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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의 봄’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 의무감이 아닌 나의 관심사를 좇는다
임수연 사진 최성열 2024-01-25

<서울의 봄>이 1283만 관객을 돌파했다(1월17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기준). 지난 4년간 한국영화 위기설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관객은 여전히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더군다나 <서울의 봄>은 여러 이유에서 흥행이 보장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번 성과는 더욱 의미 있다. <서울의 봄>을 만든 김원국 하이브미디어코프 대표는 2014년 회사 창립 후 <내부자들> <덕혜옹주> <곤지암> <남산의 부장들> 등 다양한 색깔의 영화를 제작해왔다. 광고 회사에서 시작해 <스윙걸즈> <미스트> <렛 미 인> 등 200여편의 외화를 수입했던 경력은 그가 지금 충무로에서 중요한 제작자 중 하나로 자리 잡는 밑거름이 됐다.

- 12·12 군사반란은 실패의 이야기다. 일견 영화화하기에 재미있는 소재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떻게 영화적으로 소구할 키를 잡아냈나.

= 하룻밤 사이 벌어지는 일을 제한된 러닝타임이 있는 영화로 만들어야 했다. 2016년부터 홍인표 작가와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는데 구성이 가장 힘들더라. 결말을 모두가 알고 있고 군인들만 나오는 이야기를 여성 관객이 보겠냐는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나는 <서울의 봄>에 셰익스피어의 희곡 같은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있고 그것이 훌륭한 장점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작전명 발키리>도 히틀러 암살은 실패로 돌아가지 않나. 바로 그 점에서 확신을 얻고 구성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김성수 감독이 영화적인 각색을 더해 긴장감 있게 잘 연출해줘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 <서울의 봄>의 일등 공신은 단연 김성수 감독이다.

- 이전까지 하이브미디어코프와 김성수 감독이 함께 작업한 적은 없다. 어떻게 연출을 제안하게 됐나.

= <비트> <태양은 없다>의 팬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함께하고 싶었다. 그는 남성적인 영화를 잘 만들고 특히 캐릭터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 <서울의 봄>처럼 많은 인물이 나오는 작품에서 각각의 캐릭터가 모두 잘 보일 수 있게 연출할 수 있는 분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나 대화를 나누다 보니 10대 때 12·12 사태를 직접 본 분이라 누구보다 이 소재에 대해 잘 알고 계시기도 했다.

- <서울의 봄>은 비수기에 개봉해 관객수 1200만명을 동원했다. 코로나10 팬데믹 이후 성수기와 비성수기의 경계가 희미해졌고 오히려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 때 개봉해 장기 흥행을 노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결과인가.

= <내부자들>(2015년 11월19일 개봉, 관객수 707만명) 덕분에 작품이 좋으면 개봉 시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8월 개봉했지만 밤 9시 이후 상영을 하지 않고 마스크를 쓰고 띄어 앉기를 하던 때라 아무도 영화를 개봉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가 가장 심각한 비수기나 마찬가지였다. (웃음) <서울의 봄>은 장기 상영으로 입소문을 기대하며 힘을 얻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여름 성수기나 추석 연휴 한국영화 개봉작이 몰리면서 벌어진 일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겁이 많아서 그런 경쟁에 뛰어드는 건 좀 무섭다.

- 개봉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관객 반응도 있었나.

= 사람들이 12·12 군사반란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모르는 부분도 많더라. 쿠데타를 막을 수 있었던 상황이 여러 번 있었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많은 이가 속상해했다. 또 여성 관객 비중이 오히려 더 높았다.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이, 또 젊은 관객일수록 영화를 보고 분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는 비극적 카타르시스만 예상했지 무능한 군인들이 쿠데타를 막지 못해 화가 난다고 반응할 줄 몰랐다. SNS에서 화제가 된 ‘심박수 챌린지’도 자생적으로 나온 거라 많이 놀랐다.

- 김성수 감독이 “김원국 대표는 한국 근현대사를 영화로 재구성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말하더라. 언제부터 그런 청사진을 그렸나.

= 나는 근현대사를 의무감과 사명감을 갖고 영화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자료 조사를 하다 보면 또 다른 게 보이고, 그렇게 얻은 아이템을 다시 공부하면서 아이디어가 확장될 수 있다. <덕혜옹주>는 동명의 소설 포스터가 너무 인상적으로 다가와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게 됐고, <마약왕>은 부산국제영화제 분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듣고 “박정희 시대 때 한국에 ‘마약왕’이 있었다고? 그게 가능한가?”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서울의 봄>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회의 존재를 직간접적으로 인지한 데다 12·12 군사반란 이후 한국사가 뒤바뀌었다는 점을 계속 곱씹은 데서 출발했다.

재미의 발견, 숙고의 시간

- 영화화하기 매력적인 사건이나 시대를 고르는 기준이 있나.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하나.

= 일단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 며칠 지나면 재미가 없어질 수 있으니 1년 동안 머릿속에 계속 놔두고 숙성의 시간을 갖는다. 주변에 이게 재미있게 들리는지 의견을 묻기도 하고 자기 의심을 하며 자료를 찾아본다. 여전히 매력 있는 이야기라면 작업에 들어간다. 블로그나 유튜브, 기사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정보를 수집한다.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준비할 때는 장영실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분석한 여러 가설을 정말 많이 찾아봤다. 일단 사건과 소재가 흥미롭게 느껴지면 각자의 기억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입장을 찾아보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일치되는 내용이 발견된다. 이는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를테면 12·12 군사반란이 벌어진 배경은 저쪽 관점까지 함께 살펴봐야 이해할 수 있다.

