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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단한 삶을 새빨간 루주와 매니큐어로 가린 연화. 힘들어서 피신한 조그마한 레코드 가게에서 네명의 남자를 만난다. 끊어질 듯 위태로운 삶의 줄 위에 서 있기는 이들도 매한가지나 그들은 태연스레 기타의 줄감개를 매만지며 음을 고르고 있다. 도돌이표 따라 제자릴 맴도는 것 같아 연화는 더딘 보폭에 지루함을 느끼지만 ‘영화’가 끝나고 ‘산책’이 시작될 쯤이면 그들 곁에 나란히 선다. 그때까지는 혼자 좋아라 앞서기도, 뒤를 돌아보느라 처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잔잔히 흐르는 수면 위로 통통 튀어 오르는 물고기 같은 느낌이에요. 연화는 제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 중에서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죠.” 연화 역을 맡은 박진희가 자세히 소개하는 <산책>은 ‘보는’ 영화가 아니라 ‘듣는’ 영화다.
“혹시 제가 너무 오버하지 않았나요?” 영화를 미리 본 주위 사람들이라면 박진희에게서 한번쯤 시달렸을 만한 질문이다. “내면을 그냥 통째로 드러내선 안 되고 묻어나야 하는데 힘들더라구요.” 상스
“웃으면 밉상되는데”, <산책>의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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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쇼생크 탈출>로 미국 평단의 찬사와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데뷔전을 치뤘던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41). <쇼생크 탈출>은 스티븐 킹 원작 영화 중 최고의 수작으로 꼽혔고 아카데미 7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그를 단숨에 A급 감독 대열에 올려놨다. 하지만 성공한 감독의 다음 행보는 뜻밖에 오랜 침묵이었다. 작가 겸 감독으로 널리 알려진 다라본트는 제작부 조수, 세트담당, 배우 등을 두루 거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 <나이트메어3> <플라이2> <프랑켄슈타인> 등이 그의 각본이다. <쇼생크…> 이후 5년의 침묵을 깨고 내놓은 신작 <그린 마일>은 역시 킹의 소설이 원작. 선량하면서 신비로운 능력을 가진 흑인 사형수와 간수장의 관계를 통해 인간다움의 의미를 묻고 있다. 6천만달러의 <그린 마일>은 제작비 2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고 아카데미 4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두편의 영화가
<그린 마일> 감독 프랭크 다라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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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에게 아름다움은 덫이 되기 쉽다. 배우를 지망하는 소녀에게 아름답다는 것보다 더 유용한 무기는 없겠지만, 그 쉬운 시작에 기대는 순간, 배우가 스크린 속에서 생명 없는 정물로 머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밀라 요보비치(24) 역시 그런 함정에 빠져 있었다. 녹색의 돌덩이처럼 차가우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도록 투명한 눈동자, 동유럽의 혈통을 내비치는 강한 윤곽의 얼굴선 덕에 그녀는 “10대에 이미 백만장자가 된” 톱모델이었다. 고작 11살의 나이에 패션잡지 <마드모아젤>의 표지를 장식하며 데뷔한 이후, 모델로서 요보비치의 경력은 흔들림이 없었다. 표정없는 얼굴만으로도 이면에 도사린 어두운 관능의 그늘로 끌어들이는 요보비치는 한번도 깜찍한 요정이었던 적이 없기에 성인으로의 힘든 도약을 거치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배우가 되고 싶어했던 그녀에게 나이를 뛰어넘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장애였다
셔릴린 펜의 여동생 중 한명이었고 <투 문 정션>으로 연기를 시작
청춘의 덫을 빠져나온 전사, <제5원소>의 밀라 요보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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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겅중거리는 다리와 샛노란 머리가 스튜디오 문을 씩씩하게 열어젖힌다. 껌을 씹으면서 쉴새없이 말을 건네고, 중간중간 섞어대는 “우헤헤헤”하는 웃음이 여간 상쾌하지 않다. 간이세트 위에 털썩 앉자마자 시작한 촬영 내내 배두나는 그냥 그대로 껍죽대지만 돌돌한 명랑만화 주인공이다. 그러다가 연두색 원피스로 갈아입고선 입을 조금씩 우물거리며 물끄러미 카메라를 응시하기도 하고 금세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을 만들어선 타고 오르기도 한다. 이번에는 빈 연습실에서 혼자 남아 연습하는 팬터마임 배우가 된다. 모델로 시작한 배두나는 카메라가 무섭지 않다. 오히려 그 앞에서 자유롭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씩씩하게 꽁지머리를 묶고 실종된 개를 찾아다니는 관리사무소 직원 현남. 평상시엔 축 늘어져 있다가도 한 군데 빠져들면 누가 끌어내도 뿌리치고서 몰두하는 점이 자신과 똑같다. “언젠가 저 아니면 못해낼 것 같은 역을 꼭 하고 싶다 말한 적 있죠. 그런데 현남이 너무 빨리 찾
