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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오! 또 졸고 있으면 어떡해잉?” 희경이 짹짹거리는 소리로 승우의 단잠을 깨웠다. “왜 또 난리야, 이 마누라야! 중국집에서 빵집으로 업종 전환을 했으면, 그만큼 좀 교양 있어져야 할 거 아냐?” 승우는 진저리를 치며 ‘빠리빠리 베이커리’라고 적힌 빵 봉지를 희경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아 이거 치워. 교양? 장사되는 꼬라지를 보고 교양 타령을 해라! 이거야, 빵에 들러붙은 게 건포돈지 파린지 알 수가 없잖아.” “낸들 알아? 처음엔 좀 되더니, 이젠 안 팔린 빵 먹느라고 뱃대지에 밀가루살만 붙어버렸잖아.” “그러니까, 연구를 해야 된다고. 왜 우리가 이렇게 파리를 날리는 줄 알아?” 그러면서 희경은 가게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가게 안으로 몰아닥치자, 승우는 몸서리를 치며 소리질렀다. “아 뭐야, 추워 죽겠는데.” “저쪽 건너편에 보여? ‘아메리칸 파이’라는 가게.” “파인지 파린지 그게 우리랑 뭔 상관야?” “무식하긴. 유사 업종이잖아. 저 집 말야. 미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아메리칸 파이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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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아줌마 애기 낳던 시절. 시댁 어른들은 직장 다니는 남편이 밤에 잠을 푹 자야 한다며 딴방을 쓰게 했다. 그뒤 1년 반 동안, 아줌마는 ‘애기’라는 이름의 불면과, 남편은 자유와 함께 살았다. 그때 밤에 잠 안 자고 칭얼대는 아기를 단 한번도 대신 봐주지 않았던 남편에게 아줌마는 왜 칼침을 놔주지 못했던가. 애기를 팽개치고 지 한몸 편하자고 드르렁 쿨쿨 잘살았던 남편에게 왜 살의를 느끼지 않았던가. 아이를 팽개치고 자기 삶을 챙기는 배우자에겐 살의를 느껴 마땅하고, 좋아하던 연애소설말고 새삼스럽게 추리소설을 열심히 읽어서 그 살의를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영화 <해피엔드>의 주장에 전폭적으로 공감하는 아줌마는, 과거의 자신이 미치도록 후회스러울 뿐이다.
아줌마가 보건대, 이 영화의 주제는 최보라의 ‘외도’가 아니다. 육아문제다. 아이를 팽개치고 술 마시거나 아이를 팽개치고 친구 만나거나 아이를 팽개치고 회사 일에 매달리거나 간에, ‘아이를 팽개치는’ 건 도덕
[아줌마, 극장가다] 모든 게 나라 책임이야, <해피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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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40%를 웃돌고 있다. 터졌다 하면 60, 70만명이 기본이고 ‘영상 펀드’라는 말이 귀에 익을 정도로 영화판이 후끈거린다. 지난 겨울 줄초상난 것 같던 충무로가 1년도 지나지 않아 흥청거리고 있으니 불안감마저 든다. 그래서 세기말인가. <세기말>을 선보일 송능한 감독 목소리엔 자신감이 넘친다. “관객에게 외면당한다면 감독으로서 진퇴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다.” 치받을 듯 당당한 폼이며 뱃심이 <넘버.3>의 박상면을 닮았다. 이번엔 재떨이를 던지는 게 아니라 우두둑 깨물어 파편을 날린다. 천박한 세태를 향한 송능한의 분노와 증오가 무섭다.
닳고 닳은 이야기, 영화는 현실을 못 따른다
정자들이 꼼실거리는 오프닝이 예사롭지 않다. 4개의 에피소드는 <숏컷>이나 <펄프픽션>처럼 분절되면서 물밑으로 연결되는데, 한 단락의 주인공이 다음 단락에 단역으로 잠깐식 나온다. 그들은 서로 아는 듯 모르는 듯 스쳐가고 마주친다
용맹스런 감독, 자세를 낮춰라, <세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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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을 잘라냈다 붙였다 하는 곳이라 필경 지저분할 것으로 지레 짐작하는 것은 오산이다. 남나영(29)씨와 이수연(28)씨가 의기투합해서 차린 LN편집실은 항상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오리지널 필름을 다루는 네거편집의 공정을 고려한다면 이는 기본규칙인 셈이다. 매끄러운 프린트를 위해서 먼지나 스크래치는 절대사양. 네거편집이란 최종편집본이 나오면 이를 기준으로 오리지널 네거필름을 잘라 붙이는 과정. 이 작업이 끝나면 곧장 현상에 들어간다. 그림만 놓고 보면 마지막을 장식하는 셈이다. 별도의 전문기사가 담당하는 할리우드 시스템과 달리 국내에서 네거편집만을 전문적으로 맡고 있는 곳은 올해 7월 문을 연 LN편집실이 처음이다.
