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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노윤서)은 동생 가을(김민주)과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다. 청각장애를 지닌 수영선수 가을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다. 매일 수영장에 들러 동생의 훈련을 살피고 남은 시간엔 알바를 하는 것이 여름의 일과다. 반복되던 여름의 삶에 용준(홍경)이 등장한다. 취업 준비 도중 잠시 부모의 도시락 가게 일을 돕게 된 용준은 배달을 다녀오다 마주친 여름에게 첫눈에 반한다. 가까워지려는 용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름에겐 용준에게 내어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청설>은 동명의 대만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청춘의 일상을 포착하면서도 각자 인생의 방향키를 잡아나가는 모습에 주목한 점이 인상적이다. 인물들의 관계는 느리게 변화하는데, 천천히 굴곡을 그리는 이들의 감정을 영화는 서둘러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장애가 사랑의 장벽이 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주지시킨다.
[리뷰] 눈과 몸짓으로 건네는 사랑의 언어, 정교히 조성된 청춘의 세계, <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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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스트리퍼 아노라(마이키 매디슨)에게 러시아어를 할 수 있는 댄서가 있느냐는 요청이 들어온다. 러시아계 이민자 할머니 덕분에 소통이 가능한 아노라가 만난 남자는 러시아 신흥 재벌 집안의 아들 이반(마르크 예이델시테인)이다. 첫눈에 아노라에게 호감을 느낀 이반은 일주일만 자신의 여자 친구가 되어달라는 거래를 제안하고, 둘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충동적인 결혼식을 올린다. 영화의 3분의 1 지점까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귀여운 여인>을 위시한 신데렐라 스토리처럼 흘러가던 영화는 아노라와 이반의 결혼을 막기 위해 투입된 이반 부모의 하수인 3인방이 등장하면서 반전된다. <스타렛> <탠저린> <플로리다 프로젝트> <레드 로켓> 등 성 노동자 캐릭터를 경유해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룬 숀 베이커는 재벌과 스트리퍼의 계급차가 빚어내는 소동극을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냉정하고 씁쓸하게 관찰한다.
[리뷰] 숀 베이커의 ‘성 노동자 한 우물 파기’가 <귀여운 여인>을 만났을 때, <아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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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취재팀의 종군기자 므스티슬라우 체르노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임박했음을 느끼고 마리우폴로 향한다. 도시가 포위당한 뒤에도 팀은 전쟁의 실상을 남겨야겠다는 신념으로 20일 동안 잔류하기로 한다. 그들의 카메라는 실시간으로 희생자의 얼굴과 공포에 떠는 주민들의 얼굴, 폭격 현장 등을 세계에 알린다. 러시아는 이를 ‘정보 테러’라며 규탄한다.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장을 생생히 담는다. 감독은 전쟁의 비인간성을 최대한 건조하게 담는다. 핸드헬드로 현장의 공기를 담되 줌인 등으로 현장의 스펙터클을 부각하지 않는다. 거리두기를 하며 고통스러운 이미지를 응시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영화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할 뿐만 아니라 가짜 뉴스 등 의 보도에 대한 반응을 조망하면서 ‘전쟁 한가운데에서 카메라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품게 한다.
[리뷰] 리뷰를 쓰는 일이 부끄러운 95분의 아비규환, <마리우폴에서의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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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고가 그렇듯 세강이라는 이름의 여고에도 괴담이 존재하는데, 이런 이야기다. 1998년 개교기념일 밤 고3 학생들이 학교에서 귀신들과 숨바꼭질을 벌여 이긴 결과 수능 만점자가 되었다는 것. 한참 뒤 개교기념일을 앞두고 이 괴담의 실체가 담긴 비디오테이프의 봉인을 푼 자는 3학년 지연(김도연)이다. 테이프를 열어본 사람은 귀신과 숨바꼭질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연은 성적 고민을 하는 촬영감독 지망생 현정(강신희)과 배우 지망생 은별(손주연), 특별히 스카우트한 종교 동아리 2학년 민주(정하담)와 함께 이 미션에 참여한다.
