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디스터비아>엔 10대 영화 장르의 근본적 전제도 흥미롭게 변용돼 있어요.” 이동진: “배우들의 매력이 잘 살아있어서 영화가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죠.”
미스터 더부룩스님(이동진 [email protected])이 입장하셨습니다. 이창과 푼수님(김혜리 [email protected])이 입장하셨습니다.
스포일러 있음
이창과 푼수님의 말(이하 푼수): 어허, 선배. 밤에 그렇게 자꾸 단 것 드시면 안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속이 더부룩하죠. ^.~
미스터 더부룩스님의 말(이하 더부룩): 엉? 미숫가루에 설탕 듬뿍 넣어서 타 먹고 있는 거, 어찌 알았수?*.*
푼수: 그리고 세차도 좀 하세요. 트랜스폼한 차한테 맞고 싶으세요? ^^
더부룩: 헉, 그것도 보이나요? 이러다 진짜 내 뒤에서 나타나면 혼절하겠당.
푼수: 방벽을 더듬어보세요. 구멍이 있을 겁니다. ^_^ 지금까지 맞장구, 고마워요! 이번 <디스터비아>는 홧김에 교사에게 주먹을 날리고 자택 감금형을 받은 10대 소년 케일(샤이어 라버프)이 심심타파로 이웃을 엿보다 연쇄살인범의 혐의를 잡는 이야기입니다.
더부룩: 매우 익숙한 이야기죠. 훔쳐보기를 모티브로 삼은 영화를 모으면 1408편은 될 겁니다. 속편까지 포함하면 2046편쯤 될 거고. ^^
푼수: 아주 오래된 것과 아주 새로운 것을 영리하게 결합한 잘 빠진 기획영화였어요. ‘엿보기’라는 영화의 고전적 소재와 21세기 기술을 조합했죠. <디스터비아>의 원전으로 <이창>을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따져보면 <피핑 톰> <욕망> 등 수도 없죠.
더부룩: 사실 기본적인 모티브만 <이창>에서 가져왔죠. 일단 주인공이 집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 그리고 엿보기를 즐기다가 이웃에서 일어나는 살인의 기미를 눈치채고,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시켜 가보게 한다는 설정 정도?
푼수: <디스터비아>에는 <이창>의 깁스 대신 정해진 반경을 벗어나면 경찰에게 통보되는 전자 발찌가 등장했죠.
더부룩: 그것도 영리한 발상이라고 생각해요. 깁스를 하면 주인공이 움직일 수가 없으니 꼼짝없이 한 자리에서 이곳 저곳 보는 시점숏이 중요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발찌는 반경 30m는 움직일 수 있으니 대중영화로 좀더 다양한 장면 연출이나 에피소드가 가능해지죠. 이른바 MTV세대를 위한 <이창>이라고 할까요?
푼수: 어머, MTV세대는 우리라고요. 주인공 케일과 친구들은 아이포드를 가리켜 “6기가어치의 내 인생”이라고 부르는 세대인걸요. <이창>의 지미 스튜어트는 깁스를 하고 무료해지자 곧 훔쳐보기에 돌입하지만, 케일은 워낙 혼자 방에서 놀 수 있는 장난감이 많은 시대의 아이이다 보니, 엄마가 게임기와 아이튠스를 해지하고 나서야 망원경으로 바깥 구경을 시작하더군요. -.-
더부룩: D. J. 카루소 감독은 훔쳐보기 모티브가 가진 다른 대중적 재미를 실컷 활용하고 나서야 살인 현장 목격이란 진짜 모티브로 옮아가죠.
푼수: 창문마다 돌아가며 망원경을 조준하면 이웃에서 리얼리티 쇼 같은 상황이 전개되는 시퀀스가 인상적이었죠?
더부룩: 그에 앞서 TV 앞에서 죽치고 앉은 케일이 보는 프로그램이 <치터스>였던 것이 복선이죠. ^^
푼수: 이 영화가 온고지신으로 수용한 ‘옛것’에는 관음증 모티브도 있지만 10대 영화 장르의 근본적 전제도 흥미롭게 변용돼 있어요. 경제력이 없는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움직임을 박탈당한 10대 특유의 존재 조건을, 케일이 처한 상황을 통해 곧장 극적 설정으로 흡수했으니까요.
