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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추천하여 독서토론을 했다. 며칠 전엔 같은 주제의 특강도 했다. 질문이 들어왔다. “선물을 하거나 받을 때, 돈과 실물 가운데 무얼 선호하느냐”고. 한 1초간 멈춘 후에 답을 했다. 돈을 배제하는 건 아니지만 굳이 하나를 선택하자면 실물이라고.
성의가 오고 가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가 ‘굳이’ 돈을 주거나 받기를 원한다면 차라리 깔끔해서 좋지만, 그 성의의 구체성이 액수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는 돈은 증여이지 선물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이들의 부모님처럼 명확히 돈을 선호하는 경우엔 가벼운 마음으로 돈을 드린다. 축의금이나 부의금처럼 ‘돈이어야 하는’ 증여 상황이 잦으니 그럴 때에도 그에 맞는 ‘값’을 치른다. 규격화된 증여에 따르는 세무 투명성을 위해 기록을 남기는 게 좋다고 판단하여 내 계좌의 ‘수치’를 줄여 상대 계좌의 수치를 아주 약간 늘려놓는 방식을 취한다. 또 내게도 금전 증여, 정확히 말하면
[정준희의 클로징] 선물과 뇌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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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인가? 동거인의 죽음을 예감한 잉그리드(줄리앤 무어)가 선베드에 쓰러져 흐느낄 때, 유리창 너머로 다가오는 흐릿한 마사(틸다 스윈턴)의 형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마침 객석의 몇몇이 숨을 훅 들이켠 것도 같다. 아직 배우 틸다 스윈턴이 퇴장하기엔 이른 타이밍임을 고려하는 훈련된 관객들에겐 어렵지 않게 오해의 해프닝을 유추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것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다… 그러니 약속된 자살의 사인(닫힌 문) 이후 등장한 저 태연한 존재를 유령이라 생각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귀향>의 어머니가 그랬듯 말이다.
거부할 수 없는 희망의 형벌로 항암 치료를 견뎠으나 결국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된 자궁경부암 3기 환자. 다크웹에서 구한 안락사 약으로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시한부의 전직 종군기자. <룸 넥스트 도어>의 마사가 항시 지나치게 깨끗하고 스타일리시하게 묘사된다는 사실도 인물을 차라리 하나의 유령 또는 기호로 바라보게 한다. (투
[김소미의 편애의 말들] 쓰는 사람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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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이야 언니. 생일 때 찾아오려고 했는데 지금에서야 오게 됐어. 미안해. 어떻게 지냈어? 요즘은 해가 쨍쨍한데도 비가 오고 벌건 날씨는 푸르러질 생각을 안 해. 그래서 때때로 시원한 맥주로 낮술을 마시면서 벌겋게 익기도 해. 유난히 더운 올여름, 언니는 무슨 과일이었을까? 여름과 참 잘 어울리는데. / 하늘을 자주 올려다봐.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색이 참 맑고 이쁘더라. 나한테 하늘은 유정이야. 오늘 지는 노을을 보고 (어느 색일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파스텔의 유정을 떠올릴게. 내 바람일 수도. / 지나간 ‘색’을 모으면 아주 두꺼운 책이 될 것 같아. 그것이 유정을 향한 내 사랑과 그리움의 아우성일 거야.
2023년 8월1일, 민하가.
나의 유정. 나는 미국에 2주 정도 머물다가 왔어. 여러 사람들도 만나고, 즐거운 시간도 보냈어. 왠지 모르게 외국에 나가면 언니 생각이 더 진하게 나. 밴쿠버로 떠날 때 언니를 놓고 왔다는 생각이 아직 깊이 남아서일까. 이제 격리를 하
[김민하의 타인의 우주] 그리워하는 모든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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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싸이가 말했다. 자는 동안의 세상이 궁금해서 잠을 잘 못 자겠다고. 그 말을 들은 김국진과 윤종신이 염소처럼 ‘메헤헤’ 웃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그건 약간 선을 긋는 웃음이었다. 싸이의 저 증상은 뭐랄까, 불안으로 여기면 한없이 위로할 만한 일이지만, 성향으로 보자면 왠지 경계하고 싶은 속된 마음이었으니까. 더군다나 ‘속된 것’이 정체성인 ‘속세형 아티스트’ 싸이의 말이었으니, ‘점잖음’의 미덕을 아는 90년대 연예인들에겐 다소 공감해주기 어려운 감정이 아니었을까? 또 한번 이렇게 멋대로 짐작해본다.
