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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해와 다름없이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아주 익숙한 기호들이 12월을 메우고 있습니다. 자선냄비, 캐럴송, 플래스틱 크리스마스 트리, 한두어개쯤 얻은 새해 달력… 그리고 송년회에 참석하라는 전화들…. 올해는 유난히 송년회가 많은 한해인 것 같습니다. 내 수첩에만 해도 작년 12월보다는 한결 많아진 송년회 약속들이 적혀 있습니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경기가 살아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진 사람들도 늘고 IMF로 인한 위기 의식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서이기도 하고, 한해의 바뀜뿐 아니라 세기의 갈림, 밀레니엄의 교체라는 생각 때문에도 송년의 느낌이 더 짙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물론 송년회가 너무 잦거나 폭탄주로까지 이어지는 송년회로 인해 몸이 피곤해지고, 때로는 은근한 질투와 원한이 뿜어져 나오는 송년회로 인해 개운치 않은 감정이 드는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삶에 매듭을 만들고 시간의 분할 속에 새로운 출발의 계기를 삽입하는 송년회, 따뜻하게 술잔을 건네는 송년회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송년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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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이 만화] <허준> 메디칼 미스테리
[정훈이 만화] <허준> 메디칼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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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돈 좀 될까?' 김주만(38)씨는 하와이의 친척집에서 1년간 머물면서 그동안 써두었던 시나리오 <삼양동 정육점 이야기>를 호형하는 프로듀서에게 보냈다. 돌아온 건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 좋은 기회라 여기고 98년 영화진흥공사 판권담보융자 시나리오 심사에 응모했다. 결과는 1차 통과, 2차 탈락. 그즈음 <노랑머리>를 제작한 여한구 사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삼양동 정육점> '개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러나 매상은 좋지 않았다. 서울의 대여섯 극장에 걸린 지 2주일 만에 모두 간판을 내렸다. "흥행은 기대하지 않았어요." 김주만씨가 보험금을 노린 한 남자의 사기극에 관한 기사를 읽고서 떠올린 건 사랑얘기. 다만 애틋한 감정의 주고받음이라기보다는 스스로 파놓은 질퍽한 구덩이에서 허우적대다 결국엔 자멸하는 그런 사랑을, 자신이 살았던 삼양동 시장 한복판에 던져놓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물론 평단의 관심을 거의 끌지 못했지만, 시나리오의 잠재력
16mm 에로영화도 건질 것은 있다, 시나리오 작가 김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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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다크 시티라고 들어봤나?” 오늘 아침, 편성국장이 기상 리포터 빌을 자기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처음 들어보는데요.” “아마 그럴 거야. 지금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도시니까. 이 도시에서는 자정만 되면 빌딩들이 모두 사라지고 주민들이 잠에 빠져든다네. 그리고 밤 사이 전혀 다른 건물이 세워지고, 사람들은 새로운 기억을 주입받은 뒤 다음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는군.” 빌리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노망이 들었나’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밥줄을 위해 참았다. “아무튼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이 도시에서 방송을 진행하게. 매일매일 뒤바뀌는 도시에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오는가, 어때 낭만적이지 않아?”
빌은 지지리도 재수가 없다고 여겨졌다. ‘남들 다 노는 크리스마스에 출장이라니. 게다가 PD는 앤디라고, 왜 밥맛없게 여자야? 출장길에 재미보기도 글렀잖아.’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다크 시티로 가는 도로 노선은 알려진 바가 없어, 터키인들이 운영하는 장거리버
[이명석의 씨네콜라주] 다크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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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 출신의 세 청년이 무작정 상경했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가 마침내 자리잡은 곳은 서울 변두리, 새로운 개발 지역. 중국음식점, 여관, 이발소에서, 기술이랄 것도 없는 하찮은 일거리로 삶을 유지해야 하는 세 청년은 각기 고향은 다르지만 우연히 객지에서 만나 동병상련의 우정을 나눈다. 그들이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농촌에서 태어나 농촌에서 자란 우리의 정서와 뚝심이다. 심은 만큼 기르고 가꾼 만큼만 거두는 흙과 농사의 정직함을 조상 대대로의 삶에 이어온 그들이다. 눈속임으로 한탕 잘하면 떼돈 번다는 요사스러운 서울에서 그들은 당연히 시행착오의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끝내 좌절하지 않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소중한 우정을 조금도 잃지 않는 뚝심의 이야기가 내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의 기둥 줄거리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란 내가 농촌의 세련되지 않은 청년들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4년 동안의 값진 휴식기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장호 [37] - 한국영화가 담지 못하는 현실, <바람불어 좋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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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셰리던은 말하자면 인파이터 복서다. 딱히 기교라 부를 것 없는 영화 스타일은 정치적 소재는 논쟁적으로, 연애담은 멜로드라마로, 서글픈 현실은 비극으로 다루는 정면승부를 꺼리지 않는다. 평론가들이 그를 ‘배우의 감독’이라 부르는 것도 이처럼 곁눈질하지 않는 스타일과 관련있다.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으로 뉴욕에서 극작가 겸 연극연출가로 활동했던 짐 셰리던은 영화를 통해 시공간의 제약없이 자유자재로 옮겨다닐 수 있는 무대를 얻었지만 그 무대에 올려야할 대상이 인간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다. 렌즈를 통과한 빛의 환영이 한순간 배우의 영혼을 스크린 위에 새겨넣을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에둘러 표현하지 않는 짐 셰리던의 특징을 드러낸다.
