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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은 식탁에 가위를 올려두나요?” 인터뷰 후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세타 나쓰키 감독이 대뜸 질문을 건넸다. 지난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위국일기>가 초청돼 한국을 찾은 세타 나쓰키 감독은 공식 일정을 마친 후 서울에 남아 짧은 망중한을 즐기는 중이었다. 한국 여행이 간만이었던 세타 나쓰키 감독의 눈엔 고깃집이든 전집이든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가위로 숭덩숭덩 자르는 풍경이 무척 생경했나 보다. 장례식에서 만나자마자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식구가 된 <위국일기> 속 이모 마키오(아라가키 유이)와 조카 아사(하야세 이코이) 또한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가위를 처음 본 것처럼 서로를 낯설어한다. 한데 가위는 지레의 원리로 작동해 받침점에 물체를 가까이 둘수록 힘점에 힘을 덜 가하고도 쉽게 물체를 자르는 도구다. 무작정 동거를 택한 마키오와 아사 또한 세상살이에 힘을 덜 들일 수 있도록 서로를 가까이에 둔 채 가윗날처럼 교차하고 또 엇갈리며 어느새 각자의 상
[인터뷰] 청소년은 움직임의 미학을 구현하기 좋은 피사체, <위국일기> 세타 나쓰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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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이사장은 영화계의 거의 모든 필드를 거친 범영화인들의 오랜 선배다. <칠수와 만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등을 연출한 영화감독으로 시작해, 1996년부터 3년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화제의 기반을 다졌으며, 부산프로모션플랜(현 아시아프로젝트마켓)과 아시아필름마켓(현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을 발족시켰던 장본인이다. 이후 부산영상위원회 초대 운영위원장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역임했다. 지난해 영화제 내홍 이후 정상화를 위해 혁신을 선언한 영화제가 선택한 인물이다.
- 영화제 초창기 부위원장을 맡았던 곳으로 오랜만에 돌아온 셈이다. 개막을 앞두고 각오는.
실제 역할은 집행위원장에 가까웠다. 김동호 전 위원장은 스폰서와 정부쪽을 맡은 조직위원장이었고 영화제 운영이나 내부 방향은 내가 맡았다. 때문에 그동안 영화제가 어떻게 변해왔고 문제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디테일한 부분을
[인터뷰] 현실에 필요한 영화제를 만들어간다, 박광수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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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 첫 번째 미국 대선은 1992년이다. TV 뉴스에 민주당 후보군이 소개되었을 때 후반부에 나온 한 젊은 후보를 보고 “대통령처럼 생겼네”라고 중얼거렸다. 이 비과학적 예언은 적중했다. 4년 뒤 맞이한 미국 대선은 ‘인생 선거’였다. 공화당 밥 돌 후보의 작은 정부론과 감세안이 복지국가의 원칙을 거스른다고 판단했고 이는 내 정책 체계의 1층에 자리 잡았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줄곧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미국 민주당은 유럽의 좌파 정당에 비하면 보수적이지만 적어도 조세와 노동, 성평등과 소수자 권리를 ‘나중에’ 논하자며 뒷걸음질치는 정당은 아니다.
2020년 한국에는 자신이 진보라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혐오 정치의 세계화에 무딜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식견도 좁다. 트럼프의 모험이 북미 관계의 미래를 미리 보여준 측면은 있으나 거기서 끝이었다. 체계적이지 못한 이벤트식 접근 때문에 북미 대화가 중단되는 것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김수민의 클로징] 게임 체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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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등 7관왕에 올랐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우주와 양자역학을 가장 창의적으로 다룬 영화 중 하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설명을 아무리 들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이들에게 직관적으로 양자 확률을 설명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즉 “모든 것이 모든 곳에서 한꺼번에”라는 긴 제목을 굳이 고집했어야 하는 이유 역시 과학 이론과 연결된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양자경)에게는 삼중의 문제가 존재한다. 부모와 관계가 소원한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할아버지에게 동성 애인을 소개시키려고 하고 세금 체납으로 국세청을 방문해 세무조사를 받아야 하며 먼 길을 온 아버지에게 자신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는 그와 이혼할 결심을 하고 있다. 그런데 웨이먼드가 이혼 서류가 아닌 이상한 장치를 건넨다
[임수연의 이과감성] 양자역학과 다중우주론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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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수를 하고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거기엔 누군가의 얼굴이 있습니다. 와, 언제 이렇게 변했지? 낯선 저 얼굴을 회피하고 싶어질 때 고현정 선생님이 어디선가 말씀하신 게 떠오릅니다. 세수할 때 얼굴을 너무 자세히 보지 말라고요. 늘어나는 잔주름과 세월의 흔적에 시선을 빼앗기지 말고 나의 전반적인 인상이 어떠한지만 확인하라 하셨지요. 우리는 그녀에게 아름다움의 비결과 세안 방법을 알려달라고 질문하지만 사실 해줄 수 있는 대답이 딱히 있을까요. 분하지만 아름다움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인 걸요. 어리석은 질문들에 그녀가 해줄 수 있는 현명한 대답은 어쩜 이것뿐일지도 모릅니다.
