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를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연인 바넬(카디 마네)과 아다마(마마두 디알로). 세네갈 북부의 한 외진 마을에서 사는 둘은 오래전부터 서로 사랑했지만 이제야 부부가 되었다. 이제 막 피어오른 둘의 사랑 앞에는 난관이 가득하다. 우선 둘이 사는 마을은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오랫동안 이어진 사막화와 가뭄으로 인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된 노동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사랑을 나눌 여유가 전혀 생기지 않는 환경이다. 이 둘의 복잡한 사정도 문제다. 아다마는 촌장이었던 형 예로가 죽자 촌장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바넬도 마을의 가부장적인 규율과 전통에 속박당해 있다. 그녀는 촌장의 핏줄을 이을 아기를 임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외면당한다. 전통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예로와 결혼한 과거 또한 그녀를 옥죈다. 둘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오래전부터 사랑의 도피를 준비했다. 아다마는 촌장이 되기를 거부하며 모래 폭풍에 파묻힌 마을 외곽의 집으로 이사하려고 새벽마다 모래를 파
[리뷰] 마술적 리얼리즘부터 신화와 멜로까지 온갖 장르를 녹이는 용광로같은 야심, <바넬과 아다마>
-
애너모픽렌즈 기술은 플레어와 왜곡 등의 특징을 통해 일반 렌즈보다 훨씬 다양하고 낯선 화면의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애너모픽렌즈 이펙트의 구체적인 효과와 사례들을 아주 상세히 설명하면서, 왜 한국의 많은 영화와 시리즈가 이러한 애너모픽렌즈의 특수함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제언을 남기고자 한다.애너모픽렌즈 기술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탱크 안에서 군인들이 밖을 더 넓은 화각으로 잘 보기 위해 개발됐다. 하나의 구멍을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의 시야보다 더 넓은 시야의 화각을 확보 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렌즈의 이미지 압축을 통해 인간이 볼 수 없는 넓은 풍경을 압축해서 보게 만든 것이 애너모픽렌즈다. 이 기술을 1952년 미국 영화 제작사인 (당시) 20세기 폭스가 ‘시네마스코프’라는 이름을 붙인 와이드스크린 구현을 위해 활용한다. TV의 등장으로 극장이 영화산업의 위기를 맞이했을 때 극장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몰입형 와이드스크린을 저렴한 비용에 제작
[박홍열의 촬영 미학] 주변의 시선을 영화의 중심으로 - 애너모픽렌즈의 미학
-
‘하지만 저녁 해가 지고 나면 반드시 아침 해가 뜬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소설 <새벽의 모든>에서 제목의 의미를 암시한 문장은 이 한줄 외엔 전무하다. 그렇기에 문장이 기술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뒤 비로소 주인공 후지사와와 야마조에, 두 사람이 겪은 고난을 밤의 시간에 대입해보게 된다. 영화에 묘사된 밤의 시간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플라네타륨 시연 장면이다. 플라네타륨이 구현한 밤하늘을 바라보는 참여자들에게 후지사와(가미시라이시 모네)는 회사 선배의 메모를 들려준다. “(…) 밤이 찾아와줘서 우리는 어둠 너머 무한한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이대로 쭉 밤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영원히 밤하늘을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 어둠과 정적이 나를 이 세계와 연결하고 있다.” 미야케 쇼 감독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새벽의 모든> 모두 원작 소설, 실존 인물의 자서전을 영상화했다. 하지
[비평] 어둠을 통해 삶을 말하기, <새벽의 모든>
-