21세기의 시작과 동시에 유행한 풍조가 ‘엽기’였다는 사실은 여전히 잔잔한 충격으로 남아 있다. 물론 당시엔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초등학생들이란 시대에 의문을 품는 존재가 아니라 시대가 그대로 반영되는 결과적 존재 아닌가. 나는 한명의 작은 ‘엽기’로서 ‘엽기토끼’가 그려진 노트를 사고, <바부! 코리아>에 접속해 ‘노란국물’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잘 가 너무나 사랑했었어, <잘가> (더 자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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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숙의 오빠를 유혹해 그의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앙숙의 가족이 사는 집에 들어간다. 일일연속극의 로그라인 같은 이 문장은 휴먼 코미디 영화 <자기만의 방> 속 경빈의 궤적이다. 김리예는 “다른 배우가 경빈을 연기하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아” 열심히 오디션에 임했고, 오세호 감독은 경빈 역의 물망에 오른 몇 배우 중 “한 시퀀스를 디렉션에 맞춰 대여섯개의 감정으로 변주해내”는 김리예의 간절함을 읽어 영화 경험이 없는 신인배우를 작품에 전격 발탁했다. “경빈처럼 안 해도 될 말은 하지 않는 편이지만 팩트를 짚어줘야 하는 상황에선 필요한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김리예는 알게 모르게 캐릭터에 스스로를 많이 투사했다. “나와 경빈이 닮았다는 생각하며 연기하진 않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니 경빈의 대사 톤이 내 현실 말투와 똑같더라. 함께 영화를 본 동생마저 ‘언니 평소 말하듯 연기했네’라고 할 정도다. 그만큼 첫 영화의 첫 배역이 내 안으로 성큼 다가왔다.”
16살에 모델로 데
[WHO ARE YOU] 김리예 <자기만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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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앳워터 캐피털은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할리우드에선 약 7천억원에 달하는 자산을 관리하는 콘텐츠 전문 투자사다. ‘유녹(U-KNOCK) 2024 인 라스베이거스’(이하 유녹) 콘퍼런스를 여는 기조 세션에서 ‘자산 아닌 사람과 스토리에 투자’라는 주제로 발표한 바니아 슐로겔 앳워터 캐피털 창립자이자 대표를 만났다.
- 앳워터 캐피털에 대한 소개부터 부탁드린다.
지난 2017년 1월 앳워터를 설립해 약 5억달러의 자산을 관리하고 있다. LA에 위치한 앳워터 빌리지에 본사를 두고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스포츠 미디어 및 엔터테인먼트에 투자만 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골드만삭스와 글로벌 콘텐츠 투자사인 KPR이라는 큰 유한 파트너사가 있다. 우리는 전문성과 운영 철학을 기반으로 떳떳하게 자산을 운용하고 있다.
- 기조 세션에서 어떤 얘기를 할 생각인가.
앞으로 콘텐츠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절반은 한국인이자 한국에 가족이 있는 사람으로서 한
[인터뷰] 투자 관점으로 ‘사람’과 ‘이야기’를 본다는 것 - 바니아 슐로겔 앳워터 캐피털 창립자·대표 단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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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영화를 사고 파는 플랫폼에서 드라마, 웹툰, AI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콘텐츠에 대한 해외 투자를 끌어내겠다는 야심은 무모할 정도로 도전적이었다. 아메리칸필름마켓(AFM) 한복판에서 열린 ‘유녹(U-KNOCK) 2024 인 라스베이거스’(이하 유녹)는 이곳에 모여든 콘텐츠 제작자, 제1금융권, 창투사, 북미 투자자들의 관심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유녹이 열리기 하루 전이었던 11월6일에 만난 한국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원) 유윤옥 콘텐츠기반본부 본부장은 벌써 다음 스텝을 고민하고 있었다.
- 해외투자유치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한 목적이 무엇인가. 투자는 시장 질서에 맡겨야 하지 않나.
