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를 쓴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노후에 접어들며 ‘싱글의 노후’ 시리즈를 펴낸 바 있다.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으로 일본에서는 누적 판매 부수 130만부를 달성했다. “그러나 아직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노인 인구 구분법에 따르면 65살 이상이 전기 고령자, 75살 이상이 후기 고령자인데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은 후기 고령자가 되기 3년 전에 쓴 책이다. 세대간의 가구 분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아, 부모 세대가 배우자와 사별한 뒤에도 자녀와 합가하기보다는 혼자 사는 비중이 늘고 있다. 고령자와 관련한 풍부한 데이터가 존재하는 일본의 사례를 바탕으로, 고령자의 생활 만족도를 말한다. 노인의 경우 1인 가정의 만족도가 가장 높고 2인 가정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데, 미디어에서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건강하게 살다 가장 편안하게 죽는 법>
-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여 속내를 읽는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 시리즈가 네 번째 이야기 <고독한 강>으로 돌아왔다. 시작부터 댄스는 위기를 맞이하는데, 갱단의 총기 수송 소탕 작전을 진행하다가 용의자를 놓쳤다는 이유로 민사부로 강등되어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화재 사건을 맡게 된다.
책에는 장르물 독자라면 익숙할 장치들이 여럿 등장한다. 능력 있으나 억울하게 자리 배치를 받은 수사관, 부서간의 알력 다툼, 알고 보니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인을 노린 사건. 이런 익숙함을 흥미로움으로 바꾸는 것은 제프리 디버가 선보이는 현실적이고 꼼꼼한 관찰과 묘사다. ‘고독한 강’ 솔리튜드크리크가 흐르는 지역 풍경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지는 가운데 큰 사건이 터지자 바로 현장으로 달려오는 유력 정치인의 모습이며, 범인으로 지목된 용의자를 보고 분노하여 돌을 던지고 심지어 수사관을 공격하는 군중의 모습도 그렇다. 특히 이 통제 불가능한 아수라장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씨네21 추천도서 - <고독한 강>
-
8년차 회사원 대한은 권고사직을 받고 퇴직금 5천만원을 든 채 자영업의 세계에 뛰어든다. ‘스터디 카페를 열기로 한 건 꽤나 멍청한 생각이었다’라는 첫장의 솔직한 제목이 보여주듯 한달 매출 2천만원이라는 대한의 꿈은 그의 계산과 달리 그리 시원하게 펼쳐지지 않는다. 권리금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관리비가 얼마나 들지도 예상치 못했으며 부가가치세 계산도 미리 해보지 않았다. 부동산과 덜컥 계약한 뒤 인테리어 업체에 뒤통수를 맞아가며 급히 스터디 카페를 준비한 대한.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후에 펼쳐진다. 2020년 여름, 광복절 광화문 집회 이후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정부에서는 집합금지 명령을 내린다. 이어 방역 당국이 방역 체계를 1.5단계로 두는지 2.5단계로 두는지에 따라 스터디 카페의 영업시간과 가능 인원이 달라지는 운명에 처한다.
