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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다뤄졌지만 두 영화가 계속 머리에 남았다. <레미제라블>과 <라이프 오브 파이>는 각기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영화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요청한다는 점에서 재론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혁명가가 울려 퍼지고 붉은 깃발이 나부낀다. 광장 중앙의 거대한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시민군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바리케이드의 정상에는 우리의 주인공들이 모두 돌아와 있다. 경찰에 사살된 젊은 혁명가들, 슬픈 사랑을 품고 눈을 감은 여인, 외롭고 고단한 생과 마침내 작별한 장발장, 그리고 혁명의 새벽을 지켜주지 못한 시민들까지. (그들이 부르지 않는) 장엄한 노래가 광장을 가득 채운다. ‘들리는가, 민중의 소리가….’ 그들은 모두 듣고 있다는 듯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에토스의 분열에도 <레미제라블>에 사로잡히다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고도 당혹스럽다. 이 장면은 분명히 판타지다. 죽은 자와 부재자의 귀환이라는
[신 전영객잔] 어쩌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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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이 이처럼 환영받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이 갑작스런 문화적 신드롬은 많은 해석들을 끌어냈다. 가장 지배적인 해석은 대선 정국 직후 패배감과 허망함과 상실감에 젖어 있는 일군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위안을 주었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유권자 중 상당수가 투표에 참여했고 투표에 참여한 사람들 중 절반이 선택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바꿔 말하면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원치 않았던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가 담긴 <레미제라블>을 보고 위안을 받았다는 사람들은 그러므로 대개 후자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가 우리의 현실과 어떤 방식으로건 연관을 맺고 있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현실과 맺은 관계를 말하는 데에 위안이라는 개념이 과연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따라서 대부분이 하고 있는 것처럼 <레미제라블>이 어떻게 위안의 텍스트가 되었는지 그 요인을 해명하러 나서는
[신 전영객잔] 군중의 기억으로 ‘따고 들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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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으나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절망과 분노,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말들이 난무했고, 그 어느 쪽에라도 마음을 두고 싶었으나 모든 것들이 껍데기 같았다. 슬프고 억울했으나, 실은 무엇에 슬프고 억울한지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그러나 이상하게도 자꾸만 몸으로 돌아오는 반응에 몸서리치다가 그 끝에 지독한 호들갑과 자기 연민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은 알게 되었다. 지금 내 앞의 믿을 수 없는 현실보다, 실은 그 호들갑과 자기 연민이 어느새 더 끔찍해졌다. 수많은 말들에 또 다른 말을 끼워넣을 자격이 내게 있는지, 아무래도 주제넘은 글이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안고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쓰기로 한다. 객잔의 일원으로 다시 돌아오면서 다시 자유롭게 여기서 놀기 위해서는 한번 쯤은 이런 글을 써야 할 것 같다고 변명한다. 그러니 이 글은 2012년 12월 선거 이후, 어느 영화를 보며 느낀 상념들을 쓴 글이 되겠지만, 영화평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며, 무엇보다 사심 가득하고 이곳저
[신 전영객잔] 기다림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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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마텔의 원작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으나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는 영화화된 것 자체가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영화는 찍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것이라는 명제를 이 영화만큼 잘 입증하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 주인공 파이(수라즈 샤르마)가 망망대해에 표류하면서부터, 영화는 파이와 벵골 호랑이의 관계만을 담는다.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이 붙은 이 호랑이는 좁은 보트 안에서도 엄청난 기세를 잃지 않는다. 허겁지겁 보트에 밧줄을 대고 급조한 뗏목을 띄워 물속에서 생활하는 파이는 생존에 대한 근심에 사로잡혀 있지만 이 벵골 호랑이는 다르다. 조금 불편해 보이기는 해도 그는 보트 안을 맹렬하게 뛰어다니며 심지어 먹이를 찾아 바닷속으로 뛰어들기도 한다. 어떻게 이런 초현실적 광경이 스크린에 물리적인 환영으로 재현될 수 있는지 나는 난생처음 영화를 대하는 관객처럼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 모험담은 스토리가 끝난 뒤 관객을 바다 깊숙이 끌어내려버릴 듯한 앙금을 남긴다.