전반적인 인상이라… 다시 거울 속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의 얼굴을 바라봅니다. ‘아, 뭔가 젊음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긴 한데, 그래도 이젠 꽤 사용한 것 같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날엔 이 얼굴에서 문득 노인의 얼굴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놀랍고도 심란하지만 묘한 쾌감이 있습니다. 끝이 안 날 것 같은
[김사월의 외로워 말아요 눈물을 닦아요] 당신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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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급에서 1등을 도맡을 만큼 똑똑했던 엠(빌킨 푸티퐁 아싸라타나쿨)의 현재는 다소 낙담스럽다. 그에게 남은 것은 중독적인 게임 방송과 가족들의 모진 눈총.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를 간병한 뒤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사촌 무이(투 톤타완 탄티베자쿨)를 보며 엠은 조금은 비겁한 목표를 세운다. 암 판정을 받은 할머니의 간병을 자청한 것. 할머니의 아침 장사를 돕거나 병원의 긴 대기줄을 함께 기다리고, 할머니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는 등 엠은 조모와 두터운 관계를 형성한다.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은 초반에 엉성한 코미디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이내 현대사회가 놓친 가족의 필요성과 근간을 짚는다. 사랑을 내세워 지나치게 교훈적인 도랑에 빠져버리는 여느 가족 중심적 작품의 실수를 기피하고자 캐릭터 설정과 서사 진행의 개연성을 촘촘하게 구성했다. <배드 지니어스 더 시리즈>를 연출한 팟 부니티팻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리뷰] 그래서 사람들은 못 이긴 척, 새해마다 가족의 안녕을 기도한다, <할머니가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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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앤(줄리엣 가리에피)은 인공지능 기술로 무장한 자신의 아파트 대신 거리에서 노숙하며 아침을 맞는다. 아침마다 켈리앤이 향하는 곳은 몬트리올의 재판정이다. 이곳에선 10대 소녀 3명을 살해한 후 자신의 범행을 생중계한 혐의로 기소된 뤼도비크 슈발리에(맥스웰 매케이브 로코스)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진행 중이다. 켈리앤은 법정의 방청석에서 뤼도비크를 옹호하는 클레멘타인(로리 바빈)과 친구가 되고, 그와 함께 알 수 없는 이유로 재판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레드 룸스>는 스너프 필름을 소재로 하지만 자극을 전시하는 대신 범행을 마주하는 제3자의 시선을 담는 데 집중한다. 영화의 관점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재판의 개정 시퀀스다. 판사, 검사, 변호사가 각각 모두 발언을 하는 롱테이크에서 카메라는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과 켈리앤을 시점의 주체로 세운다. 범죄 스릴러가 무엇을 응시하고 무엇을 담아야 할지를 고민한 흔적이 인상적이다.