더부룩: 어쩌면 그게 이 영화의 대중적인 성공의 핵심 요소일 겁니다. 그런 드라마적 설정 위에 10대들의 활력을 영화의 주동력으로 삼고 있으니까요.
푼수: 여기서 10대의 활력은 캠코더나 휴대폰 같은 기계를 마치 신체의 연장처럼 자유자재로 쓰는 능력을 포함하고 있죠. 어찌 보면 “"요즘 애들은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기성 세대의 입에 붙은 비난에 대한 환상적 복수극 같기도 해요.
더부룩: 맥루언적인 스릴러라고나 할까.^^ 극 초반에 케일이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뒤 겪는 트라우마를 묘사하지만 사실 이 영화에서 부모를 바라보는 10대들의 생각은 무척 쿨하죠. 케일의 옆집에 이사와 엿보기에 동참하는 소녀 애슐리의 경우, 사이 나쁜 부모의 결혼기념일에, “지겹게도 버티는군”이라고 남 이야기 하듯 비꼬죠. 케일 역시 초반에는 아버지에 관한 상처를 드러내지만 중반 이후엔 그런 설정이 심리나 캐릭터에 무색할 만큼 영향을 끼치지 못하잖아요? 엄마와의 관계도 쿨한 편이고요.
푼수: 케일과 애슐리는 또래보다 좀더 조숙한 인물로 설정된 것 같긴 해요. 전학 온 애슐리가 아이들과 금세 친해져 파티를 연다고 하니까 케일이 “너 참 쉽게 순응한다”고 꼬집잖아요. 다만, 그렇게 말하는 케일이 평소에 어떻게 남다른 소년이었는지 영화가 보여줄 기회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더부룩: 아까 지적한 대로 아버지가 남긴 트라우마는 케일이 교사를 때려 감금되는 설정까지만 작용하지 이후에는 별 역할을 못하죠. <디센트>와 이 영화의 시작은 똑같은데 <디센트>는 트라우마를 낳는 사고를 영화 전편의 바닥에 깔리는 심리적 배경으로 충분히 활용하는 데 비해서, 이 영화는 그렇지 못해요.
푼수: 그런데 아버지의 교통사고 장면은 저로서는 <디스터비아>에서 유독 석연치 않은 대목이었습니다. 이 사고는 아주 정교하고 쇼킹하게- 즉 스펙터클로- 연출됐는데요. 이 장면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은 영화 초반 관객의 주의를 끄는 데에는 유효하지만 결국 영화 전체 구조에서는 과잉으로 남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방식이 케일의 심리와 기억에 작은 영향이라도 있다면 납득이 되는데, 끝까지 그런 연관은 없었거든요.
더부룩: 케일이 감금되고 난 뒤 내내 작용할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미리 시각적으로 숨통을 틔워주고, 극 초반에 시선을 끄는 장면 정도로 소비하고 마는 거죠. 그렇기에 초반 10여분의 케일과 이후의 발랄한 케일 사이엔 어떤 심리적 단절마저 있는 것처럼 보이죠.
푼수: 그 단절의 고비가 새로 이사온 이웃 소녀 애슐리의 등장인데요.
더부룩: 둘의 관계는 이 영화의 소구점을 가장 잘 보여줘요. <이창>의 그레이스 켈리와 제임스 스튜어트는 결혼할 사이인데도 좀 썰렁하잖아요. 스튜어트도 켈리보다 바깥 구경에 훨씬 더 관심을 기울이고요. 반면 <디스터비아>에선 두 남녀의 관계가 그 자체로 청춘영화의 축을 이루고 있죠.
푼수: 50년 동안 성문화가 많이 바뀐 게야. +_+ 엿보는 소년과 엿봄을 당하는 소녀로 관계를 설정했다가, 애슐리가 대범하게 찾아와 엿보는 팀에 합류하게 함으로써 정치적 불편함을 해소해버리죠.
더부룩: 뭐, 원하는 것을 이미 다 이룬 관계와 이제 막 시작된 관계의 차이일 수도. -_-
푼수: 애슐리는 자기의 여성적 아름다움이 갖는 권력을 깨닫고 조금씩 즐기기 시작한 소녀라고 해야겠죠. 귀여웠습니다.
