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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 사제의 일기> <잔 다르크의 재판> <돈> <당나귀 발타자르>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 로베르 브레송의 작가일지. 1975년에 처음으로 출간된 이 책은 영화와 창작에 대한 로베르 브레송의 사유를 담고 있다. 두어줄의 단문으로 어우러진 글의 모음이지만 찬찬히 곱씹으며 읽으면 모든 문장에 긴 주석과 해설이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잠언이 될 만한 표현들을 만날 수 있다. “정확성에 통달할 것. 나 자신이 정확성의 도구가 될 것.” “연출가 또는 감독. 누군가를 감독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감독하는 일이 중요하다.” 시각과 청각에 대해서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눈을 위해 있는 것은, 귀를 위해 있는 것과 중복해서 사용해서는 안된다.” 즉 모든 감각이 저마다의 고유한 방식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표현되어야 그것들이 중첩된 결과물로서의 시네마가 가능해질 것이다.
또한 그러한 결과물은 필연적으로 불친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의 깊은
씨네21 추천도서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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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멤버를 ‘최애’라고 부른다. 가장 좋아한다는 말에는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하는 대상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최애, 타오르다>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최애가 불타버렸다”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유사한 뜻으로 땔감이나 장작이 된다는 표현이 있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즉각적으로 SNS에서 논란이 되었다. 소설의 화자인 아카리는 퍼지고 재생산되는 글을 보며 최애 우에노 마사키만 걱정하는 중이다. 친구에게서 “무사해?” 하는 문자가 온다. 아카리는 의연하게 학교에 가지만, 사실 학교생활은 진즉에 위기에 처해 있다. 아카리는 수업에 잘 집중하지 못하고, 최소한을 하려고 해도 있는 힘을 다 끌어올려야 할 판이다. 최소한만 하려고 해도 의지와 육체의 연결이 끊어진다. <최애, 타오르다>의 전반은 아카리가 쓴 블로그 글과 최애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의 기억을 바탕으로 진행되는데,
씨네21 추천도서 <최애, 타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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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주삭을 설명하면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1600만 독자가 읽은 전작 <책도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이자 주요 도서상을 석권했던 전작이 출간된 후 무려 13년 만에 나온 소설이 바로 <클레이의 다리>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다뤘던 <책도둑>의 서술자는 ‘죽음’이었다. ‘죽음의 신’의 시선으로 주인공 소녀가 책을 훔쳐 언어를 지키는 모습을 그렸던 <책도둑>은 서술자의 문장이 아주 단순함에도 서정적인 기운이 넘쳤다. <클레이의 다리> 역시 화자는 주인공 클레이가 아니라 큰형 매슈인데, 매슈는 어머니 페넬로페가 어떻게 아버지를 만났는지부터 시작해 던바 가족의 가족사를 군더더기 없이 서술한다. 어머니가 죽은 후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던바가의 다섯 형제는 서로의 훈육자이자 동료가 되어 살아간다.
어느 날 느닷없이 나타난 아버지(매슈는 아버지를 살인자라 부른다)는 다
씨네21 추천도서 <클레이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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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문외한의 입장에서 ‘초현실주의 작가들’을 소개하는 책이란 지식 습득을 위해 공부해야 하는 인문서처럼 느껴지기 쉽다. 재미보다는 소양을 기르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은 부담이다. 일단 제목만 보면 그런 부류로 오해하기 쉬운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은 한마디로 엄청나게 ‘재미있고 잘 읽힌’다. 분류는 미술비평, 예술이론쪽으로 되어 있지만, 그쪽 방면 책 중 흥미진진한 ‘사랑과 전쟁’ 계열이라고 설명하면 되려나. 동물학자이자 초현실주의 예술가이기도 한 데즈먼드 모리스는 <털 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저자인데, 예술가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깊었던 까닭에 초현실주의 작가 집단 사이에서 있었던 사적인 에피소드를 손에 잡히듯 묘사했다. 누가 누구와 사귀었고, 누가 누구와 크게 다퉜으며, 누구와 바람을 피우다 결혼했는지 등의 사적인 얘기도 소개된다.
