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심너울은 내가 직접 만나본 모든 사람들 중 가장 천재적이라 생각하는 인물이다. 이는 절대 과장이 아니다. 혹시 그의 단편 <정적>을 읽어보셨는지? 놀라지 마시라. 그가 처음으로 써본 소설이라고 한다. 데뷔작 <정적>을 포함해 <감정을 감정하기> <한 터럭만이라도>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같은, 우리가 익히 아는 걸작 중·단편들을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반년 만에 모두 써냈다. 이렇게 네편만 썼냐면 그것도 아니다. 같은 기간 동안 그는 환상문학웹진 거울 등의 지면을 통해 한달에 거의 세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일년 동안 스무편 가까운 작품을 쏟아내며 ‘2019 SF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매일 인터넷을 들락거리며 그의 신작 소설이 업로드되기만을 즐겁게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그는 소설을 정말 빨리 쓴다. 빨리 쓰는데 잘 쓴다. 내가 한메타자 긴 글 연습 두드리는 것보다 빠른 속도로 워드프로세서에 소설을 써내려가는 그의 현란한 타이핑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나름 베네치아 게임 7단계까진 클리어하는 사람인데!
손이 빠르다는 것은 단지 마감을 빨리 처리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거의 실시간으로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는 작가라는 의미다. 우리의 오늘을 알고 싶다면 심너울의 소설을 읽으라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는 사람들이 주목하는 현시대의 관심사들을 즉시 캐치해 묘사하고, 비틀어 단면을 드러내고,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고약하게 비꼰다. 강속구이자 변화구인 그의 소설들을 읽으며 과연 손목 건강은 괜찮은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그가 이번엔 색다른 무기를 꺼내들었다. 스피드를 버리고 2년 가까이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장편. 그것도 정통 사이버펑크. 블랙 유머도 비꼬기도 없이 정직하게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느리고 묵직한 직구.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는 세상이 적당히 망해버린 미래 서울을 배경으로 거대 기업 코란트에 맞서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신세계의 신인 초인공지능과 그 힘을 쟁취하기 위한 여러 인물간의 갈등은 고전적이다 못해 때로는 신화적이기까지 하다. 동시에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고.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핵전쟁으로 지상이 폐허가 된 미래, 신(新) 서울의 지하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하나는 잉태인, 현재의 우리처럼 인간의 몸에서 태어난 소수의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다른 부류는 배양인. 인공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노예 인간이다. 신 서울의 다수를 차지하는 이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생겼고,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로 ‘생명세’라는 이름의 막대한 빚을 지고 살아간다.
선택받은 소수의 잉태인과 절대다수의 배양인. 지하 1층부터 6층까지 층으로 계급이 구분되는 지하 세계. 겹겹이 쌓인 계층 피라미드의 정점에 서지아가 있다. 서울을 지배하는 거대 기업 코란트의 실질적 지배자. 모두를 자신의 발아래 두어야만 속이 풀리는, 공감 능력이 삭제된 끝없는 탐욕의 화신.
이에 맞서는 우리의 주인공 신록은 배양인 중에서도 가장 낮은 부류에 속하는 인물이다. 세상에 등록조차 되지 못한 미인가 배양인. 지하 세계를 전전하며 마약을 팔아 먹고사는 신록에게 어느 날 신비로운 여성 연여인이 다가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진다. 우주 너머, 목성 궤도를 돌고 있는 거대 우주선 별누리에 잠입해 심부름을 하나 해준다면 생명세의 열배에 달하는 거액을 주겠다고. 신록은 다리가 불편한 연인을 위해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우주선 별누리에 위장 취업해 그곳에서 서지아와 인공지능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쳐나가기 시작한다.
줄거리 소개는 여기까지. 이후의 내용을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궁금하면 한번 구입해 읽어보시길.
작가 심너울은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다. 현실의 단면을 노골적일 정도로 적나라하게 모사하는 일 말이다. 이야기의 주 무대인 우주선 별누리는 일종의 방주다. 인류가 언젠가 태양계를 벗어나 우주로 뻗어나가기 위한, 외부의 도움 없이도 자체적으로 생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거대한 폐쇄공간. 동시에 그곳은 작게 축소된 하나의 사회이기도 하다. 별누리의 선원들은 어떤 종교의 신봉자다. 그들 신앙의 이름은 서지아이며, 우주선 별누리는 서지아라는 신을 정점으로 세워진 거대한 권력의 신전이다.
책을 읽다보면 금세 눈치채겠지만, 서지아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입체성을 배제한 특이한 악역이다. 그에게는 대단한 사연도 없고, 특별히 사악해진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어떤 사악한 시스템을 상징적으로 인격화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결코 바뀌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과, 그것에 대항하는 또 다른 믿음에 대한 우화다.
나는 가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창밖에 보이는 저 많은 건물들에 모두 주인이 있다는 것. 그 건물마다 누군가 월세를 내고 들어가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 저 수많은 집과 빌딩에 다 주인이 있다고? 대체 누가? 이런 생각을 하면 기괴한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지? 우리는 저마다 누군가에게 월세와 이자라는 이름의 생명세를 뜯기고 있다. 우리의 노동을 생명세로 빨아들이는 일을 정당화하는 어떤 시스템이 있다. 이 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너무나 견고해서 지금까지 어떤 노력으로도 무너진 적이 없다.
자본주의? 아니다. 그보다 본질적인 믿음이다. <우리가 오르지 못할 방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건 ‘행복은 본질적으로 희소하며 아주 일부의 사람만이 획득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한명의 행복을 위해 백명의 불행이 필요하다는 생각. 세상이 차별의 피라미드이며 사람을 층계 삼아 짓밟고 올라서는 일이 당연하다는 착각.
이런 믿음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부와 권력을 나누어본들 사람들은 자기 손에 쥐여진 작은 행복을 기어이 컨베이어 벨트 같은 피라미드 구조에 태워 그 꼭대기로 올려보낼 뿐이니까. 빈곤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재난지원금이 결국 복잡한 단계를 거쳐 집값을 올리고 주식 값을 높인 것처럼 말이다.
선거철이 다가와서인지, 요즘 부쩍 이런 믿음을 설파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자기 발아래에 밟을 사람을 채워넣으면 자기가 더 높이 올라갈 수 있다고 착각하는 부류들. 하지만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그런다고 당신이 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올라갈 수 없다는 거. 서지아가 방주의 꼭대기에 있었던 이유는 그가 노력해서도, 재능이 출중해서도 아닌 서윤안 회장의 딸이기 때문이라는걸.
이제 그만 착각에서 벗어나시길. 당신은 그냥, 누군가를 밟고 싶다는 후진 욕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핑계를 대고 있는 것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