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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인터뷰]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 드라마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 <럭키> 이계벽 감독

유해진 주연의 <럭키>가 개봉 2주 만에 5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10월27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이계벽 감독은 지금의 흥행에 감사해하면서도 정작 “<럭키> 전과 후, 삶의 변화는 없다. 아직 영화 개봉 2주가 지났을 뿐”이라며 침착한 태도를 보였다. <럭키>는 이계벽 감독이 신민아, 류승범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야수와 미녀>(2005) 이후 10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장편영화다. 무명배우와 킬러의 운명이 목욕탕에서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이계벽 감독은 억지 감동 없는 저자극 코미디로 그려낸다. 유해진의 힘, 착한 코미디의 힘 거기에 배급 시기의 운까지 더해져 승승장구하고 있는 <럭키>는 이계벽 감독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다. <럭키>에 대하여, 코미디 장르에 대한 애정에 관하여 이계벽 감독과 얘기를 나눴다.

-코미디영화로는 최단기간 흥행기록을 써내려가는 중이다.

=행복한지는 잘 모르겠고 그저 얼떨떨하다. 순제작비가 40억원인데 손익분기점을 빨리 넘겨서 다행이란 생각은 들었다.

-축하인사도 많이 받고 있겠다.

=축하받는 것도 힘든 과정이구나 싶더라. (웃음) 그럴 때마다 “이 모든 영광은 유해진 형님께 돌린다”는 얘기를 많이 했다. 배우 유해진에 대한 친숙함과 호감이 영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발전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겸손이 아니라 사실이다.

-배급 시기도 좋았다. <럭키> 개봉 2주 전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가 개봉했지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그외 큰 사이즈의 경쟁 영화들이 없었다.

=사실 촬영이 끝난 건 지난해 11월이었다. 개봉이 많이 미뤄졌는데, 그땐 영화가 언제쯤 개봉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배급 시기에 있어서 운이 많이 따랐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개봉이 늦어지면서 상대적으로 후반작업 기간이 길었다.

=디테일하게 영화를 계속 손보는 시간이었다. 코미디영화에선 편집의 묘도 중요하기 때문에 적절한 속도감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특히 음악에도 공을 많이 들였는데 <사도>(2015), <베테랑>(2015)의 방준석 음악감독이 영화에 어울리는 멋진 음악을 만들어주었다. 아마 그 시간이 없었다면, 영화에서 유해진의 주제곡으로 사용된 함중아의 <그 사나이> 같은 곡은 못 찾았을 것이다.

-장편영화 현장에 복귀한 건 <야수와 미녀> 이후 10년 만이다. 그동안 <커플즈>(2011)와 <남쪽으로 튀어>(2013)의 각본 작업을 진행했다. <커플즈>의 경우 연출을 하려 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의 시간이 있었는데.

=세월이 이만큼 흘렀는지 정작 나는 잘 못 느끼고 살았다. 드러난 결과물은 많지 않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쓰고 시도하고, 쓰고 시도하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거다. <커플즈>의 경우도 좋은 배우들을 캐스팅하고 투자를 기다렸지만 당시 금융 위기로 한국영화계에 찬바람이 불어 결국 연출이 무산됐다. 그렇게 작품이 몇번 엎어지고 나니 시간이 이만큼 훌쩍 흘러가 있더라.

-<커플즈>의 원작도 우치다 겐지의 <내 마음의 이방인>(2004)이고, <럭키>의 원작도 우치다 겐지의 <열쇠 도둑의 방법>(2012)이다. 우치다 겐지 감독과 묘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우치다 겐지는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었고, 신작이 나왔다기에 <럭키>의 연출 제의를 받기 전에 먼저 <열쇠 도둑의 방법>을 본 상태였다. 그러고 4~5개월쯤 있다가 용필름에서 <럭키> 연출 제의를 받았는데, 그땐 이것도 인연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럭키>의 시나리오는 <마담 뺑덕>(2014),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2011)의 각본가인 장윤미 작가가 썼다. 연출 제의를 받을 당시 완고가 나와 있는 상태였나.

