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B급영화의 전설 스즈키 세이준이 온다. 너무 치졸해서 차라리 통렬하고, 너무 망측해서 차라리 감동적인 이 이단아는 평론가들에겐 멸시당했지만 시대를 앞서간 진정한 작가였다. 싸구려 투성이에서 영화적 쾌감의 한 극단을 체험케 할 스즈키 세이준의 대표작 15편을 만난다. 2002 시네마테크 영화제의 멋진 스타트. 편집자
1960년대에 일본의 영화를 일신한 뉴웨이브의 대표주자가 오시마 나기사라고 한다면,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스즈키 세이준을 그와의 비교로부터 설명하는 것은 과연 유효한 일일까? 대충 짐작해봐도 이 둘 사이엔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 같은데, 저명한 일본 영화 연구서 <먼 곳에 있는 관찰자에게>에서 노엘 버치 같은 학자는 스즈키의 <도쿄 방랑자>와 오시마의 <일본의 밤과 안개>가 동일한 명칭을 가질 만한 효과를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즉 두 영화 모두 연극적 기법을 활용한 ‘거리 두기’(distancing)의 효과를 산출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설명이 완전히 납득할 수만은 없는 것은, 이 두 감독이 유사한 용어로 묶일 수 있는 기법을 가지고 겨냥한 바가 전혀 상이한 유의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시마와 스즈키는 형식의 과격함을 밀어붙일 줄 알았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고 말해도 좋을 그런 감독들이다(또 그런 면에서 둘은 공히 장 뤽 고다르를 연상케 하는 면이 있는 감독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했는가를 따져본다면 이 둘은 같이 묶일 수 없는 이들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 오시마는 자신의 혁신적인 형식을 통해 당대 일본사회의 문제들에 대해 정치적 진술을 하고자 했다. 반면 스즈키의 극단적이고 괴상한 ‘살인의 스타일’(Style to Kill: 지난해 도쿄에서 열린 스즈키 세이준의 회고전 하나는 아주 적절하게도 이런 제목을 달고 있었다)은 웬만해서는 정치적 현실과 맞닿지 않았다. 그건 영화라는 세계 안에서 마음껏 유희의 정신을 펼칠 수 있는 도구일 경우가 많았다. 오시마가 사무라이와 같은 강직한 정신으로 당대 사회와 싸울 때, 또 그렇게 일본영화의 전통을 부정할 때, 스즈키는 자유로운 유희정신으로 장르의 한계를 비웃고, 또 그럼으로써 일본영화의 전통을 뛰어넘어버렸다. 그런 면에서 오시마가 일본 뉴웨이브의 모델과도 같은 인물이라면 스즈키는 그에 대한 일종의 네거티브로서 뉴웨이브에 속하게 된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일본 뉴웨이브의 그림자
프랑스 누벨바그 멤버들과 일본 뉴웨이브 멤버들 사이의 상이점들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전자가 영화 보기와 영화에 대한 글 쓰기, 그리고 (단편)영화 만들기를 통해 어느 정도는 꾸준히 영화를 배워왔던 데 비해 후자는 대개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스즈키 역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영화 공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1932년생인 그가 스물다섯살의 나이에 쇼치쿠에 입사한 것도 영화감독으로서 무슨 거창한 포부가 있었거나 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몇년 뒤 그는 쇼치쿠에서 닛카쓰로 ‘직장’을 옮기게 되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그것도 닛카쓰가 쇼치쿠보다 더 많은 급료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즈키는 “나는 특별히 열정 같은 걸 갖고 있는 영화감독이 아니었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스즈키의 과장된 영화, 그 유희정신이란 어쩌면 영화에 대한 무지(無知), 그럼에도 관객은 즐겁게 해주고 말겠다는 생각과 적지 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숏들이란 어차피 숏들을 연결하는 것이니 연속성이란 무시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그럴 때 오히려 영화적 재미가 생겨날 수 있으며 자연스러움과는 아주 거리가 먼 미장센 설계가 좋은 의미에서 관객을 놀라게 해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영화를 어디에선가 배우지 않은 그에게 영화문법 같은 건 존재할 리가 만무한 것이다(그에 따르면 조감독 생활을 하면서도 밤마다 술 마셨던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56년 <항구의 건배>라는 영화로 영화감독의 직함을 갖게 된 스즈키가 자신의 영화들에서 발휘하는 유희정신이란 너무나 뻔뻔스러운, 그래서 도발적인 유희정신이라고 부름직한 것이다. 스즈키 세이준의 세계는 킬러들, 그의 정부들, 야쿠자들과 같은 전형적인 인물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로 몸을 담고 있는 뻔한 장르영화의 세계(주로 야쿠자영화 장르라는 세계), 그러면서 마음속에 담고 있는 여학생에 대한 욕망을 달래겠다고 바지를 내리고는 발기한 성기로 그녀의 피아노를 치는 남자 고등학생(<겐카 엘레지>)이나 별나게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의 냄새를 맡으며 엑스터시를 느끼는 킬러(<살인의 낙인>)처럼 망측하거나 유별난 행태를 보이는 인물들로 가득한 세계이다. 스즈키는 이 세계를 치장해내는 데도 과장된 스타일을 마구 동원한다. 그의 영화들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지나치게 화려한 색채, 기괴한 실내장식, 조각난 내러티브 등이 그 증거이다. 스즈키의 세계는 기존의 장르에 바탕을 두면서도 그의 유난스런 유희정신에 의해 장르의 공식들을 돌파하고 또 뛰어넘는 세계이다. 그렇게 해서 전율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는 스즈키의 영화는, 영화학자 데이비드 데서의 지적처럼 돈 시겔이나 새뮤얼 풀러의 세계에서 근친성을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살인의 낙인>, 시대를 앞선 걸작
