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반전이다. 1980년대의 침체를 <플레이어>(1992)로 보기 좋게 역전시켰던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장 르누아르의 시선으로 추리한 앙상블 미스터리 <고스포드 파크>로 근작 <진저브레드 맨>과 <닥터 T>가 남긴 미진한 뒷맛을 후련하게 일소했다. <고스포드 파크>에서도 인간 군상들의 쇼는 알트먼 영화에서 늘 그렇듯이 난장판으로 끝나고, 그 아수라장을 빚어나가는 솜씨는 경이롭다.
유사시 연출을 대행할 감독을 두고 메가폰을 잡는 77살의 나이에도 인간 일반과 주류 할리우드를 향한 독설을 누그러뜨릴 줄 모르는 로버트 알트먼 감독은 지금도 차기작을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다. 최근 본 할리우드영화를 묻는 질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라고 대답하는 이 오만하고 냉정한 노장의 스테이지 뒤쪽을 영화평론가 유운성이 들여다보았다. 편집자
1990년은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사망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때 구로자와 아키라와 모리스 피알라는 각각 <꿈>(1990)과 <반 고흐>(1991)에서 이 불운했던 화가의 삶을 자신들의 영감의 원천으로 끌어들였다. 화려했던 70년대를 뒤로 하고 지지부진하게 80년대를 보내던 로버트 알트먼 또한 <빈센트>(Vincent & Theo, 1990)를 통해 조심스럽게 자신의 90년대를 열어보였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단지 반 고흐를 끌어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 속에 자신의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이는 오직 한 사람, 모리스 피알라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로버트 알트먼은 여전히 잊혀져가는 감독일 따름이었다.
<플레이어>(1992)와 <숏 컷>(1993)이 없었더라면 알트먼의 90년대는 얼마나 초라한 것이 되었을까? 특히 당시 우리나라의 영화광들에게, 즉 알트먼의 필모그래피 가운데 가장 시시껄렁한 영화로 간주될 만한 <야전병원 매쉬>(MASH, 1970)나 기이한 심리극 <사랑의 열정>(Fool for Love, 1985) 정도만으로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던 (나와 같은) 이들에게, 이 두 영화는 진정 거장의 힘을 느끼게 하는 걸작으로 다가왔었다. 이후 알트먼은 완전히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다중적 서사구조를 채택한 <패션쇼>(Pre^t-a`-Porter, 1994)와 <캔사스 시티>(1996) 등의 영화가 차례로 우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를 찾아오는 알트먼의 영화는 장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1939)의 무대를 1932년의 영국으로 옮겨놓은 느슨한 미스터리극 <고스포드 파크>(Gosford Park, 2001)이다.
장르의 역사는 오직 부수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영화학자 노엘 캐롤은 <인유(引喩)의 미래: 70년대의 할리우드>라는 논문에서, 장르를 옮겨다니며 거기에 개인적인 비전을 새겨넣는 미국감독들에 대해 언급하며 로버트 알트먼의 영화가 그 구체적인 예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정말이지 현역 미국감독들 가운데 알트먼만큼이나 여러 장르를 옮겨다니며 작업하는 이도 드물 것이다. 그는 서부극(<멕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1976)), 필름 누아르(<기나긴 이별>(1973), <플레이어> <진저브레드맨>(1998)), 전쟁영화(<야전병원 매쉬>(1970)), 공상과학영화(<카운트다운>(1968), <퀸테트 살인게임>(Quintet, 1979)), 뮤지컬(<뽀빠이>(1980)), 그리고 갱스터(<우리 같은 도둑들>(1974), <캔자스 시티>) 영화들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오가며 작업한다. 다소간 장르영화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내시빌>(1975), <패션쇼> 같은 영화도 고전기 할리우드의 백스테이지 뮤지컬로부터 서사구조를 차용해오고 있다. 물론 캐롤은 알트먼이 오직 장르 내부에서만 작업하는 감독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비록 알트먼이 장르를 오가며 작업하는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그의 영화들을 장르영화로 간주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의 영화들은 장르의 쇄신이라기보다는 장르에 대한 비판적 재해석이라는 관점에서 검토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단적으로 알트먼의 영화에서 장르의 역사는 오직 부수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시팅 불의 역사수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시팅 불’(Sitting Bull)은 이 영화에 나오는 인디언 추장의 이름이다- 은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쇼는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니라, 미국 개척사를 재조명한 것입니다.” 