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말들이 많습니다. 오스카 후보 선정은 예년처럼 이변의 연속이었고, 작품상 후보가 10편으로 늘어나는 등 변화도 많았습니다. 2010년 오스카를 기다리며 살펴보는 오스카 5문5답.
Q. 올해는 오스카 작품상 후보가 10편이라던데요. 대체 왜 그런 거죠.
샌드라 불럭의 연기야 좋다만 <블라인드 사이드>가 작품상 후보라니.
A.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오스카가 내세우는 이유는 심사에 좀더 공정성을 기하고 싶어서랍니다. 지난해 비평가협회상을 휩쓸었던 <다크 나이트>와 <월·E>가 작품상 후보에서 제외되자 오스카의 선정 기준에 대한 불만이 일시에 폭발했었죠. 하지만 작품상 후보를 10편으로 늘린 진정한 이유가 과연 공정성 때문일까요? 원래 오스카는 공정성 따위에 그리 신경쓰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시청률입니다. 오스카 시상식의 시청률은 특히 지난 몇년간 급격하게 떨어졌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크래쉬>처럼 대중에게 크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들이 주요 후보에 오르고 상을 쓸어간 데도 어느 정도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여간 오스카 시상식을 독점 중계하는 <ABC>는 시청률 하락 때문에 지난해부터 역사적으로 낮은 광고비를 책정하기까지 했고요, 계속 시청률이 추락하다간 중계 자체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10편을 작품상 후보로 선정한 이유는 금방 이해되실 겁니다. 좀더 다양한 대중영화를 후보에 올림으로써 많은 대중이 시상식을 지켜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이게 과연 완전히 쌍수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냐는 거겠죠. 이미 미국에서는 <블라인드 사이드>의 작품상 후보 선정을 두고 말이 많습니다. 성공한 대중영화라고는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작품상 후보감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Q. 오스카의 연기상 후보는 가끔은 이상한 것 같아요. 다른 시상식에서 상을 받고도 후보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탈락한 <브라이트 스타>의 애니 코니시.
A. 맞습니다. 오스카 연기상 부문은 항상 말도 많고 탈도 많지요. 골든글로브를 위시한 비평가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도 후보에 오르지 못하는 괴이한 일이 자주 벌어집니다. 지난해에는 <해피 고 럭키>의 샐리 호킨스가 골든글로브를 포함해 그해 미국 비평가 시상식에서 최다 수상을 하고도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에서는 탈락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당시 호킨스의 팬들이 보여준 실망을 돌이켜보면 아직도 눈물이 납니다. 올해도 오스카 연기상 후보는 이변의 연속입니다. 당연히 오르리라 예상했던 <브라이트 스타>의 애니 코니시가 여우주연상 후보에서 탈락했고요, <허트 로커>의 앤서니 매키도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크리스토프 왈츠가 주연상이 아니라 조연상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습니다. 왈츠는 오스카의 오랜 법칙 중 하나인 ‘(몇몇 예외를 제외한다면) 유명 배우만이 주연상 후보에 오를 자격을 얻는다’에 발이 걸려 넘어진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올해 오스카 감독상 부문에는 기분 좋은 이변이 둘 있습니다.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글로는 <세븐 뷰티즈>의 리나 베르트뮐러,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소피아 코폴라에 이어 네 번째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여성감독이 됐습니다. 만약 비글로가 감독상을 수상한다면 그녀는 오스카 역사상 최초로 감독상을 받은 여성으로 역사에 길이 기록될겁니다. <프레셔스>의 리 대니얼스는 <보이즈 앤 후드>의 존 싱글턴에 이어 역사상 두 번째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흑인이 됐습니다. 네. 맞습니다. 스파이크 리는 한번도 감독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습니다.
Q. 그래도 제프 브리지스의 주연상은 확실하겠죠? 오스카는 원래 나이든 중견 배우의 재기작에 상을 몰아주는 편이잖아요.
A. 하지만 그런 오스카의 법칙이 항상 들어맞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1997년 오스카 시상식 직전, <로즈 앤 그레고리>로 오랜만에 열연을 보여준 로렌 바콜의 여우조연상 수상은 거의 당연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상은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줄리엣 비노쉬가 가져갔습니다. 비노쉬조차 너무 당황해서 시상대에 올라가 이렇게 말했죠. “로렌 바콜이 당연히 받을 줄 알았어요. 로렌! 로렌! 어디 계세요 지금?” 2008년 오스카 여우주연상은 당연하게도 <어웨이 프롬 허>의 줄리 크리스티에게 갈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상자는 뜻밖에도 <라비앙 로즈>의 마리온 코티아르였죠. 지난해 오스카 남우주연상 역시 극적으로 재기한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가 아니라 이미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은 적 있는 숀 펜이 가져갔습니다. 현재 제프 브리지스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입니다. 하지만 <허트 로커>의 제레미 레너가 깜짝 수상자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습니까. 참고로, 여우주연상의 가장 강력한 후보는 샌드라 불럭입니다. 그녀가 오스카를 받게 되면 비평가상을 가장 적게 받은 여배우가 오스카를 수상한 역사적 사건으로 남을 겁니다.
