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영화읽기 > 프런트 라인
[비평] ‘범죄도시3’, 그분이 동남아로 간 까닭은

<범죄도시3>

우선 현상 요약부터. <도둑들>(2012, 이하 개봉·공개일 기준)이 마카오로 간 것은 어떤 신호였을 수 있다. <마스터>(2016)의 밀항선은 필리핀으로 향했다. <협상>(2018)은 태국. 이후 흐름은 한층 줄기차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도 태국을 택했고 <범죄도시2>(2022)는 베트남, <늑대사냥>(2022)에서 잠시 필리핀에 들른 뒤 넷플릭스의 <야차>(2022)와 <수리남>(2022)은 각각 중국 선양과 수리남으로 떠났다. 디즈니+의 <카지노>(2022~23)에서 한번 더 필리핀, 내년 예정된 <범죄도시4> 역시 필리핀이다. 이전의 한국 범죄액션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경향이다. 이에 비하면 <범죄도시3>(2023)가 잠시 일본을 찾은 건 얼핏 낯익고도 손쉬운 선택으로 보인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보자. <황해>(2010)의 무시무시한 악당 면정학(김윤석)의 본거지는 중국 연변이었고 <아저씨>(2010)와 <차이나타운>(2015)은 국내 차이나타운이 범죄자들의 주 무대였다. 그러던 중 <범죄도시>(2017)의 가리봉동과 <청년경찰>(2017)의 대림동에 이르러 한국영화의 ‘중국 동포 활용’에 제동이 걸린다. <청년경찰>이 중국 동포를 범죄 집단화한다는 비판이 법정 소송과 제작사측 사과로 이어졌고 이후 한국영화는 중국 동포를 악당으로 내세우기 쉽지 않게 됐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위 작품들이 고의로 특정 집단이나 지역을 혐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떤 결과는 의도하지 않은 것일 때 그 실체를 파악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호쾌함을 위한 처참함은 무엇으로 확보되는가. 폭력을 안전하게 정당화할 장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한국 범죄액션의 최근 돌파구에는 ‘주변성을 바탕으로 한 장소성’이 잠재하고 있다.

한국 범죄액션 영화의 로케이션을 분석해보니

본격적으로 장소성을 말하기에 앞서 이 흐름이 과거부터 있던 현상은 아닐지 두드려보고 건너기로 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1971년부터 발간해온 <한국영화연감>을 기준 삼아 역대 박스오피스 집계를 공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역대 한국영화 흥행 순위 500위까지를 전수분석해봤다. 1위는 <명량>(2014, 누적관객 1761만명), 500위는 <전국노래자랑>(2013, 누적관객 98만명)이다. 500개 작품 가운데 ‘범죄액션’ 범주에 포함할 수 있는 영화를 폭넓게 추린다. 주요 인물이 검경 소속이거나 수사 관련 요원, 조직폭력배이거나 폭력 범죄자인 경우, 주된 소재가 범죄 및 수사인 경우를 망라한다.

<친구>(2001), <달콤한 인생>(2005), <아저씨>, <신세계>(2012), <아수라>(2016), <독전>(2018) 등 이른바 ‘K누아르’뿐 아니라 <극한직업>(2019), <청년경찰>, <걸캅스>(2018)와 같은 ‘경찰 코미디’, <두사부일체>(2001), <조폭 마누라>(2001), <가문의 영광>(2002) 등 ‘조폭 코미디’도 포함시킨다. <공공의 적>(2002), <살인의 추억>(2003), <도둑들>, <베테랑>(2015) 등 한국 장르영화를 이끌어온 주요 감독의 작품들과, <비열한 거리>(2006),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등 남성성을 성찰적으로 살핀 영화 등 흔히 ‘범죄 드라마’나 ‘범죄 스릴러’로 분류되는 작품들도 목록에 들였다. 북한이 주요 소재인 첩보액션과 전쟁영화, 그리고 1945년 해방 이전을 배경으로 한 경우는 제외했다. 이렇게 추린 범죄·수사 소재작은 총 141편. 한국영화 역대 흥행작 500편 중 28%를 차지한다. 경계가 모호한 첩보액션까지 포함하면 30%를 훌쩍 넘긴다. 이 가운데 <부당거래>(2010), <베테랑>, <성난황소>(2018), <악인전>(2019) 등 마동석 배우 출연작이 12편이다. SF·어드벤처 등 다른 액션 장르도 풍성하게 제작되는 할리우드나 뮤지컬 위주의 발리우드와 비교해 한국은 ‘범죄액션 최대 비중 생산국’으로 봐도 무리가 없겠다.

