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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의 아스팔트 정글에 갇힌 도시인들을 꿈을 꾼다. 이 지긋지긋한 ‘비명도시’를 빠져나갈 꿈을. 다소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그 꿈은 광활한 판타지의 세계로 팽창하는 ‘백일몽’일 경우도 있지만 미로와 같은 도시 속을 헤집고 돌고도는 ‘악몽’도 있다. 악몽을 꾸는 도시인들은 갖은 고생을 겪다가 결국 필사적으로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큰맘 먹고 발을 내딛은 결과가, 온갖 고초를 겪은 보상이, 겨우 원점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라니 참 허망하기도 하다. ‘홈 스위트 홈,’ 또는 ‘노 웨이 아웃’(No Way Out).
부랑자들이 기거하는 버려진 화물 열차로, 그러곤 게토의 아파트로, 음습한 하수구로 죽음의 마수를 피해 달아나다 거의 죽기 일보 전까지 고생하는 젊은이들을 그린 <킬러 나이트>는 그런 도시 정글에서의 악몽을 재연하는 흔해빠진 액션 스릴러 영화다. 프랭크와 존 형제, 흑인 마초 마이크, 수완가인 레이, 이 네 젊은이는 권투 경기를 구경하러 모처럼 외출길에 나선
여기가 지옥이야, 스티븐 홉킨스의 <킬러 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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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닥친 녹음 일정 탓에, 난 집에도 못 들어가며 며칠째 작업실 앞의 여관 신세를 지고 있는 터였다. 난 이런 시기이면, 전화를 받을 때 처음부터 아주 피곤한 듯 목소리를 내리까는 버릇이 있다. 처음부터 잔뜩 피곤한 척을 해야, 다른 약속들을 피해갈 수 있다는 계산때문이다. 막 여관방을 나서려는 순간 휴대폰 소리가 울리고, 난 계산대로 잔뜩 피곤한 음성으로 전화를 받았다. <씨네21>의 황 기자였다. “목소리가 별로 안 좋으시네요… <플란다스의 개>는 다 끝나셨을 텐데….” 나의 대답은 “아…아니요. 괜히 그래 봤어요”였다. 나의 계산은 이렇게 지금까지 한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다. 난 아무 저항 없이 나흘 안에 원고를 써 넘기기로 했다. 사실 녹음을 눈앞에 두고 변심한 이유는, 내게 떠오르는 한편의 영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다시 내 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이야기는 사춘기 시절로 돌아간다.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가끔씩 난 아버지, 형들
스텔라를 닮은 여인, <라스트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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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드레스>는 한국과 일본의 합작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스탭들이 제작에 참여한 애니메이션으로선 국내 최초의 극장 개봉작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개방을 앞둔 시점에서, 일종의 실험 프로젝트라 할 만하다. 동화와 원화 부분은 한국에서, 그리고 시나리오와 연출 등은 일본 스탭들이 담당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린 것도 당연한 이치다.
<건드레스>는 제작과정이 복잡하다. 일본의 닛카쓰와 파나소닉 디지털 콘텐츠, 이너브레인 등의 회사가 동아수출공사와 공동으로 제작비를 댔다. 거대 프로젝트라 일컫어도 어색하지 않다. 국내 스탭이 기획 및 제작, 배급에 참여했고 각본과 캐릭터 설정 등 주요 부분은 주로 일본인 스탭의 손을 거쳤다. 스탭 진용은 쟁쟁한 편이다. 주목할 인물은 <애플시드>와 <공각기동대> 등의 SF물로 잘 알려진 만화가 시로우 마사무네. 캐릭터 설정을 맡아 예의 날렵한 사이버펑크풍의 여성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연출자 야타베 가쓰요시는 &
한국과 일본의 합작 애니메이션, <건드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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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땐 누구나 한번쯤 ‘난 혹시 미운 오리새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봤을 것이다. 나만 유별나다는 섣부른 자의식은 견디기 힘든 형벌이었고, 친구들로부터 외돌아졌다는 소외감은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의 감옥’을 들락거리게 했다. 그 시절의 상처는, 무뎌지기는 해도 잊혀지지는 않아서, 지금도 기억 속에서 느닷없이 기어나와 그때의 나를 뼈아프게 각성시킨다. 조시 또한 그랬다. 유능하고 현명한 어른인 조시는 취재기자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다시 고등학교로 뛰어들지만, 정작 그녀가 맞닥뜨린 건 ‘특종거리’가 아니라 그녀의 옛날이다.