코로나 대유행 시절은 거의 모든 사람이 기억할 것이고, 그 비극이 남긴 상처와 흉터가 업종별로 다르며 가장 큰 피해를 본 분야 가운데 하나가
씨네21 추천도서 -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
-
민재는 여기저기서 돈을 조금씩 빌린 후 사라진다. 친구, 혹은 친구의 친구에게 몇십만원부터, 백만원, 2백만원씩 빌려 잠적한 민재는 전 여자 친구 미선에게만 가끔 안부를 남긴다. 돌려받으면 좋겠지만, 못 받는다고 하여 당장 생활이 어려워질 정도는 아닌 애매한 금액들. 이것은 특별한 사건일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일일까. 특별함과 평범함의 경계에는 심판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든다. 흔히 볼 수 있지만 특별하기도 한 민재는 <소설 보다: 여름 2022>에 수록된 소설 <포기>에 나오는 인물이다. 민재는 소설 속에서 정식으로 등장하지 않고 주인공 미선과 호두의 대화를 통해 그려진다. 미선의 전 남자 친구인 민재에게 돈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는 호두는 또 어떤가. 큰아버지가 죽은 엄마의 보험금을 채가서는 주식 투자로 반절이나 날려버리고 돌려주지 않는다. 이 역시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사연이지만 내가 당했다고 생각하면 분통이
씨네21 추천도서 - <소설 보다: 여름 2022>
-
-
한국인들은 왜 소파를 등받이로 사용할까? 모임의 끝은 왜 항상 노래방일까? 국회의원들은 왜 고함을 칠까? 매혹적인 목차를 보면 궁금해서라도 해당 페이지 먼저 펼치고 싶다. 해외에 체류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의 책에는 백이면 백 외국의 사례와 한국을 비교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그럴 경우 한쪽을 긍정적으로, 다른 한쪽은 그에 비해 뒤처지는 것처럼 묘사하곤 한다. 정치나 철학, 사회, 역사, 인문서는 서양에 유학했던 전문가가 한국이 그에 비해 선진적이지 못한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 건축가의 서적 중에는 한옥이 현대식 건축물과는 달리 공동체를 신뢰하고 자연을 존경하는 선조들의 지혜를 드러낸다 설명하기도 한다. 한국과 파리를 오가며 거주했던 임우진 건축가의 <보이지 않는 도시>에도 해외와 한국의 도시 체제와 구조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다. 처음에는 신호등, 횡단보도의 위치, 극장과 묘지에 이르기까지 사진과 함께 ‘공간’이라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을 소개하는데 그 어디에도 비교급은 사
씨네21 추천도서 - <보이지 않는 도시>
-
시인 주민현은 ‘골목’이라는 시어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람과 사람이, 꿈과 꿈이 돌고 도는 구멍.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문. 열리기는 하지만 닫을 수는 없는 문; 인생.” 그가 쓴 시 <어두운 골목>은 익선동의 작은 골목을 걷는 ‘우리’의 이야기로 운을 뗀다. 그리고, “(…) 서로 다른 영화를 보면서/ 같은 영화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거지/ 어떤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 부른다(…) 휴일이란 아직/ 책의 남은 페이지들과도 같아// 우린 다투어도 좋을/ 여든일곱가지의 이유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돌아가 낮잠을 자기로 한다”.
2019년 문학3 웹페이지에서 선보였던 시 연재 ‘시작하는 사전’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연재 당시 첫 시집을 내지 않은 신인 시인 24명이 신작시 두편과 함께 각 시의 키워드가 된 단어를 꼽고 그 단어를 그만의 시각으로 재정의했다. 시만큼이나, 시어를 정의한 짧은 글도 눈길을 끈다. 노국희의 ‘창문’은 이런 뜻이다. “종종 나를
씨네21 추천도서 - <시작하는 사전>
-
시작하는 사전_문학3 엮음
보이지 않는 도시_임우진 지음
소설 보다: 여름 2022_김지연, 이미상, 함윤이 지음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_이인애 지음
고독한 강_제프리 디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7월의 책
-
<우주의 일곱 조각>은 일곱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연작소설집이고 모두 같은 이름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은 소설마다 조금씩 다른 삶을 살고 있어서 동일 인물이 맞는지 헷갈린다. 은하, 민주, 성지, 세 여성의 이야기는 다음 소설마다 새로 시작되면서 혼동을 주고 그것이 이 소설집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앞 장이 성지의 이야기로 끝났다면, 다음 장은 친구 민주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주인공들이 평행 우주 속에서 다른 삶을 살면서, 새로운 페이즈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어떤 삶을 살아도 내 주변의 환경과 ‘나’는 크게 다르지 않은지라 저마다 한계와 좌절은 존재한다. 은하, 민주, 성지가 아무리 다른 선택을 해봤자 한국 사회에 사는 30대 후반의 여성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야기에서 양성애자인 민주는 혼자 제주도에서 칵테일 바를 운영하다가 또 다음 소설 속에선 쌍둥이를 키우며 직장에 다니기도 한다. 그 어느 쪽의 민주라고 해서 완벽하게 행복하진 않다.