[신 전영객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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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7월에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을 계기로 프랑스의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평자들 몇명이 모여 했던 발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트래블링 숏은 도덕의 문제다”라고 한 장 뤽 고다르의 발언이었다. 미학의 기술은 도덕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므로 경청해야겠지만, 적어도 레네의 영화에 관해서라면 나는 이 말의 유효기간이 훨씬 오래전에 지났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반문은 간단하다. 레네의 영화 <마음>과 <잡초>와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의 트래블링 숏은 전적으로 도덕의 문제인가.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 전쟁 이후의 사회정치적 양심과 모더니티의 도래를 읽어낸 고다르로서는 그 어떤 긴급함과 중요도라는 측면에서 그러한 선언적 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네에게 트래블링 숏은 혹은 그것을 포함한 레네의 미학은 도덕의 강령보다는 다른 것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같은 자리에
[신 전영객잔] 나와 레네와 백석의 눈(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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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1985>는 이제까지 반기득권 편에서 나온 정치영화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선동적인 영화다. 고 김근태 의원이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겪은 고문에 기초한 이 영화는 매우 명시적인 방식으로 소재를 다룬다. 간단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빼면 주인공 김종태(박원상)가 남영동 분실에서 고문당하는 과정이 영화의 내용 전부다. 명시적이며 동시에 미시적이다. 나는 이 단순한 구조의 영화가 내재한 드라마가 예상 밖으로 많은 겹을 갖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여느 보통 관객과 마찬가지로 100여분 동안 주인공이 고문당하는 스토리에 불편한 죄의식을 예감했던 나는 영화가 재미있었다. 이게 누군가에게는 불경스러운 것으로 보일지라도 실제로 그랬다. 재미라는 표현이 부적절하다면 활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전작 <부러진 화살>에서 굳이 숏간의 짜임새에 신경을 쓰지 않은 듯했던 정지영 감독의 연출감은 이 영화, <남영동1985>에선 훨씬 정교하게 느껴진다. 이 활
[신 전영객잔] 공존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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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 100년(1995년) 이후 그나마 가장 뚜렷이 부상하고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목하 마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2012년에도 일정한 소산을 낸 서브 장르를 꼽으라면 파운드 푸티지 영화(Found Footage Film)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참 안 어울리는 노장 마이크 니콜스가 파운드 푸티지 기법을 전면구사했다는 <더 베이>의 리뷰가 나오고 있고 인도네시아에서 찍은 <레이드>로 오랫동안 권태에 몸을 꼬던 액션영화광들의 급소를 찔러준 가레스 에반스 감독이 파운드 푸티지 옴니버스 <V/H/S>의 속편 연출자로 물망에 올랐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마이클 베이의 제목 미정 SF가 파운드 푸티지 스타일이란 소문은 좀 됐다. 말할 나위 없이 할리우드의 파운드 푸티지 유행은 투자 대비 수익의 크기와 직접 관련이 있다. ‘파운드 푸티지’라는 항목을 하위 장르의 색인에 등재시킨 <블레어 윗치>(1999)는 6만달러로 찍어 전세계에서 2억5
[신 전영객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영화들의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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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의사항: 반드시 영화 <도주왕>을 보신 다음에 이 글을 읽으시기를 청합니다. VOD와 DVD로 보실 수 있습니다.
