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무래도 글을 더 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담당을 맡고 있는 김성훈 기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새 앨범 작업과 여름 공연 준비를 동시에 하면서 매번 능숙지 못한 글을 쓰는 일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는 자신과 음악을 하는 자신은 아주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일종의 변신을 해야 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스위치가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는다. 오래되어서 작동이 되다 말다 하는 기계에 시동을 거는 것처럼 컴퓨터를 켜놓은 채로 한숨을 쉬면서 밤과 낮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새로운 모드가 켜지기라도 하면 다행인데 문제는 글 쓰는 모드에 들어선 다음에 있다. 도무지 자신감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잘 알고 있다. 나는 나의 글에 자신이 없고, 지면은 언제나 과분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창작 능력이 아주 제한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것으로 지금껏 밥벌이를 해온 것이 용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겁이 난다. 내가 가진 밀가루 반죽은 한정되어 있고, 어느 순간을 넘어서 넓게 펴게 되면 점점 얇아지고, 속이 비쳐 보이다가 결국에는 찢어지고 말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찢어지고 나면 속이 새어버리니까, 내 속에 든 것들을 들키게 되니까 조심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넓고 얇게 밀어야 해서 속이 비쳐서 속내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모습을 갖춰야 할 텐데 무리하다가 실패하게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들로 아찔할 지경이다. 만두의 기원이 사람의 형상을 재현하려고 빚기 시작한 것이라던데, 속이 다 흘러내리는 모습으로 어떻게 강의 귀신을 속일 것인가. 세상에 뭔가를 내놓으면 그것이 언제까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여기에 대처하기 위한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전략은 ‘빼기’다. 조금이라도 어색한 표현들을 다시 곱씹어보거나 다른 입장에서 들었을 때 어떻게 들릴지 미리 생각해보는 것이다. 함량 미달의 단어를 더 채워넣느니 차라리 같은 말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노래한다면 가사의 밀도를 높일 수 있다. 노래가 일종의 기원이나 주문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점에서는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음식에서 손님의 입에 들어가는 거슬리는 것을 모두 제거해서 음식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요리사나 흠이 있는 도자기를 모두 부숴버리는 도공의 심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빼기’의 기술을 익혀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일을 익혀가는 과정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완성된 노래를 보며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다 생각하는 기준이 생겼을 때, 전문적으로 노래 만드는 사람으로서 어느 정도 익숙해졌음을 느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는 그런 전략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긴 글을 쓰고 정기적으로 기고한다는 일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노래는 완성이 되어야 밖으로 불리는 것이지 시간에 맞춰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물론 현재,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음악 제작 환경은 그보다 조금 더 꾸준한 제작물 발표를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글의 양도 문제가 되었다. 노래 한곡의 가사야 몇줄이나 될까 하는 정도지만 산문을 기고할 때는 못해도 수천자를 적어야 하는데 ‘빼기’를 할 여지는 어디 있으며 그렇게 늘리고 늘려 쓴 글 가운데 구멍난 곳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매번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3분짜리 곡을 3분 만에 녹음해서 만드는 심정으로 글을 쓰고 있으니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한때 ‘산문은 제가 좀 쓰기 어려워서요’ 하고 기고 요청을 거절한 시기가 있었다. 가사에 공을 들여 노래를 만드는 모습을 좋게 보고 해준 감사한 제안들인데, 그때는 정말로 이런 부담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꾸준하고도 다정한 제안을 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글쓰기가 어렵고 미숙해도 한번 도전해보자는 심산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글 쓰는 솜씨가 크게 좋아지지는 않았지만 마감과 마감이 이어지는 매 순간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왜 나는 글을 이렇게 못 쓰는가? 내가 쓴 글들은 대부분 요점만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길게 써보지만 사실 처음 생각을 정리하면서 한줄만 썼을 때 가장 좋아 보인다. 이것은 한 문장에 모든 것을 담으려는 노래 가사를 주로 써온 나의 경험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겠다. 다양한 직간접적인 경험을 잘 녹여내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뭔가 더 써보려고 하다가 비루한 속을 들키지 않게 조심하는 심정이 반영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한줄 한줄 컴퓨터 화면에 글이 늘어날수록 글의 수준은 더 얄팍해지는 기분이 든다. 아이러니하게도 잘 쓰고자 하는 마음이 클수록 내 글은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정말 글을 쓰기 힘들 때 수제비를 생각한다. 속에 든 것을 잘 감싸지 않아도, 아니 속에 든 것이 없더라도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의 반죽을 얇고 보들보들하게 밀어서 뚝뚝 떼어 넣어버리자고. 평생을 조금 덜 솔직한 노래를 만들었으니 글을 쓸 때는 그냥 솔직하게 써보자고. 물론 그게 잘 안되는 건 어쩔 수 없는데, 그래도 수제비를 만들겠다고 생각하고 쓰면 과정이든 결과든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렇게 마음먹고 돌아보니, 너무 솔직하게 쓴 것 아닌가 생각했던 노랫말도 꽤나 조심스럽게 보인다.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_브로콜리너마저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이죠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네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
내 속엔 나쁜 생각들이 많아요
다만 망설임을 알고 있을 뿐
입밖으로 나다니는 말들은
조금은 점잖아야 할 테니까요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우린 높은 확률로
서로 실망하게 될일만 남은 셈이죠
굳이 부끄러운 일기장을 펼쳐
솔직해질 필요는 없죠 굳이
단정하는 사람을 믿지 말아요
세상은 둘로 나눠지지 않아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게
당신을 미워하는 게 아닌 것처럼
좋은 사람을 믿나요
나쁜 사람을 사랑하고 있나요
그런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