이들 작품을 연도별로 정리한 다음 주요 로케이션 장소를 헤아려본다. 극 중 악당이 대규모 범죄조직의 일원이며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조직과 연계됐음을 보여주는 접선지(항구나 공항이 단골)로 엑스트라처럼 등장하는 경우, 프롤로그에서 주인공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수단으로 해외(동남아시아로 추정되는 밀림 어딘가)에서의 활약을 보여준 정도의 사례가 드물게 눈에 띈다. 이를 포함해 2010년 이전 한국 범죄액션이 한반도를 벗어난 경우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한국 영화·시리즈가 저개발·개발도상국행 티켓을 요즘처럼 자주 끊기 시작한 건 2020년 이후다. 대부분은 동남아행 왕복 티켓이다. 최근 몇해 사이 한국 범죄액션이 뭔가를 필요로 했다는 뜻이다. 뒷골목만 가면 범죄자들이 어슬렁댈 것만 같은 곳. 잔혹한 칼부림은 물론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져도 어쩐지 이상하지 않을 듯한 장소. “대한민국 범죄자들 죄다 필리핀에 있나봐요”(<늑대사냥>)라는 대사가 스쳐 지나가도 한국 관객이 거부감을 갖지 않을 만한 나라. 대사들을 좀더 들어보자. “한국 사람들 여기 오면 가정부로 현지 애들 입주시켜서 데리고 살거든. 근데 우리야 뭐 같이 살면 가족인 줄 아는데 여기 애들은 안 그래. 보모한테 돈 좀 주고 애 빼내오게 하는 거? 일도 아냐, 이 동네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태국), “총도 들고 다니고 마체테라고 칼도 이만한 거 들고 다니고, 한국하고는 완전 달라요, 분위기가” (<범죄도시2>의 베트남). ‘장소의 타자화’라 명명할 수 있는 이같은 말들은, 간혹 보도되는 남아시아 국가들에서의 실제 범죄사건으로 인해 현실성을 확보하는 듯 보인다. <범죄도시> 시리즈 제작사 스스로도 실화를 모티프로 삼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타자화를 통한 우월감