=그건 아니고, 각색을 거쳤다. 처음엔 로맨틱 코미디, 멜로에 가까운 시나리오였다. 나는 이 영화가 소프트한 느낌으로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성장 드라마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우치다 겐지 감독의 작품에는 독특한 구성과 분위기가 있다. <열쇠 도둑의 방법>도 사랑 이야기가 밑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범죄영화의 느낌이 묻어 있는데, 그 독특한 구성과 감성을 내 식으로 바꿔보고 싶었다. 성장영화에 범죄 장르가 섞이는 방식으로. 주인공의 무게중심 또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작은 킬러가 아닌 무명배우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는데, 내게는 기억을 잃어버린 킬러의 이야기가 훨씬 재밌게 다가왔다. 그래서 형욱(유해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각색했다.

-결과적으로 범죄영화도 아니고 로맨틱 코미디도 아닌 제3의 길, 즉 어른들의 성장 드라마로 이야기를 풀었다. 왜 성장 드라마였나.

=이런 이야기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 지금의 내 모습은 정말 나의 참모습일까. 어떠한 계기로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있었다. <야수와 미녀>에도 그런 포인트가 있는데, 두 사람의 운명이 바뀌는 <럭키>는 평소의 관심 주제를 발전시키기에 적격인 작품이었다.

-기억을 잃어버린 후 무명배우의 삶을 살게 되는 킬러 형욱을 유해진이 연기한다. 유해진이 캐스팅되면서 형욱 캐릭터가 변모한 지점도 있었을 것 같다. 유해진이기때문에 성공적으로 먹힐 수 있었던 유머 코드들이 많이 있다.

=만약 유해진이 아닌 다른 배우가 형욱을 연기했다면, 지금의 관객이 받아들이는 것처럼 인간미 있는 영화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무명배우의 삶이지만 그토록 착실히 살아가고 있는 형욱이란 인물에 많이들 감정이입을 하는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서 유해진만의 특별함이 잘 묻어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맨 처음엔 멋있는 킬러가 무명배우가 됐을 때의 대비감, 그 대비의 낙차를 통한 코미디를 생각했다. 그런데 제작자인 용필름 임승용 대표님이 유해진 배우는 어떠냐고 얘기를 했고, 그 순간 느낌이 왔다. 개인적으로는 캐릭터의 외모로 웃겨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기억을 잃은 뒤 당혹스러워하는 인물을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기억을 잃은 형욱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데, 그 첫번째 당혹스러움은 나이에서 비롯된다. ‘내가 1984년생? 정말 그렇단 말이야? 내가 이 옥탑방에 산단 말이지?’ 당혹스러운 상황이 계속해서 이어질 때 거기에 대처하는 한 인물의 모습을 잘 따라가고 싶었다. 그러한 순간을 유해진 배우가 정말 훌륭히 연기해주었다.

-타이밍을 활용한 코미디나 허를 찌르는 상황 코미디가 꽤 높은 확률로 웃음을 유발시킨다.

=매체마다 어울리는 유머 코드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 많은 개그 프로그램들이 TV에서 방송되는데, 방송의 경우 유행어나 몸개그 등이 유효하게 먹힌다. 반면 영화는 스토리가 재밌어야 하고 세부 상황이 웃겨야 한다. 배우의 개인기에 기대는 방식으로, 타 매체가 더 잘 소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웃음을 주면 영화의 코미디는 힘을 받기 힘들다. 그래서 재밌는 이야기, 웃기는 상황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얘기한 것처럼, 배우의 캐릭터는 활용해도 배우의 개인기를 활용한 코미디는 없더라.