더부룩: 배우들의 매력이 잘 살아 있어서 영화가 생생하게 느껴지죠. 특히 샤이어 라버프는 앞으로 대단한 배우가 될 것 같더라고요. <트랜스포머>에서도 괜찮았는데, 이 영화에선 정말 그 매력이 잘 살아 있더군요.
푼수: 다양한 감정을 편하게 소화하더군요. 애슐리를 향한 떨림, 엄마를 대하는 속깊은 정, 교사에 대한 반항심 등등.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컴퓨터와 게임기, 아이포드 등과 주고받는 연기가 백미였다는…. -..-
더부룩: 기계들과 소통하는 느낌마저 들죠? 이웃의 용의자인 로버트 터너와 처음 마주치는 장면에서 적의를 감추지 않고 대화하는 연기가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푼수: 로버트 터너 역의 데이비드 모스도 좋았습니다. 별로 겁주는 투도 없이 점잖게 말하는데 상당히 겁먹게 되더군요. 워낙 체격이 위압적이긴 하지만.
더부룩: 모스는 영화를 찍을 때 감정을 살리기 위해서 다른 젊은 배우들과 아예 아는 척도 안 했대요. 그래서 라버프가 그를 가리켜 메소드 배우의 전형이라고 칭찬한 인터뷰를 봤어요.
푼수: <디스터비아>가 꼼꼼히 다듬어진 장르영화라고 믿게 한 또 다른 장면은 케일이 애슐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였어요. 역시 ‘엿보기’라는 주제와 관련해 고백의 대사를 선택했는데 덕분에 영화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으로 잠깐 변신하죠. “너는 피자맛 감자칩을 좋아하고, 잡지 아닌 제대로 된 책을 즐겨 읽어. 가끔 세상은 왜 책에 써 있는 것과 다를까 하는 표정을 짓지. 너에겐 외출하려다 돌아와 거울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있는데 ‘나 예뻐?’ 투가 아니라 ‘ 난 누구지?’라는 투로 거울을 봐.” 뻔하지만 여자 입장에선 흔들릴 수밖에 없는 대사들입니다. -_-#
더부룩: 그 대사 때문에 영화 별점 반개는 더 주실 듯. ^_^ 30m밖에 못 나가면서도 케일이 애슐리를 바래다주는 장면도 로맨틱하게 표현됐죠.
푼수: 역시 사랑은 장벽이 있어야? ^.~
더부룩: 모든 게 가능한 관계, 라는 건 사랑에서 그리 좋은 조건은 아닌 것 같아요.
푼수: 그런데 <디스터비아>는 절정부를 넘어가면서 김이 좀 빠져요. 흔히 보던 호러의 결말부와 비슷해지기 때문이죠.
더부룩: 이 영화는 클라이맥스가 제일 별로죠.
푼수: 의심스런 이웃의 집은 밖에서 보면 평범한 교외 주택인데, 막상 들어가니 엄청나게 넓더군요. 흡사 <해리 포터>에 나오는 마법 텐트를 방불케 하더이다. *.*
더부룩: 없는 게 없으시죠. 거의 <4.4.4.> 아니면 <검은집>의 지하실 같더라고요.
이동진: “<미스터 브룩스>는 왜곡된 가족영화라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떨쳐낼 수 없는 살인심리와 딸을 사랑하는 가장의 심리가 상충하는 지점이요.” 김혜리: “ 연쇄살인자의 내면 갈등에 대한 흔치 않은 접근법은 흥미롭지만, 인간심리를 보여주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치 않아요.”
푼수: 혹시 연쇄살인범용 주택 설계 공모가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러고 보니 <미스터 브룩스>의 연쇄살인자 브룩스씨의 집도 건축가의 손길이 느껴지더군요. <월간 리빙>에 나올 법한 멋진 저택이죠.