유태오와의 인터뷰는 선문답에 가까운 대화였다. 그는 기자에게 “당신은 누구인가?”(Who are you?)라는 철학적 질문을 거꾸로 던지거나 007 시리즈의 첫 작품이 무엇인지 등을 물으며 상대를 대화의 장으로 이끄는 데 능숙한 질문자였다. 이처럼 하나를 물어보면 둘을 되묻는 그의 깊이와 넓이, 호전적인 탐구력은 그가 걸어온 배우로서의 궤적을 설명하고 앞으로 걸어갈 향로를 예측하게 한다.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해성을 연기하며 올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의 연기론, 영화론은 6천편의 영화 DVD를 소장하고 있으며, 아마 1만편이 넘는 영화를 봤을 것이고, 20년 넘게 연기를 공부하면서 세계 영화사를 꿰뚫은 그의 노력으로 쌓인 결과였다. 배우로서의 야심 역시 어마어마하다. 그의 시선 끝엔 톰 크루즈, 키아누 리브스, 버스터 키턴이 있으며 영화 역사상 아무도 하지 못한 미국 시장에서의 유일무이한 동양인 배우가 되고자 한다. 그 목표의 완벽한 첫 단추가
[커버] ‘유태오’는 누구인가 - <카로시> 촬영을 앞둔 유태오에게 묻다. 할리우드에서 당신이 이루려는 것은 무엇이냐고
-
-
올해의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이하 ACFM)은 산업 내 최신 현황에 맞춰 함께 변화를 점검하고 대응을 찾아나가는 콘퍼런스를 마련했다. 10월 7일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진행된 OTT 콘퍼런스는 각국 OTT 플랫폼의 고유한 비즈니스 전략을 돌아보고 미디어 소비 방식과 스토리텔링 작업이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짚어보았다. <전, 란> 신철 작가는 뉴 미디어 시대에 영화 작법과 접근방식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설명했다. "사람들은 출퇴근 길이나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영상을 소비한다. 이에 따라 영상 트렌드가 짧고 강렬해졌다. 나 또한 변화를 겪고 있다. 시나리오를 도발적인 사건으로 시작하려 한다.
관객에게 주인공을 소개하는 시간을 생략해버리는 거다. 그렇다면 관객은 캐릭터와 어떻게 가까워질까? 그 연결고리를 2막에 맡기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신철 작가는 이어 "관객이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의 불확정성을 위해" 최근 비선형 포맷의 시나리오
BIFF #6호 "짧게 많이 보고 있다"… 변화하는 OTT 소비 패턴, 어떻게 발맞출 것인가,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OTT 콘퍼런스
-
2024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이하 ACFM)에는 생소한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프로듀서 허브다. 10월5일부터 7일까지 벡스코 제2전시장 4F홀에서 열린 프로듀서 허브는 전 세계 영화 프로듀서들의 네트워킹 확장 기회를 마련하고 적극적인 국제공동제작 및 파이낸싱을 촉진하기 위한 신설된 행사다. 제작 완료된 콘텐츠 상품의 장터 역할을 넘어 양질의 신규 콘텐츠 생산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ACFM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올해 칸영화제 마켓 프로듀서 네트워크의 공식 협력사로 참여하는 등 한국 프로듀서의 해외 진출 지원 사업인 ‘KO-PICK 쇼케이스’를 적극 추진하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했다. 프로듀서 허브는 매년 ‘올해의 국가’를 선정해 해당 국가의 영상산업을 집중 조명할 예정이다. 한국이 선정된 올해는 국내 프로듀서들이 호스트 역할을 맡아 홍콩, 이탈리아, 대만, 인도네시아, 일본 등 다양한 국가의 프로듀서들을 반갑게 맞이 했다.
일정 첫날
BIFF #6호 국제공동제작의 마중물을 꿈꾸다,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 프로듀서 허브
-
BIFF #6호 뉴 커런츠 상영작 영화별점
BIFF #6호 뉴 커런츠 상영작 영화별점
-
이만 야즈디 / 이란 / 2024년 / 87분 10.08 C3 12:00 / 10.09 L5 19:30
오토바이 곡예사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는 가장 아레프에게 죽음이란 늘 가까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나밖에 없는 딸 라나가 심장병을 앓으면서, 그와 그의 아내는 죽음의 문턱 앞에 선 딸을 살리기 위해 심장 기증자를 찾아 나선다. 뇌사 상태에 빠진 한 노인의 심장이 라나에게 적합하다는 소식을 듣고, 아레프와 아내는 노인의 가족들을 찾아가 심장을 기증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그러나 노인의 가족들은 유산 문제로 얽히고 설킨 상태. 설상가상으로 노인의 아들은 아레프에게 심장을 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한다.
