조승우 외 박성근, 정재은, 김영민, 전국환, 김종구, 이남희 등 화려한 원캐스트 출연진을 꾸려 23번의 공연을 올린다. 덴마크 왕자 햄릿은 선왕이 서거한 뒤 어머니 거트루드가 숙부 클로디어스와 재혼한 상황에 혼란스러워한다. 선왕 유령의 전언으로 그의 죽음이 클로디어스의 계략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된 후 복수를 계획한다.
<햄릿>은 복수극으로 통칭되지만 보복이라는 결과보다는 칼날을 겨누는 최후의 순간까지 끝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햄릿의 내면을 더 중요하게 그린다. 그의 고뇌는 ‘복수를 하되 마음은 더럽히지 말라’는 선왕 유령의 명에서 비롯됐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라며 괴로워하던 햄릿은 죽음으로 현실을 외
[culture stage] 햄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