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 앨범을 내고 공연을 하고 있다. 음악 감상의 수단이 디지털로 전환된 시기에 CD로 앨범을 발매하고,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가 4단계인 상황에서 공연을 하는 것이 이익이 되는 영리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한번 더 확인하는 중이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있을까. 앨범 제목처럼 말 그대로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하고 있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음반 녹음이 끝나고 후반작업을 조율하면서 공연을 준비하기 시작할 때쯤 해서는 꽤나 지치고 우울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어떻게든 뭐라도 하자’라는 마음이 아니었다면 그 시기를 지나오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뭔가 더이상 할 수 없어서, 혹은 해도 의미 없을 것 같아서 ‘이제 그만 접을까’ 생각하고 내려놓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하지만 막상 음반을 발표하고 공연을 하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에 바람이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새 음반을 기다려주고 반갑게 맞아주는 팬들의 마음이 그랬고(직접 만나서 무엇인가 할 기회는 없었지만 온라인에서의 반응과 격려의 말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작업을 같이 하면서 더 멋진 작품을 만들어준 동료 작가분들과의 만남도 기뻤다. 앨범에 들어갈 일러스트와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외부 작가분들과 협업하게 되었는데, 이전에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제작에 필요한 회의를 온라인으로만 진행할 수밖에 없었는데도 오고 가는 생각과 이야기가 큰 자극이 되었다. 새로운 작업을 조금 무리해서라도 진행하지 않았다면 만들어지지 않았을 귀중한 시간들이었다.
연초만 해도 여름장기공연 ‘이른열대야’를 올해도 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지 못했다. 지난해 힘겹게 치러냈던 것에 비해 보아도 코로나19 확산은 더욱 심각해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올해는 처음으로 온라인 공연을 함께 준비했다. 정말 상황이 나빠지더라도 어떻게든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불길한 예감은 왜 늘 맞는 것인지, 공연 직전에 확진자 수가 급격히 늘면서 위기가 왔다. 다행히 전문 공연장을 대관한 덕에 공연은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었다(야외, 컨벤션홀 등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은 모두 금지되었다). 비록 객석을 절반으로 제한했지만 공연장에서 만나는 관객의 모습은 너무나 반가웠다. 이어지는 공연에 몸은 점점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지는데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멋진 동료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서 많은 자극을 받고 가까워진 것도 너무 기쁜 일이다. 온라인 공연으로 진행되는 것을 생각해서 동료 뮤지션들과 매주 새로운 무대를 만들 계획을 덜컥 세워둔 탓에 준비할 것이 너무 많았다. 새로운 구성과 목소리로 서로의 곡을 소화해야 했고, 그 곡들을 하나의 공연으로 구성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매주 새로운 과제를 받아든 학생처럼 지난 두달을 보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동료들과 함께 서로의 음악을 연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정말로 소중했다. 공연 제목이었던 ‘이른 열대야 the 페스티벌’은 약간은 농담으로 지은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 멋진 축제로 탄생했다.
이게 다 어떻게든 뭐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혼자 아니면 늘 보는 몇명이서 작업하면서 정기적이지 않은 결과물을 내야 하는, 그리고 그 결과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를 자꾸 돌아보고 고민하게 된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보다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가 커지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신이 작게만 느껴진다. 자신의 작업에 확신감을 갖지 못하는 마음에 조급함이 더해지고 그래서 아무것도 못한 채 애만 태우는 시간을 보내는 일상이 늘어간다. 많은 창작자들이 비슷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결론은 대체로 비슷한 것 같다. 루틴하고 안정적인 생활 패턴의 중요성, 건강관리와 운동 그리고 어떻게든 작업을 하는 것. 알고는 있지만 지키기는 어려운 것들. 혼자서 골몰하다 보면 챙기기 쉽지 않은 것들이다. 게다가 시국이 이러하면 이걸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어, 하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정신없이 달리기만 한 지금이 더욱 감사한 시기라고 생각된다.
한달 넘는 공연 기간 사이에 하계 올림픽이 개막하고 끝났다. 준비과정부터 개최 여부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보여준 스포츠 정신과 노력, 그리고 성숙한 마음가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것 같다. 특히 메달을 따고 아니고를 떠나서 경기 자체에 집중하고, 결과를 차분하고 굳건하게 받아들이는 선수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준다. 결과에 승복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니까. 도전해볼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한다는 말, 막상 나의 생활을 바라보며 곱씹으면 조금은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 뭐라도 해야 하는데(실제로는 하지 못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하지만 머리가 차가워지고 나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은 선명해지기도 한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고 하면서 매일매일 해야 할 훈련을 꾸준히 해나가는 김연아 선수의 다큐멘터리를 보며 느꼈던 것처럼, 별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몰입하는 순간을 만들어내고 싶다. 비록 그 어느 때보다 각박한 순간들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경험도 더 나누고 싶다.
여름이 지나간다. 최선을 다한 모두가 큰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응원하고 힘을 내는 가을이 되기를 바란다.
<어떻게든 뭐라도> _브로콜리너마저
어떻게든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안간힘을 쓰고 애를 써 봤지만
어쩔 수가 없어서 시간만 흐르고
결국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숨이 막힐 것 같이 힘들었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발버둥이라도 쳐봐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생각이었죠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시간들을
혼자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동안
다들 편안히 잘 지냈는지
애쓰지 말고 편해지렴
수고했어 긴 시간 동안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 너는
이젠 어떡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