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tory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하는 월드컵이 가까워지자 일본의 극우세력 천군파는 테러계획을 세운다. 테러의 첫 단계는 전문킬러로 훈련받은 천군파인 하나코(박경림)의 성형수술. 하나코는 상미(김정은)라는 한국여인으로 둔갑해 KP(Korea Police)요원 황보(임원희)의 애인이 된다. 40계단 살인사건 등 천군파의 움직임을 감지한 KP는 황보와 갑두(서태화)에게 수사를 맡기지만 천군파는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뚫는다. 천군파 대장 무라카미(김수로)는 대원들을 끌고 한국에 들어와 액체폭탄 PPX를 월드컵경기장에 설치하고 KP와 일대격전을 벌인다.■ Review <재밌는 영화>에 다른 제목을 단다면 <못말리는 쉬리>쯤 된다. <쉬리>의 인물 구성과 이야기 구조를 따온 다음 슬쩍 비틀어서 웃겨보자는 것이다. <홍콩 레옹> <홍콩 마스크> 등 주성치 코미디의 상당수가 이런 전략을 택하고 있는데 <재밌는 영화>는 여기서 한술 더 뜬다. 이야기에 틈만 생기면 누구나 알 만한 한국영화의 장면들을 빌려와 자꾸 드라마를 ‘웃기는’ 길로 몰아가는 것이다. <재밌는 영화>가 인용하는 영화는 줄잡아 스무편이 넘는다. ‘한국 최초 패러디 프로젝트’라는 간명한 컨셉에 요약된 대로 <재밌는 영화>는 일단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건다.
알다시피 원작이 훌륭하고 진지하며 인상적일수록 패러디가 주는 쾌감은 높아진다. 초반에 등장하는 40계단 살인사건 장면은 <재밌는 영화>가 관객에게 던지는 농담이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란 은행잎이 깔린 40계단 앞, 선글라스에 바바리코트를 입은 남자가 승용차에 앉아 있고 계단으로 어린아이가 걸어내려온다. 비지스의 노래 <할리데이>까지 나오면 더할 나위 없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명장면. 빗방울 떨어지고 우산 펼치면 사내의 얼굴에 피가 흐른다? 아니, 케첩이다. 칼에 찔린다? 아니, 오뎅꼬치에 찔린다. 비장하게 쓰러진다? 아니, 순대에 목이 졸려 버둥대다 죽는다. 살인범은 오뎅 팔던 리어카 할머니? 아니, 김정은이다. 아니, 실은 박경림이 성형수술해서 고친 얼굴이다. 아무튼 <쉬리>의 킬러 이방희가 오뎅꼬치로 사람죽이는 기술부터 선보이니 ‘어디 한번 웃겨봐’라는 자세로 보지 않으면 민망해진다. 현명하게도 <재밌는 영화>는 <쉬리>에서 북한 특수부대로 설정된 테러범의 정체를 일본 극우파로 바꿔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 반일정서에 편승하면서 달라진 남북관계까지 반영하겠다는. 그리하여 남북 정상은 <동감>처럼 우연히 무선통신을 하다 가까워진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 비를 맞으며 상대를 기다리는 대통령(김인문)의 애처로운 표정에 <동감>의 유지태가 겹쳐지면 <재밌는 영화>의 유머를 밉게 보긴 힘들다.
영화의 역사가 증명한 바에 따르면 패러디는 처음이 중요하다. 엄숙한 장면을 코믹하게 뒤집건 장르적 관습을 파괴하건 영화적 구조를 폭로하건 패러디는 우상파괴의 쾌감으로 관객을 사로잡는 기술이다. 같은 수법을 반복하거나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면 태초의 에너지를 잃고 시들해진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 패러디’라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 상당한 파괴력을 갖는다. <재밌는 영화>의 초반부가 신선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반칙왕>에서 의 신구, 한석규 부자를 패러디해 신구, 송강호 부자라는 웃기는 조합을 만들거나 <미지왕>이 영화 촬영과정을 폭로하는 수법을 쓰는 등 부분적인 패러디는 있었지만 <재밌는 영화>처럼 패러디로 도배를 한 영화는 없었다. 첫 시도가 주는 마력이 엔딩까지 이어졌다면 평단의 찬사까지 받겠지만 이 영화는 지구력이 좋은 편은 못 된다. 레슬리 닐슨이나 주성치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 별 관심이 없는 <재밌는 영화>는 액체폭탄 PPX가 생수랑 똑같아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거나 치아에 붙은 도청장치에서 노래방 마이크가 나온다거나 하는 장면 장면의 아이디어에만 주력한다. <스크림> 시리즈를 패러디한 <무서운 영화>와 똑같은 전략이다.
패러디영화의 또 다른 묘미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인용된 영화를 찾는 재미이다. <친구> <동감>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공동경비구역 JSA> <투캅스2> <간첩 리철진>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엽기적인 그녀> <넘버.3> <거짓말> <비천무> <반칙왕> <접속> <약속> <화산고> <서편제> <주유소 습격사건> 등 <재밌는 영화>가 빌려온 영화들은 대체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드러낸다. 만약 <재밌는 영화>가 관객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다면 무엇보다 앞서 인용된 이들 영화에 머리숙여 감사할 일이다. <무서운 영화>가 10대 난도질 공포영화 유행의 묘비명이었다면, <재밌는 영화>는 한국영화의 좋은 시절을 기념하는 ‘농담의 종합선물세트’이다. 실속은 대단찮아도 정성이 갸륵한…. 남동철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