저자는 서문에서부터 이 책에서 초현실주의자의 그림이나 조각을 상세하게 논의하거나 분석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다. “나는
씨네21 추천도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은밀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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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아름답고 밀도 높았던 시간을 손에 잡히듯 그려낸 문장을 책에서 마주치면,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 농밀함에 담뿍 빠져드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올여름 SNS 피드에서 자주 보였던 책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이다. 출간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여름마다 이 책을 찾는 독자들이 여전히 많은 것은 아마도 여름 한철 가장 눈부신 순간을 눈으로, 귀로, 코로, 입으로 맛보게 하며 오감이 충족되는 고아한 문장이 이 소설에 넘실대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일본식 목조 별장에 비치는 한여름 햇빛과 먼지 한톨까지 세밀하게 그렸던 전작처럼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역시 홋카이도 에다루 오래된 집에 고여 있는 역사를 꺼내어 독자에게 보여준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문장은 여전히 정적이고 잔잔하다. 집, 사람, 계절에 대해 조금도 미화하지 않지만 그의 소설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생을 대하는 태도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씨네21 추천도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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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동안 송편을 먹으며 느긋하게, 깊이 있게 읽을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더 많은 이야기를 과감하게 상상하게 만드는 문장들을 읽고, 리뷰를 참고해 당신의 한가위 독서를 선택하시길. “촬영한다는 것은 만나러 가는 것이다. 네가 비밀스럽게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예기치 않은 그 어떤 것도 만날 수 없다.”(<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 “여전히 끈질긴 안티가 보이는데, 어쩌면 새로 생긴 팬보다 그들이 더 오래 최애의 동향을 쫓아다닌 셈이라 솔직히 놀라웠다.”(<최애, 타오르다>)
“인생에는 때로 뭔가에 크게 마음이 움직여 새로운 길이 열리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설명이 안되는 타이밍에 찾아옵니다. 그걸 위해서는 매일이 같다고 단정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바람에 뭔가를 느끼고 새로운 바람에 귀를 기울이세요.”(<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마그리트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점점 우울증에 빠졌고 집의 물탱크에 들어가서 자살을 시도했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9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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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식당의 메뉴판을 뒤에서부터 앞으로 넘긴다. 잡지도 그렇게 본다고 한다. 본인의 말에 따르면 ‘왼손잡이라서’라는데 충분한 이유인지는 모르겠다(일본은 오른손잡이도 왼쪽으로 책을 넘긴다). 하지만 놀란의 영화를 봐온 사람으로서는 “아, 그래서인가!” 싶어질지도 모른다. <메멘토> <인터스텔라> <테넷>을 비롯한 그의 영화들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혹은 순행하지 않는) 감각이 흔한 이유는 어쩌면 그래서가 아닐까? 뉴욕대학교에서 영화사를 가르치며 영화 관련 글을 쓰는 톰 숀이 놀란과의 오랜 인연과 폭넓은 취재, 자료조사와 영화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쓴 <크리스토퍼 놀란: 첫 작품부터 현재까지, 놀란 감독의 영화와 비밀>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놀란의 모든 영화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다. <배트맨 비긴즈> 이후 모든 놀란의 연출작에 출연하는 마이클 케인을 처음 캐스팅했을 때 놀란은
도서 <크리스토퍼 놀란: 첫 작품부터 현재까지, 놀란 감독의 영화와 비밀>, 크리스토퍼 놀란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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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사랑하는 시 100선과 같은 묶음 시집에 꼭 수록되는 시인이 있다. 윤동주, 한용운도 있겠지만 정호승 역시 한국인의 서정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손꼽힌다. 시인이 그리는 슬픔과 이별, 사랑은 각기 표현법도 무게도 질감도 다르지만 정호승 시인의 시를 생각하면 일단 ‘맑음’이 떠오른다. 그 천연의 아름다움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고민하다, 명석한 문학평론가들이 이미 정호승 시 기법을 분석한 바가 있어 여기에도 옮긴다.
