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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일기’는 단구나 동요 같은 간결한 형식에 계절의 변화와 감미를 담은 기록이라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다. 계절 순서에 따라 배치되어 있으나 순서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읽어달라는 안내에 따라, 북쪽 찬 공기가 불쑥 내려오곤 하는 요즘의 쌀쌀함에 어울리게 4부 가을 일기로 가본다. “매미 소리 잦아들고/ 귀뚜라미 울면” (<입추>)을 읽으며 맞아, 가을이 시작하면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지지, 라고 고개를 끄덕여본다. 또 공기도 어느새 습기 없이 차갑다. “빨래가 잘 마른다… 바구니 속에/ 웅크린 고양이/ 코끝이 차다.”(<처서>) <가을볕>이라는 제목의 시는 창문으로 햇빛이 따뜻하게 떨어지는 바닥 공간을 찾아 잠든 고양이 그림과 함께 “고양이는 신통해/ 따뜻한 이부자리를/ 잘도 찾아낸다” 하고 다정하게 읊조린다. 홍옥, 가을장마, 도토리, 솔방울 같은 가을의 단어들이 포근하게 다가온다. 곧 다가올 겨울맞이를 위해 1부 겨울 일기로 가면, “군고구마
씨네21 추천도서 - <서릿길을 셔벗셔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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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릿길을 셔벗셔벗_싱고 지음
굿바이, 욘더_김장환 지음
시 보다 2022_신이인, 안태운, 윤은성, 윤혜지, 임유영, 임지은, 조용우 지음
헤어질 결심 스토리보드북_이윤호, 박찬욱 지음
나주에 대하여_김화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1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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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스> 앤 카슨 지음 / 윤경희 옮김 / 봄날의책 펴냄
<메모리얼 드라이브> 나타샤 트레스웨이 지음 /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펴냄
시인 나타샤 트레스웨이의 <메모리얼 드라이브>의 부제는 ‘딸의 비망록’이다. 그의 어머니는 이혼한 두번째 남편에게 마흔살에 살해당했다. 거의 30여년이 지나, 트레스웨이는 어머니와 어머니가 살해당한 사건을 둘러싼 기억을 책으로 썼다. 1부에서는 아직 위기를 피할 수 있을 듯 느껴지지만 2부에 이르면 어머니가 폭행당한 사실에 대한 경찰 조서를 비롯해 파국의 징후가 여기저기서 굉음을 낸다. 살해당하기 전까지 어머니가 얼마나 법적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는지부터 사후의 재판 기록까지 글이 이어지는 동안,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외친 “안돼, 안돼, 안돼”라는 소리를 상상하는 비통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앤 카슨의 <녹스>는 192쪽의 종이가 아코디언처럼 하나로 이어진 형태의 책. 장인들의 수작업을 거
씨네21 추천도서 - <녹스>, <메모리얼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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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SNS에서 나폴리탄 괴담이 유행했다. 나폴리탄 괴담은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해설하지 않고 미스터리한 분위기만 묘사하는, 기승전결 중 기승 구간이 강조되고 전결은 생략된 형태의 짧은 괴담이다. 한국에서는 나폴리탄 괴담이 매뉴얼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에 실린 ‘궁녀 규칙 조례’의 항목 역시 그렇다. 가장 눈에 띄는 항목은 이런 식이다. “궁궐 내에 설치된 우물은 어떠한 것이라도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약 사용 중인 우물을 발견했다면 그 안을 들여다보지 마십시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경위가 어찌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오싹하다. 그런 이야기와 괴담이 잔뜩 실린 책이 바로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이다.
때는 태종 6년(1406), 아직 고려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 조선 초가 배경이다. 경복궁 내명부에서 일하는 궁녀들에게만 전해 내려오는 규칙이 있는데, 실제로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모은 금기
씨네21 추천도서 -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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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가을 2022>에선 세편의 단편소설을 만난다. 위수정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은 노년의 삶이 생동감을 느끼는 지점을 짚어낸다. 2020년대 대중문화를 말하는 동시에 나이 드는 몸을 돌아보게 한다. 열정이 마음만큼이나 몸의 일임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60대인 원희는 친구를 따라 간 연주회에서 만난 젊은 피아니스트 고주완에게 끌림을 느낀다. 원희는 오랜 시간 잊고 지낸 감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심지어 고주완이 즐겨 연주하는 버르토크나 프로코피예프 같은 20세기 작곡가는 원희가 좋아하지 않는 불협화음이다. 그리고 고주완을 경유해 삶의 불협화음을 끌어안는 방향으로 생각이 흐른다. 이서수의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인간관계를 다룬다. 모임을 가진 뒤 한 사람이 코로나19에 걸리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2020년대의 응급실 풍경부터 결혼식 참석을 거부할 빌미로서의 코로나19, 그리고 도시에서의 가난을 두루 훑어간다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가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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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인간>의 주인공 나쓰키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두살 터울인 언니가 있는데,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는 나쓰키는 자신이 마법소녀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고, 사촌인 유우와는 연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유우는 자신이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 설정만 보면 기묘하지만, 읽어가면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나쓰키가 마법소녀가 된 뒤 익힌 마법으로는 ‘사라지기’라는 것이 있다. 진짜 사라지는 것은 아니고 숨을 죽이고 기척을 숨긴다는 뜻이다. ‘사라지기’를 쓰면 부모와 언니는 단란한 3인 가족이 되어 시간을 보낸다는 식이다. 유일하게 말이 통한다고 생각하는 나쓰키와 유우는 몰래 부부가 되기로 한다. 둘이 만든 규칙 중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남을 것.” 하지만 그 생존이라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학교에서 나쓰키를 특별히 잘 돌봐주는 이가사키 선생은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지만, 나쓰키를 대상으로 한 성추행의 강도를