<25살의 키스>는 이렇듯 어른을 주인공으로 한 10대 코미디 영화. 조시의 시선으로 요즘 10대들이 사는 법을 유머스럽게 스케치한다. 조시가 잠입한 학교는 더이상 꽉 막힌 공간이 아니다. 무엇도 아이들을 가두지 않으며 아이들은 경쾌하고 풍요롭다. 그럼에도 친구 만들기는 여전히 만만치 않으며, 그곳에서 조시는 ‘또다른 조시’를 발견하고 분노한
요즘 10대들이 사는 법, <25살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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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를 표방한 <인코그니토>는 <토요일 밤의 열기> <블루썬더> <니나> <고공침투> <닉 오브 타임> 등을 연출했던 존 바담 감독의 최신작. 렘브란트의 그림 한점을 그려주면 50만달러를 주겠다는 브로커들의 덫에 걸려든 해리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렘브란트 작품을 모조하는 데 혼신을 다한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진품(?)을 훔쳤다는 누명. 체포되어 법정에 선 그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위작을 또 한번 그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해리의 인생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두장의 그림 사이에 <인코그니토>는 익숙한 스릴러 장르의 복선과 장치들을 채워놓았다.
자신의 재능을 확인할 때라곤 남의 그림을 베낄 때 뿐인 해리와, 생계를 위해 당대 유럽의 최고 화가였던 루벤스의 그림을 따라 그려야 했던 렘브란트. 사전 정보를 조금 챙겨보면 그렇게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와 <인코그니토>의 해리
결백한 도망자, <인코그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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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지인 홍콩보다 오히려 국내에서 컬트가 된 주성치 영화는 품위와 상식에 대한 기대를 버리면 버릴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희한한 종류의 코미디다. ZAZ 사단의 패러디 정신과, 인분이나 정액을 과감히 등장시키는 패럴리 형제의 악취미가, <주성치의 007> <홍콩레옹> <홍콩 마스크> <식신> 등으로 이어지는 주성치 코미디에 고루 깃들어 있다. <희극지왕>은 그의 영화치고 좀 점잖은 축에 속해서 주성치를 섬기는 교파에 입문하기에는 비교적 적당한 코스다.
진지함을 뒤집는 데 달인의 경지에 오른 주성치가 <희극지왕>에서 패러디하는 것은 <007>이나 <마스크> 같은 할리우드영화가 아니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화현장 자체다. 홍콩에서 최고 몸값을 받는 배우인 그는 스스로 엑스트라가 되는 경험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대신한다. 영화에서 무능력한 사내가 현실에서 백마탄 기사가 된다는 <희극지왕>
주성치의 낭만과 낙관이 넘실대는 무대, <희극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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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마흔두살인데, 일년 안에 죽을 것이다. 물론 난 아직 그걸 모르고 있다”
이게 무슨 소린가. 불치병에 걸린 걸까. 사고를 당하나. 자살한다는 건가. 죽는다 해도 이 말은 누가 언제 하고 있는 걸까. <아메리칸 뷰티>는 첫 내레이션에서부터 시점(時點)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슬쩍 지우며 시작한다. 목소리의 주인공 버냄은 중년의 미국 화이트 칼라다. 대도시 근교의 멀쩡한 집에서 아주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 아니, 말하는 걸 봐서는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 외양은 매끈하기 짝이 없다. 집도 근사하고, 미인 아내는 부동산 중개업을 열심히 하고 있으며, 고등학교 다니는 딸도 몹시 예쁘다. 그런데도 내레이션은 이렇게 이어진다. “난 이미 죽어있는지도 모른다. 내 아내와 딸은 내가 엄청난 패배자라고 생각한다.”
