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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메이저에 시나리오를 팔겠다고? 차라리 카지노에 가서 룰렛에 돈을 걸어라. 미국의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들 사이에서는 인사말처럼 주고받는 농담이다. 다소 위악적으로 들리긴 하지만 따지고보면 ‘사실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누구보다도 내가 잘 안다. 이 비좁아 터진 충무로에서도 시나리오 하나 팔아먹기가 하늘의 별따기니까. 그런데 서른살도 되기 전에 스티븐 스필버그와 브라이언 드 팔마 그리고 로버트 저메키스와 커티스 핸슨에게 자신의 시나리오를 연출하도록 만든 작가가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억세게 운좋은 녀석 혹은 질투가 날만큼 재능이 넘쳐나는 젊은 작가가 데이비드 코엡이다.
이제와 다시 봐도 그가 24살 때 쓴 데뷔작 <아파트 제로>에서는 재능이 번뜩인다. 한정된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예기치 못했던 캐릭터의 변화, 제멋대로 뒤엉켜있는 것 같지만 영화가 끝나고 나서 맞춰보면 모든 아귀가 빈틈없이 들어맞는 퍼즐 같은 플롯. <배드 인플루언스>
[할리우드작가열전] 시나리오 잘 쓰려면 감독 해봐, 데이비드 코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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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떠나는 곳에 죽음이 있으리라는 것을, 두 남자는 모두 안다. 그럼에도, 운명을 믿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그는 “운명? 내가 바로 신이야”라고 답하며 앞서 떠난다. 오만하지 않으면서도 저항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말에 미련 따윈 묻어나지 않는다. 어느 뒷골목에 버려져도, 햇빛도 닿지 않는 하수구 어딘가에 묻혀 버려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오직 친구를 위해 가망없는 싸움에 총을 들었던 이 남자는 속인들의 계산법을 무용하게 만든다. 이것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대 불명의 신화, 오래 전 어디엔가쯤 있었을 법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말 그대로 <영웅본색>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윤발(44)을 설명하는 데 다른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다. 그는 그저 ‘영웅’, 눈물 없이도 울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영웅이다. <영웅본색2>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그의 발걸음은 영화에 여백 같은 순간을 부여하며, 죽음 직전 연인을 찾는 그의 손길은 누구보다 성실했
내가 바로 신이야, <와호장룡>의 주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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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끼고 앉은 이미연, 맘에도 없는 ‘보험 가입’을 미끼로 보험설계사와 통화중이다. 시시콜콜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살펴가면서. 복장 체크도 해본다. 굽 낮은 구두, 큼지막한 가방, 무릎길이 치마, 오케이. 저녁시간에 TV를 보면서는, 남편 김승우를 고문한다. “보험 들겠다는 남자가 ‘당신 구두를 닦아주고 싶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면, 다시 만났을 때 그 보험설계사, 기분이 어떨까?” 그 비슷한 질문만 벌써 열두 번째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영화 얘기가 야속한 남편은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묵묵부답. <주노명 베이커리>를 찍던 무렵, 이미연의 어떤 하루다.
다 써먹을 수 없을 게 뻔한데,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가 있느냐는 걱정을 들을 때마다, 이미연은 “다른 생각이 안 나는데 어쩌냐”고 되묻곤 했단다. 사랑의 화살이 엇갈려 꽂히는 두쌍의 부부 이야기를 만나고, 3류 소설가를 남편으로 둔 보험설계사 해숙을 만나면서, 도무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더라
작품수, 열정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주노명 베이커리>의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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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음악에 무식한 기자, 만나 본 적 없겠죠?”
“이렇게 영화에 무지한 취재원은 만나 본 적 있어요?”