은모든 작
씨네21 추천도서 - <우주의 일곱 조각>
-
2005년에 1960년대와 1970년대 편이 출간된 <한국 팝의 고고학>은 17년이 지난 2022년, 1980년대와 1990년대 편이 나오면서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었다. ‘고고학’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리즈는 유물과 유적을 찾아내듯이 20세기 중반부터 세기가 끝날 때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세세하게 추적하고 음반과 기사와 관련 사진들을 그러모았으며 그때그때 놓칠 수 없는 인물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특히 한국이라는 공간의 현대사적 특성은, 저자들이 정한 ‘한국 팝’의 개념과 잘 어우러진다. ‘한국 팝’이란 대중가요 전체가 아니라, ‘팝’이 ‘한국’과 만나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그렇게 탄생한 음악은 어떠한지 살펴보는 개념이다. 한국전쟁 이후 대규모로 주둔한 미군은 연예공연이 필요했으니 1950년대 후반부터 ‘미8군 무대’ 출신의 신예 가수들이 현대적인 대중음악을 만들어나갔고, 이후 1960년대를 수놓은 신중현과 펄시스터즈 같은 이름들이 등장한 것이
씨네21 추천도서 - <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
-
해리 홀레는 다시 술에 빠졌다. 일요일 한낮, 술기운을 떨치지 못하고 간신히 눈을 뜬 해리 홀레는 손에 핏자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해리 홀레 시리즈’ 12번째 소설인 <칼>은, 전편 <목마름>에서 해리 홀레와 라켈이 결혼한 이후 모종의 문제가 있었음을 분명히 암시하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별거 중이며, 해리는 다른 여자들과 마구잡이로 만나고 있는데, 무엇보다 다시 술을 진탕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리가 해결한 사건의 범인의 아버지가 용의자인 범죄가 다시 시작되고, 같은 시기에 해리는 믿고 싶지 않은 비보를 전해듣는다.
“라켈이… 발견됐어요.”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12번째 소설 <칼>에서 라켈이 사망했음을 알리는 이 문장이 등장하는 순간, ‘올 게 왔다’는 근심과 슬픔에 잠기는 독자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칼>은 (2022년 6월 기준) 후속작이 아직 없는 해리 홀레 시
씨네21 추천도서 - <칼>
-
여러 SNS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K장녀 이야기의 인기를 옆에서 씁쓸하게 지켜보고 있었을 차녀들을 위한 책이 드디어 나왔다. “부모도 첫째도 자기가 가정의 주인공인 줄” 아는 가족 내부에서, 언니가 물려주는 옷을 입고 언니가 보는 책을 곁눈질하면서 입 다물고 가족 내 관계를 관찰하는 역할을 맡게 된 둘째 딸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는 책이다. 다들 알다시피 한국의 가족 문화는 공고하고, 구성원마다 자리가 배정된다. 첫째는 첫째라서 집안 식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중압감과 책임감을 느낀다면, 둘째는 무명 배우처럼 아예 없는 사람 대우를 받는다. “나만 없어, 돌 사진.” “아람단이나 걸스카우트는 언니만 시켜줬던 사람 접어.” “내가 입던 건 늘 헌 거, 내 마음은 늘 헝거(hunger)!” 둘째에게 돌 사진만 없을까, 엄마는 첫째 입맛은 기억해도 둘째 입맛은 절대 머릿속에 입력하지 않고 아빠는 자식들이 싸울 때 유독 둘째가 첫째 위에 올라타면 감히 서열을 어겼다고 발
씨네21 추천도서 - <차녀 힙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