아레프와 아내의 눈물과 호소는 허공을 떠돌 뿐이다. 나의 비극이 차가운 거래의 대상이 될 때, 무력감과 처절함은 극대화된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주변의 도움을 받아보지만 상대방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누군가의 죽음이 선고되어야만 나의 딸이 살 수
BIFF #6호 [프리뷰] 라나를 위하여 For Rana
-
올리버 시쿠엔/ 홍콩, 중국/ 2024년/ 112분 10.08 C3 19:30/ 10.10 L10 14:30
아무도 잠에서 깨지 않은 새벽 서둘러 유축을 하고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징의 하루는 시작된다. 징은 많은 것을 눈치본다. 베이커리에서 일하는 동안 육아를 도맡아준 시부모를 눈치보고, 배달 일로 심신이 지쳐 돌아오는 남편의 컨디션을 눈치보고, 화장실에서 급히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상황을 눈치보고, 시종일관 울기만 하는 아이를 눈치본다. 원래 살아가는 게 고역이라지만 고통의 수준이 징의 임계치를 넘어선지 오래다. 출산과 함께 너무 많은 것이 바뀌어 버린 징은 삶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나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는 다큐멘터리와 유사한 방식으로 징의 궤도를 멀리서 관찰한다. 마치 어딘가 존재하는 보편적인 생활을 목격하듯, 잔잔하고 중립적인 시선으로 육아의 어려움을 전달한다. 징이 직면한 문제를 일찍이 경험했던
BIFF #6호 [프리뷰] 현대 모성에 관한 몽타주 Montages of a Modern Motherhood
-
요한 흐리몬프러 / 벨기아, 프랑스, 네덜란드 / 2024년 / 151분 / 와이드 앵글 10.09 B2 19:30 / 10.10 C5 19:00
1960년 새롭게 독립한 아프리카의 16개국이 유엔에 가입하면서 세계 정치에는 커다란 격변이 발발한다. 중심에는 벨기에의 식민 지배를 받다 해방된 콩고가 있었다. 원자폭탄의 주원료인 우라늄의 세계 최대 공급처기도 했던 콩고는 냉전 시대에 뜨거운 감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콩고의 독립을 이끌고 초대 총리로 취임한 파트리스 루뭄바는 콩고 내 민족 통합을 주장하면서 미국에게 눈엣가시로 여겨진다. CIA는 루이 암스트롱과 니나 시몬 등 저명한 재즈 뮤지션을 모아 콩고 공연을 기획한다. 평화적으로 보이는 행사의 이면에는 파트리스 루뭄바 암살 사건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음모가 숨어 있다. <쿠데타의 사운드트랙> 속 흘러나오는 유려한 재즈 트랙들은 역사 속에 가려졌던 몇 발의 총성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린다. 방대한 아카이브 영상과 역사를
BIFF #6호 [프리뷰] 쿠데타의 사운드트랙 Soundtrack to a Coup d’ Etat
-
강미자 / 한국 / 2024년 / 67분 / 한국영화의 오늘: 비전 10.09 L3 20:30
남자와 여자는 지인의 재혼식 뒤풀이에서 처음 만났다. 모두가 죽은 듯쓰러진 술자리에서 남자는 취한 여자를 등에 업고 귀갓길을 걸었다. 제몸도 가누지 못하는 여자는 실의에 빠져 알코올 의존증에 걸린 영경이고 힘겹게 영경을 업고 밤거리를 지나는 남자는 류머티즘을 오래 앓은 수환이다. 쇠락한 육체를 지닌 두 남녀는 몇 번인지도 가늠하기 어려운 음주와 업힘의 시간을 보냈다. 오랜만에 두 번째 장편 영화로 돌아온 강미자 감독의 <봄밤>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말없이 서로를 보듬은 두 남녀의 사랑을 다룬다. 권여선 작가의 단편 「봄밤」을 영화화한 작품이지만 김수영의 시처럼 아릿한 운율감이 먼저 읽힌다. 수환과 영경이 등장하는 모든 순간은 느릿한 삶의 박동을 풀어낸 시어가 되고,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칠흑 같은 암막은 시간과 인과를 압축하는 행간이 된다. 짙게 깔린 어둠 위로 담담하게 생
BIFF #6호 [프리뷰] 봄밤 Spring N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