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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모건 지음 /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펴냄
무료로 이용 가능한 실내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사회에서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고 빌리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취약 계층에 도서관은 더위와 추위를 피해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컴퓨터를 잠시 빌려 쓸 수도 있으며 물을 마시거나 개인위생도 돌볼 수 있는 공공시설이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도서관에 대해 혹은 거기서 일하는 사서의 역할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은 없다. <사서 일기>는 도서관 사서의 실감나는 에세이이지만, 적재에 배치된 생기 어린 캐릭터와 그들이 일으키는 소동 덕분에 소설의 박진감까지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우울증으로 고통받던 앨리는 도서관에서 보조사서로 일하게 된다. 책을 사랑하던 앨리에게 도서관 근무는 간절히 원하던 일이었지만, 막상 거기서 일하기 전까지 ‘도서관 사서’가 얼마나 자질구레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지는 자세히 몰랐다. 어린이 노래 교실과 뜨개질 클럽 진행, 도서관 단골 이용자의 만성질환
씨네21 추천도서 - <사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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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지음 / 창비 펴냄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김지혜 작가가 두 번째 책 <가족각본>으로 돌아왔다. 이번 책은 가족제도에 숨은 차별과 불평등을 파헤친다. 그 시작은 “며느리가 남자라니!”라는 시위 구호를 들여다보고, 한국의 가족제도에서 며느리의 위치를 파악하는 작업이다. 2007년, 차별금지법 입법 예고에 대한 반대 시위에서(차별금지법은 지금까지도 입법에 실패하고 있다) 처음 등장한 이 문장은 지금도 볼 수 있다. 며느리와 사위를 구하는 설화를 각각 분석하며 이 책은, 예능으로 치면 ‘사위 고르기’는 단발성 순발력 테스트에 가깝고, ‘며느리 고르기’는 장기전인 서바이벌 리얼리티쇼에 가깝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며느리라는 역할은 “주도성이 요구되는 종속 상태라는 모순적인 위치”인데, 남성의 역할 역시 모순적이다. “남성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사회적 출세인데, 이를 이루지 못했을 때 가족 내의 권위는 형식만 남는다.”
<가족각본>은 가족에 대한 한
씨네21 추천도서 - <가족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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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대븐포트 지음 /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정물화는 과일이나 꽃, 생선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대상을 가리킨다. 영어로 스틸 라이프(still life)라고 불리며,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같은 주제에 이르면 움직이지 않는다(still)는 데서 필연적으로 연상되는 죽음을 은유하는 그림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박한 예술이다. 문학의 형식에서 비슷한 것을 찾자면 소네트와 같다. 미국의 작가, 학자, 교육자, 번역가, 삽화가인 가이 대븐포트는 문학과 예술에 관한 글을 폭넓게 썼는데, 그중에서 <스틸라이프>는 미술사 속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으나 현대에 들어오며 가장 실험적인 장르가 된 정물을 (인)문학적으로 살펴보는 저술이다. 정물화에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빵과 와인이 기독교에서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하듯이, 사과와 배는 ‘한쌍의 이미지’로 자주 다루어지며 정물화뿐 아니라 시와 소설, 산문에서도 유구하게 함께 언급되는 소재였다.
씨네21 추천도서 - <스틸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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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_ 가이 대븐포트 지음
<가족각본> _ 김지혜 지음
<사서 일기> _ 앨리 모건 지음
<아키라와 아키라> _ 이케이도 준 지음
<프닌> _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씨네21 추천도서 - <씨네21>이 추천하는 8월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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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제물>을 수식하는 이력은 매우 화려하다. 제23회 본격 미스터리 대상 역대 최다 득표, 2023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23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2위 등이 그것이다. 1990년생으로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로 데뷔한 시라이 도모유키의 <명탐정의 제물>은 1978년 11월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 공화국에서 신흥종교 신도 1천여명이 집단 사망한 인민사원 자살사건을 둘러싼 추리극을 보여준다. 실제로 같은 날짜에 있었던, 짐 존스가 이끄는 인민사원 자살사건을 연상시키는 설정이지만 “이 소설은 픽션이며 실재 인물 및 단체와는 일절 관계없습니다”로 시작한다.