이 말은 영화 전체의 구조와 맞물릴 때 매우 아이러닉한 정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주로 존 포드에 의해 발전, 완성된 서부극에 대한 재검토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듯한 이 영화에서, 전형적인 서부극의 영웅은 일개 쇼비즈니스의 광대이자 사기꾼의 모습으로 축소된다. 물론 이러한 뒤집기는 알트먼 최고의 걸작으로 꼽힐 만한 서부극 <멕케이브와 밀러 부인>에서 이미 시도되었다. 그가 장르의 틀 안에서 다룬 인물들은 언제나 매우 유약하고 무능력하거나(<기나긴 이별> <우리 같은 도둑들> <퀸테트 살인게임> <진저브레드맨>), 비열하다(<플레이어>).
그러나 알트먼이 자신의 영화에서 즐겨 사용하곤 하는, 모종의 이화효과를 노린 장치들은 로빈 우드와 같은 평론가들에 의해 저열하고 일개 ‘속물근성’의 발현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사실 이건 전혀 근거없는 비난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생각건대 알트먼의 영화가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은, 그가 장르의 역사에 대한 어떠한 향수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기인하는 듯싶다. 스스로가 오랜 기간 쌓아올렸던 성채, 혹은 그 자신을 매혹시켰던 그 무언가를 직접 무너뜨려야 한다는 데서 오는 아픔 따위는 알트먼의 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존 포드의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와 <멕케이브와 밀러 부인>의 거리는 바로 이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혹은 버트 랭카스터가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1963)와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에서 각각 맡은 역할이 그 표면적인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다른 느낌을 주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알트먼 특유의 ‘냉담함’을 확인할 수도 있다.
한마디로 알트먼의 몇몇 영화는 오직 ‘머리로만 만들어진’ 영화의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빌모스 지그몬트가 촬영을 맡은 <멕케이브와 밀러 부인>은 필터촬영이 불러일으키는 노스탤지어의 감각,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눈에 파묻혀 죽어가는 멕케이브(워런 비티)의 모습 등을 통해 알트먼의 장르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깊은 정서적 공명을 끌어내기도 한다.
쇼는 언제나 망쳐진다, 그럼에도 계속된다?
알트먼에게 있어서 세상은 쇼비즈니스가 펼쳐지는 무대이다. 즉 그에게 세상은 허위로 가득한 것이라는 말이다. 아마 <내시빌>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플레이어> 그리고 <패션 쇼> 등이 가장 직접적인 예가 될 것이다. 하지만 <숏 컷>이나 <캔자스 시티> 또한 이러한 알트먼의 인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런데 알트먼의 관심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쇼 자체가 아니라 무대 뒤(backstage)에서 벌어지는 추악하고 속물적인 인간들의 거래에 놓여 있다. 그런 점에서 팀 로빈스(<밥 로버츠>(1992))와 폴 토마스 앤더슨(<매그놀리아>(2000))의 세계관은 모두 알트먼에게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때 알트먼의 영화는 백스테이지 뮤지컬과 유사한 것이 된다. 쇼는 언제나 망쳐지고야 만다. 그럼에도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Show must go on). 왜?
<내쉬빌>의 무대만큼이나 온갖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추악하게 얽혀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해 온 가수들, 선거전을 펼치기 위해 몰려든 정치인들, 가수가 될 꿈을 안고 서성이는 가련한 인물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취재하기 위해 온 기자 등등. 결국 이 혼란한 무대 위에서 최종적으로 쇼 진행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정치인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계획은 뜻밖의 저격사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야 만다. 그럼에도 ‘여기는 내시빌’이기 때문에 계속 노래가 불리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수와 그의 뜻을 좇아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군중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우습다 못해 씁쓸하기까지 한 것이다. <패션 쇼>는 알트먼이 <내시빌>의 무대를 90년대에 다시 한번 불러들인 영화이다.