<아메리칸 뷰티>라는 제목의 뜻은 ‘①가장 고급스런 장미의 이름, ②금발에 파란 눈, 전형적인 미국 미인, ③일상에서 느끼는 소박한 아름다움’이라
병든 가족, 벌레먹은 꿈, <아메리칸 뷰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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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자귀모> 실수로 자살한 남기남
[정훈이 만화] <자귀모> 실수로 자살한 남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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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 아시아영화들을 둘러보고 다니는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지석씨에게 “요즘 동아시아영화들 어때요? 한국 같은 데 있어요?”하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없다”는 것이었다. “산업으로나, 작품수준으로나.” 80년대 중반 이후 작가 영화의 뉴 웨이브로 한때 한국 ‘작은영화주의자’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던 대만영화만 보더라도 지금 “근근이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국내산업은 거의 몰락했고 명망가 감독들이 외국 돈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다. 차이밍량은 미국 돈으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고, 허우샤오시엔은 프랑스 자본으로 신작을 찍는데 ‘시나리오를 미리 내놓으라’는 주문을 이행하지 못해 촬영을 중지당했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국가주도 영화산업이 민영화의 과도기에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고 독립영화작가들은 검열과 제작비 문제로 게릴라식 작업을 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바다. 일본 역시 메이저들은 생산활동을 중지했고, 과거와 같은 대작 제작시스템은 무너졌으며, 독립영화사들이
[편집장이 독자에게] 정말 영화 잘들 찍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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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쾌도난담은 희한하다. 양심수들이 애독한다는 양식있는 시사주간지에 지성도 교양도 함량 미달인 두 건달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두세 시간 횡설수설하는 게 매주 멀쩡하게 실려나간다. 한두번의 해프닝으로나 어울릴 이 믿기 힘든 일은 해를 넘겨서도 계속되고 있다. 풍문으로는 쾌도난담 덕에 <한겨레21> 웹사이트 조횟수가 몇배 늘었다고도 하고, 이 수채 같은 기사를 저주하며 구독 중단을 선언하는 비장한 독자가 나타났다고도 한다. 그런 극단적인 반응은 내 머리통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대로 진지한 얘기들을 무겁지 않게 전한다는 장점(제대로 전하는가는 논외로 두고)도 있지만, 사적 톤으로 발언하고 공적 톤으로 읽히는 쾌도난담의 작동 원리는 나를 늘 불편하게 한다. 쾌도난담은 마치 내가 어느 카페에서 친구와 편하게 나눈 대화를 수많은 사람에게 생중계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쾌도난담을 읽는 사람들은 나를 실제보다 조금 더 경박한 인간으로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쾌도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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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할리우드작가들의 뒷조사(?)에 매달리다보니 별의별 화상들을 다 만난다. 개중에는 평생 쓴 작품의 필모그래피가 무려 200개를 넘어서는 괴물도 있다. 이쯤되면 기업이다. 작가의 이름이란 그저 회사의 상표일 뿐이고, 그의 이름으로 된 시나리오들은 모두 ‘포드시스템’을 도입한 공동창작의 산물인 것이다. 그게 시나리오의 자본주의적 발전단계에서 한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몰라도 글쎄…, 왠지 개운치가 않다. 평생 단 일곱편의 시나리오를 썼으되, 그 모두에서 심오한 통찰과 격조 높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는 로버트 볼트의 존재는 그래서 오히려 이채롭다.
로버트 볼트는 영국 맨체스터 지방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겟집의 아들로 태어났다. 맨체스터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그는 마을의 고등학교에서 역사선생으로 살아가면서 틈틈이 라디오대본들을 쓰기 시작한다. 그가 교사직을 그만두고 전업작가로 나선 것은 그의 희곡 <꽃피는 체리>(1958)가 런던무대에서 크게 흥행하면서부터. 그뒤
[할리우드작가열전] 기품있는 사계절의 사나이, 로버트 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