김민하 감독의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을 완성도가 높고 긴장감이 팽팽한 공포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성적 중심의 경쟁사회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세련된 화법으로 던지는 영화도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이러한 부족함을 따지지 않게 하는 매력이 있다. 1990년생 젊은 감독의 첫 장편다운, 사방팔방으로 발산하는 엉뚱한 에너지가 막강하
[리뷰] 마음을 너그럽게 하는 무정형의 에너지,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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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31년 만에 제작한 새 장편영화는 야누스 동상이 마당을 지키고 있는 1947년 스페인 교외의 전원주택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죽기 전에 딸의 눈빛을 한번만 보고 싶다는 의뢰인이 사설탐정과 나누는 대화다. 탐정은 곧 아름다운 상하이 소녀의 사진 한장을 건네받아 재회의 임무를 위해 멀리 떠난다. 그리고 탐정 역을 맡은 배우 훌리오(호세 코로나도)도 촬영을 마칠 때쯤 영영 사라져버렸다. 16mm 화면 위로 야누스 동상이 세워진 가을 정원의 풍경이 사이즈가 다른 세개의 컷으로 디졸브되는 이 고아한 영화는 아쉽게도 <클로즈 유어 아이즈>가 아니다. 화면이 디지털 전환되면, 미해결 사건을 추적하는 TV 탐사프로그램의 유행이 한창인 2012년이다. 필름의 촉감이 순식간에 휘발되자 당혹스러운 듯 보이는 얼떨떨한 얼굴의 남자도 나타난다. 22년 전, 배우의 실종과 함께 자신의 두 번째 연출작 <작별의 눈빛>을 미완으로 남겨야 했던 장년의 영
[리뷰] 셀룰로이드의 정령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영화가 망각되지 않는 곳으로, <클로즈 유어 아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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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런의 아이맥스영화 <오펜하이머>는 클로즈업에 대한 인식의 틀을 전복한 영화였다. 아이맥스란 거대하고 광활한 자연의 풍경을 카메라로 담아내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감각을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기에 초기 아이맥스는 다큐멘터리에 주로 사용되었다. 이후 블록버스터영화에서 규모감 있는 장면이나 공간감 있는 롱숏을 임장감 있게 담아내는 데에 적합한 포맷으로 인식돼왔다. 이 고정관념을 깬 영화가 <오펜하이머>다. 영화는 70mm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의 얼굴 클로즈업을 화면 가득 담아낸다. 그전까지 극 중 인물의 얼굴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담아낼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던, 아이맥스 포맷의 새로운 시도였다.
아이맥스 카메라의 70mm 필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는 영화들보다 4배 이상 넓은 면적에 이미지가 기록된다. 카메라에 기록되는 이미지의 면적이 클수록 화면의 심도는 얕아진다. 롱숏과 풀숏만 주로 찍던 아이맥스 카메라가 인물에
[비평] 클로즈업의 이데올로기, <조커: 폴리 아 되>가 찍은 얼굴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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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인물은 때로 캐릭터를 뛰어넘는 하나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알리 아바시의 <어프렌티스>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그 이름, 도널드 트럼프(세바스티안 스탄)를 성공한 사업가나 정치인 개인보다는 성공과 권력의 화신으로 다룬다. 이때 그의 성공은 단순한 물질적, 경제적 성취를 넘어서는 것이다. 배우 제러미 스트롱이 ‘(이 영화는)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 바와 같이, 아바시는 트럼프가 ‘만들어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그 탄생의 본질을 파고들며, 그가 어떻게 성공과 권력의 상징이 됐는지를 조명한다.
“당신 해고야!”(You’re fired!)라는 유행어와 함께 트럼프의 유명세를 높여준 <NBC> TV쇼 <어프렌티스>로부터 제목을 따온 영화답게 이 영화가 초반에 무게를 두는 건 어설픈 ‘견습생(트럼프)’이 아닌, 거침없이 독설을 쏟아내는 ‘멘토(로이 콘)’쪽이다. 악명 높은 변호사 콘(제러미 스트롱)은 트럼프에게 실제 큰 영향을
[비평] 트럼프의 기원, <어프렌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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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개봉한 <리볼버>는 관객 24만명을 동원했다. 평단의 반응 역시 뜨거운 편은 아니다. <씨네21>(1471호)은 이에 대한 “자그마한 항변”으로 ‘<리볼버>는 문제작인가?’라는 기획을 마련했는데, 김영진 평론가의 글을 제외하고는 다소 소극적인 방어처럼 읽힌다. 10월 초, 부일영화상은 <리볼버>에 최우수작품상을 수여했다. 영화제에서의 수상이 언제나 작품의 진가를 알아본 결과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부당하게 평가절하된 <리볼버>의 경우라면 반갑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리볼버>가 ‘2024년의 영화’로 앞으로 더 말해지길 희망하며, 이 작품이 안긴 잊을 수 없는 감동을 뒤늦게 싣는다.
