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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그룹 ‘복숭아 프레젠트’의 강기영, 장영규, 방준석, 이병훈 [1]

따로 또 함께, 한국 영화음악의 거점을 세우다

복숭아 사람들과 이야기를 했다. ‘복숭아 프레젠트’는 음악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면서 하나의 회사이기도 하다. 이 회사는 주로 영화음악 일로 먹고산다. <복수는 나의 것> <해안선>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ing>….

2002년 이후 이들이 소화해낸 영화 몇편의 소개만으로도 이들은 한국 영화음악계의 주력부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딱히 이 모임의 뮤지션들이 영화음악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달파란(강기영)은 ‘모조소년’이라는 전자음악 밴드를 하며 DJ도 하고 있는 첨단 뮤지션이며 장영규 어어부 프로젝트를 하면서 피나 바우쉬 등 저명한 서구의 예술가들에게 음악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방준석은 ‘유 앤 미 블루’라는 록 밴드의 보컬, 기타리스트였고 지금도 틈틈이 록 공연을 한다. 그러면서도 <공동경비구역 JSA>나 같은 큰 스케일의 영화음악 스코어를 써왔다. 이병훈은 화성적으로 훈련된 음악을 많이 만들면서 가요계에서도 적잖은 히트곡을 냈으며 옛날에는 ‘도마뱀’이라는 뉴 웨이브 밴드를 한 적도 있다.

이들은 네 사람이지만, 딱 네 사람이 아니다. 수많은 음악들 속에서 이들의 아이덴티티는 유연해진다. 이들은 작은 전체를 이루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나’들로 인해 분산되는 독특한 정체성 속에 서로가 미끄러지며 존재한다. 이 음악가들이 장민승이라는 기획자와 만나 김포에 하나의 독특한 음악공간을 이루고 있다. 별로 말들이 없는 사람들이라 평소에 알고 지내면서도 많은 이야기는 할 수 없었지만 뭔가 속 깊이 이야기를 담고 사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도 전략적으로, 혹은 경험적으로 그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할 수 없거나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확실히 이들은 현재 한국 영화음악의 한 거점이다. 그들과 함께 한국 음악의 현주소에 관한 오리무중의 탐색을 해본다. 느슨한 하나이면서 여럿인, 독특한 연루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답게, 이 대화는 어떤 주제로 모이기보다는 여러 갈래의 주제 속에서 순간순간 포인트를 찾았다가도 놓쳤고, 집중되었다가 다시 흩어진다.

느슨한 전체- 복숭아의 사람들

성기완 _복숭아의 아이덴티티는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느슨함.’

방준석_느슨함이 허용되는 하나의 모임이다. 각자 자기 일도 하면서 전체적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가기도 한다.

성기완_언제 모였나?

장영규

장영규_ 3년 전쯤인 것 같다. 당시 영화음악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늘 붙어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따로 일할 필요없이 한 공간에 모여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당시 우리는 욕심이 좀 있던 때였다. 우리에게 들어오는 일들을 놓치지 않고 효율적으로 진행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다가 2002년 늦여름쯤 장민승씨가 구체적으로 모임에 대해 제안하여 모임이 이루어졌다.

성기완_한국의 음악판을 한켠에서 견인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 달파란_특별히 그런 생각은 없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성기완_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공통적인 색깔이 있고, 유연하게 각자의 개성도 담보되고 하는 방향이 복숭아 특유의 느낌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 방준석_점점 구체화돼가는 것들도 있다. 지난번에 나온 한영애씨의 프로젝트를 복숭아 뮤지션들이 공동으로 기획하기도 했다.

성기완_뮤지션의 입장에서 영화음악, 공연음악 등의 매력은 무엇인가. 밴드를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데.

▲ 장영규_ 나 같은 경우는 도마뱀이라는 밴드를 하기 전, 처음에 음악을 시작할 때 공연, 무용음악 등의 음악을 만들어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샘플링을 통한 ‘이어붙이기’ 방식을 열악한 공연음악의 현장에서 구체화했던 것 같다. 정말 많은 음악들을 들었고, 그중에서 공연에 부합되는 음악들을 찾아 새롭게 이어붙인 것이 지금의 방식으로 이어진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사람 만나는 재미도 있었다. 음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이야기하며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그런 점에서는 영화음악이나 공연음악이 별로 다를 게 없다고 본다.

성기완_방준석씨는 원래 ‘유 앤 미 블루’라는 밴드도 했었고 좀더 스트레이트한 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듯한데, 영화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 방준석_<텔미썸딩>이 장편 첫 작품이었다. 당시 조영욱씨와 함께 작업할 때 스코어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유 앤 미 블루’를 할 때 밴드의 음악을 <꽃을 든 남자>에 실었는데, 곡이 화면에 붙는 걸 보는 것이 즐거웠다. 영화라는 것을 항상 좋아해왔지만, 그 이후로는 이런 매력 때문에라도 열심히 영화음악을 하게 된 것 같다. <…JSA>나 할 때 각각 영화에 맞는 음악들을 유연하게 만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더 많은 생각을 하면서 만들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성기완_만일 지금 <…JSA>의 음악을 다시 만들면 어떻게 될까.