달려라 두나! <플란다스의 개>의 배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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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탄 1996년작 <그림 속 나의 마을> 개봉에 맞춰 서울을 방문한 히가시 요이치 감독(東陽一·66)에게 한국 나들이는 이번이 네 번째다. 1993년 <NHK> 다큐멘터리 <한국의 서커스>를 위해 두 차례 취재 여행을 다녀갔고, 1998년 서울 국제독립영화제 손님으로 초대받은 것이 세 번째 방문이었다. 교육 영화와 다큐멘터리로 이름난 이와나미영화사를 거쳐 1969년 히가시프로덕션을 설립한 히가시 감독은 <써드>(78), <다리없는 강>(92) 등 일본사회의 저변을 훑는 사실주의적 영화들로 일본평단에서 가볍지 않은 믿음을 쌓아온 노장. 필름 위에 빛으로 그린 그림책 같은 영화 <그림 속 나의 마을>에서도 그의 투명하고 엄정한 시선은 그대로다.
지난 2월9일 회색 양복에 갈색 편물 넥타이를 맨 젊은 차림새로 <씨네21>을 방문한 히가시 감독은 활달한 손짓을 곁들여 자신의 영화와 인생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그림 속 나의 마을>의 히가시 요이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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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 테레사와 함께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보낸 일주일을 생애 최고의 경험으로 기억하고,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에서 느꼈던 초월적 영감을 잊지 못하고, 어쩌지 못할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치유하기 위해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서적와 프로이드의 <꿈의 분석>을 읽는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26)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면 뜻밖일까? 그러나, ‘스페인의 최고스타’ ‘안토니오 반데라스 이후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스페인 배우’ ‘청순과 관능의 아우라를 함께 두른 여신’이라는 수사어보다 이 단편들이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그러니까 이미지와 풍문의 미망에서 벗어났을 때라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가 페도르 알모도바르의 <내 어머니의 모든 것>에서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었던 건 나이에 비해 깊고 넓은 내면을 지녔기 때문일 게다.
원색의 나라, 스페인의 딸답게 크루즈는 <하몽하몽>(199
인형이 난 싫어,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의 페넬로페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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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꼬질한 차림에 어수룩한 윤주가 뭘 생각하는지 정도는 말이다. 그런데 ‘추리닝’에 손 넣고 빈둥대는 윤주가 오늘은 심상찮다. 삐주룩한 머릴 빨간 조교 모자로 감추고 얼굴 반만한 크기의 뿔테 안경으로 변장하고 나선 것이다. 주위를 살피는 윤주. 곧바로 자신의 적 강아지를 싸고도는 주인이 방심한 틈을 타 재빨리 다가가선 냉큼 집어든다. 그러고는 주인이 뒤돌아볼 틈도 주지 않고 비호처럼 옆 화단으로 몸을 날린다. 그러곤 성공을 외친다. <플란다스의 개>는 개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아파트는 실험실로 변한다. 계속 반응하느라 헐떡대는 윤주는 이성재가 아끼는 또 하나의 분신이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캐릭터예요. 때론 과장이나 극단적인 면도 갖고 있고. 떳떳하거나 마음 편한 위치에 당당히 서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살아가면서 다들 갈등하는 거죠. 순수와 타협의 갈림길에서 희화화한 윤주는 제 모습이기도 해요.”
원래 무겁고 신경질
"배우, 직업이자 취미이자 특기", <플란다스의 개>의 이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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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V에서 뮤직비디오 감독과 가수로 처음 만난 나카노 히로유키(中野裕之·42)와 호테이 도모야스(布袋寅泰·38)는, 아무래도 그들의 ‘출신성분’을 속이지 못한다. 영화감독과 배우로 재회한 두 사람의 합작품 <사무라이 픽션>만 봐도 그렇다. 이들은 가장 고전적인 이야기인 사무라이극을, 영상과 음악이 랑데부한 세련된 현대극으로 탈바꿈시켰다.