<리볼버>를 향한 비판 중 일부는 액션은 미약한데 말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장르물로서 대사가 과하게 설명적이라는 것이다. 오승욱 감독도 이 영화가 ‘대화의 영화’라고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그가
[남다은 평론가의 RECORDER] 정직한 교환, 마침내 한 사람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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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1월9일과 1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질문’ 기획전이 열린다. 양일간 총 4번의 토론회가 진행된다. 11월9일에는 김수연 영화연구자가 ‘한국영화, 새로움의 시작: 1960~70년대 실험영화의 뉴시네마 실천’을 주제로 발제한다. 토론회 사회는 유운성 영화평론가가 맡으며 토론자로는 김곡 감독이 참가한다. 이어서 유운성 영화평론가가 ‘창작자의 영화론은 왜 없는가?’를 발표한다. 장건재 감독이 영화론 발표자로 나선다. 1980년대 한국의 영화 청년들이 많은 ‘영화론’을 내놓았던 반면에 지금 한국영화계에 영화 창작자들의 영화론이 부족한 이유를 돌아본다. 11월16일엔 이선주 학술연구 교수가 ‘마니아, 시네필, 아트필: 199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예술영화 담론과 관객문화’라는 주제를 던져 “동시대 관객문화가 예술영화의 다름과 다양성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살핀다. 박동수 영화평론가가 토론 사회를 맡고 김병규 영화평론가가 토론자로 자리한다. 마지막으로 박동수 영화평론가
‘한국영화에 대한 질문’ 토론회 개최, 11월9일, 1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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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를 실눈 뜨고 보는 신예 강신희가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의 오디션에 응한 건 “연기할 기회를 얻고 싶다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미팅에서 어느샌가 모두를 웃게 하는 친화력과 자신감으로 따낸 역할은 세강여고 4인조 중 3학년 현정이다. 현정은 카메라를 들 근력을 기르기 위해 핑크 아령을 들고 다닐 만큼 촬영감독이란 확실한 꿈이 있었지만 공부에 있어선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런 현정이 수능 만점이라는 보상이 걸린 귀신과의 숨바꼭질에 동참한다. 배우 강신희는 시나리오를 읽는 동안 숨바꼭질을 결심한 소녀들의 동기에 주목했다. “지면 본인이 사라지는 목숨 건 게임인데 다들 얼마나 절실하면 도전했을까. 그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 작품이 웃음을 주면서도 모두가 공감할 고민까지 짚어줘서 마음에 쏙 들었다.” 배우로부터 영감을 받은 김민하 감독은 현정을 백지상태로 되돌렸고 강신희는 도화지 위에 자기 색깔을 듬뿍 입혔다. 워낙 걱정이 많은 성격이라 “너의 느낌
[인터뷰] 내 손으로 빚어낸다는 희열,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배우 강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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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의 무당, <주여!>의 구원을 바라는 개신교 신자, <신세계로부터>의 화신교 신도 명순,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의 악마 그레모리까지. 정하담은 종교와 한몸인 여성을 자주 연기했다. 그런 정하담이 이번 작품에서는 일본어를 공부하다 그만 일본 신을 접해 종교부 동아리실에 사당을 차려버린 고2 민주로 분했다. “처음엔 현정 역을 제안받았다. 막상 시나리오를 읽으니 민주가 눈에 들어오더라. 그래서 ‘혹시 민주를 연기할 수는 없는 거냐?’고 의견을 내보았다. 다행히 감독님도 민주가 나와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흔쾌히 역할을 바꿔주었다.” 이후 김민하 감독의 단편영화를 모두 찾아본 정하담은 “진중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내게, 통통 튀고 발랄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님이 출연을 제안하는 기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은 종교 말고도 정하담이 출연한 수많은 작품과 연결점을 찾을 수 있
[인터뷰] 함께 걸으면 더 먼 길을 갈 수 있어,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배우 정하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