[리뷰] 소재에 몰두해도 함몰되진 않은 드문 관점, <레드 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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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일본의 여름, <스타워즈>를 보고 감격한 고등학생 히로시(우에무라 유)는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 요시오(후쿠자와 노아), 사사키(구와야마 류타)와 함께 SF영화를 찍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제목은 <타임 리버스>로 우주에서 찾아온 인공지능이 인류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이야기다. 히로시는 짝사랑하는 같은 반의 나츠미(다카이시 아카리)에게 주인공 역을 부탁한다.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영화를 상영해야 할 학교 문화제 날은 점차 가까워진다. <울트라맨> 시리즈 등을 연출하며 일본 SF의 거장 감독으로 불리는 고나카 가즈야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감독 본인이 실제로 청소년 시절에 8mm 필름으로 찍었던 일화를 소재로 했다. 노년의 감독이 필름 시대의 영화 만들기를 회고한다는 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가, 청춘들의 영화 만들기 프로젝트란 점에선 <썸머 필름을 타고!> 등의 영화가 떠오른다.
[리뷰] 필름 시대의 청춘을 그리워하는 노장의 회고, <싱글 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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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밤하늘을 가르는 총성에 형제가 잠에서 깬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집을 나선 페드로(에지킬 로드리게스)와 지미(데미안 살로몬)는 숲속에서 심하게 훼손된 사체를 발견한다. 실마리를 쫓던 이들은 이웃집 아주머니가 악령이 들어 온몸이 썩어들어가는 아들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경찰과 교회 공동체는 자기들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건을 방치한다. 의지할 데 하나 없는 주민들은 직접 죽어가는 남자의 숨통을 끊어주려 한다. 하지만 그의 몸속에 깃든 악령은 마을 사람 모두의 육체를 빼앗겠다는 섬뜩한 저주를 남긴 채 행방불명된다.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전형적인 오컬트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만 표현의 수위만큼은 기존 어떤 작품들보다 파격적이다. 하지만 피비린내를 잔뜩 머금은 선정적인 장면들이 진정으로 의미 있게 사용되었는지는 의문이다.
[리뷰] 금기란 금기를 모조리 박살내겠다는 집요함,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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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토츠코에게 세상은 몹시 알록달록하다. 모든 사람이 저마다의 성격, 분위기에 따라 각기 다른 색깔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색을 발견한 토츠코는 그 주인이 같은 반 키미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키미가 학교를 그만뒀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토츠코는 키미를 찾아나선다. 중고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며 홀로 기타를 연습하는 키미를 발견한 토츠코는 피아노 연주라는 유사한 관심사를 빌미 삼아 말을 건넨다. 그 순간 키미와 토츠코에게 불쑥 다가온 한 남자애의 질문이 이들에게 파동을 선사한다. “혹시 두분 다 밴드를 하고 있나요?”
<너의 색>은 각각의 제약을 지닌 세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재구성할 기회를 선물한다. 학교를 그만뒀지만 할머니에게 진실을 전하지 않은 키미, 부모가 바라는 장래희망과 자신의 꿈이 일치하지 않는 루이, 시각적 환상으로 일상적인 어려움을 겪는 토츠코까지. 영화는 아이들에게 거국적인 문제 해결을
[리뷰] 영롱하고 찬란하기도 하지, 행복을 아는 순진무구한 미소들, <너의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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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세상의 전부라 생각하는 연인 바넬(카디 마네)과 아다마(마마두 디알로). 세네갈 북부의 한 외진 마을에서 사는 둘은 오래전부터 서로 사랑했지만 이제야 부부가 되었다. 이제 막 피어오른 둘의 사랑 앞에는 난관이 가득하다. 우선 둘이 사는 마을은 사생활이 전혀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오랫동안 이어진 사막화와 가뭄으로 인해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된 노동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사랑을 나눌 여유가 전혀 생기지 않는 환경이다. 이 둘의 복잡한 사정도 문제다. 아다마는 촌장이었던 형 예로가 죽자 촌장이 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바넬도 마을의 가부장적인 규율과 전통에 속박당해 있다. 그녀는 촌장의 핏줄을 이을 아기를 임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외면당한다. 전통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예로와 결혼한 과거 또한 그녀를 옥죈다. 둘은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오래전부터 사랑의 도피를 준비했다. 아다마는 촌장이 되기를 거부하며 모래 폭풍에 파묻힌 마을 외곽의 집으로 이사하려고 새벽마다 모래를 파
[리뷰] 마술적 리얼리즘부터 신화와 멜로까지 온갖 장르를 녹이는 용광로같은 야심, <바넬과 아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