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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소영 / 출연 김지선, 강태구, 케이트 클랜시, 제이미 허버트 / 제작연도 2006년
어렴풋이 단편 작업을 함께하기로 한 배우들과 <방황의 날들>을 보고 낙원상가를 걸어나온 기억이 난다. 우연히 이 영화를 접한 내가 배우들에게 함께 보자고 졸랐다. 종로의 극장에서 나는 훌륭하고 훌륭한 프랑스, 대만, 일본, 할리우드 영화를 보고 감명받았지만 그 영화들이 내 이야기같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그건 영화가 재밌고 감동적이고 충격적인 것과는 또 다른 터치였다. 나는 바로 당신을 관객으로 염두에 두고 있어요, 나는 당신이 이 이야기에서 무언가 느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하고 영화가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방황의 날들>은 엄마를 따라 이주한 낯선 도시에서 방황하는 10대 에 이미(김지선)의 성장담이랄까 생존담이랄까, 그가 하루하루 누굴 만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결심을 하는지 세세하고 면밀하게 좇는 영화다. 영화는 에이미 말고는 관심이 없다는 듯 시종
[내 인생의 영화] 유은정 감독의 <방황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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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이에요.” KBS Joy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온 한 출연자의 말에 진행자인 서장훈과 이수근의 얼굴 위로 물음표가 떴다. 하지만 여장한 거한 ‘선녀님’과 마흔다섯 먹은 ‘동자’가 고민 상담도 하는 마당에 놀랄 일도 아니다. 스물한살 청년은 “남자에게 정서적으로 끌리는데 육체적으로는 아무에게도 끌리지 않고 내면에는 양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잠시 혼란을 겪은 MC들은 곧 ‘바이로맨스 호모섹슈얼’ 같은 응용문제도 풀 수 있게 되었다.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리고 싶어 나왔다는 그에게 서장훈은 “사람이 자신을 속이고 사는 건 좋지 않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 건 중요하다”며 “다만 부모님 이 상처를 덜 받으시게끔 잘 설득하라”고 조언했다.
드라마에 동성애자가 나온다고 신문에 반대 광고가 실리고, 트랜스젠더 예능이 1회 만에 폐지된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뉴미디어 시대가 오며 성소수자의 존재를 지우는
<무엇이든 물어보살>,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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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가장 보통의 연애> 2시간이나 통화를 했는데 들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정훈이 만화] <가장 보통의 연애> 2시간이나 통화를 했는데 들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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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를 꿈꾸는 최진리양.” 설리가 세상을 떠난 후 옛 영상들이 여럿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띈 것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 설리가 <밥상천하>라는 TV 요리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상이었다. 그때도 큰 자막으로 저런 자막을 넣은걸 보면 제작진과의 사전 인터뷰 때, 분명히 연기자의 꿈을 얘기한 것이리라. <씨네21>에서도 설리를 인터뷰한 적이 두번 있다. 굳이 가장 최근의 인터뷰라면,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 2011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졌던 <SMTOWN 라이브 월드 투어> 실황을 담고 있는 최진성 감독의 <I AM.> 개봉 당시 가졌던 인터뷰다. 최강창민, 은혁, 티파니와 함께한 인터뷰였기에 단독 인터뷰는 아니었다. 당시 인터뷰 시간 절약을 위해 그들에게 빈칸을 스스로 채우게 하는 공통 질문을 던졌고, 기억에 남는 설리의 문답 몇개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어머니]다.” “가수가 되지 않
[주성철 편집장] 설리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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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철용 열풍’에 힘입은 배우 김응수의 상승세를 보고 있으면 ‘누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이 현상을 있어 보이게 표현한다면 네티즌과 인플루언서(SNS에서 많은 구독자를 둔 사람)가 또 다른 스타 메이커로 등판하면서 인기의 예측 불가능성이 더 커진 시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팝 음악계도 다르지 않다. 최근 빌보드 싱글 차트 5주 연속 1위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리조의 <Truth Hurts>는 처음 발표된 2017년에는 차트인에도 실패했다. 그러나 틱톡에서 유행한 ‘#DNATest’ 배경음악으로 쓰이며 역주행에 성공했다. ‘#DNATest’란, <Truth Hurts>의 가사를 인용해 “DNA 테스트를 받았더니 100% OOO라고 나왔어”라고 개그를 선보이는 영상이다. 스스로가 바보 DNA를 가졌으면 최대한 바보 같은 몸개그를 선보이는 식이다. 별것 아닌 이 놀이가 틱톡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퍼졌다. 빌보드 최장기간 1위 기록을 갈아치운 릴
[마감인간의 music] 리조 <Truth Hurts>, 역주행 거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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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같았으면 테이프가 늘어졌을 것이다. 듣고 듣고 또 들어서, 더이상 테이프가 음악을 재생해낼 수 없을 때까지 테이프를 잡아 늘리고 말았을 것이다. 요즘 이렇게 열렬히 사랑에 빠져 있는 음악은 감미로운 목소리의 발라드도 몸을 들썩이게 하는 댄스곡도 힙한 감성의 인디음악도 아닌, 몇 백년 묵은 클래식이다. 하도 오랫동안 한방을 차지하고 있는 바람에 거기 있는 줄을 모두가 잊어버렸던 <백년 동안의 고독> 속 멜키아데스 같은 음악. 하지만 멜키아데스는 분명히 거기에 있고,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엔디아 가문의 전 생애를 예언하고 있다. 클래식 역시 분명히 거기에 있고, 인간의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곳에 기록되어 있다.