자격지심 어린 물음에 신해철(32)은 명랑한 반동을 보내왔다.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가슴 속을 먹먹하게 하는 송능한 감독의 영화 <세기말>을 신해철이 반주한다는 소식은 너무 당연하게 들려 별반 뉴스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직설과 조롱과 패션을 능숙하게 결합하는 그의 음악에서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줄곧 모종의 ‘아우성’을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주도면밀한 군주의 손길로 자신의 예술을 다스리는 이 자신만만한 음악 감독에게, 한 영화의 스탭으로 일하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새 앨범 <홈 메이드 쿠키스 & 라이브> 출반에 맞추어 지난 연말 뉴욕에서 귀국한 그에게 그 고충과 행복을 시시콜콜 물었다. 이제 네줄의 필모그래피를 갖게 된 영화음악가 신해철은 당김음과 스타카토가 군데군데 섞인 특유의 말투로 답을 들려줬다.
-근래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
<세기말>의 영화음악, 도발의 뮤지션 신해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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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은 음악이 넘치는 영화가 결코 아니다. 7개 장으로 나뉘는 영화의 구성에 맞춰 장과 장 사이를 이어주는 기차 인서트는 음악이 적셔주지만, 20년을 거슬러가는 그 지난한 여정을 따라가는 선율은 마치 마른 침을 삼킬 때처럼 조금씩, 애타게 귓전으로 흘러온다. 감정이 넘치기보다는 별 과장없이 일상의 흐름을 세심하게 옮겨내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특히 순수를 찾아가는 <박하사탕>의 힘겨운 여행 속에 음악의 자리는 유난히 더 조심스럽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관객이 영호의 삶을 중립적으로 바라봤으면 하고 만들었다는 <박하사탕>의 음악은 데뷔작임을 감안하지 않아도 별 손색이 없다. 정작 영화음악가로 첫 단추를 끼운 이재진(30)씨는 <박하사탕>에 대해 할말이 없다고, 잘 모르겠다며 웃지만.
영화음악은 처음이지만, 사는 방향이 음악으로 정해진 지는 꽤 됐다. ‘소리로 크는 나무’.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
힘겨운 과거여행의 동반자, <박하사탕>의 영화음악가 이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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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엔트랩먼트> 국내 최고의 도둑 남기남
[정훈이 만화] <엔트랩먼트> 국내 최고의 도둑 남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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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네트가 별을 덮고, 전자와 빛이 뛰어다니며, 국가나 민족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정보화해 있는 근미래. 신기술을 이용한 고도의 살상과 파괴 행위가 만연하자, 동아시아의 어느 가상국가에서는 사이버 네트와 공안관계의 특수테러를 전담하는 경찰 조직인 속칭 ‘공각기동대’를 창설하게 된다. 이 조직은 몸의 상당 부분을 기계로 대체한 반인 반로봇의 특수요원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인간의 의식을 조종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인형조종사와 맞서 일전을 벌이게 된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형사의 음모는 분쇄되지만, 대원들 중 대다수가 심각한 신체적 손상을 입고 만다.
“바트, 팔다리가 없으니 시원하겠군.” 부상 병동에 누워 있는 토그사는 낄낄거리며 말을 걸지만, 자기의 아랫도리도 완전히 날아가버리고 만 신세다. 바트 역시 입만은 멀쩡하다는 걸 보여준다. “너희 마누라가 좋아하겠어. 이혼할 확실할 핑계가 생겼으니 말야.” “무슨 소리야. 이제 최신형 아랫도리로 ‘빠방’하게 장착할 텐데. 아마 매일 밤 죽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공각기동대 II - Ghost In the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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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캐스팅이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별들의 고향>도 그랬고, <어제 내린 비>도 그랬고 <너 또한 별이 되어> <그래 그래 오늘은 안녕> <바람 불어 좋은 날>, 그리고 <어둠의 자식들> <그들은 태양을 쏘았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럴 때마다 현실 도피처럼 신인을 찾았다. <어둠의 자식들>에서도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은 수없는 오디션을 거쳐 방숙희라는 신인을 찾아냈다. 생김새와 연기력 모두 작품에 잘 맞는 신인이었는데 무엇보다 ‘카수 영애’라는 부제가 말하듯 가수 지망생 역할이어서 가창력이 필요했다. 그 점에서도 합격이었다. 나는 한국영화의 아버지 나운규 감독의 성을 따와 그 신인에게 나영희라는 예명을 지어 주었다. 영화에서 약 2시간가량, 얼굴 클로즈업에서 발끝까지 몸 전체를 속속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영화의 주인공을 찾는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마오쩌둥과
이장호 [41] - 나의 신인중독증, <어둠의 자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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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한텐 다섯장만 샀다고 거짓말하고 열장 사서 꼭꼭 숨겨두었던 밀레니엄 복권이 꽝나고 만 지금, 아줌마는 다시 몇장 배춧잎 앞에 충성맹세하고 비상근무중이다. 아니, 사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창 비상근무중이다. 아줌마도 <비상근무>(Bringing Out the Dead)의 프랭크 피어스처럼 구급요원이기 때문이다.