더부룩: <미스터 브룩스> 재미있었어요. 일단 영화에서 거의 본 적이 없는 심리를 다루고 있잖아요? 쾌락을 위해 혹은 중독되어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이야기는 많지만, 그 연쇄살인범이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가장 역할 때문에 갈등하는 이야기는 처음이었어요. <밀양>에서 여주인공이 가졌던 감정이 영화에서 거의 묘사된 적이 없었던 감정인 것처럼. ^^
푼수: 연쇄살인 스릴러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접근은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체적으로는 불만스러웠습니다. 일단, 캐릭터 이야기를 할까요? 케빈 코스트너는 <퍼펙트 월드> 이후 범죄자 역은 거의 처음 아닌가요?
더부룩: <퍼펙트 월드>에서 살인범이긴 했지만 캐릭터의 온도가 완전히 다르니 사실상 첫 악역이라고 해야겠죠.
푼수: 브룩스는 병적인 연쇄살인범이지만 광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평균 시민보다 더욱 정돈된 삶을 사는 남자로 그려집니다. 살인의 준비와 뒤처리도 청결하죠. 심지어 직업조차 단정해요. 포장 박스 제조회사! -..-
더부룩: 그런 정돈된 삶이 이상심리를 더 극대화하는 세팅이죠.
푼수: 그러나 <미스터 브룩스>는 연쇄살인의 참신한 묘사에는 성공했지만, 참신함 자체가 영화가 세운 목표의 전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더부룩: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
푼수: <미스터 브룩스>는 첫째, 연쇄살인을 천식 같은 만성질환처럼 묘사합니다. 브룩스는 2년간 중독자 치료 모임에 나가기도 했죠. 또 하나의 중요한 설정은 브룩스에게 살인을 저지르라고 충동질하는 얼터 에고가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뭐, <뷰티풀 마인드>와 비슷한데요. 윌리엄 허트가 분하는 브룩스의 또 다른 자아가 계속 곁을 맴돌며 주인공의 내면적 갈등을 대화를 통해 표현합니다. 연쇄살인을 난치병으로 여기는 설정과, ‘나’이면서 ‘내’가 아닌 캐릭터를 배치한 설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브룩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중지할 수밖에 없게 하는 장치라고 느껴졌어요.
더부룩: 글쎄. 연쇄살인범 영화에서 연쇄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그리 중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네요.
푼수: 도덕적이라는 말을 괄호치더라도 과연 이런 방식이 연쇄살인범인 한 인간을 더 온전히 이해하게 해주는지는 의심스러웠다는 뜻이죠.
더부룩: 저는 ‘연쇄살인’이라는 소재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영화에 없는 것과 ‘역사 속의 학살’이라는 소재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없는 것은 다르게 평가해야 한다고 봐요. 저는 이 영화가 왜곡된 가족영화라는 점에서 가장 흥미로운데, 브룩스의 심리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살인심리가 일종의 질병이라는 것이 아니라, 질병같이 떨쳐낼 수 없는 살인심리를 가진 사람이 엉뚱하게도 딸을 사랑하는 가장으로서 겪는 또 다른 심리와 상충하는 지점이라고 봤어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천식 같은 살인 심리는 그 자체로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라 다른 걸 두드러지게 만드는 조건이라는 거죠.
푼수: 전 이 영화가 연쇄살인에 대해서 단죄하고 있지 않는다는 걸 문제 삼는 게 아니에요. 연쇄살인이라는 현상이나 그 일에 연루된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 보여주는 게임의 규칙이 공정하지 않다고 봤다는 거죠.
더부룩: 공정하려면?
