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스페셜 : 올해의 프로그래머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 첫 선을 보이는 섹션이다. 올해 초청된 프로그래머는 <신기전>(2008) <전국노래자랑>(2012) <오피스>(2014) <아이>(2021) 등에 출연한 배우이자 <광태의 기초>(2009) <날강도>(2010)를 연출한 감독이기도 한 류현경이다.
프로그래머 류현경이 전주를 찾은 관객들과 함께 보기 위해 선정한 영화는 장편 4편과 단편 4편 합쳐 총 8편이다. <아이>(감독 김현탁, 2021) <빛과 철>(감독 배종대, 2020) <우리들>(감독 윤가은, 2016) <8월의 크리스마스>(감독 허진호, 1998 이하 장편) <동아>(감독 권예지, 2018) <이사>(감독 김래원, 2014) <환불>(감독 송예진, 2018) <날강도>(감독 류현경, 2010, 이하 단편)이 그것들이다. 류현경은 “'J 스페셜 : 올해의 프로그래머’의 첫 프로그래머로서 어깨가 무겁다”며 “내가 고른 작품들을 관객들도 즐겨 주었으면 좋겠고, 이 프로그램이 앞으로 전주에서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소감을 말했다.
-프로그래머는 처음 아닌가.
=지난 2007년 이준동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님이 제작한 영화 <물 좀 주소>(감독 홍현기)에 출연한 인연이 있다. 그 영화가 그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고, 이후 출연했던 영화 <아티스트 : 다시 태어나다>도 전주에서 처음 공개되는 등 전주와 인연이 깊다. 영화제로부터 올해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으면서 참여하게 됐다.
-직접 영화를 골라 관객들과 함께 보고 싶은 마음이 프로그래머를 맡는 데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 같다.
=맞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전주를 찾는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뭐가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이 쉽지 않으면서도 즐거웠다. 처음에는 영화제가 출연작 2편과 내가 고른 4편을 상영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는데 고르다 보니 장편과 단편, 출연작과 관객으로서 좋아하는 영화 등 다양하게 선정했다.
-장편 4편과 단편 4편을 합쳐 총 8편을 선정했는데 선정한 기준이 뭔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선정해놓고 보니 8편 모두 인물이 중심이 되어 끌고 가는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 이야기들로, 그만큼 배우의 역할과 비중이 중요한 작품들이다. 정말 신기한 건 8편 모두 첫 테이크가 인물로 시작된다는 거다. 그걸 확인하니 혼자서 “오!” 하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웃음)
-일단 눈에 들어오는 영화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 시절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과 출연까지 한 단편 <날강도>인데.
=<날강도>는 11년 만의 극장 상영이다. <이사> <날강도> <물 좀 주소> 모두 20대 때 출연했던 영화들인데 그중에서 <날강도>는 그때 그 시절에 남길 수밖에 없는 작품이더라. 20대 때 느꼈던 감정이나 정서들은 그때만 담아낼 수 있는 거니까. 20대 때 내 모습이 담긴 영화를 트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영화 속 젊음이 갑자기 사라졌어. (웃음)
-<물 좀 주소>는 이번에 왜 고르지 않았나.
=골랐는데 DCP가 없어서 상영할 수 없다더라. 최근 출연작 <아이>가 개봉한 뒤 <물 좀 주소>를 다시 봤는데 <물 좀 주소>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스물두 살 미혼모를 연기하지 않았나. <아이>에서 맡았던 6개월 된 아들을 혼자서 키우는 워킹맘 영채하고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흥미로웠다. 20대와 30대 때 각각 연기한 미혼모를 그려낸 <물 좀 주소>와 <아이>를 나란히 상영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필름 상영이 어려워 성사되지 못했다.
-<동아>와 <환불> 두 단편영화는 2018년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단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 때 인상적으로 봤던 영화인가.
=맞다. 그때 심사를 했던 김대환, 테드 펜트 감독과 함께 인상적으로 보고 수상작으로 꼽았던 작품들이다. 그만큼 좋아하는 영화라 올해 전주에서 다시 보고 싶었다.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는 스크린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라 반갑다.
=고등학교 때 극장에서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과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은 작품이다. 이후에도 몇 번 보면서 죽음을 너무 부정적이거나 슬픈 것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고 느꼈다. 젊은 관객들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다면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다행스러운 건 이 영화는 재개봉을 한 적 있어 DCP가 있었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주인공이지만 우리 세대들에게도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인물들의 리얼한 감정과 표정이 이야기와 잘 맞물리는 작품이다. <빛과 철>은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장기 상영할 때 봤었는데 극장의 공기가 스크린에 집중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감독님과 얘기 나누고 싶은 것도, 궁금한 것도 많은 작품이었다.
-더 틀고 싶은 영화가 있었나.
=몇 편 있었다. <내 마음의 풍금>(감독 이영재, 1999)도 그중 하나였다. 요즘 넷플릭스에 옛날 한국 영화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지 않나. 그거 다시 보는 재미가 있더라.
-선정 작품 중에서 <아이> <우리들> <단편묶음 ; 이사, 동아, 환불, 날강도> <8월의 크리스마스> <빛과 철> 등 네 편의 장편과 네 편의 단편은 관객과의 대화도 진행한다고.
=전주에 내려오기 전부터 DVD나 블루레이로 출시된 영화들은 감독 코멘터리나 메이킹 영상을 보며 관객과의 대화 때 감독님들께 드릴 질문들을 준비했다. 관객과의 대화도 어떤 방향으로 진행할지, 어떤 질문들을 드릴지 준비하고 있는데 정말 어렵다. (웃음)
-개인적인 질문도 드리자면 <아이> 개봉이 끝난 뒤 TBS 라디오 <류현경의 오늘도 읽음>을 진행하고 있다. 책을 소개하고 소설가나 시인들과 책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인데.
=전주에서 상영할 영화를 골랐듯이 이 프로그램 역시 소개할 책을 방송하기 전에 무조건 다 읽고, 책을 쓴 작가를 모셔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방송이다. 하모니스트가 책에 어울리는 곡을 연주하는 것도 듣고. 프로그램의 취지가 너무 좋아서 진행하기로 했고, 현재 8번의 녹화를 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이상적인 프로그램이라 오래 방송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