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음악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하는 편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저런 일들을 다양하게 하고 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 말고도 방송에도 종종 출연하고, 가끔 글을 쓰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번은 심야 라디오방송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난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부터 격려와 위로, 공감이 필요한 사연들 그리고 가끔은 너무 힘든 상황들까지도. 밤늦은 시간이어서인지 모든 사연에 그 시간까지 잠들지 못하고 있는 고단함이 있지만, 웃으며 괜찮을 거예요 하고 말을 하려다가도 목 안에 소리가 걸리는 때가 있다.
힘든 사연은 뭐 어떻게라도 더 잘 이야기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방송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방송은 매끄럽게 이어져야 하기 때문이고, 원래 말이라는 것이 가진 한계가 있으니까…. 그들의 사연 너머의 섬세한 결을 다 알 길 없는 나로서는 더듬더듬 짚어갈 뿐인데, 그러다 혹시 아픈 곳을 물색없이 건드리게 되는 건 아닐까. 전파 너머의 상대는 맞다 아니다 대답해줄 수도 없는데. 혹시 방송 중이 아니라면 다를까 생각해도 별 도리가 없다.
그럴 때 음악의 힘을 빌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정말 딱 맞는 노래가 뒤에 이어진다면 이런 부담감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다. 말로 하기 어려운 위로를 대신하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게 환기시켜주기도 하니까. 하지만 보통은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다. 그 사연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 그렇다. 아 이런 상황에 맞는 노래가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생각하면서도 적당히 무난한 노래를 틀게 되는 안타까움. 노래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런 무난한 노래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하지만 자연인으로서는… 과연 그런 걸로 괜찮은 걸까?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초점을 조금 흐리게 해야 할 것만 같다. 너무 몰입하면 흐름을 잃는다. 걷는 것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며 걸을 수 있지만 걸음걸이에 너무 신경쓰다 보면 자신의 보폭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처럼, 어느 정도 무심해야 매끄러워지는 것은 직업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말을 할 때도 그렇지만 노래를 할 때도 그렇다. 위로하고 연대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나는 속에서부터 무너지는 기분이다.
진심으로 위로하고 공감하고 싶었던 연대의 현장에서 노래할 때 막상 노래 자체는 엉망으로 망쳐버린 적이 있다.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가사와 멜로디는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버린, 그리고 종종 멈추곤 했던 그때의 무대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말과 노래는 왜 이렇게 무딘 끝을 가지고 있는지, 무수한 작고 복잡한 외곽선을 가진 이야기들을 칠하고 감싸려다 보면 자꾸만 번져나갈 것 같은 생각에 움츠러든다.
하지만 정신 차려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무것도 그려낼 수 없다. 오은영 선생님 말씀처럼 “다 울었으면 이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어쩌면 진심과 기술을 반쯤 잘 섞어야 하는 이 업종의 고유의 태도일지도 모른다. 물과 기름도 마요네즈처럼 섞이기도 하니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업력이 많이 부족한가보다. 잠시 흔들어 섞어놓아도 다시 분리되는 이것들을 최소한 ‘섞인 것처럼 보이게’ 오늘도 계속해서 흔들 수밖에 없다.
주말에 대구에 간다. 공군 이 중사 추모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연주할 곡을 정하고 연습을 해야 하는데, 셋이 모여 한참을 고민만 하고 있었다. 선곡하기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노래들은 그의 고통스러웠을 마음이 자꾸만 떠올라 제대로 부르기 힘들었다. 어떤 노래들은 남아 있는 이들에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아 이건 안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연습하는 도중에 몇번이나 곡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주최측에서 미리 부탁한 곡이 없었다면 끝내 결정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생전에 그가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를 많이 좋아했다는데, 우리는 어쩌면 좀더 일찍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만나게 된다는 사실이 비통하고 안타깝다. 하지만 비록 위로가 실패로 끝난다고 하더라도, 아니 할 수는 없다. 다들 꾹꾹 참으면서 하고 있는 것이니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_브로콜리너마저
그런 날이 있어 그런 밤이 있어
말하지 아마도 말하지 않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넌 말이 없었지만
그런 말이 있어 그런 마음이 있어
말하지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너를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
정작 힘겨운 날에 우린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깊은 어둠에 빠져 있어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