푼수: <미스터 브룩스>는 연쇄살인범의 심리가 분열된 원인을 탐구하기보다 연쇄살인을 피할 수 없는 유전적인 질병으로 전제함으로써, 인물을 현실의 조건과 책임 중 영화적으로 즐길 만한 것만 대면하도록 의도적으로 세팅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더부룩: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분열적인 인물을 다루는 영화는 꼭 분열의 원인에 대해 탐구해야 할까요? 한 영화가 그 영화의 소재에 대한 모든 논점을 전부 다룰 수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상황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다루고 싶어하는 모티브를 ‘게임의 규칙’을 지켜가면서 다루면 된다고 보는데요. 정치적으로 논쟁적인 사안이 아니라 연쇄살인처럼 누구나 ‘악’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이라면, 굳이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푼수: 정치적으로 논쟁적이건 아니건, 전 <미스터 브룩스>가 세운 규칙이 공정하지도 튼튼하지도 않다고 봤어요. 더군다나 이 영화는 브룩스가 나오는 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 그를 쫓는 형사(데미 무어)가 이끄는 부분이 다른 한축을 이루는데요. 저는 그 두 부분이, 영화의 모티브인 연쇄살인범의 분열적 심리를 묘사하는 데에 어떻게 결합해 어떤 식으로 봉사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더부룩: 서브 플롯들이 메인 플롯만큼이나 중요한 영화죠. 지금 하신 말씀은 상당 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건 조금 전에 제기한 문제와는 좀 다른 영역이죠. 두 인물의 관계는 아마도 <양들의 침묵>을 강력히 의식한 결과일 거예요. 아까 제기하신 또 하나의 문제는 분신 캐릭터에 대한 것인데 저도 윌리엄 허트를 일종의 ‘악의 분신’으로 등장시킨 것이 영화에 득이 됐는지 실이 됐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영화의 가장 섬뜩한 지점이 둘이 함께 등장하는 순간에 발생한다는 거죠. 두 사람이 악마적인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차에서 낄낄대는 장면 같은 것은 정말 스릴러로서 등골이 서늘해지죠.
푼수: 맞아요. 제3자를 두고 “저러다 혹시 차에 치어 죽는 거 아냐?” 하면서 웃는 장면이었죠. 하지만 그건 스릴러로서 섬뜩함이라기보다 인간 본성이 주는 섬뜩함 아닐까요?
더부룩: 뭐,스릴러가 인간의 본성이 주는 섬뜩함을 주 테마로 삼고 있는 장르라고도 할 수 있죠.^^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윤종찬 감독의 <소름>을 떠올렸어요. 사실 <소름>에서 가장 무서운 장면 중 하나가 폭주족의 오토바이에 짜증나게 당하다 결국 그 오토바이가 사고로 쓰러져 운전자가 피를 흘리자 통쾌해하면서 주인공과 택시기사가 웃는 장면이었잖아요.
푼수: 제 입장을 정리하자면 <미스터 브룩스>는 연쇄살인자의 내면 갈등에 흔치 않은 접근법으로 주목했다는 점에선 흥미롭지만… 못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브룩스의 얼터 에고가 등장하는 설정 자체가 약점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두 인물의 대화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죠.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자주, 오래 등장해서 지겨워요. 윌리엄 허트의 매너리즘적 대사 처리도 식상했고요. 이 영화는 수사극으로서 범인과 동기, 방법이 일찍 노출되는 만큼 그것과 또 다른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는 게 스릴의 핵심이 될 텐데 영화 결말에서도 기다린 보람을 얻지 못했어요. 특히 영화 두세편을 섞어놓은 듯한 플롯의 과부하는 문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더부룩: 분신장면에 관한 지적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가족영화적인 비밀’에서 관객으로서의 보람이 있지 않았나요? ^_^ 저도 이 영화가 대단히 훌륭한 스릴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 영화는 꽤 많은 이야기를 상당히 능숙하게 전달했고 꽤 많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도 매우 또렷하게 살려냈다고 보는 거죠. 가족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장면은 정말 흥미롭던데요.
푼수: 요컨대 선배와 저는 이 영화의 정체성을 다르게 파악하고 다른 기대를 품은 채 영화를 지켜본 것 같네요. ^^ 그나저나 완벽하게 무기와 소품이 준비된 근사한 지하 스튜디오에서 ‘올해의 기업인’인 브룩스가 살인을 준비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연쇄살인계의 배트맨을 보는 듯했습니다. 게다가 막바지에 형사와 통화하는 장면에서는 “앗, 이거 프랜차이즈의 1편이었어?”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속편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요?
더부룩: 헉. 이런 영화를 어떻게 속편을 만들겠수. <미스터 더부룩스>라는 코미디 패러디라면 몰라도.^^
푼수: 맞아요! 전 이 영화가 코미디였다면 더 재미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한답니다. 그러면 분열된 자아의 존재도 귀여워 보이고 만사형통이었을 텐데! ^.~
더부룩: 짝도 찾지 못했는데 만사형통이라니!^_^
김혜리: “<내 생애 최악의 남자>에서 제일 안도한 건 배우와 관련된 점이었어요. 탁재훈이란 배우의 인간적 개성까지 끌어들여 위화감이 없었어요.” 이동진: “예상보다 코미디가 약하고 드라마가 강했어요. 대사나 상황도 꽤 힘준 부분이 많구요. 전체적으론 화법이 좀 낡은 느낌이 강했죠.”