알트먼의 영화는 종종 다른 곳으로부터 영화의 중심적인 공간이 되는 곳으로 인물들이 이동해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직접적으로 쇼비즈니스가 다루어지는 영화들은 물론이고, <멕케이브와 밀러 부인> <세 여인>(1977) <퀸테트 살인게임> <뽀빠이> <사랑의 열정> <고스포드 파크> 등의 영화도 그러하다. 여기서 알트먼의 영화는 근본적으로 웨스턴과 유사한 것이 된다. 이동해온 인물들은 형성된 공동체 안에서 모종의 갈등에 휘말려들게 된다. 아니 차라리 이동해온 인물들 자신이 공동체에 내재해 있는 갈등을 비로소 불거져나오게끔 만든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이때 선과 악의 결투는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헤어나올 길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단 <뽀빠이>만은 예외이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어떠한 인물과의 감정이입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알트먼의 전략으로 인해 파국은 언제나 낯설고 기이하다. 이러한 전략이 반드시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숏 컷>은 그것이 대단한 정서적 효과를 끌어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알트먼 특유의 냉담함이 슬쩍 가셔진 <패션 쇼> <캔자스 시티>나 <고스포드 파크>와 같은 영화들은 분명 그의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영화에의 한없는 지향
만일 알트먼을 사로잡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여러 평자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유럽영화에 대한 한없는 지향이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걸작으로 평가되는 <내시빌>이나 <숏 컷>, 그리고 최근의 <고스포드 파크>가 보여주는 다중적 서사구조가 르누아르로부터 끌어온 것임은 분명하다. 여러 인물들의 대사의 중첩, 대화 도중 소음이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를 불쑥 끼워넣기- 알트먼의 사운드 활용방식은 특별히 주목받아왔다-, 그리고 다분히 즉흥적인 연기 또한 이른바 르누아르적인 것이라고 말해지는 것들이다. 캐롤은 알트먼의 작업이 “르누아르적 전통으로부터 영향받았다기보다는 그것을 모방하고 확장하는 쪽에 보다 더 가까운” 것이라고 말한다. 알트먼이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다고 여겨지는 것도 대체로 이 영역에서이다.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과 <캔자스 시티> 같은 영화도 어느 정도는 이와 같은 작업의 영역 내에 속해 있는 것이다.
알트먼이 자주 사용한 줌인·줌아웃과 단조로운 팬과 틸트는 영화의 성격에 따라 다소 다른 의미를 띤다. 장르에 대한 재해석의 성격이 강한 영화들에서 이는 고전영화의 미장센과 그 영웅주의를 조롱하기 위해 존재한다(이를테면 <멕케이브와 밀러 부인>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 <뽀빠이> 등). 반면 심리극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들에서 이는 황량함, 불확실성의 느낌 등을 강화하기 위해 존재하며(<세 여인> <퀸테트 살인게임> <사랑의 열정>), 다중서사구조의 영화들에서는 완벽한 혼란의 느낌을 전달하기도 한다. 어떤 식이든 간에 알트먼이 자신의 영화에서 활용하는 영화적 장치들은 그의 영화가 명백히 깊은 자의식을 지닌 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알트먼이 1977년에 발표한 <세 여인>은 영화가 담고 있는 그 불길함만큼이나 그 자신에게도 불길한 징후가 되었다. 알트먼이 여기서 끌어들이는 것은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페르소나>(1966)이다. 베르히만의 영향은 SF영화 <퀸테트 살인게임>에서도 감지되는데- 이 영화에는 베르히만 영화에 자주 등장한 비비 안데르손도 출연하고 있다-, 이 두편의 영화에서 알트먼은 그 스스로 완전히 혼란에 빠져든 것처럼 보인다(그런데 이러한 혼란스러움이 두 영화가 지닌 매력이기도 하다). 자유분방하고 거침없는 밀리(셜리 듀발)를 동경하다 그 자신 스스로 밀리가 되어버리는 <세 여인>의 핑키(시시 스페이섹)나, 목숨을 담보로 한 기괴한 게임에 빠져드는 <퀸테트 살인게임>의 폴 뉴먼은 거의 알트먼 자신의 반영처럼 보인다.