● 방준석_글쎄, 모르겠다. 아마 그때의 그 음악처럼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하게, 간소하게

성기완_자기가 원래 하고 싶은 음악과 영화음악을 하면서 만들어 ‘주어야’ 하는 음악 사이의 간극이 있을 수도 있다. 그 간극이 너무 크면 안 되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음악만으로 먹고살기도 힘들고 그런데, 복숭아 사람들은 그 간극을 잘 조절하면서 유지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둘 사이에서 괴롭지는 않나.

방준석

● 방준석_그 두개가 다 있다. 때로는 내가 어디 있는지 나에게 되물을 때도 없지는 않다.

■ 달파란_그렇지만 ‘나는 누굴까’라는 밑도 끝도 없는, 함정 같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 그냥 이대로????

성기완_그런 것도 복숭아다워 보인다. 우리는 누구, 예를 들어 ‘펑크 로커’, 뭐 이런 식으로 확실히 규정짓지 않고 함께 가는 것 같은데….

■ 달파란_‘다양함’의 문제로 바라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전체 속에서 개인의 다양함도 생각할 수 있지만 ‘나’ 안에서의 다양성 역시 존재한다. 개인의 생각이나 여러 가지가 변할 수도 있고 유동적인데도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풍토는 뭘 꼭 유지해야 하고 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해온 것 같다. 왔다갔다 하거나 변화가 많은 사람은 오히려 질이 낮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전체적이고 획일적인 바탕에서 선입견을 가지고 개인의 다양성을 바라보면 안 된다. 개인의 유동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전체적인 다양성도 이루어진다. 그래서 ‘복숭아’를 영화음악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렇게 딱 규정짓는 것도 별로 좋지는 않다. 나는 복숭아가 사람들의 시선을 혼란스럽게 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들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이 사람은 전자음악 하는 사람, 이 사람은 공연음악 하는 사람, 이 사람은 가요 작곡가, 이렇게 획일적으로 지정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성기완_그런 면에서는 장영규씨도 여러 개성을 지닌 음악을 한다고 생각되는데. 예를 들어 음악과 <반칙왕>에서의 음악은 매우 다르다.

▲ 장영규_ 음악이나 <반칙왕>의 음악이 나에게는 모두 자연스러운 음악이다. 내 안에 장르가 나뉘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억지로 나온 음악이 아니라 영화에서 어떤 음악이 필요할 때 그에 따라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끄집어낸 것이다. 물론 내 개인의 작업을 할 때, 예를 들어 내 이름을 걸고 음반을 낼 때 어떤 음악이 나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음악의 경우 다양한 방식의 음악이 가능하다고 본다.

성기완_그런 다양한 것들이 한 사람 안에서 소화되고 공존하는 것을 보면 영규씨는 소화력이 좋은 분 같다. (웃음)

▲ 장영규_ 어렸을 때 공연음악 하면서 들었던 수많은 음악들, 그때 이어붙였던 수많은 음악들이 나도 모르게 소화되어 내 안에 있나보다.

성기완_‘이어붙이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복숭아 프레젠트의 뮤지션들은 어떤 때에는 하나로 모이지만 음악 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고 음악에 접근하는 특유의 시각도 있는 것 같다. 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좀 공개해달라.

■ 달파란_나는 요새 ‘간소화’를 주로 생각한다. 컴퓨터를 위주로 하면 다른 악기들을 많이 줄일 수 있다. 음악 만드는 수고는 줄어들고 장비도 많이 줄었기 때문에 큰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도 음악하는 사람이 음악을 재생산해나갈 여건이 된 상태다. 물론 컴퓨터를 사용하여 음악을 할 때 ‘프로그램’에 매몰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함정이다. 그러나 뮤지션들이 그 함정을 경계하면서 훌륭하게 개성있는 음악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고 본다.

▲ 장영규_ 나는 미디 작업이 친숙하지 않는데다가 공연음악을 만들 때 하던 ‘샘플링’의 방식을 심화하고 싶다. 소리들을 디지털로 녹음하여 자르고 붙이는 방식을 통해 하나의 소리와 다른 소리가 만나는 과정에서 부딪히고 의미가 변화한다. 아직도 이 영역에서 할 일들이 많다.

● 방준석_나의 경우는 컴퓨터의 영향을 받고 그것의 편리함을 이용하긴 하지만, 악기를 섬세하게 다룰 때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들, 그 감정의 흐름들을 중시하는 편이다. 공연 등을 통해 좀더 그 흐름을 붙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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