셰리던 영화의 중심에 놓인 것은 고난에 맞서는 주인공이며 그 역은 3번이나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맡겨졌다. <나의 왼발> <아버지의 이름으로>에 이은 <더 복서>의 주인공 대니는 IRA 테러사건에 연루, 14년을 감옥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더 복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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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비>로 베니스 금사자상을 받은 기타노 다케시 감독,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로 일본내 영화상들을 휩쓸었던 최양일 감독, <마지막 황제>의 음악을 맡았던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로버트 알트만과 작업했던 구리다 도요미치 촬영감독, 니시오카 요시노부 미술기사,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난>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한 디자이너 와다 에미. 이들 일본 영화 각 분야의 스타들이 한 영화의 배우나 스탭이라면 믿을 수 있을까. 60년대 일본 뉴웨이브의 기수였던 이른바 '운동권 출신' 오시마 나기사 감독(大島 渚,67)이 13년 만에 발표한 신작 <고하토>(御法度, 금기)가 바로 이같은 '드림팀'의 작업이다.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가 돼온 <고하토>는 12월18일 일본 전역에서 개봉했다.
<고하토>는 개봉전부터 일본 평론계로부터 만장일치의 반응을 얻었다. 지난 11월8일 첫 시사회가 열린 뒤, 비평가들은 “세기말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13년만의 역작 <고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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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을 만지고 싶었던 게 아니야! 잠자리를 하자고 한 게 아니야! 사랑하자고 한 거야! 외로우니까. 위로하자고 한 것뿐이야!… 사람이 사람을 위로할 수 없다면 이 힘든 세상 어떻게 살아.’ 남자란 이유로 사랑했던 게 아닌 사람들에게 남자라는 이유로 상처받은 준영의 영혼과 세상에서 설 자리를 서서히 잃어가는 문기의 영혼이 입을 맞춘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 떨어지고 실루엣으로 처리된 그들의 얼굴이 서서히 포개지면서 암전. 그리고 그 위에 내레이션이 흐른다. ‘그 밤, 그 포옹을 누구는 욕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터진 그 아이의 입술에서 내가 받은 건 위로였다. 가엾은 서로에 대한, 안스러운 위로.’
KBS에 동성애 소재 드라마?
남자는 염색해도 안 되고 밀어도 안 되고 귀걸이 해도 안 되는 KBS에서 내놓은 세기말 특집극 <슬픈 유혹>(KBS2, 12월26일 일요일 밤 10시10분)의 소재는 동성애다. 영화에서는 원조교제, 모럴 헤저드, 치정
노희경 작가의 KBS2 세기말 특집극 <슬픈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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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 먼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날아온 영화 촬영팀이 있다. 한데 팀을 인솔해야 할 감독이라는 작자가 촬영을 위한 장소 헌팅에는 통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그는 코끼리 ‘사냥’을 할 양으로 이 먼 곳까지 온 것 같은 그런 인상마저 준다. 이 촬영팀이 얻을 성과란 게 어떤 것일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주연을 맡은 또 한편의 외면당한 걸작 <추악한 사냥꾼>(White Hunter, Black Heart, 1990)은 마초 성향이 짙은 한 영화감독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예술적 광기의 문제를 깊이있게 다룬다.
여기서 먼저 이런 의문을 제기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까지 대책없이 무책임한 영화감독이 있을까? 극히 드문 경우라고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존재했던 건 분명한 사실인가보다. 문제의 그 인물은 바로 존 휴스턴으로, <추악한 사냥꾼>은 그가 콩고에서 <아프리카의 여왕>을 찍을 때의 이야기를 기초로
로맨스는 급류를 타고, 존 휴스턴의 <아프리카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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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의 탓인지 모르겠으나 오늘의 프랑스에서는 시(詩)도 시인도 보기 어려워지고 있다. 과거에 읽고 생각하던 사람들이 지금에는 텔레비전, 영화, 컴퓨터 등이 토해내는 화면의 홍수 속에서 보고 즐기는 사람들로 바뀐 것인지 모른다. 이른바 ‘흥행 사회’에서 시인들이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남의 땅에 있지만 아내와 나는 ‘창작과 비평사’가 고맙게도 꾸준히 보내주고 있는 시집들을 읽고 있다. 한국사회에 아직 시인들과 시들이 꿈틀대며 살아 있음은 실로 놀라우면서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 시들이 가벼운 언어의 조합이나 유희들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수들이라면 말이다. 인간의 소박한 꿈과 이상은 현대에 올수록 더욱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다. 그래서 시인을 일컬어 ‘현실로부터 스스로 추방된 사람’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실로부터 추방되고 물질이 가난한 시인들만이 이 팍팍한 시기에 인간성의 풍요로움과 깊이를 보여줄 것이다.
또 하나의 영화,
시의 죽음을 슬퍼하며, <일 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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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이 날다>는 키아로스타미 영화를 연상케 하는 가난하고 간결하며 착한 영화다.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에서 만난 민병훈과 잠셋 우스마노프 두 감독이 공동연출한 이 영화는 토리노 국제영화제 대상, 비평가상, 관객상, 테살로니키 국제영화제 은상 등 해외 평단의 지지를 얻어 개봉기회를 잡은 드문 예다.
<벌이 날다>는 아주 고집스런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법을 빙자해 가난한 자의 권리를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남자는 아주 독특한 보복을 준비하는데 그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다. 전 재산을 털어 검사네 옆집을 사고 화장실로 쓸 구덩이를 파기 시작하자 검사는 남자의 아들을 경찰서에 잡아다놓고 협박을 한다. 아들을 구하려면 당장 화장실 파는 걸 중단하라는 검사의 요구에 그는 맘대로 해보라며 경찰서 문을 박차고 나온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 같은 분위기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돈과 권력에 대한 사내의 우직한 저항이 전적으로 개인의 성격에 기인하며 해결책도 엉뚱한 곳에서
가난하고 간결하며 착한 영화, <벌이 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