대개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애호가들을 제외하고는 비슷비슷하다. 지루하다. 가사가 없다. 현악기와 관악기, 피아노 등의 악기가 쓰인다. 길다. 졸리다. 여기에 학창 시절 치르곤 하는 음악 과목의 듣기시험-주로 비발디의 <사계>가 출
음악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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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브래드 버드 / 목소리 출연 제니퍼 애니스턴, 빈 디젤, 엘리 마리엔탈, 크리스토퍼 맥도널드, 존 마호니 / 제작연도 1999년
첫돌 사진 속의 나는 양손에 연필을 한 다발 쥐고, 돌상 위에 놓인 책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은 돌잡이 때 아이에게 쥐어주는 0순위가 노골적으로 현금이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책과 연필이 현금으로 가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라 여겼던 듯하다. 어린 시절의 돌잡이 사진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의 운명을 거스르는 것 같은 주술적인 부담으로 각인되기도 했다. 20대가 되고,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서야 돌잔치의 내가 바라보던 책이 월트 디즈니 만화영화 전집이었고, 연필의 쓰임새는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애니메이션이 하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1999년, 나는 애니메이션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갔고, <아이언 자이언트>가 개봉했다. 난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지 않았다. 심지어 작품
[내 인생의 영화] 원종식 감독의 <아이언 자이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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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고양이가 다가와 페이지와 페이지가 맞붙은 곳을 앞발로 박박 긁어댄다. 고양이들이 좁은 틈으로 파고드는 본능은 별스러운 일도 아니다. 그래도 워낙 열심히 파니까, 뭔가 따로 보이는 것이 있나 싶기도 하다. 우리 집 고양이가 조금만 더 끈기가 있었다면 짝수쪽과 홀수쪽 사이, 예정된 이야기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갈퀴발톱으로 다른 가능성을 쑥 당겨 뽑을 수 있지 않을까?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리, 컷과 컷 사이의 공백을 느끼게 된 인물이 있다. MBC 드라마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18살 고등학생 은단오(김혜윤) 얘기다. 등교한 기억이 없는데 학교에서 시험을 보고 있고, 눈 깜짝할 사이 며칠이 지나기도 한다. 주변 친구들은 듣지 못하는 ‘사각’ 하는 소리도 들린다. 알고 보니 단오가 사는 곳이 만화 속 세상이고 ‘자아’를 갖게 되면 컷과 컷 사이의 공백을 알게 된단다. 단오는 ‘금수저’에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하필 심장이 약하고 약혼자가 있는 자신의 설
<어쩌다 발견한 하루>, 단역들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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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퍼펙트맨> 니 와 여기서 자고 있노?!
[정훈이 만화] <퍼펙트맨> 니 와 여기서 자고 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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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 묻고 더블로 가! 10년도 더 지난 영화 <타짜>(2006)에서 순정파 보스 ‘곽철용’을 연기했던 김응수 배우의 때아닌 전성기가 도래했다. 그래서 이번호에 김성훈 기자가 그를 만났다. 다른 매체에서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 그리고 본인도 이번 기회에 일본에 연락하여 알게 된 진짜 일본 유학 시절 데뷔작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아무튼 개그맨 이진호가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팬임을 밝히고 <타짜>의 거의 모든 대사를 외운다고 하여 어떤 촉매제가 된 것 같은데, <타짜>를 수백번 봤다는 그는 방송인 유병재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타짜> 덕력 시험평가를 치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김응수의 팬으로서도 역시 같은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여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덕력 시험평가를 치르며 김응수가 연기한 최 검사의 대사까지 읊었다. “너 최형배랑 최익현이 집안사람인 거 알고 있었어?”
[주성철 편집장] <타짜> 곽철용 전성시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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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라는 이름 앞에서 나는 언제나 절망을 느꼈다. 그의 천재성에 휘둘렸다는 의미가 아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천재들이 너무 많다는 걸 이미 오래전에 절감했기에 천재 앞에서 나는 그저 경탄하고 어떻게든 배우려 노력할 뿐 절망하지 않는다. 내가 좌절한 건 다름 아닌 그의 음악적인 넓이와 깊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두고 내 주위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누군가는 찬사를 보내는 와중에 누군가는 기대만 못하다는 독후감을 적고 있는 모양새가 이를 증명한다. 그럼에도, 일치된 의견 하나가 있으니 “이번에도 음악은 죽인다”는 것이다. 과연 그렇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언제나 음악으로 나를 무릎 꿇게 한다. 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듯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뇌 속에 저장할 수 있는지 멱살을 잡고 묻고 싶을 정도다. 굳이 비율로 따져보면 절반 조금 넘는 것 같다. 그의 사운드트랙에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곡이 있을 확률 말이다. 나머
[마감인간의 music]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이번에도 음악은 죽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