“평론가 박덕규는 정호승 시인의 그러한 친숙한 표현 언어를 놀랍게도 ‘낯익게 하기’의 방법론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 표현법의 유효성에 대해 ‘우리의 표현 언어가 지나치게 낯설게 하기로 치달아오면서 난해성과 다의성만을 옹호해왔다는 점을 반성하는 자리에서 시와 독자와의 공동체적 인식을 유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며 독자들은 그의 ‘낯익게 하기’ 기법에서 한국 시의 원형질을 발견한다”고 김승희 평론가는 설명한다. 그러니까 낯선 단어를 쓰지 않고 낯익은 사람과 사물, 지명을 거
씨네21 추천도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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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다이어트를 한 것 같다. 2차 성징기를 맞이해 몸의 변화가 낯설었고, 길에서 만난 모든 시선이 내 몸을 향하는 것 같았다. 만화책 주인공의 납작한 가슴이 부러워 압박붕대를 칭칭 동여매고 학교에 간 적도 있다. 체육 시간 한 친구가 큰 소리로 가슴 크기를 지적했던 날엔 데스노트에 그 친구를 저주하는 일기를 썼다. 이게 사춘기 시절의 기억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여성의 몸에 대한 감시는 평생에 걸쳐 이뤄진다.
다이애나 클라크의 <마른 여자들>은 10대 여성들이 미디어와 또래 집단의 영향 속에서 섭식장애에 빠져드는 과정, 어른이 되어서도 마른 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정을 1인칭 시점으로 적나라하게 그린 소설이다. 시설에서 거식증 치료 중인 로즈와 주변 여성들, 반대로 폭식증과 데이트폭력에 노출된 로즈의 쌍둥이 언니 릴리가 파괴되고 회복되는 과정은 일기장처럼 서술된다. 쌍둥이 자매의 체중은 14살 때부터 기록된다. 14살, 나란히 45kg였
씨네21 추천도서 <마른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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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은 화성에 먼저 탐사선을 보내기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뒤뜰에서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는 취미가 있었고 미 항공우주국(NASA)의 매리너 4호 프로젝트에 정신을 빼앗긴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은 훗날 화성의 자연사 연구에 푹 빠진 과학자가 되었다. <푸른 석양이 지는 별에서>는 NASA 연구원으로 일하며 스피릿, 오퍼튜니티, 큐리오시티 같은 화성 탐사선 제작에 참여한 저자가 갈릴레오 시절부터 화질 좋은 화성 표면 이미지가 바로바로 전달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으로 또 개인사적으로 화성 탐사의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한때 화성은 인류보다 문명화된 존재가 산다고 여겨졌다. 1800년대 후반 밀라노의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는 망원경을 통해 화성을 스케치했고 이 지도를 기반으로 화성에 복잡한 운하가 건설되어 있다는 말이 나왔으니 대중과학자 로웰 같은 이는 화성에 지적 외계인 집단이 있다는 믿음을 전파했다. 하지만 과학은 냉정하게도
씨네21 추천도서 <푸른 석양이 지는 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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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는 ‘archer’, 궁수라는 뜻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아처>는 활을 쏘는 궁사 이야기다. 어느 날, 소년에게 낯선 사람이 다가온다. 그 이방인은 한때 이 나라 최고의 궁사였던 ‘진’을 찾고 있는데, 소년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목수가 바로 진이다. 이방인은 진이 보는 앞에서 활을 쏘아서 자신이 완벽한 경지에 다다랐음을 증명하고자 한다. 소년은 진에게 이방인을 데려가고, 이렇게 두 사람의 활쏘기 대결이 시작된다. 이방인은 실력이 좋아서 40m 떨어진 거리의 체리 열매를 맞춘다. 그런데 진은 산속으로 한참 들어가더니 낡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흔들다리 위에서 20m 떨어진 거리의 복숭아를 맞추는 묘기를 선보인다. 이방인은 진을 따라 하지 못한다. ‘정신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처>는 파울로 코엘료의 여느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설이다. 잠언 혹은 에세이에 가까운 통찰의 문장이 이어진다.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기
씨네21 추천도서 <아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