남나영씨는 박곡지 기사 밑에서, 이수연씨는 박순덕 기사 밑에서 일을 배웠다. 기술시사 때 조금이라도 프린트에 이상이 있으면 자신들을 먼저 쳐다보는 시선에 막내 땐 적잖이 마음상했던 적도 있다. 조금만 기다리면 편집기사로 데뷔할 기회가 주어질 차례였지만, 자신들의
네거편집 남나영·이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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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 김치’라는 노란색 포스터가 내걸린 동숭씨네마텍. 추운 날씨 때문인지 오가는 발걸음이 뜸했다. 12월18일부터 23일까지 엿새 동안 외국에서 활동중인 젊은 한국감독들의 작품을 모아 소개하는 이 자리에 관객은 별다른 관심을 내비치지 않았다. 날도 추운데, ‘나는 누구인가’ 하는 을씨년스런 고민에 덩달아 심각해지기 싫은 탓일까. 사실 재외한인 감독들의 작품이라고 해서, 한국인입네 정색하는 작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 써니 리(이선영) 감독의 작품을 만나야 했다. 그가 미국서 들고온 단편 <카우걸> <중국음식과 도넛>은 만듦새도 깔끔하지만, 재기발랄하고 유쾌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극장 밖으로 나올 즈음, 관객의 머릿속에 불쑥불쑥 묵직한 생각거리들이 튀어오르게 하는 재주가 범상치 않다.
써니 리 감독은 4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 버지니아로 건너갔다. “특별히 잘하는 건 없지만, 얘기 만드는 걸 좋아해서” 영화에 관심을 기울였고, 시
재외한인영화제에 <카우 걸> 출품, 방한한 재미한인 감독 써니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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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의 여신 마돈나가 “평생의 유일한 사랑”이 있다고 고백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뾰족한 원뿔을 가슴에 달고 남성 댄서들을 희롱하는 마돈나, 거리낌없이 오럴 섹스를 재현하는 이 위협적인 섹스심벌도 한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는 사실에 남자들은 질투섞인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그가 ‘할리우드의 악동’으로 소문난 숀 펜이라면 더욱 안심이다. 파파라치가 탄 헬기를 향해 권총을 쏘아대고 기자들에게 주먹을 휘두르던 숀 펜은 사람들이 보기에 그저 난폭한 젊은이였을 뿐이며, 그에게 얻어맞고 이혼한 마돈나는 별 수 없는 ‘여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선 ‘마돈나의 남편’을 둘러싼 수다와 다소의 진실을 걷어내자, 그래야 동세대의 가장 재능있는 배우로 평가받는 숀 펜 자신이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방으로 터져나오는 분노와 수상한 열정을 감추지 않는 배우. 단 한번도 순종적이지 않았던 숀 펜은 할리우드의 통념과 소비적인 이미지에 반역을 기도한다. 그의 반항은 10대 혹은 2
할리우드를 향해 총구를 겨누다, 의 숀 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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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편의 영화로 천국과 지옥을 다 맛봤다면, 그건 배우에게 행운일까 불행일까? 김태연(23)은 데뷔작 <거짓말>로 국제 무대에 서는 행복과 분신 같은 영화가 처참하게 짓이겨지는 불행을 동시에 겪었다. 서럽게 울면서 흠씬 맞아가면서 영화를 찍기는 괴로웠지만 그러면서 자기 안에 숨겨진 보석 같은 재능을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김태연은 미지의 배우다. 유일한 영화 출연작인 <거짓말>은 등급보류로 관객과의 만남을 봉쇄당했고, 유일한 TV드라마 출연작인 <러브 스토리>는 아직 촬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의 사진이 세계 유명 여배우들과 나란히 이탈리아판 <엘르>에 실렸고, 일본 화장품CF의 오디션 제의를 받았으며,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갈 한국영화 유망주로 거론되고 있다.