<명탐정의 제물>의 주인공은 탐정 오토야 다카시. 그에게는 아리모리 리리코라는 뛰어난 조수가 있다. 뛰어나다 못해 오토야를 뛰어넘는 추리를 보이는 인물. 종교 집단 관련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리리코가 인민사원에 대해 알아보
[리뷰] 명탐정의 제물 – 인민교회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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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의 멜로디를 떠올리는 데 걸린 시간은 30초 정도였다고 한다. “피아노 앞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순간에는 이미 화음을 갖춘 멜로디가 악보의 오선지 위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투병으로 인해 죽음을 눈앞에 둔 류이치 사카모토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단 1분, 2분이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그만큼 새로운 곡이 탄생할 가능성도 커지지 않을까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유고 산문집이다. 2014년 중인두암이 발견된 이후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 그가 중인두암 치료 이후인 2020년 4월 직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거듭하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차분한 고백으로 책의 서두를 연다. 특정한 컨셉이 있다기보다는 죽음을 앞두고 신변 정리를 하듯 지난날에 대해 써내려간 책이어서인지,
[리뷰]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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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케네디 지음 /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펴냄
어느 날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니 감쪽같이, 절벽 아래에 있던 저택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전조는 있었다. 측량 전문가는 절벽 균열이 커지면 저택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이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진즉 호텔 소유주 시달에게 편지를 쓴 바 있다. 시달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온 가족이 절벽 아래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1947년 여름, 영국의 해변 휴가지 콘월에서 있었던 일이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의 제목과 단란한 표지를 보면 언뜻 여름철 휴가지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멜로드라마가 연상된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사랑에 빠진 연인, 다시금 애정을 회복하는 부부,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작은 아이들과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웃음들.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에 그런 풍경이 아예 없다고만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보다 한층 음산하고 어두운, 멸망적 징후가
씨네21 추천도서 - <휴가지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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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글에 대한 글을 기대하고 <아구아 비바>를 펼쳤다면 이 책은 절반은 당신을 만족시킬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다. <아구아 비바>는 이해가 안되는 문단의 반복이다. 대여섯줄을 잘라내 SNS에 올린다면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갖는 아포리즘이 되겠지만 이어지는 문단과 문단은 서로 연결성을 갖지 않고 있어 여러 페이지를 그저 흘려보내야 한다. ‘당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에게 계속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화자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전개해 나가고 그 안에는 내러티브가 없다. 읽다 보면 “그래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라는 생각도 든다. 난해하고 현학적으로도 느껴진다. 이 산문 안에서는 어떤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내가 당신에게 글을 써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당신이 내 그림에서 명확성 대신에 두서없는 말들을 수확해가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남들이 쓰는 방
씨네21 추천도서 - <아구아 비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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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 엄지영 옮김 / 비채 펴냄
“엘레나는 딸이 살해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살해 동기를 찾을 수가 없다. 짐작도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자살이라는 판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엘레나의 딸 리타는 성당 종탑에 목을 맨 채, 이미 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7시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종을 울리도록 신부가 탑으로 올려 보낸 남자아이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하지만 신부는 자살로 추정되는 리타의 죽음에 대해 연민을 보내지 않는다. 오히려, 딸의 죽음을 파헤치려는 엘레나에게 교만의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당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현실은 정반대인데 세상이 당신 말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죄를 짓고 있다고. 문제는 엘레나가 파킨슨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자기 몸이 자기 몸처럼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되었다는 데 있다. 딸의 죽음에 관한 진실
씨네21 추천도서 - <엘레나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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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운동화 안에서/ 작은 돌멩이 한 알이 굴러다니는 것을/ 알아챘을 때/ 폴은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발이 불편했던 일상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고궁에 산책 간/ 내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궁이 좋아서”라고, 풍요로운 산책의 시간을 환기하는 대목도 있다. “슈크림의 다정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라는 귀여운 표현을 읽으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던 순간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 시집에는 일상의 감각들을 환기하면서, 그 감각으로 또 다른 세계를 키워나가는 시들이 있다. <눈사람을 보면 이상해>는, 어느 겨울 SNS를 달구었던 논쟁이 떠오른다. 정성껏 만든 눈사람을 굳이 발로 차서 부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와 그들을 향한 비난이 이어지는 한편, 그런 논쟁이 있든 말든 현실에서는 눈사람을 부수는 이들이 계속 있었다. “굴러가는 머리 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상해”라는 표현에 이어, 시
씨네21 추천도서 - <미래는 허밍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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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지음 / 창비 펴냄
역사소설은 결말이 정해져 있다. 특히 4·3 사건처럼 수많은 주민이 죽어간 참사라면, 책에서 아무리 밝고 희망찬 내용이 펼쳐진다 해도 결말에 대한 근심과 불안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육지에서 제주로 건너온 거대한 뱀의 신화에서 시작하는 제주 이야기는, 식민지 시대 제주를 무지막지하게 괴롭히고 수탈한 일제와 그에 맞서 싸우고 끌려가고 죽어간 청년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에는 화산이 폭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군이 공습을 가하는 바람에 섬은 암흑 그 자체가 되어버린다. 그렇지만 이 어두운 시절에도 두 소년 창세와 행필은 바닷가에서 일본군을 향해 방귀 뀌는 시늉을 하며 웃음을 터트린다. 드세다는 소리를 들어가며 힘들게 말 다루는 법을 배우는 창세의 누나 만옥 등 여성들 또한 제 삶을 개척해나간다. 청년들의 생기, 미래를 향한 꿈은 시대가 아무리 엄혹해도 절대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슬프다. 꿈
씨네21 추천도서 - <제주도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