콘텐츠 산업은 민간 부문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일 때 가장 폭발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산업이라고 생각한다. 시장 논리에 따르면 콘텐츠 산업에 성공 가능성이 보일 때 민간 부문에서 자금이 몰려야 한다. 하지만 민간 부문에서 콘텐츠 산업 특성을 잘 모른다면 투자할 수 있는 경로와 기회가 없거나
[인터뷰] 가능성, 잠재력, 글로벌 전망에 투자한다, 유윤옥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기반본부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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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회 아메리칸필름마켓(AFM)이 처음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떠나 네바다주의 화려한 도시 라스베이거스에서 지난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열렸다. AFM이 45년 만에 LA를 떠난 것을 두고 “할리우드를 버린 것이 아니냐”라는 추측부터 “할리우드를 떠난 순간 AFM에 내리막길이 예상된다”라는 우려까지 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세계 최대 규모의 필름마켓 중 하나답게 전세계에서 온 세일즈 관계자와 바이어들은 이곳에서 열띤 비즈니스를 벌였다. 그중에서도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처음으로 연 한국 콘텐츠의 해외 투자 유치 프로그램인 ‘유녹(U-KNOCK) 2024 인 라스베이거스’ (이하 유녹)는 국내외 투자자, 창투사, 금융사, 제작사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네트워크를 쌓고, 함께 머리를 맞댔다. <씨네21>이 유녹 현장을 직접 찾았다.
<이 기사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아메리칸필름마켓이 마주한 2024년의 풍경
공항을 뒤로한 채 시
[기획] K콘텐츠의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한 최전방에 서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아메리칸필름마켓 '유녹(U-KNOCK) 2024 인 라스베이거스'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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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인도네시아 자바섬, 영국 육군 소령 잭 셀리어스(데이비드 보위)는 게릴라 작전을 수행한 혐의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지만 그에게 끌린 요노이(류이치 사카모토)의 배려로 포로수용소에 가게 된다. 캠프에는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영국 육군 중령 존 로렌스(톰 콘티)가 있다. 그는 일본군과 영국군 사이의 문화 및 사상 갈등을 중재하는 가운데 일본 육군 장교 하라 겐고(기타노 다케시)와도 소통한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일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합작영화다. 배우들의 서로 다른 연기 스타일이 부딪치는 이질감이 곧 인간 내면과 문화 충돌을 담은 이 영화의 정체성이 된다. 명예를 중요시하는 요노이와 자유로운 잭 사이의 긴장감이 동성애적 감정 교류와 함께 묘사되는 점 역시 흥미롭다. <감각의 제국>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연출한 작품으로, 로렌스 반데어 포스트의 <씨앗과 파종자>를 기반으로 했다. 1983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리뷰] <감각의 제국> 감독이 만든 류이치 사카모토와 데이비드 보위의 호모섹슈얼리티, <전장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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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아동복지시설이나 위탁가정에서 자란 보호아동은 만 18살이 되면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이 돼 보호시설을 떠나야 한다. <문을 여는 법>의 자립준비청년 하늘(채서은) 또한 법에 따라 보육원을 나와 기거할 공간을 찾아 나선다. 하늘이 원하는 입주 조건은 단 하나, 햇빛이 잘 드는 공간이다. 하늘은 한도 내에서 마음에 드는 자취방을 구하지만 집의 세간살이가 모두 사라지는 비극을 겪는다. 절망한 하늘 곁에 오래전 보육원을 떠난 철수(김남길)가 등장하고, 하늘에게 집을 되찾을 수 있는 미션을 준다. <문을 여는 법>은 번뜩이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미장센을 활용해 보호종료아동이 내몰린 현실을 판타지 모험담으로 풀어낸 단편영화다. 사회안전망 안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줄곧 그려온 박지완 감독과 <두 여자의 밤> 등의 단편으로 여러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허지예 감독이 공동 연출로서 인상적인 호흡을 보인다.
[리뷰] 번뜩이는 미장센, 신중한 접근, <문을 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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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던 그에게 언니들이 졸업하면서 얻은 작은 방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러나 1인실의 기쁨은 얼마 가지 못한다. 평소 비호감으로 여겨왔던 셋째 오빠 우주(김민규)의 여자 친구 경빈(김리예)이 임신하면서 그의 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우담은 경빈을 자기 방에서 나가게 할 계획을 세운다.
저출생 시대에 다둥이 집안을 배경으로 하는 <자기만의 방>은 역발상의 재치로 가득한 가족코미디다. 캐릭터성이 강한 9남매와 천진난만한 우담의 부모가 형형색색의 유머 코드를 만들어낸다. 11명 중 감정이입할 대상을 찾게 되는 뜻밖의 재미도 있다. 외부인인 경빈을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넉넉히 담아낸다. 주인공 우담의 심리적 인과관계가 다소 약하긴 하지만 미진한 부분을 겹겹의 가족 서사가 살포시 덮어준다.
[리뷰] 겹겹의 가족 서사가 덮어주는 미진함, <자기만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