- 하이브미디어코프 창립 10주년이다. 그동안 해온 작품을 보면 장르가 무척 다양하다. 사업적인 면에서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구축한 것처럼 보인다.

= 한번은 박해일 배우와 차를 타고 가는데 이렇게 물어보더라. 대표님은 왜 이렇게 장르가 다양하냐고. 원래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고 내가 관심 있는 소재나 아이템을 하나씩 파면서 영화를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듯하다. 내가 궁금해하는 이야기는 관객도 궁금해하고, 내가 재미있어하면 대중도 재미있어할 거라는 생각으로 만들 뿐이다. <러브 액츄얼리> <노팅 힐>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 같은 워킹 타이틀 영화, <스타워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 같은 SF 장르, 해외 정치 드라마도 좋아한다. 최근에는 고질라의 기원을 다룬 Apple TV+ <모나크>나 넷플릭스 <푸른 눈의 사무라이>를 재밌게 보고 있다.

직감을 믿고, 현장으로

- 광고 기획사에 있다가 10여년간 영화 수입 일을 했다는 이력이 특기할 만하다. 이같은 경력이 제작자로서 차별화된 경쟁력이 되지 않았을지.

= 외화 수입은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에게 영화가 팔리기 때문에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 바로 그 이유로 내가 한국영화 제작 일을 시작한 것이기도 하다. 수입사를 할 때는 영화를 보기 전에 시나리오 혹은 시나리오도 없는 컨셉 단계에서 구매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관객은 해외영화의 컨셉을 기준으로 관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 기획 능력을 많이 배웠다. 이를테면 <나우 유 씨 미: 마술사기단>이나 <웜 바디스>는 소재가 재미있어서 잘될 것 같다고 판단했고 실제로도 성공했다.

- 9천달러를 주고 수입한 <렛 미 인>이 흥행에 성공해 화제가 됐는데 어떻게 가져오게 된 작품인가.

= 직원들에게 1만달러 이하는 간섭하지 않을 테니 알아서 구입하라고 했다. 그때 직원 중 하나가 열심히 노력해서 계약했다. 당시 나는 영화의 컨셉도 제대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웃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이 확정되면서 영화를 보게 됐는데 영화가 정말 좋았다.

- 다방면의 경험이 많다 보니 영화의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전 분야에 관여하는 제작자라고 들었다. 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 제작하는 작품이 무척 많은데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 (웃음)

= 음, 일단 회의를 잘 하지 않는다. 회의를 위한 회의를 없애고 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그때그때 필요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1시간 이상 얘기하는 것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밤 11시쯤 잠자리에 들어 아침 5~6시쯤 일어나 그때부터 생각을 많이 정리한다. 오전 시간에 일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리고 현장에 자주 나간다. 현장에 많이 있으면 어떤 컷이 예고편에 들어가야 하는지, 마케팅 단계에서 무엇을 강조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열심히 만든 영화를 잘못된 방법으로 선보이면 안되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여러 파트에 도움을 주려고 한다.

- 앞으로 만날 작품들은 어떤 게 있나.

= <보통의 가족> <행복의 나라로> <핸섬 가이즈> <말할 수 없는 비밀> <하얼빈> <야당> <보스> 등은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태국 올 로케이션으로 진행될 영화 <열대야>(감독 김판수)는 1월 말 크랭크인할 예정이다. 시리즈도 몇편 준비하고 있다. 우민호 감독이 연출하는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는 현재 프리프로덕션 진행 중이다. 드라마 <착한 사나이>(연출 송해성, 극본 김운경·김효석)는 요즘 시대에 잘 없는, <서울의 달>이나 <파이란> 같은 정서를 가진 작품이다.

현재 하이브미디어코프에서 준비 중인 프로젝트들

<내부자들>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는 <암살자들>은 재일 교포 2세 문세광의 배후를 추적하는 과정을 담았다. 올리버 스톤의 <JFK>와 비슷한 톤으로 풀어갈 예정이다. <K-공작 프로젝트>는 1980년 전두환 시대 당시 시행된 언론 회유 공작 계획, 일명 ‘K공작 계획’을 소재로 했다. <YS 프로젝트>는 육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기 위한 극비 프로젝트를 다룬다. <7인의 사무라이>를 모티브로 한 <무인>은 조선 초, 나라에 버림받는 조선의 백성을 나라를 잃은 고려 말 무사들이 왜구로부터 구하는 이야기다. <곤지암>의 후속편 <곤지암2: 자살의 숲>은 <CNN> 선정 ‘세계 7대 소름 끼치는 장소’로 꼽힌 일본 후지산 기슭의 아오키가하라 숲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장진호 전투> 시리즈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미국과 중국의 첫 무력 충돌이자 마지막 전투인 ‘장진호 전투’를 소재로 했다. 영화 <내부자들>의 프리퀄 <내부자들> 시리즈는 깡패 안상구가 이강희와 장필우를 만나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다. <부부의 세계>의 모완일 감독이 연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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