<의형제>

타자화로 규정 지으려면 실제 수치를 봐야 한다. 국가별 인구 10만명당 피살자 수를 나타내는 살인율을 보면 엘살바도르가 52.02로 세계 1위, 이어 자메이카,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미와 아프리카에 30을 웃도는 나라들이 여럿 있다. 필리핀은 6.46으로 세계 60위, 수리남 5.43으로 69위, 미국이 4.96으로 77위를 기록하는 등 높은 편이다. 100위권 밖에 있는 태국은 2.58(103위), 베트남은 1.53(136위), 한국은 0.60(174위), 중국은 0.53(179위), 일본은 0.26(192위) 순이다(출처: world population review). 전체 범죄율 순위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범죄도시2>는 베트남에서 상영금지 조치됐고 <수리남>은 한때 외교 문제로 비화될 뻔했다. 해당국의 실제 범죄율을 감안할 때 그 나라를 범죄자들의 소굴인 것처럼 그리는 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하나 마나 한 트집을 잡으려는 게 아니다. 이 글은 다수의 작품이 일련의 경향을 띤다면 그것이 어떤 연고를 지니는지 살피는 일이 비평의 몫 중 하나라고 여기는 데서 출발한다. 이 흐름에는 넷플릭스를 위시한 글로벌 OTT 플랫폼의 투자 성향도 한몫했을 것이다. 한국영화 제작진이 <모가디슈>(2021)에서 보여준 것처럼 해외 프로덕션 운용 능력에서 상당한 성장을 이룬 점도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이다. 글로벌 시장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기술 역량을 갖춘 제작진에 마음껏 폭력을 구현해보라는 멍석이 깔린 측면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랬을 때 기획자의 눈에 드는 장소가 다름 아닌 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저개발·개발도상국의 뒷골목, 시장통, 항만, 밀림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타자화된 범죄의 도시, 그곳에서 어떤 이는 개발국 국민의 우월감을, 어떤 이는 후련하게 폭발하는 마초 본성을 챙긴다. 우리가 사태를 인지하는 데 있어 장소는 그곳의 인물과 동떨어질 수 없다. 또한 장소와 인물은 서로에 대한 관계를 규정함으로써 각 존재로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장르영화를 보는 우리는 컨테이너 쌓인 항구나 밀림 속 조직 보스의 저택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곳의 관습화한 기운을 느끼고 이후 액션을 기대한다. 이제 한국 장르영화를 보는 관객은 필리핀의 환전소와 태국의 야시장, 베트남의 도박장이 나올 경우 돈을 바꾼다거나 물건을 거래하는 장소 본연의 역할보다 그간 영화에서 채용한 기능대로 활약해줄 것을 자신도 모르게 기대하며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곳엔 먹잇감을 찾는 악당이 삼백안을 번뜩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나타나기도 전에 예상하게 될 것이다. 남아시아 국가들의 거리는 우리 인식 속에서 그렇게 범주화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코 차별주의자가 아니지만 내 의지 아래쪽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한데 묶은 다음 마음속으로 경계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 장소가 주변부 국가에 해당하는 영토일수록 어떤 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선 타자화를 통한 우월감이 꺼내질 것이다.

그간 추구해온 것들의 재조립

<범죄도시3>

<범죄도시3>는 개봉 일주일을 지나고 난 6월7일 자정 현재 누적관객 627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이 영화의 구조적 맥락을 짚을 필요가 있다. <범죄도시3>는 이전 몇편의 범죄액션들과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사생결단>(2006),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마약왕>(2018)과 넷플릭스의 <마이네임>(2021) 등 일본 야쿠자와 결탁한 국내 마약 조직의 범행이 이들 이야기의 뼈대다. 21세기 ‘K누아르’의 신호탄이라 할 수 있는 <친구>의 범죄단체 역시 같은 계보다. 이들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부산을 캐스팅해왔다. <친구> 이후 지역 사투리의 상품성을 크게 깨달은 충무로가 <열혈남아>(2006)의 호남, <짝패>(2006)의 충청 등지를 잇따라 개척해온 가운데 부산은 단연 조폭 최다 출몰 구역이었다. 이처럼 한국 범죄액션에서 지역성은 하나의 캐릭터로 기능해왔다. 장소성 측면에서 볼 때 <범죄도시3>는 도쿄와 인천항이 잠시 비칠 뿐 얼핏 예외 사례로 보이기도 한다. 1편 가리봉동, 2편 베트남, 4편 필리핀 사이에서 탄탄한 기획보다는 기존에 쌓아둔 시리즈의 흥행 요소를 리사이클한 측면이 큰 속편이다. 여기에다 <범죄도시> 시리즈는 <공공의 적> 시리즈의 마동석 버전이라 봐도 무방할 만큼 20년 전의 것을 업사이클한 재료들로 이뤄져 있다. 최악의 빌런이 극악무도한 범행을 저지르면 무소불위의 주인공이 “나쁜 놈은 반드시 잡는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외친 뒤 유머 담당 정보원을 사실상 고문함으로써 사태 해결에 접근하는 방식이 판박이다. <공공의 적>에서 정보원 산수(이문식)와 칼잡이 용만(유해진)은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장이수(박지환), 초롱이(고규필)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주인공 형사가 으름장을 놓으면 이내 꼬리를 내리며 조력하고, 관객의 호감을 얻어 배우 인지도가 급상승한 점도 유사하다.