씨네21 추천도서 - <지구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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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통일신라 시대의 장군 장보고의 사망에서 시작한다. 장보고를 따르다 일이 없어진 장희는 우연히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멀끔한 얼굴의 서생 한수생을 구해주고, 청해진의 해체 이후 난장판이 되어버린 바다 위 해적의 세계로 휘말리고 만다. 이들은 돌덩이를 날려보내는 장치를 배에 싣고 다니는 서해 해적 대포고래에 잡히기도 하고, 신라를 무찌른 다음 멸망한 지 200년이 지난 백제를 다시 세우자는 허황된 꿈 아래 공주를 모시고 섬에 터를 잡은 해적을 만나기도 한다. 장희와 한수생은 잘 어울리는 콤비다. 평생 농사를 짓고 글만 읽으며 살아온 데다 임기응변과는 거리가 멀어도 신의를 지키는 우직한 한수생과, 돈이 우선이고 나만 살면 된다는 꾀 많은 생존주의자이면서도 ‘세상의 온 바다를 치마폭에’ 담던 포부가 있어 이기적이지만은 않은 장희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며 모험을 겪는다. 이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개인의 욕망과 사람간의 연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룬다. 장희가 특유의 화술로 적의 허점
씨네21 추천도서 - <신라 공주 해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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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페기 구겐하임은 광산업과 제련업으로 부를 축적한 구겐하임 집안 출신으로, 일찍부터 서점 아르바이트를 자처하는 등 상류층 여성의 모범적 인생을 거부한다. 유럽으로 떠난 페기는 초현실주의를 비롯하여 21세기 초반 격동의 시대와 어우러진 수많은 예술 운동을 접하고 작가들과 사랑과 우정을 나눈다. 한때 예술가 남편 곁에서 자신 없는 모습으로 폭력을 견디며 순종적인 시간을 보내기도 했으나 점차 자신만의 안목으로 미술 작품을 하나둘 사들이며 컬렉터로서의 인생을 개척한다. 페기의 인생이 가장 극적인 순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가 파리로 닥치는 와중에 열심히 작품을 사들인 때일 것이다. 대다수 시민이 피난을 떠난 가운데 미국인이라 해도 유대인이면 잡혀갈 수 있는 아찔한 상황 속에서, 페기는 열정적으로 모은 작품을 가구로 포장해서 미국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다. 페기는 뉴욕에서 ‘금세기 예술 갤러리’를 열어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유럽 예술과 미국 예술을 혼합한 현
씨네21 추천도서 - <페기 구겐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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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기 구겐하임_메리 V. 디어본 지음
신라 공주 해적전_곽재식 지음
지구별 인간_무라타 사야카 지음
소설 보다: 가을 2022_김기태, 위수정, 이서수 지음
잠 못 드는 밤의 궁궐 기담_현찬양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10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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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이 영영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고통스러운 예감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무척이다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어린 시절>) “일상이라는 게 계속되기나 할까? 온 세계가 불타고 있는데 비고 F.가 나와 결혼해줄까? 히틀러의 사악한 그림자가 덴마크에 드리울까?” (<청춘>) “나는 달라지겠다고 약속했고, 그런 다음에는 그 약속을 깼다.”(의존)
내면의 불안이 어디로부터 기원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삶 전체에 어떤 의미로 작용하는지를 회고록의 형식으로 써낸 토베 디틀레우센의 회고록은,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니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격하게 솔직하다. 자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역사를 재구축하는 작업은 작가가 60살의 나이로 죽기 몇년 전에 이루어졌는데, 고통스럽지 않은 순간들이 안긴 고통과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남긴 기쁨을 절묘하게 포착해 보여준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 덴마크의 어떤 가정 내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몇번의 결혼
씨네21 추천도서 - <어린 시절-코펜하겐 삼부작 제1권>, <청춘-코펜하겐 삼부작 제2권>, <의존-코펜하겐 삼부작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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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보다 더 설득력 있는 언어가 있다면 ‘사랑할 땐 누구나 시인이 된다’일 것이다. 아니, 사랑할 때에는 평소에 무심히 넘기던 시조차도 사랑의 밀어처럼 여겨진다. 진은영 시인이 10년 만에 낸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지금 사랑에 빠진 이라면 애틋하게 매만지며 읽을 시집이다. 해설을 쓴 신형철 평론가는 진은영 시인을 가리켜 ‘사람들이 시인 진은영을 어떻게 떠올리는지 다 알지 못하지만 그가 무엇보다 사랑의 시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기로 하자’라고 쓴다. 시작만큼은 모두가 들어봤을 그 유명한 ‘만일 네가 나의 애인이라면/ 너는 참 좋을 텐데’(<시인의 사랑>)를 떠올려보라. 심지어 이번 시집 첫장을 열면 선언처럼 출현하는 시인의 말은 이렇게 쓰여 있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 사랑이 연인에게 국한되는 물질이 아니라면, 진은영은 언제나 사랑의 시인이었음이 틀림없다. 시집의
씨네21 추천도서 -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