Q. 그런데 오스카 작품상을 누가 받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히치콕의 <현기증>은 심지어 오스카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다.
A. 매년 오스카 시상식이 열리면 심지어 머리 좋은 평론가들도 잘못된 선택이라고 불평을 합니다. 아니, 지난 십수년간 오스카를 보고도 배운 게 없답니까. 오스카는 가장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를 작품상으로 선정하는 영화제가 아니라 질도 좋고 인기도 많은 대중영화를 작품상으로 선정하는 영화제입니다. 사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작품상을 받은 것 자체가 이변이었죠. 과거를 한번 돌아볼까요? 1953년 작품상 수상작은 그해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지상 최대의 쇼>였습니다. <하이눈>을 제친 결과죠. <사랑은 비를 타고>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습니다. 57년 수상작은 <80일간의 세계일주>였습니다. 존 포드의 <추격자>는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고요. 59년 작품상은 <지지>가 받았습니다. 그해 최고의 걸작인 <현기증>과 <악의 손길>은? 후보에 오르지도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이를 가는 최근 오스카의 실수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씬 레드 라인>을 제친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수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영화 역사상 길이 남은 걸작으로 후대에 기록될까요? 글쎄요. <지지>가 <현기증>보다 더 걸작으로 추앙받는 날이 온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Q. 봉준호 감독의 <마더>가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데, 왜 한국 영화계와 언론들은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그렇게 목을 매나요? 오스카 외국어영화상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A. 영화진흥위원회가 <마더>를 출품작으로 선정한 건 확실히 놀랄 만한 일입니다. <마더>를 얕잡아봐서가 아니라 지난해 영진위가 김태균 감독의 <크로싱>을 한국 대표선수로 내세우며 했던 말이 떠올라서입니다.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작품을 뽑는 데 주력했다.” 탈북자라는 소재가 아카데미에서 관심을 끌 수 있을 거란 예상 때문이었는지 <크로싱>은 <추격자>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제치고 아카데미 카드로 뽑혔습니다만,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내용은 다소 어둡지만 비평적 성공을 거둔 <마더>를 후보작으로 선정했습니다. 장족의 발전이지요. 그러나 결과는 9편을 선정하는 오스카 1차 예심 탈락입니다. 아쉬운 결과이긴 하지만 역으로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타이틀이 그렇게 영광스런 타이틀일까’ 하는 문제는 한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후보작 선정 과정은 늘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화평론가 데니스 림은 <뉴욕타임스>에서 “<마더>(한국), <경찰, 형용사>(루마니아), <나는 어머니를 죽였다>(캐나다)처럼 좋은 영화들이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했지요. 언급된 영화들은 칸영화제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작품들입니다. 지난해에는 <바시르와 왈츠를>(이스라엘), <클래스>(프랑스), <바더 마인호프>(독일)를 제치고 <굿’바이>(일본)가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후보작 중 가장 관습적이고 감상적이라는 평을 받은 영화였지요. ‘아카데미 후보작을 다 챙겨볼 수 있는 회원은 은퇴한 노인들뿐’이라는 항설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 영화나 형식적인 실험을 감행한 영화들은 그간 간과되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각 나라들은 ‘훌륭한 영화’가 아니라 ‘아카데미 스타일에 맞춤한 영화’들을 출품합니다. 게다가 1국가 1작품 출품 규정과 영화에 사용된 언어와 국가를 연결짓는 규정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어요. 미카엘 하네케의 <히든>은 감독 국적은 독일이나 대사가 프랑스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영화 <밴드 비지트: 어느 악단의 조용한 방문>은 대사의 상당수가 영어라는 이유로 후보작 출품 자격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게 말이 되냐고요.
이같은 논란을 모를 리 없는 아카데미위원회는 외국어영화상 부문의 규정을 조금씩 손봐왔습니다. 그러나 땅바닥에 떨어진 위신을 세우려면 좀더 시간이 걸릴 겁니다. 올해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수상 결과에 크게 실망할 일도, 놀랄 일도 없을 거란 얘기예요. 근데, 사실 누가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따위에 관심이나 가진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