제1부 아르망은 무엇이 되는가
알랭 기로디의 <도주왕>은 시치미 뚝 잡아떼고 웃기는 데에 일가견이 있다. 초반부에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배치되어 있다. 한적한 어느 날 밤 영화의 주인공 아르망은 그가 좋아하는 타입의 노신사를 주의 깊게 뒤따라가는 중이다. 그런데 하필 아르망은 그때 한 무리의 십대 불한당 녀석들이 같은 또래의 소녀 한명을 끌고 막다른 골목으로 접어드는 걸 보고 만다. 그는 갈라지는 길 위에 서서 잠깐 동안 망설인다. 어쩌나, 모른 척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야 하나 아니면 저 소녀를 구해주어야 하나. 아르망은 발길을 돌려 위기에 빠진 저 소녀를 구하기로 한다. 소녀를 강간하려는 십대 녀석들을 향해 딱 버티고 선 아르망의 체격은 건장하다 못해 위협적일 정도로 뚱뚱한 덩치이니 비리비리한 저 녀석들 몇명쯤 겁주거나 패주는 건 일도
[신 전영객잔] 아르망의 기이한 모험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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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특성상 관람 전에 읽으면 감흥이 크게 반감됩니다.
말릭 벤젤룰 감독의 <서칭 포 슈가맨>은 1970년대 초 심금을 울리는 두장의 앨범을 내놓았으나 대중의 철저한 외면 속에 증발해버린 미국의 포크 록 뮤지션 시토 로드리게즈의 정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미 제3자에 의해 완료된 추적 과정을 복기한 다큐멘터리다. 본국에서 사장된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민들레 홀씨처럼 한 젊은이의 여행 가방에 실려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들어갔고 악명높은 인종분리 정책과 표현의 자유 탄압에 저항하던 그 나라 사람들의 폐부를 찔렀다. 불법 카피를 통해 들불처럼 번져나간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영화 속 증언에 의하면 정치적 저항운동의 깃발로 옹립됐고 남아공 대중음악의 지형도마저 바꾸어놓기에 이르렀다. 음악은 복음의 반열에 올랐는데 정작 뮤지션 본인의 신상은 알려진바 없는 희한한 상황은 ‘도시 전설’이 싹트는 토양이 된다. 급기야 남아공 국민들은
[신 전영객잔] 아무도 몰랐던, 아무것도 몰랐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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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기덕은 한국영화 평단에서 무시당해왔으나 그의 영화 <피에타>로 결국 승리했다. 김기덕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직후 대다수 한국 매체가 그와 같은 논지의 기사를 실었다. 이것이 비록 비평의 영역이 아니며 이미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일이라 해도 짚고 넘어가야 할 하나의 전제는 될 것이다. 몇 가지 간단한 사실만으로도 이 의견들은 반박이 가능하다. 그가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전문 영화 저널과 주요한 저널리스트들이 그를 특별히 주목하기 시작한 일은 이미 오래되었고 한해의 중요한 영화를 선정하는 자리에서 김기덕의 영화는 자주 선정되거나 적어도 후보에 올랐다. 더군다나 그는 동세대 한국 감독 중 온전히 감독 개인 한 사람의 영화 세계에 관한 비평 연구서를 헌정받은 드문 예에 속한다(<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 정성일 엮음, 행복한 책읽기 펴냄). 그러니 그가 받았다는 한국 영화 평단에서의 냉대란 어디서 받은 것이며 <피
[신 전영객잔] 흥미롭지만 퇴행적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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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멸 감독은 내가 지난 몇년간 만나본 사람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전주국제영화제 CGV 무비꼴라쥬상을 받은 그의 신화적인 저예산 코미디 <뽕똘>이 지난해 8월 조용히 극장 개봉하고 사라질 때 나는 ‘감독과의 대화’(GV) 사회를 맡으면서 그를 처음 봤다. 어떻게 찍어냈는지 신기할 만큼 <뽕똘>은 홈무비 수준의 예산으로 만든 최저 수준의 만듦새를 감추지 못한 영화였는데 그 지역의 아우라가 짙게 서려 적당히 낄낄대며 난센스 코미디 같은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국에는 슬픔만 남게 되는 기묘한 영화였다.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오멸 감독은 경쾌한 외피를 두른 영화의 인상과 달리 진중한 사람이었다. 그와 나눈 대화 중에 내가 <뽕똘>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제주도를 담은 영화라 좋았다”고 한 대목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이 ‘내부자’의 정체성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제주도 사람의 처지를 슬퍼하고 있었다. 올레길 개발로 관광객이 물밀듯이 밀려오
[신 전영객잔] 응시하라, 패배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