게임으로 치면 ‘끝판 대마왕’ 격인 빌런은 한국인을, 그에 앞서 물리치고 다음 판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대는 외국인을 기용한 설정을 보자. <범죄도시3>의 이같은 구도는 <아저씨>,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과 유사한 골격이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프롤로그에선 주인공이 일본 야쿠자 두목을 가뿐하게 처단하는 것으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특히 <아저씨>의 람로완(타나용 웡트라쿨)과 <범죄도시3>의 리키(아오키 무네타카)는 고스란히 대칭을 이루는 기능적 인물이다. 최고급 무술 기량을 갖춘 타국 조직원이 주인공에게 완패하는 형세를 연출함으로써 우월감을 돋우는데, 그는 극 중 악당 섹터에서 최후의 일인자가 아니므로 ‘타노스’가 되지도 못한다. 이런 와중에도 전편들과 비교해 <범죄도시3>가 다소 밋밋하다고 느꼈다면, 빌런이 덜 무섭거나 주인공의 파트너가 덜 웃겼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오래된 흥행 요소를 포함해 전편에서 검증된 주먹 액션까지, 기존 범죄액션에서 성공적인 것들을 재조립하는 단계에서 나아간 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시장 상황 등 작품 외적 영향이 큰 관객수는 예상대로 폭발적이지만, 네이버 관람객 평점은 1편 9.28, 2편 8.99인 데 비해 3편은 6월7일 현재 7.85 수준이다. 한때 할리우드 경찰액션이 홍콩 무술 스타들을 채용해 강력하지만 무참히 패배하는 악역을 맡기곤 한 적이 있다.

<리쎌 웨폰4>(1998)에서는 동양의 영웅 이연걸이 당시 할리우드 영웅 멜 깁슨으로부터 처참한 최후를 맞는 것으로 끝맺는다. 악역은 타자화가 아니지만, 할리우드가 동양인을 최대한의 굴욕적인 자세와 앵글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면 다른 문제가 된다. 주변인에 대한 인지 감수성이 제법 성숙한 2023년의 할리우드에서 <존 윅4>는 동양인 액션 스타(견자단)를 그런 식으로 활용하지 않았다. 과거 할리우드가 했던 방식을 보고 성장한 한국영화가 과거의 것을 답습하는 건 아닐까. <범죄도시3>에서 마석도(마동석)는 “아가리토 고자이마스”라며 일본어를 비틀어 관객의 웃음을 산다. 만일 미국영화에서 한국어 인사말을 가지고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장난치는 장면이 나온다면 한국인의 기분은 어땠을까.

무엇이 한국영화를 바꿨나

<황해>

<의형제>(2010) 같은 영화가 그리워진다. 당시 누적관객 550만명을 넘었다. 액션 장르로서 충분히 흥미진진하면서도 우리 내부의 주변인을 포용하는 문제 의식이 영화의 중추였다. 북 당국으로부터 버림받은 남한 내 고정간첩(강동원)은 한국 사회에 종언을 고한 냉전 시대의 유물 자체를 아우르는 알레고리였다. 베트남에서 건너온 외국인 신부(이자스민)에겐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양산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영화가 취하는 남다른 시선이 전해지고 있었다. 베트남 노동자 밀집 지역과 그들 사이의 폭력 조직을 묘사하고 있지만 이들을 대하는 따뜻한 온도는 낮춰지지 않았다. 지금이라면 <의형제> 같은 시나리오가 투자를 받고 제작에 이를 수 있을까. 지구 한쪽에선 주권국이 다른 주권국을 침략한 전쟁이 벌어지고 불평등은 급속도로 퍼져 이것이 사회 불안과 신뢰를 떨어뜨리는 세상, 그 결과로 초경쟁과 국수주의가 조장되는 가운데 최저임금 수준에도 못 미치는 급여를 책정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도입해 또 다른 사회적 약자를 양산하려는 사회, 이 때문에 가사도우미 직업을 희망하는 내국인과의 갈등을 자초하는 발상이 나오는 곳, 누군가는 이를 저출생 대책이라고 주장하는 나라에서 <완득이>(2011)와 같은 영화가 누적관객 531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 우리는 한국 장르영화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장르영화의 기획을 바꾸는 기제에 대해 좀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