=촬영할 때 배우들에게 “웃겨야 돼요”, “재밌어야 돼요” 그런 말을 하는 게 굉장히 실례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와 연기를 하는 것이지 개인기가 뛰어난 코미디언과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지 않나. 배우들은 현장에서 그 상황에 맞는 감정을 보여주는 거고, 나는 그 연기를 부탁한다. 웃겨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이 장면 좀 재밌게 잘 살려주세요” 같은 말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편안한 현장 분위기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배우가 현장을 불편해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없다. <럭키>의 경우 장르도 장르인지라 좀더 편하고 유쾌한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게 나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텐데, <럭키> 현장에선 다들 비슷한 마음으로 열심히 일했다. 현장이야 늘 바쁘게 돌아가지만, 미리 준비하고 미리 바쁘게 뛰면 된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럭키>를 두고 ‘착한’ 코미디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형욱을 ‘착한’ 킬러로 설정한 것 역시 관객이 훈훈한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게 한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나 싶은데, 이 영화 앞에 ‘착하다’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게 봐주시는 건 물론 좋다. 하지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착해야 해’ 그런 생각이나 기준을 갖고 영화를 만들진 않았다. 우리 영화에 맞는 정서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정서를 잘 따라가려 했을 뿐 ‘착한’코미디를 의도한 건 아니다. 자극적이거나 가학적인 코미디를 별로 안 좋아하긴 한다.

-코미디에 대한 애정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안다. 어떤 코미디영화를 좋아하나.

=아마 코미디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주성치 얘기부터 꺼낼 텐데, 나 역시 그렇다. 주성치의 코미디도 좋아하고,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우디 앨런식 코미디도 좋아하고, 난니 모레티자크 타티의 영화가 웃음을 자아내는 방식도 좋아한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영화는 무엇인가.

=의외라고 생각하겠지만 <복수는 나의 것>(1979), <우나기>(1997) 등을 만든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을 좋아한다. 그중에 <붉은 살의>(1964)라는 영화는 ‘와,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해준 내 마음의 영화 중 하나다.

-용필름의 임승용 대표가 <야수와 미녀>에 이어 <럭키>까지 제작했다. 임승용 대표와는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2003) 때부터 인연을 쌓은 것으로 안다.

=<올드보이> 때 나는 조감독이었고, 임승용 대표님은 제작사 대표이자 프로듀서였다. 그땐 조감독과 프로듀서라는 역할로 만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많이 싸우지만. (웃음)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몸소 겪으며 함께했기 때문에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때부터 쭉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는데, 아직도 내겐 편하면서도 어려운 분이다.

-<올드보이>의 조감독 출신인 정식 감독(<기담>(2007), <이와 손톱>(개봉예정)), 석민우 감독(<대배우>(2016)), 한장혁 감독(<부메랑>(촬영 중))이 이제는 다들 감독 데뷔를 했다.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일 수 있는데,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웃음) 어려운 시기를 함께 겪었고 어렵게 감독 데뷔를 한 터라 서로에게 의지를 많이 했다. 지금도 이들과 자주 연락하고 지내는데, 나이를 떠나 지금은 다들 좋은 동료이고 친구들이다. 한장혁 감독이 <부메랑>(출연 박해일, 오달수)을 찍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이제 <올드보이> 조감독들이 모두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잘됐다 싶고, 박찬욱 감독님한테도 ‘우리, 그동안 열심히 영화 했습니다’하고 보여줄 수 있어 훈훈한 것 같다.

-박찬욱 감독 영화의 조감독으로 일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이 있다면.

=모든 걸 배웠다. 현장을 부드럽고 편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부터 정말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영화감독이 돼야 한다는 것까지. 박찬욱 감독님은 그 모든 것 을 몸소 실천하는 분이라 존경스럽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장르도 익숙하고 소재도 익숙하지만 무언가 의외성이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그래도 마냥 진지한 건 못견디는 성향이라 앞으로도 계속 유머를 잃지 않는 작품을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한국영화계는 웃음을 주는 영화에 박한 것 같다. 개인적인 바람은 다양한 정서를 전달하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거다. 어둡고 터프하고 냉철한 영화와 따뜻하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영화들이 상업영화 안에서 다양하게 공존했으면 좋겠다. <럭키>의 흥행이 그런 계기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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