그의 추종자들조차 입다물게 만들어버릴 만한 실패작 <뽀빠이>로 80년대를 시작한 알트먼은 오랜 기간 자신의 명성을 회복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원작만화의 캐릭터들을 고스란히 끌어오고 슬랩스틱 코미디, 뮤지컬 그리고 무성영화의 스타일을 한데 버무려놓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오직 올리브 역을 맡은 셜리 듀발의 독창이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던가 하는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 그게 또 알트먼의 의도였을 테지만, 여하간 이 영화는 작가의 ‘냉담함’이 영화의 정서적 매력을 완전히 거세시켜버릴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희귀한 예이다. 달리 보면 <뽀빠이>는 알트먼의 ‘진정한’ 실험영화일 수도 있다.
주로 텔레비전에서 작업했던 80년대 후반, 알트먼은 장 뤽 고다르, 데릭 자만, 켄 러셀, 그리고 니콜라스 뢰그 등과 함께 옴니버스 영화 <아리아>(1987)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그는 18세기 귀족들의 오페라 극장에 눈요깃거리로 초청된 정신병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외 <사랑의 열정>- 이 영화에서 알트먼은 <기나긴 이별>에 이어 다시 한번 (빔 벤더스를 경유해서) 안토니오니를 불러들인다. 또한 알랭 레네의 영향도 조금쯤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위험한 사랑>(Beyond Therapy, 1987)이 이 시기의 필모그래피를 채운다.
설득력 있는 파국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러한 침체기를 거친 뒤에 나타난 <플레이어>와 <숏 컷>은 진정 놀라운 영화이다. 알트먼은 이후 자신의 영화들에서 단지 냉담한 시선만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거의 해부학적이라 할 만한 꼼꼼함으로 그 자신이 속한 시스템의 구조를 파헤치는 한편 그것에 통렬한 저주를 퍼붓는다. 파국은 보다 설득력 있는 것이 되었다(<숏 컷> <패션 쇼>). 이전의 영화들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계급의 문제가 부상하고 이는 유머 가득한 영화의 구조 속에서 오히려 더욱 신랄하게 다루어진다(<캔자스 시티> <닥터 T>(Dr. T & the Women, 2000), <고스포드 파크>).
물론 알트먼은 한동안 상승곡선을 그리던 그의 경력에 찬물을 끼얹은 <진저브레드맨> 같은 영화도 내놓았다. 이건 <기나긴 이별>에 비하면 지나치게 평범한 필름 누아르이다. 하지만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상류층 여성에게만 나타난다는 ‘헤스티어 콤플렉스’에 걸린 아내, 한껏 멋을 낸 옷차림으로 병원에 찾아와 수다를 떨어대는 부르주아 여성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놓인 혼란에 빠진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닥터 T>는 아주 성공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분명 흥미로운 부분들을 찾을 수 있는 영화이다.
이제 <고스포드 파크>를 통해 다시 한번 온전히 르누아르의 세계로 들어간 알트먼은 정말로 그 세계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가 비록 <숏 컷>만큼의 흥분을 가져다주진 못하겠지만, 아마도 <캔자스 시티> 이후 잠시 알트먼을 잊고 있었던 이들에게 그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유운성/ 영화평론가 [email protected]▶ <고스포드 파크>, 혹은 인간 난장의 오만한 지휘자 로버트 알트먼
▶ 로버트 알트먼의 동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