프랭크가 인간의 헤벌어진 오장육부 같은 뉴욕 뒷골목을 헤매는 구급요원인데 비해, 아줌마는 자신의 미로 같은 오장육부 속을 헤매는 자신 목숨의 구급요원이라는 점이 다를뿐. 초기 프랭크가 그랬듯이 아줌마도 숱한 목숨 구했다. 열한살 아줌마, 열다섯살 아줌마, 열여덟, 스물, 스물다섯, 스물아홉, 서른… 그 많은 아줌마들을 구한 건 다 아줌마 자신이었다.
그렇다고 타율 100%를 기록했을리야. 아줌마 또한 기술부족으로 숱한 목숨 죽였다. 예를 들어 프랭크가 산소주입기를 잘못 꽂아 열여덟 꽃다운 여인을 죽였다면, 아줌마는 정액주입기를 잘못 꽂아 숫처녀 아줌마를
[아줌마, 극장가다] 우리는 정말 살아 있을까, <비상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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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의 <박하사탕>은 망각의 더께에 쌓인채 아득히 흘러가는 우리들의 오랜 기억들에 마치 면도날처럼 상처를 내었다. 면도날의 상처는 처음엔 아무렇지도 않은 금처럼 보일 뿐이다. 그러나 곧 그 금 사이로 붉디붉은 피가 점점이 배어나온다. 낡은 기차를 타면 떠오르는 얼굴들처럼, 그 역시 시간의 기차를 태운채 우리들의 현재가 서있는 바로 이곳으로부터, 이제는 얼굴조차 희미해져버린, 이름조차 아물아물한 첫사랑의 그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70년대 학번이면 누구나 한번쯤 탔을 그 기차… 피와 눈물에 젖은 청춘들이 우울한 날개를 접고 ‘나 어떡해, 너 갑자기 떠나가면…’라는 샌드페블스의 노래에 실어보냈던 그 검고 흰 추억들을 실은 야유회행 기차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 것인가.
이창동,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매서운 눈
나는 이창동이 뛰어난 영화감독으로 다시 태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그가 소설가였을 때부터 알고 있다. 그는 흥분 잘하고 나서기 좋아하는 나와는 과가 다른 인간이다
거꾸로 비친 우리 삶의 황무지, <박하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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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UFO 떴다
누구나 다 아는 전설이 팀 버튼식으로 변하기까지
팀 버튼은 의뭉스럽다. ‘1799년 뉴욕’이라는 설명을 달아 마치 <슬리피 할로우>가 역사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양 착각하게 하지만, <슬리피 할로우>는 지상에 없다. 팀 버튼의 주인공들이 현실세계에 안착하지 못하듯 그는 언제나 현실 밖에 이상한 나라를 만들어왔다. 누군가의 지적대로, 그 나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기폐쇄적인 세계(singular self-enclosed world)다. 마치 이미지의 독재자처럼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의 믿음대로 그 나라를 통제한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가 그러하듯, 팀 버튼의 영화는 무엇보다 먼저 화면 그 자체를 살펴야 한다. 표면을 읽음으로써 심층을 헤아리는 게 팀 버튼의 영화에서는 가능하다.
스타일화한 자연주의, 모순된 세계를 찾아서
팀 버튼 사단이 다시 뭉쳐 만든 <슬리피 할로우>는 더 깊어진 팀 버튼의 비전을 보여
이상한 동화나라의 팀 버튼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