배우에게 데뷔작이 은막으로 가는 통과의례라고 한다면, 김태연은 꽤나 수고로운 제의를 치른 셈이 된다. <거짓말>에서 그가 그려낸 Y는 결단코 예사로운 인물
망가진 역할이 아름답다, <거짓말>의 김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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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없으면 셰익스피어도 없다
아주 오래 전에, 비평적으로 막 재평가받기 시작하던 60년대 초에 앨프리드 히치콕은 <무비>의 빅터 퍼킨스와 나눈 대담에서 비평가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영화감독은 카메라 뒤에서 수십번 고민한 끝에 장면을 만든다. 그러나 평론가는 정확하지 않은 기억에 기초해 영화의 좋고 나쁨을 일필휘지로 판단한다. 시사회를 보고 집으로 돌아간 그날밤에 신문이나 잡지에 실릴 평을 휘갈기는 혐오스러운 존재가 바로 평론가라는 것이다. 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최근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세기말>에도 잘난 체하는 평론가를 야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극중 시나리오 작가의 입을 빌려 평론가들의 경솔하고 천박한 20자평에 독설을 퍼붓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아예 영화감독들에게도 평론가들에 대해 20자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어떨까, 라는 심정이 드는 것이다.
다른 언론인과 마찬가지로 평론가도 독자에게 정보와 해설을 제공하고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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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레터에 답장을 해다오!
한국의 영화평론가는 더이상 영화에 관한 글을 쓰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영화에 별점을 줄 뿐이다. 떠오르는 짓궂은 의문들. 별점을 주고도 원고료(?)를 받는지? 받는다면 얼마를 어떤 식으로 계산해 받는지?
신문에서는 문화부나 연예부의 영화담당기자가, 영화잡지에서는 영화전문기자가, PC통신이나 인터넷에서는 아무나(!)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 정작 영화평론가만 영화에 관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강한섭 한국영화의 경계를 최소한 한뼘은 넓혔다. ★★★☆
박평식 다양하고 명렬하게, 자주, 오래도록 벗는 처녀들. ★★☆
유지나 여성의 섹스담론은 신선하다. 그래도 지겹도록 성기 중심적이다. ★★☆
이명인 저녁식사용으로도, 추석용으로도 껄끄러운 얘기. ★★☆
-<처녀들의 저녁식사>에 관한 <씨네21> 개봉영화 20자평에서.
박평식이 이 영화에서 ‘착지점 없는 당대 젊은 여성의 생존’(<국민일보>, 1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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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선 지금
99년을 마감하는 현재 프랑스영화계의 최대 화제는 <리디큘>(Ridicule)의 감독 파트리스 르콩트에 의해 시작된 감독들과 비평가들의 일대 격전이다. 모든 것은 지난 10월13일 르콩트 감독이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연합인 ARP 회원들에게 보낸 짧은 편지에서 시작됐다. “얼마 전부터 프랑스영화를 대하는 비평가들의 태도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몇몇 평론가들이 마치 대중적, 상업적인 프랑스영화를 죽이기 위해 비평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지 함께 토의하자고 촉구하며 끝난다. 원래는 사적인 성격을 띤 이 편지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영화계와 언론계가 발칵 뒤집혔다.
여기에 가장 빠르게 대처한 언론은 암묵적으로 공격의 표적이 된 일간지 <리베라시옹>. 지난 10월25일 문제의 편지와 함께 르콩트 감독 인터뷰를 실어 논쟁을 확산시켰다. 이 인터뷰에서 르콩트 감독은 프랑스영화의 시장 점유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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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영화 위해 살고 평론가는 영화 덕에 산다?
최근 개봉한 송능한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세기말>에서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는 주인공이 평론가를 비판하는 장면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인 시나리오 작가 두섭이 술집에서 만난 평론가에게 일침을 놓는다. “자넨, 자네 마누라한테도 별을 주고 그러나? 마누라 쌍통은 두개반, 젖퉁이는 별 세개… 그러면서 살아? 사랑하는 대상이라면 신중해야지. 영화를 밥그릇으로 보니까 함부로 별을 주고 그러는 거 아냐? 천박하고 파쇼 같은 짓이야. 그런 짓 하지마.” 원조교제하는 졸부, 돈이란 잣대로 모든 걸 판단하는 졸부의 아들, 지적 허세를 부리며 이율배반적 삶을 받아들이는 대학강사 등 99년 서울의 우울한 풍경을 대변하는 인물들 가운데 영화평론가도 한몫을 차지한 것이다. 송능한 감독은 “이게 평론가 전체에 대한 원한으로 오인되지 않기를 바란다. 평론가들이 늘 만드는 사람들에게 충고하는데, 한번쯤은 만드는 사람이 평론가들에게 충고할
창작과 비평, 애증과 공생관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