나카노 히로유키는 일본 최초로 뮤직비디오 전문 프로덕션을 설립한 영상작가. 국경을 넘나들며 유명 뮤지션의 비디오 클립을 만들어왔고, 인터넷과 공연예술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호테이 도모야스는 일본 최고의 록 기타리스트로, ‘X-재팬’의 큰형격인 그룹 바우위 출신. 현재 음반 프로듀서로도 활동중이며, <사무라이 픽션>에서 연기와 영화음악을 동시에 소화해냈다. 두 사람 다 영락없는 사무라이의 후예지만, 각자 한국과 묘한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은 <사무라이 픽션>으로 지난 2회 부천국
<사무라이 픽션> 감독 나가노 히로유키·배우 호테이 도모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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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꼬마 녀석.” 참을 만큼 참았다. 손목만 남은 손이 허공에서 덮쳤을 때도, 음산한 여자가 공동묘지를 돌며 사지가 찢기거나 생매장당해 죽은 조상들의 사연을 읊어댈 때도, 페스터는 엄마와 황금을 위해 모든 고난을 감수했다. 그러나 웬스데이 앞에서만큼은 사기꾼의 조심성을 유지할 수가 없다. 정신나간 어른들 틈에서 혼자 냉랭한 눈빛을 보내는 아이. 항상 검은 상복 차림이지만, 오히려 나이보다 한참 어려보이는 젖살이 도드라지는 <아담스 패밀리>의 크리스티나 리치. 순진한 어린아이에 대한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리던 그 아이가 조금씩 나이를 먹어 이제 열아홉살이 되었다. 성장이 순탄했을 리 없다. <귀여운 바람둥이>로 영화를 시작한 열살짜리 반항아는 한번도 어른들이 기대하는 천진함을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심지어 순도 100%의 아동용 영화 <캐스퍼>에서조차 아빠에게 훈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도대체 이런 아이가 어디에 있을까.
“‘담배를 피우는 10대
“순진함은 애초부터 없었어”, <슬리피 할로우>의 크리스티나 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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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 행복하다? 요즘 좋으시겠다고 말문을 열었더니 그저 얼굴에 엷은 웃음기만 슬쩍 피운다. 그동안 은행원 겸 반칙 레슬러로 살면서 귀밑으로 꽤 길었던 머리를 어느새 <공동경비구역>의 ‘북한군답게’ 잘라 올린 채 쌀쌀한 겨울 오후의 스튜디오에 나타난 송강호. 지난 설 연휴에 개봉한 <반칙왕>이 벌써 서울에서만 20만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들이면서 그는 다시 한번 독특한 웃음의 파장을 일으키는 중이다. <넘버.3><조용한 가족>의 전력이 한층 무르익은 코미디 연기는, 일상의 틈에서 기발한 리듬과 뉘앙스로 웃음의 묘를 끄집어낸다.
지리멸렬한 일상에 찌든 은행원 임대호가 레슬링을 배우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해가는 <반칙왕>은 송강호가 가장 많이 나온 영화. 57회 쯤 되는 전체 촬영분 가운데 그가 빠진 장면이 약 2회 정도 밖에 안 되는, ‘첫 주연작’이란 수사가 부담스러웠던 작품이다. 그에게 대호는 ‘나 자신일 수도 있고, 주변
“안 되면 운명이야, 하하”, <반칙왕>의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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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개봉에 앞서 영화홍보차 한국에 온 후루하타 야스오(한자이름??·67) 감독은 지난 40여년간 38편의 영화를 만든 노장이다. 하지만 지난 1월20일 남산 감독협회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근처 카페에서 만난 그는 전혀 노인같지 않은 혈색으로 연달아 5번째인 인터뷰에 성실히 답했다. 70년대에 한국영화를 수입, 배급한 적도 있다는 그는 “한일 양국이 지난해 최고 흥행작인 <쉬리>와 <철도원>을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게 되서 뜻깊다”며 <철도원>에 대한 한국 관객의 반응을 궁금해했다. 또한 그는 구상중인 다음 영화에 안동 하회마을이 등장할지 모른다며 서울에서 인터뷰 일정을 마치는 대로 촬영감독과 함께 안동에 들렀다 돌아갈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957년 도쿄대 문학부에 입학,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은 도에이도쿄촬영소에 입사해 영화 일을 시작했으며 66년 <비행소녀 요코>라는 영화로 데뷔했다. 그가 만든
99년 일본 최고의 흥행작 <철도원>의 후루하타 야스오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