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허크
하비의 <영혼의 카니발>(Carnival of Souls)이죠. 혹시 심야영화 시간에 보신 분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자동차
사고로 익사할 뻔한 오르가니스트가 유타에 있는 작은 성당에 취직하는데, 사고 이후로 시체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이상한 남자가 그 오르가니스트의
뒤를 쫓는다는 내용이었는데요.
이게 어떻게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과 연결되냐고요? 조지 로메로가 사람 고기를 먹는 좀비영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그가 염두에 두고
있던 영화는 <화이트 좀비>나 <좀비의 역병>과 같은 기존 좀비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영혼의 카니발>이었죠. 전 종종 어느 꿀꿀한
날 드라이브 인 시어터에서 이 아마추어의 서툰 냄새가 폴폴 나는 싸구려 공포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조지 로메로가 느꼈던 감상을 상상하는
걸 좋아합니다. 일단 로메로의 좀비가 이 영화의 유령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건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고, 그걸 잊더라도 이 극저예산영화에서
그가 앞으로 만들 영화의 미래를 보았다고 해도 이상하지는 않으니까요.
극저예산 동네 공포영화였다는 점에서 <영혼의 카니발>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의 직계 조상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캔자스의 소도시에서
교육자료용 영화를 찍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 잠시 짬을 내어 만든 아마추어영화였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를 발판 삼아 할리우드에 진출하려는
감독 허크 하비의 야심은 배급업자가 돈 들고 튀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지만 그의 용감한 시도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블레어 윗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등불이 돼주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이 작은 영화는 참 많은 일을 했습니다. 이 영화의 진짜 공헌은 만들어진 뒤 수십년 동안 숨어서 몰래몰래 영화사에 끼친 영향에
있지 않나 싶군요. 조지 로메로를 잊는다고 해도 수많은 현대 호러영화들에 <영혼의 카니발>이 끼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데스티네이션>은
어때요? 비행기 사고 이후 죽음의 그림자가 뒤를 쫓는다는 이야기가 과연 <영혼의 카니발>과 무관할까요? <식스 센스>는 어때요? 이 영화의
유령들은 <영혼의 카니발>에서 죽음의 춤을 추던 사람들과 기본적으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야곱의 사다리>에서 제이콥이 겪는 악몽 같은 경험은
<영혼의 카니발>에서 메리 헨리가 겪는 경험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수십년 전에 동네 방송사 심야공포영화 시간에
우연히 보았던 이 영화를 기억 못할지 몰라도, <영혼의 카니발>의 영향은 진짜 유령처럼 장르 곳곳에 묻어 있습니다.
지난해에, 크라이테리언에서 이 영화를 새 DVD로 재출시했습니다. 덕택에 전 제가 가지고 있던 낡아빠진 3배속 테이프를 제 페이지 퀴즈
상품으로 넘겨버리고(그래도 꽤 정들었을 테이프를 이렇게 훌렁훌렁 넘겨버리는 걸 보면 누구처럼 테이프 자체에 대한 페티시즘은 없는 모양입니다)
새 DVD의 근사한 화면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답니다. 제발 이 DVD가 이 숨은 고전에 대한 정당한 평가에 도움을 주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