스즈키의 67년작인 <살인의 낙인>은 이런 그의 유희정신의 극점을 보여준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한 그런 작품이다. <도쿄 방랑자>에 이어 컬트감독으로서 스즈키의 명성을 확고히 해준 이 영화는 하나다라는 킬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살인청부업을 맡고 또 배신당하는 그의 이야기이건만 영화는 예상과는 달리 그가 펼치는 액션이 아니라 그가 겪는 내적인 동요에 초점을 맞추어나간다. 랭킹 3위의 킬러인 하나다는 외국에서 돌아와 일을 하나 맡는데 그것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넘버4와 넘버2를 제거하게 된다. 그리고는 미사코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그녀로부터 청부살해 부탁을 받는다. 하나다에게 그녀는 만일 성공하지 못하면 반대로 그가 살해당할 것이라고 말한다. 미사코의 청을 받아들이기로 한 하나다. 그는 ‘표적’을 향해 총을 겨누지만 그만 일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이때부터 하나다는 미사코에 대한 애욕과 “내가 프로 킬러인가?”라는 자괴감을 오가며 극심한 혼란에 빠지기 시작한다. 게다가 ‘유령 같은 넘버원’으로부터의 위협이 가시화된다. 도대체가 논리와는 담을 쌓은 듯한 비현실적인 설정과 몇몇 황당하도록 신선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는 이 이야기를 스즈키는 괴이한 세트라는 공간과 중간중간 연결점을 상실한 듯 결락을 가진 시간 안에 담아낸다.
<살인의 낙인>은 분명 그때까지 스즈키가 거둔 최고의 성취를 보여주는 걸작임에 틀림없지만 이건 공개 당시에는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시대를 앞서간 영화였다. 이 이상한 영화에 대한 불만은 스튜디오로부터 즉각적으로 터져나왔다. 돈도 안 되고 또 이해도 되지 않는 이상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스즈키는 닛카쓰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게 된다. 이른바 ‘일본판 랑글루아 사건’(1968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인 앙리 랑글루아가 문화부 장관의 해고 결정을 받게 되자 수많은 영화인들이 이에 항의하는 거리행진을 한 게 랑글루아 사건이다)을 불러온 게 바로 이 일이었다. 스즈키의 팬들과 영화인들이 ‘스즈키 세이준 사건 공동 투쟁위원회’를 결성해 긴자 거리에서 이 부당 해고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던 것이다.
80년대, 탐미의 미학 만개
스즈키는 영화사를 상대로 법정 소송을 벌여 결국에는 승소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법적인 승리가 그의 승리와 직결되지는 않았다. 60년대에 시스템 안에서 타고난 B급영화 감독 특유의 유희적 감수성을 과시할 수 있었던 그는 70년대엔 TV 드라마 각본 등을 쓰면서 침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스즈키의 부활은 80년대까지 진입해서야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때부터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스즈키의 세계를 보게 된다. 그의 화려한 부상을 알린 <지고이네르바이젠>은 예전에 보여주었던 저돌적이게 도발적인 영화라기보다는 유현(幽玄)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는 일본적 미학의 영화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이것에 이어져 3부작을 형성하게 되는 <아지랑이좌>와 <유메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하튼 이 영화들은 일본의 영화평론가인 요모타 이누히코로부터 “전후 일본영화가 도달한 가장 세련된 미의식과 극도로 바로크적인 정신의 결합”이라는 절찬을 끌어냈다. 물론 그것들은 그러기에 모자람이 없는 것들이다.
예전의 뻔뻔스러운 작품들이 좋은지 아니면 탐미주의로 가득한 뒤의 세 작품들이 더 좋은지는 개인이 판단할 일이지만, 어쨌든 <지고이네르바이젠>으로 스즈키가 일종의 차원 이동을 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전히 자신에게 영화란 ‘취미’이고 자신은 오락영화의 감독이라고 말하는데, 이 정도 폭넓은 차원 이동을 제대로 해낼 정도면 그를 두고 취미를 가지고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선 오락영화 감독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 아닌가? 홍성남/ [email protected]▶ 일본 B급영화 미학의 극점, 스즈키 세이준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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