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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민족주의자 밀로셰비치가 전쟁범죄자로 낙인찍힌 일을 패권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생각이 적어도 내게는 조금도 없다. 무자비한 인종청소, 그 과정에서 인종개량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간, 그건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다. 오늘 과거를 반성한다한들, 그 잘못을 되풀이하는 바보짓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나마 회복한 ‘건강한 정신’으로 세상과 삶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는 동안, 우리는 한뼘씩 사람답게 사는 영역을 확장시켜나갈 수 있다.제3회 여성영화제가 ‘쟁점’이라는 부문을 따로 만들어놓고, ‘포화 속의 여성들’을 초청해들였다. 그 ‘여성’들은 때로 남편과 아들을 전쟁에서 잃어버린 아내거나 어머니이다. 직접 싸움터에서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사람의 슬픔과 비탄은 전쟁의 비극을 정서적으로 환기시키는데 더없이 적절하다. 전쟁은 물론 그러한 상실만 강요하지는 않는다. 아이다처럼, 환향녀들처럼 남자들이 패배하면 그들의 여자들은 승리자의 전리품이
제3회 여성영화제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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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VS TV] 2001 프로야구개막전
[만화 VS TV] 2001 프로야구개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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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곽경택 감독의 <친구>는 깡패영화다. 소독차가 뿜어대는 모기약 안개 속을 좋아라 쫓아달리던 아이들이 어떤 길을 따라서 조폭이 되나를 밀착 취재한 한국판 갱영화다.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돌아온 감독은 성장기를 공유하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심중에서 꺼내 스크린에 펼쳤다. 소년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대체로 향수가 묻어 있게 마련.그 아련함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은 있다. ‘건달’과 장의사의 아들들은 주먹을 팔고, 중산층의 아들들은 대학에 간다. 선택의 외양을 띠고 있지만, 진정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누가 모를까. 그래서 일찍이 주인공은 가출하자고 쫓아온 모범생 친구에게 니는 니처럼 살아라, 나는 내처럼 사께, 라고 말한다. 학교는 기회를 분배하는 곳이 아니다. 너는 너처럼 살고, 얘는 얘처럼 살도록 금그어주는 것, <친구>가 보여주는 학교는 그렇다. 어쩌겠는가. 곽경택 감독은 실화라고 말한다.그런 세상조차 먼저 익힌 주인공 친구는 근력으로 치자면 한
친구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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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VS 영화] Bring It On
[만화 VS 영화] Bring It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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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VS TV] 역사스페셜
[만화 VS TV] 역사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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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비제도권의 영화제작 실습교육”을 해온 독립영화협의회의 독립영화 워크숍 10주년 기념행사를 하면서, 이 단체가 <씨네21>에 감사패를 주어도 좋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벌써 10년이 됐나.생각해보면, 감사를 해야할 쪽은 분명 ‘우리들’이다. 첫째, 한국영화의 토대를 만들고, 한국사회의 진보에 기여하는 영화의 길을 찾던 젊은이들의 노력에 대한 감사. 그리고, 영화의 당대사를 비평과 보도라는 행위로 기록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의 감사. 기록자라는 직업을 가진 자들에겐, 하나의 흐름이 생성돼 벼랑과 거대한 바위에 부딪히며 급류를 이루고, 거대한 강이 되는 과정까지 지켜볼 수 있다면 그건 행운이다. 기록을 실천으로 삼는 자들에게도 마찬가지.때를 맞춘 듯, 30일부터 ‘한국 독립영화 회고전’이 열린다. 서울에서도 강남, 그 개발기의 낡은 초상이라 불러도 좋을 단편영화 <강의 남쪽>이 ‘매혹의 기억’(회고전의
독립영화, 기억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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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생각의 실마리는 던질 수는 있다. 일군의 무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본영화 두편을 보고나서 하는 얘기다. 같은 제목으로 번역해놔서 김성수 감독의 <무사>와 자꾸 혼동하게 되는 일본판 <무사>와 <올빼미의 성>이 그것이다.<무사>는 이미 소개됐다시피 가정과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설국의 철도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친, 멸사봉공의 화신이라 부를 만한 산골역장이 등장하는 <철도원>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의 닌자영화다. 특수효과와 액션영화적인 요소들을 듬뿍 섞어 ‘현대화’하기는 했지만, 고갱이까지 바뀐 건 아니다. 주인공은 에도 막부의 군주가 호출한 그 아들을 아버지 앞까지 호위해가는 무사다. 아들이 내 친자일까 끊임없이 의심하는 군주가 먼 여행길에 장치해놓은 갖가지 난관을 뚫고 무사 일행은 달려가는데, 우리가 모두 죽더라도 왕자, 너만 살아남으면 그건 승리라고 무사는 거듭 선언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
닌자들이 던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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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영화는 아직도 발명중입니다. 우리는 그저 시작을 목격한 것에 불과하죠.” <씨네21>에 보낸 편지에서 빔 벤더스는 말했다. “디지털영화의 도래는 유성영화의 그것에 비할 만한 이행”이라고 그는 디지털을 편들었다. 영화에 소리가 도입될 때, 무성영화가 획득한 아름다움이 사라지는 것을 슬퍼하는 소리가 있었고 드디어 영화가 현실만큼 풍부해지리라고 반기는 선언도 있었는데.민규동 감독이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영화촌에서 보내온 감동적인 보고서에서도 디지털은 중요한 단어다. 가볍고, 쓰기 쉬운 디지털카메라가 영화창작에 어떤 자유를 부여하는가를 디지털영화 <어둠 속의 댄서>의 감독은 이야기했고, <여고괴담2>의 감독은 공감했다. 디지털이 라스 폰 트리에게 100대의 카메라를 동시에 돌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면, 한국의 가난한 감독에게는 35mm 필름으로는 엄두를 낼 수 없는 영화제작을 실현시켜주었다.디지털은 또 영화유통산업에도 당연히 변화를 불러온다. 국
너의 디지털, 나의 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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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Mr. 맥도날드
웰컴, Mr.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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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여인천하> 세상의 반이 여자
[정훈이 만화] <여인천하> 세상의 반이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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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에 처음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인 건 포룸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 감독들의 토론이 벌어지는데, 공식경쟁부문의 기자회견 못지않게, 아니 더 깊은 얘기들이 오가고는 했다. 이거 참 재미있다고, 우리도 이런 걸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우리’ 영화평론가와 부러워했는데 그 평론가는 한국에서 국제영화제를 만드는 일에 참여하더니 정말 그런 자리까지 장만했다. 한국의 국제영화제들은 이제 하나같이 관객과의 대화를 주요프로그램으로 잡아놓고 있다. 영화제가 토론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한국에서 꽤 의미있는 토론교육장이 된 셈이다.포룸에서 모방하지 못한 장점은 그 배후, ‘독일키네마테크의 친구들’이란 운영주체다. 포룸은 지난 1971년, 베를린영화제가 이미 경직되어서 새로운 영화를 수용못한다고 판단한 이들이 만든 대안영화제로 시작됐다. 베를린영화제는 곧 자기들의 대안을 포섭해들여 포룸에 독립된 땅을 분양해주었다. 그곳은 정치적으로건 영화적으로건 첨단이나 변방에서 떠오르는 영화들의 포럼이 되
어느 영화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