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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다이아몬드를 쏴라
2002-04-09

시사실/ 다이아몬드를 쏴라

■ Story

탈옥수 핀치(크리스천 슬레이터)는 마피아에 고용된 킬러 ‘크리티컬 짐’(팀 앨런)의 급작스런 습격을 받는다. 핀치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위조한 운전면허증이 공교롭게도 마피아의 제거 대상인 클레티스 타우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클레티스 타우트는 마피아 보스 아들이 창녀를 살해하는 장면을 우연히 카메라에 담았다가 조직원들에 쫓기던 몸. 그는 킬러에 의해 이미 살해됐으나 시체가 불에 타 숯덩이가 된 탓에 조직은 그의 죽음에 의심을 갖고 있었다. 죽음의 위기에 몰린 핀치는 짐이 영화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의 무용담을 들려주며 시간을 벌기로 한다. 각종 문서를 위조해 감옥에 들어갔던 핀치는 25년 전 엄청난 양의 다이아몬드를 훔쳐 자신만이 아는 곳에 숨겨둔 마이카(리처드 드레퓌스)와 함께 보석을 찾기 위해 탈옥을 감행했다는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놓기 시작한다.

■ Review 오래 전 마이카가 훔친 다이아몬드를 묻을 때만 해도 그곳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근사하게 뿌리를 뻗고 있는 초원이었다. 하지만 25년 뒤 핀치가 찾은 그곳에는 교도소가 들어서 있다. 감옥을 날렵하게 탈출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마당에 다시 죄수로 ‘위장취업’해야 하다니. 가혹한 핀치의 운명은 이쯤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는다. 교도소에 무사히 잠입한다 해도 그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높기만 하다. 우선 남의 눈에 띄지 않게 다이아몬드를 찾아내야 하며, 흠모하는 여인으로부터 사랑도 얻어내야 한다. 경찰로부터 탈옥수라는 신분을 들키지 말아야 할뿐더러 킬러들의 살해 위협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뺀질뺀질한 성격의 탈옥수 핀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복잡하게 꼬여 있는 이야기를 매끄럽게 술술 풀어가는 <다이아몬드를 쏴라>는 무엇보다 유쾌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내공 또한 느껴지는 영화다. “요즘 영화는 트릭만 부리려고 해서 싫어. 처음부터 싸우다가 펑 터뜨리면 끝이잖아. 역시 스토리가 있는 옛날 영화가 좋아”라는 킬러 ‘크리티컬 짐’의 대사에서 감독의 출사표를 읽게 하는 이 영화는, 그 옛날 쟁쟁한 고전들이 그랫듯이 관객과 정면승부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낸 스펙터클이나 잔머리를 굴려 짜내고 짜낸 얄팍한 아이디어 대신 꽤나 정밀하게 얽어놓은 이야기를 속도감 넘치게 밀어붙이는 감독의 전략은 성공적이다. 핀치가 자신의 걸림돌들을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하다) 원칙에 입각해 물리쳐나가는 모습은 통렬하고 경쾌하다.

이 영화의 고전에 대한 존경심은 스타일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두명의 마피아 조직원이 존 부어맨 감독의 <서바이벌 게임>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첫 장면부터 그 유명한 진 켈리의 탭댄스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까지, <다이아몬드…>는 흘러간 고전영화들을 수시로 인용한다. ‘영화광 킬러’ 크리티컬 짐은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이중배상>이나 <선셋 대로>에서 앨프리드 히치콕의 <레베카>,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 제임스 L. 브룩스의 <애정의 조건>까지 끄집어내며 핀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고전영화에 대입한다. 핀치가 조직에서 명령을 내리면 자신을 죽일 것이냐고 묻자 “가능성과 결과의 법칙. 우리 삶은 죽기 전까진 항상 가능성이 있다…. 1978년 <천국의 사도>…”라고 말하는 식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핀치의 이야기를 고전영화라는 액자 속에 집어넣고 평론을 한다는 데 있다. 핀치와 테스의 재회장면의 이야기를 듣던 그는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대사를 읊으며 스스로의 감정에 도취되기도 하고, 클레티스 타우트가 차와 함께 불타버려 신원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고 하자 <이중배상>과의 유사성을 언급하며 감탄을 거듭한다. 핀치가 “이야기는 25년 전 뉴욕으로 거슬러올라간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크리티컬 짐이 “뉴욕은 영화 찍기에는 너무 비싼 도시니까 그냥 어떤 도시라고 하자”고 말하는 장면은 핀치의 이야기가 완전한 픽션이며, 모두 크리티컬 짐의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뉘앙스도 슬쩍 내비친다.

이런 고전영화에 대한 잦은 인용은 이 영화가 스스로 고전이 되고자 자기 최면을 거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도 준다. 하지만 <다이아몬드…>는 자신이 규정한 고전영화가 갖춰야 할 조건을 완전히 성취하진 못하는 듯 보인다. 영화 초반 TV화면에서 <대탈주>를 보던 크리티컬 짐은 “거의 최면적이야. 3막이 있으니까”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3막 구성을 강조한다. 나중에도 그는 핀치에게 “이제 3막을 시작하자고”라고 말한다. 결말에 해당하는 이 영화의 3막은, 그러나 자신이 인용한 여러 작품만큼 극적이지 못하다. 이전까지 오밀조밀 잘 흘러가던 이야기의 지류들은 흐지부지 증발되고 앙상한 로맨스로 서둘러 마무리된다. 막판 대반전의 찬스를 맞이해놓고도 가장 쉽고 안전한 길을 택하다가 엉뚱한 곳에 닿은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출신의 ‘귀공자’들에게선 찾을 수 없는 상큼한 실험성과 또렷한 주관이 돋보이는 영화다. 미국 출신의 크리스 베르 윌 감독은 자신의 첫 장편영화인 이 작품에서 스크루볼코미디, 필름누아르, 어드벤처 등 다양한 장르를 독특한 감성으로 단단하게 감싸쥐는 재주를 보여준다. 애리조나대학을 나와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사회에 진출한 그는 LA, 파리, 캐나다 등을 떠돌며 시나리오 집필, 연극 연출 등을 했으며 보트를 타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생활하기도 했다. <다이아몬드…>의 시나리오 작업은 토머스 하디가 한때 살았던 런던의 한 가옥에서 이뤄졌다고 한다. 아직 미국에선 개봉하지 않은 이 영화는 지난해 토론토영화제를 통해 공개돼, 벨기에 등지에서만 소개됐다. 문석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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