푼수: 그럼 짝을 찾았는데 만사가 꼬이는 영화 이야기를 할까요? <내 생애 최악의 남자>입니다. 오랜 친구인 두 남녀가 술김에 치른 섹스를 계기로 가볍게 결혼하는데, 이튿날 이상형 남녀를 만나 갈등하는 코미디입니다. ‘내 생애 최악의 남자’라, 흠, 비록 트로피는 없어도 모든 여자의 마음속에서 항상 경쟁이 치열한 부문이라 하겠습니다. T-T
더부룩: ‘내 마음의 골든 래즈베리상’이라도 마련해야 할 듯.
푼수: 트집부터 잡자면 <두사람이다>에 이어 제목이 잘 이해가 안 갔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남자가 최악이라기보다 철없는 여자와 속깊은 남자의 이야기던데요.
더부룩: 허허 그러네.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두 사람이다’라고 해도 말이 안 되나요? 선택의 범위가 두배로 넓어지잖아요. ^.~ ‘내 생애 가장 철없는 여자’가 정답인가?
푼수: -_- 뭐, 여주인공 주연(염정아)이 어리석은 일을 더 많이 저지른 건 사실이죠. 실은 남자주인공 성태(탁재훈)의 에필로그를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남녀주인공 중 어느 한쪽에 시점을 줬다가 만드는 도중 혼선이 있지 않았나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영화를 즐기는 데 있어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지만.
더부룩: 신의주에서 시작해서 마라도에서 끝나는 영화랄까요. ^^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예상보다 코미디가 약하고 드라마가 강하다고 봤어요. 대사나 상황도 꽤 힘준 부분이 많고요. 전체적으로는 화법이 좀 낡은 느낌이 강했죠.
푼수: 그렇게 힘을 준 대사나 상황의 징검돌이 좀더 진득하게 연결됐다면, 이 영화가 동경하는 워킹 타이틀 로맨틱코미디의 장점을 더 많이 닮을 수 있었겠죠.
더부룩: 시사회 인사에서 출연배우 조희봉씨가 ‘워킹 타이틀표 로맨틱코미디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다’고 말씀하기도 했죠. 영화를 본 뒤 왜 그렇게 되지 못했는지 생각해봤는데 무엇보다 캐릭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주연 캐릭터도 그렇지만 워킹 타이틀 영화는 조연 캐릭터들이 정말 풍성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조연 캐릭터들은 정말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어요. ‘주인공의 친구들’은 한국영화에서 가장 묘사가 서투른 분야인 것 같습니다.
푼수: 조희봉씨가 분한 캐릭터가 미필적 고의로 주선하는 ‘불륜4자 회담’ 장면은 재미있었어요. “아니 이런 훌륭하신 분들이… 이런 친구들과… 인연이라는 게 … 에…내 인연은 어디 있나…?” ^0^
더부룩: 조희봉씨의 어눌한 말투와 어울려 더욱 재미있죠. 두 주연 캐릭터는 그럭저럭 손에 잡히는데, 그 두 주연 캐릭터가 푹 빠지는 다른 두명의 남녀는 정말 요령부득이더군요.
푼수: 연애의 정점을 거치지 않고 우정으로 결혼한 두 남녀가 꿈에서 걸어나온 듯한 상대에게 새롭게 매혹되는 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더부룩: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반대상황에서 시작하는 셈이죠. ^^
푼수: 반면, 문제의 이상적인 상대들이 주인공 주연과 성태에게 끌리는 과정은 설명이 미흡하죠. 그래야 이야기가 되니까, 라는 이유는 모두 아는 바입니다만 그처럼 당연한 요소를 성의있게 설명할 때 장르영화는 업그레이드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더부룩: 최소한 결혼한 남녀와 사랑에 빠지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납득시키는 과정이 필요하죠.
푼수: 특히 주연의 로맨스쪽은 설명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더부룩: 아니, 성태쪽 로맨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오히려 설명은 더 모자라죠.(이건 뭐, “지아장커 감독 영화 중 무엇이 제일 덜 졸리냐” 이후 가장 이상한 화두인 듯. ^^)
푼수: -..- <내 생애 최악의 남자>에서 또 하나의 약한 고리는, 이혼을 제안하자니 미안하고 이혼당하면 편리하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품은 주연이 일부러 유치한 싸움을 유발하는 대목이었어요. 그건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을뿐더러 상대방에게 책임까지 전가하려는 행동인데, 둘의 오랜 우정에 비추어보아도 상식 밖이죠.
더부룩:이혼당하려 마음먹은 뒤 벌어지는 장면과 이혼서류 제출하러 갔다가 혼인신고도 안 돼 있어서 돌아오는 상황 이후의 장면들은 위기의 극적인 돌출점에 비해 이후 위기가 흐지부지 뭉개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는 이를 맥빠지게 하는 구석이 있어요. 사건을 제시하고서 해결하지 않은 채 시간을 끌다가 또 다른 사건을 제시하는 셈이죠.
푼수: 더 근본적 문제는 주인공 커플에겐 참다운 위기가 애초에 없었다는 점인지도 몰라요. 따라서 해결 여부에 관객이 덜 연연하게 되고요.
더부룩: 이들은 결혼 자체가 위기였죠. ^^ 남녀 사이의 위기라는 것은 신뢰가 무너지는 데서 생겨나게 마련인데, 두 사람의 결혼 자체가 해프닝처럼 묘사되니까요.
푼수: 그래도 이 영화를 그럭저럭 즐길 수 있었던 까닭은 많은 상투적 선택에도 불구하고 함정은 피해갔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어 술 때문에 저지른 실수에서 비롯된 결혼이라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주연과 성태는 오랫동안 친구 사이였기에 우연한 섹스가 100% 원인이라기보다 슬쩍 밀어주는 핑계였을 거라고 이해할 수 있죠. 또 직업 세계 묘사도 좋았습니다. 출판사 편집장이 직원을 독려하는 대사나, CF감독이 직업의식에 관해 충고하는 말은 잘 쓰인 대사였어요.
더부룩: 맞아요. 그 대사들은 귀에 쏙 꽂히더라고요.
푼수: <내 생애 최악의 남자>에서 가장 안도한 부분은 배우와 관련된 점이었어요. 탁재훈씨처럼 개그 감각이 뛰어난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할 경우 그냥 웃음만 제공하면서 이야기와 겉돌기 쉬운데, 성태의 캐릭터는 배우의 코미디 재능만 뽑아 쓴 것이 아니라 탁재훈이라는 배우의 인간적 개성까지 끌어들인 캐릭터여서 그런 위화감이 없었습니다. 염정아씨 역시 타고난 코미디적 재능을 편하게 즐기는 티가 나죠. 특히 팔꿈치와 무릎 아래가 긴 체형인 그녀가 다소 뻣뻣하게 몸을 놀리며 보여주는 신체 코미디는 효과 만점입니다.
더부룩: 탁재훈씨는 ‘태도’가 옳았고, 염정아씨는 ‘분위기’가 좋았죠. 카메오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푼수: 김선아, 신현준, 신이씨 등이 출연했는데 개인기에만 맡기지 않고 영화가 적절한 상황을 만들어 넣어줬기 때문에, 카메오가 무성의한 장식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더부룩: 특히 맞선 보러 나온 여자 역의 신이씨가 자기는 쉬운 여자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자취방 자물쇠 비밀번호가 1234면 너무 쉬울까봐 1235로 했다”는 대사를 할 때 많이 웃었습니다. ^0^
푼수: 흠, 선배의 카드 비밀번호는 혹시 1408? 아니면 2046? 그것도 아니면 평소 성격으로 미루어볼 때 두개를 더한 3454? ^^
더부룩: 허허. 그걸 다시 단 단위로 더한 다음, 제 생일의 달과 일을 합친 숫자로 나눈 뒤에 우수리를 버린 자연수로 설정할 것 같지 않우?(헉! 비번 바꿔야겠다. T-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